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291화 (291/620)

< -- 간웅 14권 -- >

“밖에 누구 없느냐?”

이고 대장군의 외침에 급히 그의 부장인 전존걸이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전존걸은 이미 막사 밖에서 이고 대장군과 상선 최준이 나눈 말을 모두 듣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대장군!”

“지금 당장 용호군을 출정준비를 명하시게.”

“예. 대장군!”

전존걸이 짧게 대답했다. 또한 전존걸 역시 이제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없이 고이기만 해서 썩다 못해 말라버린 고려라는 연못에 드디어 대륙을 향하는 물고가 트였다는 생각이 드는 전존걸이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회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회생의 외숙인 이고가 있고 자신이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전존걸이었다.

“나는 황궁으로 진격할 것이네. 그렇게 아시고 준비를 하시게. 여차하면 썩어 문드러진 황궁을 다 태워버릴 것이야!”

파괴되는 것이 있어야 새로운 것이 열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이고였다. 또한 자신의 외 조카 회생이 이 썩은 고려라는 잿더미 속에서 불새처럼 다시 태어나 새로운 제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내 회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것이다. 황제를 죽여서라도 뭐든 할 것이야!’

이고는 지금 전존걸에게 명령을 내리며 그렇게 다짐했다.

“예. 대장군! 그리 준비하겠나이다.”

“그리고 또 지금 당장 그대는 응양군으로 가서 대장군 한 섬에게 전하시게.”

“무엇을 전하면 되겠사옵니까?”

이고가 갑작스럽게 위위경 이의방을 대신해 응양군을 지휘하고 있는 한 섬을 찾자 전존걸이 이유를 물었다.

“대장군 한 섬이게 부마도위가 계신 사냥터로 오라고 전하시게. 부마도위께서는 지금 나와 대장군 한 섬을 기다리고 계실 것이야!”

고려는 2군 6위의 군사제도다. 그리고 지금 회생에 의해 3군 6위가 됐다. 이 순간 고려의 모든 중앙군인 3군을 회생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오직 회생의 명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거였다.

이것은 회생이 마음만 먹는다면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역천도 가능하다는 거였다.역천!하늘을 거스르는 일!하지만 회생에게 그런 일을 절대 있을 수 없었다.

용손십이진 십팔자위왕의 참요처럼 된다고 해도 끝내 회생은 용손이니 말이다.

“예. 명을 전하겠사옵니다.”

“이 순간 이후 용호군은 오직 부마도위의 명만 따를 것이네. 부덕한 황제의 명도 조정의 명령도 모두 무시하고 오직 부마도위께서 명하시는 일만 행 할 것이다.”

“예. 대장군!”

전존걸의 말에 이고가 전존걸을 잠시 봤다.

“결국 젊은 무장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었군.”

“그렇사옵니다. 대장군!”

“시간이 없네. 이 밤이 지나기 전에 우리 용호군이 황궁을 포위해야 할 것이네.”

“예. 대장군! 소장 명을 전하겠사옵니다.”

전존걸이 막사 밖으로 나갔고 그와 동시에 이고가 일어섰다.

“나는 부마도위께서 계시는 사냥터로 갈 것입니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그러시지요. 상선!”

회생이 비운 회생의 사택.

“형님께서는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나?”

흥선이 만적과 왕준명을 보며 말했다. 흥선 역시 별초낭장 박현준과 함께 북변에서 회생의 사택으로 돌아와 있는 상태였다.

“그렇습니다. 도련님!”

만적의 말에 흥선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때 하늘에서 큰 별 하나가 떨어졌다.

“별이 떨어졌습니다. 흥선 도련님!”

만적이 놀라 손가락으로 흥선에게 떨어지는 별을 가리켰다.

“별이?”

기구한 일이다.하늘도 이 시간이 지나면 고려가 완벽하게 변한다는 것을 알리고 있는 듯 보였다.

“그렇습니다. 별이 떨어졌습니다. 아주 큰 별 같습니다. 그, 그런데,,,,,,,.”

만적이 별이 떨어진 곳을 보고 더욱 놀라 흥선을 봤다.흥선 역시 별이 떨어진 곳을 보고 다시 한 번 인상을 찡그렸다.

“으음,,, 어찌 사성이 떨어진 곳이 이 사택의 뒷산이란 말인가! 으음,,,,,,,.”

