소설리스트

간웅-317화 (317/620)

< -- 간웅 15권 -- >"예. 합하! 오늘 같은 날이 또 올 것입니다. 그날이 온다면 또 오늘처럼 하셔야 할 것입니다. 주군의 검은 항상 비정하며 또 너그러운 법입니다."

"예. 알겠습니다."그리고 난 다시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만적을 봤다.'네 너는 차마 베지 못하겠구나!'이 자리에서 죄를 묻고 죽이기에는 만적은 너무 어렸다.

"만적아!"

"예. 합, 합하!"만적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리니 두려움에 떨리는 거였다."너는 나가거라.

너는 아직 어리다. 그러니 용서를 하지는 못하겠으나 베지도 못하겠다."내 말에 담장 앞에 서 있던 억세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내가 만적을 내 보내내는 것은 그는 아직 어리기 때문이다.

물론 흥선도 어리게 보였다. 허나 내가 흥선은 절대 어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도,,,,,,."

"나가라!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자는 더는 살수가 없다."

"하오나,,, 하오나 저는,,,,,,."

"억세 뭐하시는가? 어린 아들을 죽게 할 건가? 내 자비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네!"내가 외치자 억세가 급히 달려와 내게 머리를 조아리고 만적의 팔을 잡고 끌었다."가자! 어서 가자! 합하께서 나가라고 하셨다. 어서!"

"아버지! 노세요."

"합하께서 이리 노하신 것은 나는 못 봤다. 가자! 여기 있으면 너는 죽어!"

"노세요. 저도 흥선 도련님과 같이 죽겠습니다. 비겁하게 혼자 살지는 않겠습니다."짝!억세가 만적의 뺨을 후려쳤다."가자니까. 어서!"

"아버지!"

"가자! 어서 아비보다 먼저 죽는 불효자가 될 것이냐!"

"하지만 아버지,,,,,,."억세는 자신의 아들인 만적을 살리기 위해 만적을 들쳐 메고 내 앞으로 와 머리를 조아렸다."놔주세요. 아버지! 놔주세요. 저도 합하의 가신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그 죄를 받을 겁니다."아무리 만적이 소리치고 발버둥을 쳐도 아들을 살리고자 하는 억세는 만적을 놓지 않았다."절대 이 은혜 잊지 않겠사옵니다.

합하!"

"어리기에 베지 않는 것이다. 마음은 이미 베었다."

"예. 합하! 감사하옵니다."억세는 내가 왜 이리 화를 내는지 모를 것이다. 이 사택에 있을 때 검을 든 것을 처음보고 또 이리 흥선이 무릎을 꿇고 있는 것도 처음 본 흥선이었다. 또한 가신들의 표정이 굳어져 있는 것도 처음 봤다.

그렇기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자신의 아들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았다."감사하옵니다. 감사하옵니다."

"광에 가두고 하루에 주먹밥 하나와 물 한 사발만 넣어라. 그리 한 달을 가둬라."

"예. 합하! 그리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그렇게 억세는 머리를 조아리고 대답한 후에 급히 안채 전각 앞마당을 떠났다.그리고 난 내 옆에 조심히 서 있는 박위를 봤다.

회생의 사택 정문으로 조심히 이 숭겸이 들어섰고 그 순간 급히 만적을 들쳐 매고 나오는 억세의 모습이 이숭겸의 눈에 보였다."놔주세요. 아버지. 절대 저 혼자 살수 없습니다."

"못 놓겠다. 나는 네가 죽으면 나도 못산다."

"아버지!"만적은 절규를 하듯 울부짖었다."놔, 놔주세요. 제발 놔주세요."

"못 놓는다. 나는 합하께서 저리 분노하신 것을 본 적이 없다. 너와 흥선 도련님이 합하께 무슨 죄를 지은 것이냐?"그때 이 숭겸이 흥선을 말하는 억세의 말을 듣고 놀라 억세 앞에 섰다."무슨 일인가?"

"어르신!"

"무슨 일이냐고 물었네."

"합하께서 크게 노하셔 별초를 베고 또 흥선도련님을 베려 하십니다."

"뭐라?"억세의 말에 이 숭겸이 기겁했다."지금 합하께서 흥선 마마를 벤다고?"

"예? 마마라니요?"억세는 이숭겸의 말에 영문을 몰라 되물었다."아니네. 아무것도 아니야!"이 숭겸이 그리 말하고 급히 회생이 있는 사택 안채 전각으로 달렸다."절대 그리 되게 할 수는 없음이야! 절대로!"

