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297화 (297/620)

< -- 간웅 15권. -- >간웅 15권.1. 태후가 알다.

공예태후의 처소.회생이 엄청난 일을 실행에 옮기겠다는 말을 하고 나간 것보다 더 긴장감이 감도는 공예태후의 처소였다.차분히 앉아 김돈중이 공예태후를 보고 있었고 공예태후는 김돈중이 한 말을 듣고 스스로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멍해 있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다시 정신을 차리고 김돈중을 봤다.

“그 말이 사실이요? 김대부!”

“그렇사옵니다. 태후마마!”

“그런데 어찌 내게 알리지 않으신 것이요?”

이건 질책과 같은 물음이었다.

“송구하옵니다. 그때의 소신은 권력에 눈이 멀었나이다. 또한 무비와 함께 미쳐 있었나이다.”

“무비와 함께!”

공예태후는 사라진 무비의 얼굴을 떠올렸다.

“무비는 사라진지 오래요. 그러니 대부의 말을 증명해 줄 수 없소.”

공예태후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김돈중에게 따지듯 말했다.

“허나 사실이옵니다. 소신이 소신의 아비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나이다.”

“진정인가?”

“그렇사옵니다. 지금의 부마도위께서는 분명 상황전하의 아드님이십니다.”

“으음,,,,,,,.”

공예태후가 깊게 신음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회생의 행보를 다시 돌아봤다. 그리고 그제야 왜 회생이 그리도 자신의 장자인 상황을 살리고자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분명 무신들과 함께 자신의 장자인 상황을 폐위시킨 것은 회생이니 말이다.

그것도 아주 크게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어찌 아비의 옥좌를 빼앗아 숙부에게 준다는 말인가?”

“황자마마도 아신지 얼마 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김대부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 아니 믿어지지 않는다.”

그때 공예태후의 처소 문이 열리고 해월이 들어섰다.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공예태후가 앙칼지게 소리를 질렀다.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태후마마!”

“내 지금 김대부와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고 분명 말 했다.”

공예태후는 성난 음성으로 소리쳤다.

“황자마마의 일이옵니다.”

“황자마마?”

공예태후가 해월을 뚫어지게 노려봤다.

“네년도 아는 것이냐?”

누구보다 해월을 아낀 공예태후였다. 하지만 이 순간 해월에게 막말을 하는 것은 그만큼 지금 김돈중이 털어놓는 진실이 믿어지지도 또 믿지 않을 수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사옵니다. 태후마마!”

“어찌 아느냐?”

“예전 어여삐 여기신 춘심을 기억하십니까?”

“춘심?”

“그렇사옵니다. 무비에 의해 죽임을 당한 그 춘심 말이옵니다.”

해월의 말에 그제야 공예태후는 회생의 어미인 춘심을 떠올린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런 아이가 있었지.”

“그렇사옵니다. 그 춘심이 황자마마의 어미이십니다.”

“춘심이?”

“그렇사옵니다. 무비의 복중 태아가 사산된 후 무비는 그 모든 일이 태후마마께서 꾸미신 일이라 생각했사옵니다. 그렇기에 상황전하의 용정을 잉태한 춘심도 그냥 두지 않은 것이옵니다. 춘심께서 황자마마를 생산하시자말자 아기씨인 황자마마를 숨기고 괴롭히는 것으로 복수를 한 걸로 아셨습니다.”

“어찌 네가 그렇게 자세하게 안단 말이냐?”

“제가 황자마마를 찾았사옵니다.”

“왜?”

공예태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황자마마의 외숙이 바로 이고 대장군이옵니다.”

“그런데?”

“이고, 이고 대장군께서는 저의,,,,,,,,,.”

한 번도 쉬지 않고 명쾌하게 대답을 하던 해월이 말을 머뭇거렸다.

“이고 대장군과 네가 어찌 되었다는 것이냐?”

공예태후는 물었지만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죽여주십시오. 태후마마!”

“너와 이고 대장군이 사통을 했다는 말이냐?”

궁인인 해월이 황제 이외의 남자와 사통을 했다는 것은 큰 죄가 분명할 거다. 그렇기 해월은 바로 공예태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사실을 부마도위 아니 황자도 아는가?”

“알고 있사옵니다.”

“이고 대장군이 외숙이라는 것을 아는가?”

“알고 있사옵니다.”

해월의 말에 지그시 어금니를 깨무는 공예태후였다.

“죽일 수는 없지. 황자의 외숙모를 죽여서는 아니 되겠지.”

공예태후는 그리 말하고 김돈중을 봤다.

“그대의 말이 사실이면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허나 불행이라면 불행일 것이다.”

