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5권. -- >김보당을 고신하라는 내 말에 문무백관들은 주눅이 들어 내 눈을 피했다. 이제 앞으로 함부로 내 눈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자는 몇 없을 것이다.
이제는 금으로 가서 금왕을 달랠 사람을 할마마마께 말해야 할 때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며 힐끗 참지정사 강일천을 봤다.
‘내 장인이시지만 이번 일을 처리해주실 분은 참지정사뿐이시지.’난 그런 생각을 하며 공예태후를 봤다.
“태후마마 신이 아뢸 말씀이 있사옵니다.”
내 말에 할마마마이신 공예태후도 다음 단계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눈빛으로 날 봤다.
“말하시게. 섭정!”
“황제폐하께서 복위되시기 이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우선 금나라 순문사 야율강이 죽었다는 것을 금왕이 알기 전에 금왕에게 알려줘야 할 것 같사옵니다. 그래야 이번 일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 같사옵니다.”
“오랑캐의 죽음을 알리자는 겁니까? 그러다가 전란이 바로 일어나면 어찌 방비하실 참이십니까?”
나는 이미 서경에서 내란의 조짐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공예태후가 내게 묻는 거였다.
“서경은 걱정하실 것이 없사옵니다. 따로 조치를 할 것이옵니다. 서경이 고뿔이라면 금은 큰 병이옵니다. 고뿔이야 며칠 쉬면 그만이지만 큰 병은 초장에 잡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내 말에 이제는 문무백관들은 눈치만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찌 하자는 말입니까?”
“야율강이 죽은 이유에 대해 사신을 보내야 할 것 같사옵니다. 그리고 시간을 벌기 위해 금왕을 설득해야 할 것입니다.”
“금왕을 설득한다?”
“그렇사옵니다. 그래야 선제공격이 가능하옵니다.”
내 말에 공예태후도 고개를 끄덕였다.
“옳소. 내 섭정의 뜻을 따르겠소. 그런데 누가 좋겠소?”
공예태후의 물음에 난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고려의 백관들을 봤다. 그 순간 고려의 문무백관들은 내 눈을 피하기 위해 모두 고개를 숙였다.
그도 그럴 것이다. 금왕을 설득하기 위해 사신으로 간다면 혹여 일이 잘못되면 죽임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직 참지정사 강일천이 나를 보며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아마 자신이 지목될 것을 아는 미소 같았다.
‘역시 다르시군!’난 참지정사 강일천의 담대함에 탄복했다.
“저는 참지정사 강일천 공과 원국국사가 이번을 처리할 적임자라 여깁니다.”
내가 참지정사를 지목하고 나자 그제야 문무백관들은 고개를 들었다. 역시 비겁한 자들이 분명했다.내가 꾸릴 조정에 저런 비겁자는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지정사와 원국국사?”
“그렇사옵니다. 참지정사는 사적으로는 제 장인이 되시지만 공적으로는 조정대신 중에서도 최고 어른이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원국국사는 황자이시니 금왕도 크게 어찌 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또한 불심으로 금수 같은 금왕을 설득한다면 고려에 안녕을 가져올 것이옵니다. 그리고 바로 저를 비롯한 군부는 바로 북벌 준비를 할 것이옵니다.
”
내가 다시 북벌이라는 말을 하자 조정대신들은 지그시 인상을 찡그렸다. 허나 누가하나 내게 감히 안 된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섭정 그대에게 국정을 부탁했소. 그러니 그대의 뜻대로 하시오.”
“감사하옵니다.”
“또한 황제께서 복위되실 때까지 모든 전반적인 국정은 섭정이 내게 보고 없이 행하시오.”
이건 공예태후가 내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준다고 공포하는 것과 같았다.
“감사하옵니다. 신이 신명을 다해 고려황실을 위해 일하겠나이다.”
“그러세요. 그럼 난 가 보겠소.”
공예태후는 그렇게 말하고 대전을 빠져 나갔다.
“이것으로 이번 대전회의를 끝을 내겠소. 나는 이제 역적 김보당을 치국할 것이니 그대들은 사병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퇴궐을 하시오. 만약 내가 공포한 것처럼 사병들을 해체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란을 조장하는 역적으로 간주할 것이요.”
강하게 나갈 때는 이처럼 강해야 한다.
“하, 하오나,,,,,,,.”
문하시중 조영인이 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하오나 뭡니까? 문하시중!”
“합하의 결정에 조정대신들은 따른다고 해도 귀족들과 지방 호족들의 반발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사병혁파가 중요하기는 하나 지금까지 고려의 군대를 이끌어온 것도 사병이라는 것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겁니까?”