"박주태를 데리고 와라."억세가 나가고 나서 난 바로 박위에게 박주태라는 낭장을 데리고 오라고 명령했다."예 합하!"박위가 급히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 보니 요즘 박위가 말을 더듬지 않고 있었다.쫘아악!순간 난 검을 뽑았다. 저벅! 저벅!그리고 흥선의 앞으로 걸어갔다."흥선아!"

"예. 형님!"이 사택 안에 유일하게 흥선만이 나를 형님이라 불렀다. '이제 분명히 해야 할 때가 됐다.'흥선은 내 할바마마이신 인종폐하의 아들이거나 그게 아니면 내 아버님의 아들이 분명할 거다.

그것을 명확하게 해야 했다. 그리고 아마 8할은 내 아버지의 숨겨진 아들이 분명할 거다. 무비가 내게 이런 짓을 한 것처럼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형인지 아우인지 명확하게 해야 했다.

"네놈이 끝내 내 앞길을 막는구나!"

"그리 생각하십니까?"

"그게 아니면 무엇이더냐?"

"찬찬히 생각해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척!이 순간 난 흥선의 목에 검을 겨눴다. "합하! 모든 것이 이 어리석은 가신의 죄입니다."왕준명이 크게 소리쳤고 난 왕준명을 노려봤다."그래. 너의 죄다."

"소장을 베시고 도련님을 구명해 주시옵소서. 소장이 도련님을 막지 못한 죄입니다. 또한 도련임은 크게 쓰일 분이십니다. 아시지 안하옵니까?"이 순간 내게 떠오르는 것은 읍참마속이었다.

별초조장을 참하라고 명령을 내릴 때와는 또 다른 거였다."그래 옳다. 그래 너도 베어야겠다.

너는 내 가신으로 나를 배신했다. 가병이라고 할 수 있는 별초와는 그 죄의 크기가 참으로 다르다."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이의민 장군!"

"예. 합하!"

"끌고 나가 참수 하시게."내 말에 남아 있는 별초들과 이의민까지 모두 놀라 눈동자가 커졌다. 정말 별초와는 그 크기와 직위가 다른 왕준명이니 저리 놀라는 거였다. 그리고 난 다시 왕준명을 봤다."너의 죄는,,,,,,."나는 더는 말을 하지 못했다.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차마 네놈의 죄는 횡제를 시해한 대역무도한 죄라고 말하지 못했다. 이 밤에 나를 보는 가신들과 별초들이 이리 많으니 말이다."아옵니다.

저의 죄가 무엇인지 잘 아옵니다."그 순간 왕준명이 자리에서 조심히 일어나 내게 큰절을 올렸다. 죽음이 성큼 다가와 있는 이 순간에 내게 이리 절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나를 충심으로 따랐다는 증거일 거다."합하! 부디 그 큰 뜻 이루소서!"

"뭐 하십니까? 끌고 가서 베지 않고."내가 이의민에게 명령한 것은 왕준명이 내 가신이기에 그에 걸맞은 자에게 죽게 하고 싶었다. 또한 차마 왕준명이 내 앞에서 죽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이런 마음이 읍참마속의 마음일 거다.

"예. 합하! 명을 따르옵니다."이의민도 내 마음을 아는 듯 했다."왕준명을 베시려거든 저부터 베십시오."흥선이 나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네 이놈! 내 너를 베지 못할 줄 아느냐?"난 사납게 흥선을 노려봤다.그때 별초들에 의해 박주태가 끌려왔다.

검에 찔려 만신창이가 된 그였지만 여전히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합하! 박주태 낭장을 데리고 왔나이다."별초가 내 앞에 박주태 낭장을 세우고 말했다.

난 잠시 흥선에게 겨눈 검을 거두고 박주태 낭장을 봤다."네가 폐주를 보현원까지 호송했던 무장인가?"

"그렇소이다. 부마도위!"박주태는 나를 부마도위라 불렀다.

그가 보현원으로 갈 때까지는 나는 합하가 아니고 부마도위며 견룡행수였으니 이리 부르는 것은 당연할 거다."고려의 섭정이신 합하이시다."이의민이 불호령을 내리듯 소리쳤다."섭정인 합하?"박주태가 이의민을 보며 피식 웃었다. 명종황제를 태워 죽인 것은 다 내가 섭정이 되어 옥좌에 욕심이 생겼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조롱이 담겨 있는 웃음이었다.