“사택 뒤편에 불길이 크게 일어난 것 같습니다. 이 사택으로 번질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왕준명이 놀라 흥선을 봤다. 밤이라 연기는 보이지 않으나 환한 불빛이 대낮처럼 사택을 밝히고 있었다.

“이 고려의 운이 다한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힘이 생성되는 것일까?”

흥선의 말에 만적과 왕준명이 그 뜻을 몰라 멍하니 흥선을 봤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왕준명이 조심히 흥선에게 물었다.

“사성이 떨어졌네.”

“사성이요? 저 떨어진 별똥이 사성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하늘에서 빛나는 별이 떨어진다는 것은 결국 고려의 국운이 다되었다는 뜻이겠지.”

어리게 보이는 흥선에게서 담담하다 못해 차갑게 냉정한 말이 흘러나오자 왕준명은 올라 흥선을 다시 봤다.

“하오시면 큰, 큰일이지 않습니까?”

만적이 놀라 흥선에게 말했다.

“용손에게는 큰일이 분명하나 십팔자위왕에게는 때가 되었다는 거지.”

흥선도 저잣거리에 도는 참요를 아는 듯 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눈치였다. 어찌 보면 흥선에게 고려는 애증의 관계일 것이다.

황족이나 황족이지 못하고 하늘을 품은 지혜를 가지고 있으나 그 모습이 어려 보여 뜻을 펼치지 못하는 지금이니 고려가 망한다면 자신은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나 분명한 것은 아버지의 나라가 망하는 것이고 제대로 한 번 불러보지 못한 어머니 태후의 황실이 무너진다는 거였다.

“으음,,, 나 또한 참으로 기구하구나!”

흥선은 스스로의 삶을 한탄했다. 허나 그가 결심한 듯 회생과 같이 하겠다고 했으니 흥선의 그 한탄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고 있었다.

“저 야산에 떨어진 별은 고려의 운이 다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징조겠지. 그런데 왜 그 떨어진 사성이 이리도 빛나서 이 사택을 비출까? 활활 타오르며 이리로 불길이 향하는 것일까?”

흥선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흥선 도련님은 어디에 계시느냐?”

안채 밖에서 다급한 별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채에 계십니다.”

노복들이 흥선이 있는 곳을 알렸고 그와 함께 빠르게 안채로 사냥터에서 급히 달려온 별초 하나가 흥선의 앞에 당도해 무릎을 꿇었다.

“주군의 명을 전하옵니다.”

별초의 말에 흥선은 인상을 찡그렸다.

“주군의 명? 형님께서 내게 부탁할 것이 있다는 거군.”

“그렇사옵니다.”

“뭔가?”

흥선의 물음에 별초가 사냥터에서 일어난 일을 소상하게 흥선에게 고했고 만적과 왕준명은 놀라 기겁한 표정을 지었으나 흥선은 여전히 담담하기만 했다. 이미 흥선은 저 하늘에서 사성이 떨어질 때부터 뭔가 큰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리 되었단 말이지? 결국 그 그릇이 그 물을 담지 못하고 그리 되었단 말이지. 그릇이 너무 작고 담긴 물이 넘쳐나니 당연히 쏟아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겠지. 이제 와서 작은 그릇을 탓 하리오 아니면 그릇에 담기지 못하는 큰물을 탓 하리오! 누굴 탓한다는 것은 다 부질 없는 짓이겠지.”

흥선이 담담한 어투로 불길이 일어 강한 빛을 뿜어내는 야산을 물끄러미 봤다.‘하늘이 나에게 미리 이런 일을 알리고자 한 것인가? 그럼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흥선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흥선은 모든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가 중얼거린 것처럼 고려라는 그릇이 회생을 담기에는 이제는 너무나 작아져 있었다.

“결국 형님께서 큰 실수를 하셨어.”

지금 흥선이 말하는 형님은 회생이 분명 아닐 것이다.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도련님.”

만적이 흥선이 한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흥선을 다시 봤다.

“그런 것이 있어. 그런 것이! 그런 것이 있었어.”

처음으로 흥선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흥선이니 저런 표정을 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회생형님을 금으로 보내겠다고 할 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지. 왜 그리도 어리석으신지 누가 자신의 편에 서서 힘이 되어 줄 건지 그리도 모른다는 말인가!”