난 무섭게 문하시중 조영인을 노려봤다.
“황제폐하께서 복위되신 후에,,,,,,,.”
“닥치세요.”
난 연로한 조영인에게 크게 소리쳤다.
“폐하께서 복위되시기 전에 저는 이 고려의 안정을 도모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 귀족들과 지방 호족들의 눈치를 보며 그 안정을 도모하겠습니까? 나는 그리는 안 합니다.”
“하지만,,,,,,,,.”
“반발이라고 하셨습니까? 해 보라고 하세요. 내 친히 신수군을 이끌고 그 호족의 식읍을 쓸어버릴 것입니다.”
이보다 더 무서운 위협은 없을 것이다.
“저는 단, 단지,,,,,,,,.”
“제가 무례했다면 용서하십시오. 허나 지금은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전의 암흑입니다. 그리고 고려사직은 풍전등화처럼 위태롭습니다. 밖에는 김보당이 역심을 품다가 발각이 되었고 서경에는 대령후가 조위총과 함께 변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가장 큰 위협인 금이 야율강이 죽었다는 것을 먼저 알게 되면 기회라 여길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행하는 모든 조치는 전시체제하에서의 조치입니다. 그러니 따라주십시오.”
엄포를 놓은 후에 달래기를 하면 더는 할 말들이 없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합하!”
이 순간 문무백관들의 영수인 조영인도 내 기세에 눌려 나를 함부로 부르지 못했다. 그러니 다른 자들은 더할 것이 분명했다.
“조정대신들이 본을 보이세요. 조정대신들이 우선 사병을 해산한다면 황도의 귀족들도 그리 따를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내 말에 누구하나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예. 그리 하겠소이다. 합하!”
위위경 이의방이 내게 우렁차게 대답했다.
“고맙소. 위위경! 위위경의 권세가 지금도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 나의 뜻을 따라주시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습니다.”
크게 반발할 줄 알았던 위위경 이의방이 뜻을 따르겠다고 말하자 누구도 이제 내 뜻을 거스릴 자가 없었다.
“위위경!”
“하명하십시오. 합하!”
“당장 사병들이 해산이 된다면 그들은 저잣거리의 왈패가 되고 산에 들어가 비적이 될 것입니다.”
“그럴 가능성도 있사옵니다.”
“그러니 용호군에 강제 편입하세요.”
이것이 내 숨겨진 목적이기도 했다. 분명 나는 금과 일전을 치러야 한다. 그러니 병력은 다다익선이면 좋은 것이다.
“옳으신 생각이십니다. 알겠사옵니다.”
“그리 하세요. 반항하는 자는 즉결처분하세요. 지금은 전시체제입니다. 그것만 명심하세요.”
내 말에 다른 대신들이 모두 다시 주눅이 되어 나와 이의방의 눈치를 봤다.
“예. 그리 하지요.”
이제 이의방과 내가 잘못 보인자들은 모두 역신이 되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대신들이 할 것이 분명했다.
“이것으로 대전 회의는 끝을 내겠습니다.”
난 그리 말하고 대전 중앙을 걸었다. 그리고 바로 나를 따르고 이의방을 따르는 군부의 수장이 내 뒤에 병풍처럼 당당히 따라 나왔다.‘이제 김보당에게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면 되는 것이야!’보현원 명종황제가 감금된 전각.
“웬 놈이냐?”
전각 앞을 지키던 병사 하나가 복면을 쓴 별초를 보고 바로 창을 겨눴다.서걱!‘누구다.’ 라는 대답 대신에 돌아온 것은 차가운 검이었다.
“으악!”
비명과 함께 용호군 병사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바로 복면을 쓴 별초는 굳게 닫친 보현원의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쏜살 같이 10명의 별초들이 보현원을 뛰어들었다. 그리고 흥선이 그 뒤를 따라 차가운 눈빛으로 들어섰다.
“다 베어라!”
“예. 도련님!”
복면을 쓴 별초 하나가 대답을 하고 바로 돌아섰고 용호군 병사의 비명소리를 들은 병사들이 일제히 비명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들었다.
“웬 놈이냐!”
쉬웅!순간 별초가 날린 단검 두 개가 누구냐고 소리쳤던 병사와 옆에서 달려오던 병사의 이마에 박혔고 그 두 병사는 뒤로 날아가서 쓰러졌다.퍼억!
“으악!”
“베라!”
복면을 쓴 별초 조장의 외침에 살육이 펼쳐졌다.