“그렇사옵니다.”

“황자가 자신의 혈통을 알고 있다면 끝내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피를 보게 될 것이다.”

공예태후가 걱정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어쩔 수 없사옵니다. 지금 황자마마께서는 스스로 모르고 행하신 일을 바로잡고 계십니다.”

“그 바로 잡는 길에 폐서인이 된 태자도 있는가?”

공예태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태, 태후마마!”

“아무리 어리석은 태자라고 해도 황자의 형이다. 그러니 황자는 태자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태후는 예리했다. 그리고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으음,,, 송구하옵니다. 태후마마! 허나 크게 보셔야 할 것이옵니다.”

“크게 보라?”

“그렇사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뛰어난 황자가 황제가 되는 법입니다.”

“가장 뛰어난 자가 회생이라는 것인가?”

“황자마마의 행보를 보시면 아시지,,,,,,,.”

김돈중을 말꼬리를 흐렸다.

“그런데 이 엄청난 사실을 이제 와서 내게 알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황자마마께서 태후마마를 걱정하시기 때문이옵니다.”

“황자인 회생이 나를 걱정한다?”

“그렇사옵니다. 누가 보더라도 지금은 역천의 수순이 아니옵니까?”

“그렇지. 역천의 수순이었지.”

공예태후는 표정이 굳어졌다.

“상황도 아는가?”

“모르시옵니다.”

“그럼 황자가 언제 알린다는 것인가?”

“모든 일이 수습이 되면 분명 아뢸 것이옵니다.”

“모든 일의 수습에 태자의 죽음도 있겠지.”

“송구하옵니다.”

“참으로 내가 오래 살았구나! 혈육이 혈육을 죽이는 꼴을 봐야 하니.”

공예태후는 소리를 질렀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인상을 찡그렸다.

“그럼 영화는 어찌 되는 것인가? 황자의 고모가 되는 것이 아닌가?”

손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신의 딸일 것이다. 그리고 영화공주는 무척이나 아끼고 또 아끼는 딸이었다.

“황자마마께서는 선대황제의 전례가 있다 하셨습니다.”

“선대황제의 전례?”

김돈중의 말처럼 고려황실의 국혼은 거의 근친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조선의 유학자들은 고려황실을 조롱하기 위해 그 근친혼에 대해 깊게 파고들었다.

손녀가 손자를 낳는 방법은 서로에게 물으면 술자리 농으로 만든 것이다.손녀가 손자를 낳는 방법은 오직 아들이 손녀와 몸을 섞어 아들을 낳는 것이다.

이것은 할아버지의 입장에서 본다면 손자이자 외증손자가 되는 것으로 현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하늘을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나 고려시대에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 일이다. 또한 그런 소생으로 왕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그 주인공이 바로 현종이었다.

“그렇사옵니다. 가까이에는 문정황후가 계시옵니다.”

김돈중이 말한 문정황후는 왕족인 진한후 왕유의 딸이다. 진한후는 그녀의 시아버지인 숙종의 이복동생으로 문종과 인경현비의 아들이다. 그러니 황자라고 할 수 있는 존재였다. 또 그녀의 남편이 되는 예종 역시 황제이니 문정황후는 근친혼을 한 거였다. 또한 예종의 친조모는 이자연의 딸인 인예황후이며 그녀의 할머니인 인경현비도 역시 이자연의 딸이기에 이로써 예종과 문정황후의 혼례는 친가로는 4촌간이고 외가로는 6촌간의 혼인인 근친혼이었다.

“문정황후!”

“그렇사옵니다. 문정황후가 계십니다.”

“허나 영화와 황자는 촌수로 따진다면 3촌으로 아주 가깝다.”

“황제가 조카를 비로 맞이하는 경우는 동서고금에 참으로 많았사옵니다.”

“그렇지만,,,,,,,.”

“촌수가 가까운 것이 저하되신다면 경종대왕과 천추태후마마도 계시옵니다. 그 두 분은,,,,,,.”

“따지고 본다면 오누이지간이지.”

몰론 촌수로 따진다면 꽤나 먼 촌수가 분명했다. 허나 황족에게 촌수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김돈중이 공예태후에게 말해주고 있는 거였다.

“그렇사옵니다.”

천추태후는 고려 태조 왕건의 손녀이고, 제5대왕 경종의 비이며, 제6대왕 성종의 동생이고, 제7대왕 목종의 어머니, 그리고 제8대왕 현종의 이모이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력의 소유자가 분명할 거다.

고려를 세운 왕건은 각 지역 호족들을 규합하기 위해 30여 개의 호족집안 딸들과 결혼을 했다. 이것이 근친혼으로 가는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황주 지역의 호족 출신인 황주원부인도 있었다.