흥선은 이 순간 명종황제를 질책했다.

“황제폐하를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황제?”

흥선은 마치 명종황제가 앞에라도 있다는 듯 조롱하는 눈빛으로 피식 웃었다.

“그렇사옵니다.”

“이제는 곧 폐주가 되겠지. 어리석은 분!”

흥선의 말에 만적과 왕준명은 놀라 기겁했다.

“그래 형님께서 뭐라고 하시더냐?”

이번에 말한 형님은 회생이었다.

“주군께서 황궁으로 가달라 하셨습니다.”

별초의 말에 처음으로 흥선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흥선의 머릿속에는 단 한 번도 어머니라고 부르지 못한 공예태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주군께서 죄 없는 이들의 피까지 흘리지 않게 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점부더냐?”

“그렇사옵니다. 그리만 전하면 도련님께서 아신다 하셨습니다.”

“내가 안다? 하하하!”

흥선이 미친 듯 호탕하게 웃었다. 허나 그 호탕한 웃음이 어린 아이의 몸을 빌려 터지는 것이라 그저 어린 아이의 깔깔거림에 불과해 보였다.

“드디어 형님께서 모질어 지셨구나! 암! 그리 모질어야지 대망을 이루시지. 참으로 내게 모진 일을 시키시는구나! 하하하!”

그 어린아이의 깔깔거림이 끝남과 동시에 흥선은 고개를 돌려 무릎을 꿇고 있는 별초를 봤다.

“별초 10명을 데리고 와라.”

“예. 도련님!”

별초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사택 안채를 벗어났다.

“저 사성이 떨어진 곳은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었겠지! 그리고 그 잿더미 속에서는 찬란한 불새가 다시 하늘을 날기 위해 잿더미에서 태어날 것이다. 이것이 운명이라는 거고. 그래 결심했어. 형님께서 원하시는 것처럼 내가 불새를 품은 잿더미가 되어주지.”

여전히 모를 말만 하는 흥선이었다.그리고 흥선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때 10명의 별초들이 급히 흥선의 앞에 섰다.

“황궁으로 갈 것이다. 비밀통로로 들어가 태후마마를 만날 것이다.”

“예. 도련님!”

“모두 물러가 있으라.”

공예태후가 찹찹한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예. 태후마마!”

그리고 빠르게 나인들과 환관들이 태후 전에서 물러났다. 오직 이 순간 서 있는 것은 흥선이었다.

“언, 언제 왔느냐?”

“며칠 되었습니다. 그간 강령하셨사옵니까? 태후마마!”

“몸은,,,,,,,.”

“달라질 것이 없는 몸이라는 것도 태후마마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으음,,,,,,,,.”

태후가 길게 신음소리를 냈다. 그 신음은 어미의 한이 담겨 있는 신음소리였다.

“소인이 태후마마께 온 것은,,,,,,,,.”

“우리 둘 뿐이다. 흥선아!”

이 순간 공예태후의 눈이 촉촉하게 젖었다. 흥선을 어미를 어미라 부르지 못하는 것처럼 공예태후도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지 못하는 것이 서럽기만 했다.

아니 그리 부른다면 분명 다른 황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거라는 것을 공예태후는 잘 알고 있었다.그저 겉으로 보이는 것은 광인 같으나 마음이 대해처럼 넓은 자신의 장자인 의종은 흥선의 존재를 알면서도 그냥 넘기고 궁에 몰래 환관의 관을 쓰고 사는 것을 못 본채 했으나 지금의 황제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공예태후는 잘 알고 있었다.

“나를 어마라,,, 어미라 불러도 된다.”

늙으면 강함도 꺾이는 법이고 질긴 가죽도 시간이 지나면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공예태후의 마음도 이제는 그저 어린 자식을 보는 늙은 어미와 같아 보였다.

“허나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도 아시지 않사옵니까.”

“알았다. 이 모든 것이 박복한 어미의 죄이지.”

공예태후의 말에 지그시 입술을 깨무는 흥선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흥선이 뚫어지게 공예태후를 봤다.

“이리 급히 나를 찾은 것은 다 이유가 있겠지?”

늙은 어미와 어리게 보이는 아들의 숨겨진 심파도 잠시 공예태후는 자신에게 흥선이 왔다는 것은 고려와 황실에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예감했다.

“사냥터에서 야율강이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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