“무슨 일이냐?”
긴 장창을 든 박주태가 급히 살육이 한창 펼쳐지고 있는 전각 앞마당으로 달려 나왔다. 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용호군들은 복면을 쓴 별초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였다.그리고 바로 장창을 복면을 쓴 별초에게 겨눴다.
“비켜라!”
그때 별초들의 뒤에 있던 흥선이 앞으로 나서자 어린 흥선의 모습을 보고 복면을 쓴 별초를 본 것보다 더 놀란 박주태였다.
“네 놈들은 누구인데 이리 무도하게 용호군 병사들을 참살하는 것이냐?”
“네 이름이 박주태라지?”
흥선의 말에 박주태가 인상을 찡그렸다.
“어린놈이 나를 아는 것이냐?”
“네 이름 정도는 알지.”
“그렇다면 내 장창의 위력도 알겠구나!”
병사들이 다 죽은 상태에서도 기세가 눌리지 않는 것을 느낀 흥선은 별초조장이 왜 생포를 하라고 했을 때 파해가 상당할 거라고 말한 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를 더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놈들이 이곳에 난입한 이유가 무엇이냐?”
박주태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새로운 고려로 가는데 필요 없는 것은 처리해야지.”
“새로운 고려?”
박주태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 새로운 고려를 위해서는 폐주는 사라져야 한다.”
“뭐라? 폐주라 하나 황제셨다. 네놈들이 하려는 짓은 무도한 짓이다.”
박주태가 흥선을 꾸짖었다.
“무도한 것은 부덕한 폐주지. 비키지 않는다면 벨 것이다.”
흥선도 지지 않겠다는 듯 엄포를 놨다.
“비키려 했다면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칭!순간 장창이 바람을 가르듯 흥선에게 겨눠졌다.
“도련님 위험하옵니다. 물러나십시오.”
별초조장이 조심히 말했다.
“흥미가 생기는군. 낭장이라지.”
흥선이 박주태를 보며 말했다.
“나를 안다는 것은 복면을 썼으나 고려 병사라는 것인데 네놈들이 왜 이리 무도한 짓을 서슴지 않고 벌이는 것이냐? 폐주이나 황제이셨던 분이시다. 함부로 대할 분은 아니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나 죽어야 할 분이기도 하지.”
“내 그리 두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복면을 쓰지 않은 이유가 뭘까?”
흥선의 뜬금없는 말에 박주태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자신은 10명의 별초들에게 포위를 당한 상태였다. 그리고 자신을 포위한 자들의 무위가 남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자신이 데리고 온 용호군 병사들을 모두 이렇게 죽어 있는 거였다.
“무얼 말하자는 건가?”
“내게 머리를 조아린다면 목숨은 구명해 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크게 쓸 것이다. 허나 거부한다면 그대도 저기 죽은 병사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질 거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나는 새로운 고려에 큰 힘이 되려고 한다. 하지만 앞에서는 나설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힘이 필요하다. 그대를 내 밑에 두고 새로운 고려를 만드는 일에 동참시키고 싶다. 그러니 나와 같이 숨은 영웅이 되어보지 않겠나?”
“내 병사가 저리 죽어 있는데 내가 저들의 죽음을 배신하라는 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주태가 다시 흥선을 노려봤다.
“그래? 정말 나와 같이 하지 않겠나?”
흥선의 말에 박주태가 피식 웃었다.
“어린놈이 어리석구나! 내가 나를 어찌 믿을까? 또 내가 네놈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어찌 따를까?”
틀린 말도 아니었다.
“별초조장은 복면을 벗어.”
흥선의 명령에 흥선의 옆에 서서 날아들지도 모를 박주태의 장창을 막고자 서 있는 별초조자이 복면을 벗었다.
“나를 알아보시겠소. 박주태 낭장!”
별초낭장이 복면을 벗자 바로 인상을 찡그리는 박주태였다.
“최교위! 어찌 자네가 이들의 무리에 있는 건가? 그대는 무신혁명 이후 낙향을 했다고 내 들었는데?”
회생을 따르던 별초들도 용호군 출신이기에 박주태가 별초조장을 잘 알고 있는 거였다.
“박현준 별초낭장께서 우리를 이끌고 계시오. 그리고 그분 위에 부마도위께서 계시오. 그분이 지금 새로운 고려를 만들고자 하시오.”
최교위라 불린 별초조장의 말에 박주태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 모든 악행이 부마도위의 짓이란 말이냐?”
“어찌 우리의 주인께서 그런 일을 하시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