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4권 -- >
“고달기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날 노려봤다. 이 순간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고달기는 영특하면서 사악한 계집이었다. 또한 나에 대한 분노와 원한 그리고 고려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는 거였다.
어쩌면 이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녀는 최고의 자리라고 할 수 있는 태자비가 되었다가 단 하루도 되지 않아 아비의 죽음을 봤고 매몰차게 내쳐져서 관노의 신분이 됐다. 그리고 다시 오랑캐의 몸시중을 드는 공녀가 됐다.
끝없는 계략과 배신의 희생물이 그녀일 거다. ‘네가 저 여인을 괴물로 만들었구나!’난 찰나의 순간이지만 고달기가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다.
고달기를 지금 죽이지 않는다면 정말 크게 후회할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녀도 지금 스스로를 희생시켜 고려와 내게 복수하려는 거였다.
“어서 죽여라! 어서 죽여!”
“지금 너를 죽이지 않는다면 내일 후회할 것이고 내가 지금 너를 여기서 죽인다면 내일을 준비해야겠군.”
“왜? 나를 죽이는 것이 두려운 것이냐? 금제국의 백만 대군이 두려운 것이냐? 그게 아니면 고려가 금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너를 배신해 나를 죽인 죄인으로 그리고 금나라 무장을 죽인 죄인으로 보낼 것 같아 두려운 것이냐?”
고달기는 자신이 위급한 순간에도 나를 압박하고자 했다.
“고달기?”
“왜 그러느냐? 이 뱀 같이 사악한 놈아!”
고달기에게 나는 뱀처럼 사악하고 차가운 놈이 분명할 거다.
“너의 진짜 이름이 무엇이냐?”
내 물음에 고달기가 피식 날 보며 웃었다. 그 웃음은 나에 대한 조롱이 분명했다.
“궁금하냐?”
“무엇이냐?”
“내 이름은 채은이다.”
난 자신의 이름을 밝힌 고달기를 물끄러미 잠시 봤다.
“내 너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내 백성이 그 임금과 그 나라에게 배신을 당하면 너처럼 임금과 나라를 저주하고 원망한다는 것을 꼭 기억할 것이다.”
“네 백성?”
“그리만 알고 가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고려를 배신한 것은 쉬이 죽지 못한다는 것을 고통에 겨워하며 느끼며 죽어라.”
“뭐, 뭐라?”
“이 숲에는 피 냄새를 맡으면 환장하는 것들이 아주 많다.”
내 차가운 말에 고달기가 기겁했다. 그리고 난 바로 여전히 바닥에 쓰러져 있는 고달기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일으켰고 고달기는 억샌 사내의 팔에 이끌러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일어섰다. 그리고 난 바로 고달기의 머리채를 잡지 않은 손으로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들었다.
“뭐, 뭘 하려는 것이야?”
“너의 피로 목을 축이고 너의 살로 배를 채울 짐승을 위해!”
난 바로 고달기가 입고 있는 얇은 갑주의 끈을 잘랐고 얇은 갑주는 바닥에 툭하고 떨어졌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내 행동에 놀란 고달기의 목소리가 떨렸다.
“네가 무엇을 할 것 같으냐? 네가 원하던 것이지 않나? 너를 내게 죽여 화근을 만드는 것 그리고 고려와 금이 전쟁을 해서 고려를 멸망케 하는 것! 그것을 위해 너는 양율강까지 속인 것이 아니더냐?”
“그래. 그렇다.”
“네 원하는 것을 해 주지. 그 대신 참으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난 고달기를 노려봤다.그리고 들고 있던 검으로 고달기의 복부를 힘껏 찔렀다.수욱!쫘아악!그 순간 고달기의 그 순간 고달기의 몸에서 피가 뿜어졌다. 이 상태라면 1시간이 지나면 과다출혈로 죽을 게 분명했다.철퍼덕!난 고달기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으윽!”
고달기는 바닥에 쓰러지자말자 쓰러진 바닥에 피를 흥건히 적혔다.
“네, 네놈은 끝, 끝내 내가 판 덫에 걸린 것이다.”
고통에 겨워 몸부림치는 이 순간에도 고달기는 나를 압박하고자 했다.
“으으윽, 으윽! 고, 고려는 이제 전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럴지도.”
그리고 난 바로 쓰러져 있는 고달기의 발목을 잡고 바로 단검으로 힘줄을 끊었다.
“아아악!”
표독한 계집도 고통은 느끼는 모양이다. 이 순간 내가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을 나도 처음 알았다.
“아아악! 회, 회생! 이 야차 같은 놈!”
그리고 다시 난 고달기의 다른 발목의 힘줄을 끊었다.
“곧 너를 향해 무언가가 올 것이다.”
“마, 마귀 같은 놈!”
고달기가 고통에 겨우 내게 소리를 질렀다.
“날 마귀로 만든 것은 조국을 배신한 너다. 그리고 스스로 나를 죽이기 위해 네 목숨을 이용해 덫을 판 네년의 잘못이다.”
난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날 죽이고 가라!”
고달기가 절규를 하듯 소리쳤다. 하지만 난 이 순간 이간이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고달기가 좀 더 고통에 겨워하기를 바라며 돌아섰다. 지금 이 상태라도 내가 이곳을 떠난다고 해도 고달기는 잘려진 상처 때문에 한 시간 정도 숲을 헤매가 산짐승의 밥이 될 것이 분명했다.
“네년의 목숨이 날 위급에 빠트린 미끼였으니 좀 더 고통에 겨워라.”