황주의 황보 씨들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후삼국 통일에 기여한 바가 컸다. 황주원부인의 아들인 왕욱이 천추태후의 아버지이다.

어머니는 선의왕후로, 왕건이 정덕왕후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이다. 그러니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왕건의 자손이다. 이복 남매끼리의 혼인인데, 고려 초기 왕실에서는 흔한 일이다.

당시 왕실의 여자들은 거의 왕족과만 결혼했다.

“허나 그것은 과거의 일이요.”

“황제는 무치라 하였사옵니다. 영화공주께서 황자마마를 따르시고 또 황자마마도 영화공주를 이제는 깊게 생각하고 계시옵니다.”

“황자가,,,,,,,,.”

“그렇사옵니다. 황자에게는 백화가 있다.”

“그분도 황비가 되시겠지만 그 속을 누구도 모르옵니다. 무비의 호위장 출신이지 않사옵니까.”

“그렇기는 하나 참지정사 강일천의 여식이다.”

“황자마마께서 황제가 되시기 위해서는 참지정사는 어느 시점에서 토사구팽 되실 것이옵니다.”

“토사구팽!”

공예태후가 놀라 김돈중을 봤다.

“그렇사옵니다. 분명 그리하실 것이옵니다.”

“허나 황자가 백화를 아끼는 마음이,,,,,,,,.”

“조강지처의 마음이라는 것을 소신도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지. 백화는 황자에게 조강지처나 다름이 없겠지.”

“그 조강지처가 변한다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변한다?”

“그렇사옵니다. 그리 될 것이옵니다. 황자마마께서는 소신이 보기에는 옥좌를 갈망하시지 않사옵니다. 그저 하늘이 자꾸 황자마마께 옥좌를 내리는 것이옵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옥좌를 백화께서 갈망하신다면 멀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옵니다.”

김돈중의 말에 공예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황제는 무치이옵니다.”

“황제는 무치다.”

이것이 결국 결론이었다. 또한 누구보다 영화공주의 마음을 잘 아는 공예태후가 영화공주와 회생의 국혼에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지금 김 대부는 내게 아우가 형을 죽여도 눈을 감으라는 것이고 또 조카가 고모와 결혼을 해도 눈을 감으라는 것인가?”

“그래야 고려황실이 바로 서게 되옵니다.”

“고려 황실이 바로 선다?”

“그렇사옵니다. 무신들이 왜 거병을 했겠사옵니까? 그 모든 것은 황제께서 힘을 잃고 중심을 잃으셨기 때문이옵니다. 그렇기에 황권이 바닥에 떨어졌기 때문이옵니다. 태조대왕께서 세우신 이 고려는 대제국이었사옵니다. 다시 한 번 황자마마가 고려를 대제국의 반석에 올려놓으실 것이옵니다.”

“허나 황자의 주변에 있는 무장들과 신하들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능히 감당하실 것이옵니다. 소신이 알고 있는 황자마마를 누구보다 차가운 머리를 가지셨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황자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아이다.”

“그렇사옵니다. 뜨거운 가슴에 차가운 머리를 가지셨으니 능히 황실을 위해 감내할 것은 감내하실 것이고 처내실 것은 처내실 것이옵니다.”

김돈중의 말에 공예태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어찌 되는 것인가?”

“빠르게 상황전하의 복위가 이뤄지실 것이옵니다.”

“결국 무신정변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종국에는 그리 되는 것이옵니다. 허나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대륙으로 뻗어나가시는 것이옵니다.”

“대륙으로 나간다?”

“그렇사옵니다. 그렇기에 무장들은 황자마마를 따를 것이옵니다. 황자마마께서 영토를 늘리시는 동안 황자마마의 무장들은 하나둘 죽게 될 것이옵니다. 황자마마께서 스스로 토사구팽을 하지 않으셔도 끝내 그리 결론이 날 것이옵니다.”

김돈중의 말에 공예태후는 놀라 김돈중을 뚫어지게 봤다.

“그대의 생각인가? 황자의 생각인가?”

“소신은 황자마마도 그리 생각하고 있다 믿사옵니다.”

“알았네. 이제 누구도 이 거센 파고를 잠재울 수는 없지.”

“그렇사옵니다. 진정 그 얼마나 다행이옵니까? 황자께서 용손이라는 것이 말이옵니다.”

김돈중은 공예태후를 위로했다.분명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이 고려에 왕 씨가 계속 황제가 되어 옥좌에 오르니 말이다.김돈중의 말에 공예태후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다가 입을 열었다.

“그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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