"그런데 어찌 이 꼴이 되었는가?"내 물음에 박주태가 나를 노려봤다."그걸 어찌 제게 물으십니까? 합하께서 더 잘 아시겠지요."박주태는 이제는 나를 합하라 불렀다. 허나 나에 대한 존경심 따위는 없는 어투였다.

마치 비꼬는 것처럼 둘렸다.'내가 지시를 했던 안 했던 이제는 내가 한 짓이 되는군.'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이것이 바로 내가 두려워하고 분노한 이유였다.

숙부를 옥좌에 눈이 멀어 태워 죽였다는 꼬리표가 이제는 항상 내게 따라다닐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것은 내가 알고 있는 흥선은 절대 어리석지 않는데 그런 꼬리표를 내가 달게 될 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움직였다는 거였다.'내가 아는 흥선은 공명과 중달을 합쳐놓은 지략이 있다.'나는 처음 흥선이 군사지도를 비롯한 각종 정보를 수집할 때부터 흥선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그리고 그가 북변으로 갔을 때 그 짧은 시간 토끼를 키워내 내 사병들을 배불리 먹인 흥선의 능력에 감탄했다. 또한 그 북변에 있는 소수부족들과 고려에 속해 있으면서도 고려조정에 등을 돌린 북변호족들의 성향을 파악해낸 흥선이 놀랍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 무슨 이유에선가 이런 앞뒤 없는 짓을 한 것이 이해가 안 됐다.'이럴 흥선이 아닌데,,,,,,.'난 무릎을 꿇고 있는 흥선을 잠시 봤다. 그리고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는 박주태를 봤다.그리고 흥선이 박주태를 왜 이 사택까지 살려왔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인재인가? 흥선이 반할 만큼 대단한 무장인가? 그럴 것이야! 그래서 살려온 거야!'난 흥선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다 나를 위함인 거다.'고려의 숨겨진 황자가 나를 돕는다? 내가 이 씨로 황제가 된다면 역천인 것인데,,,,,,,.'정말 종잡을 수가 없는 흥선이었다."나라고 생각하는가? 그 모든 일을 내가 지시했다고 여기는가?"

"아니옵니까? 합하! 합하가 되셨으니 폐하가 되시고 싶어서 그리 한 것이 아닙니까?"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망발을 입에 담는가?"이고 외숙이 박주태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이고 대장군도 계셨습니다. 무신혁명의 그 초심은 어디에 갔습니까?"

"뭐라?"

"권력의 단맛을 보니 욕심이 생기더이까? 만백성이 끝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박주태의 말에 이고외숙은 더 말하지 못했다. "충신이고자 하는 건가?"내가 박주태를 향해 소리쳤다."폐주를 지켜내지 못했으니 충신은 아니지요."무장으로써의 그의 무위보다 올곧은 그의 마음이 더 빛날 것 같았다."내가 그리 어리석나? 나는 그리 어리석지 않아."

"권력에 눈이 멀면 초심을 잃지요. 아닙니까? 잃으셨습니다. 초심! 상황전하를 살리셨을 때의 충심은 이제 없고 역심만 가득한 분이 되셨습니다."몸은 비록 만신창이가 되어 있으나 그 정신만은 또렷한 것 같았다. 또한 내가 상황이신 내 부친을 살렸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는 것을 봐서 박주태는 능력이 있고 통찰력이 있는 자가 분명했다.

또한 무위역시 뛰어날 것 같았다. 흥선의 뒤에 만적과 왕준명이 꿇어앉아 있었고 그 뒤에 흥선의 명을 따른 별초 다섯이 조금 전까지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있으니 말이다.

다시 다섯은 죽었다는 거였다. '홀로 별초 10을 상대하고 5명을 죽인다? 그건 꽤나 강한 무위를 가졌다는 증거지. 이래서 흥선이 여기까지 데리고 왔군.'난 박주태의 사람됨에 조금은 끌렸다. 하지만 이 순간 사람에게 끌리는 것보다 작금의 사태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더 중요했다.'내게는 충신인 왕준명까지 벨 것이다. 그런데 이 자에게 끌릴 순 없다.'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왕준명은 내 가신 중에서도 내가 그 신분이 낮을 때부터 나를 따른 자였다. 그러니 어찌 보면 조강지처라고 할 수 도 있는 존재였다.그런 그를 난 지금 베려고 했다.

읍참마속의 공명의 마음이 이럴 것이다.

"초심? 권력에 눈이 멀어? 내가 옥좌라도 찬탈할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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