난 고달기를 그대로 둔 상태로 내 화살에 맞은 두 명의 금나라 병사들에게 다가가 내 화살을 회수했다. 그리고 죽은 그들의 팔목과 다리의 동맥을 끊었다.
“죽어 피가 굳어질 것이지만 그대로 꽤나 흐를 것이다. 피 냄새가 굶주린 금수들을 부를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섰다.그 순간 바로 앞에 숲에서 뭔가가 날 주시하고 있다는 살기어린 느낌이 들었다.‘뭔가 날 노려보고 있다.’ 그 생각이 들었을 때 바로 앞 숲에서 거대한 백호가 뒷다리에 화살이 박힌 채로 피를 흘리며 붉은 안광을 뿜어내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이며 천천히 나왔다.
“어으응!”
그 순간 난 놀라 들고 있던 화살을 바로 시위에 걸어 거대한 백호를 향해 겨눴다.
“어응!”
내가 화살을 자신에게 겨누자 백호는 더욱 미친 듯 포효하며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들 것 같았다. 하지만 백호는 나를 위협하듯 울부짖을 뿐 더는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마치 네놈이 잡은 저 계집을 내게 내놓으라는 그런 눈빛이었다.
“호, 호랑이다.”
조금 전까지 표독하게 자신을 죽이라고 했던 고달기도 피 흘리는 백호를 보고 기겁한 듯 소리를 질렀다.
“어으응!”
백호가 다시 한 번 크게 울부짖었다.
“달라는 것이냐?”
난 마치 백호가 내 말을 들을 수 있다는 듯 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내가 뒤로 물러서자 백호도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왔고 백호 때문에 고달기는 발목 인대가 끊어진 상태에서 내가 뒷걸음질 치는 방향으로 기었다.
내 손에 죽기를 원했던 고달기도 백호의 거대하고 날카로운 송곳니와 발톱에 찢겨 짐승의 밥이 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으응! 어으응!”
다시 한 번 상처 입은 짐승의 포효가 온 산에 울려 퍼졌다.
“네, 네년의 마지막은 저 상처 입은 산신령에게 맡기면 되겠군.”
마지막 순간 그녀를 내 손으로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난 감사했다. 어찌 되었던 그녀는 나로 인해 저렇게 표독한 악녀가 되었으니 말이다.
쏴에엑!그때 박현준이 가지고 있던 신호화살이 하늘을 날며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난 백호를 응시하며 소리가 난 쪽 하늘을 힐끗 봤다.
‘야율강을 찾은 모양이군!’난 그런 생각을 하며 고달기를 백호의 앞에 둔 채로 뒤로 물러났고 백화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더는 다가오지 않고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겨눴던 활을 내려놓자 그와 동시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두 팔로 겨우 기어 달아나려고 하던 고달기를 덮쳤다.
“어어응!”
“아아악!”
고달기는 백호의 아가리에 물려 두 팔을 미친 듯 버둥거리다가 끝내 그 자리에서 죽었다. 내 계략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는 한 많고 표독한 고달기가 그렇게 허망하게 죽었다.
“모질고 또 모질어 질 것이다.”
난 이제는 금수의 밥이 된 고달기의 시체를 보며 다짐했다.사람이 모질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한 없이 모질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 이제 나는 대망을 꿈꾸고 있다. 그러니 나를 위협하는 모든 존재를 제거하고 대망을 이뤄야 했다.
“네년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군.”
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열을 죽이면 살인자고 만 명을 죽이면 왕이 되는 세상이다.”
난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박현준이 신호를 보낸 곳을 향해 뛰었다.
“어으으응!”
다시 한 번 고달기의 살을 뜯어 삼키는 백호의 포효가 온 산에 울려 퍼졌다.
“야율강을 살려야 한다. 내가 죽인 자들은 백호가 처리해 줄 것이다.”
난 오직 이 순간 야율강을 살려 고려와 금의 전란을 우선은 막고자했다.
“북벌은 내가 시작하는 것이지 그들이 시작한 후를 되받아 치는 것이 아니다.”
“어어응!”
동굴 밖 먼 어느 숲에서 동굴 안까지 들릴 정도의 포효소리가 울렸고 동굴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김돈중이 그 포효소리에 눈을 떴다.
“이 깊은 산이 온통 아수라장이구나! 마치 고려처럼,,,,,,,.”
이 숲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지금의 고려의 상황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김돈중이었다.
“고려황실은 누가 적인지 또 누가 같은 편인지 방향도 잡지 못하고 있다. 특히 황제가 되지 말았어야 할 분이 황제가 되니 스스로 지켜내지 못하고 저리 흔들리시는구나!”
김돈중은 아무것도 모른 체 사냥에 빠져 있는 명종이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냥이 끝나면 그는 다시 도천밀군에게 잡혀 겁박을 당할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우선은 상황전하를 복위시켜야겠지.”
“폭군을 말입니까?”
옆에서 가만히 있던 도천밀군 간부 하나가 김돈중을 보며 물었다.
“도천의 세상이 열리기 위해서는 그분이 문을 여셔야한다.”
“허나 폭군입니다. 저희가 폭군인 상황을 복위시키기 위해 그 수많은 시간을 참고 감내한 것이 아닙니다.”
“알고 있다.”
“그런데 어찌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도천밀군 간부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내 그분이 도천의 세상을 연다고 하지 않았느냐? 상황전하 때문에 미륵이 되실 분이 이 세상에 강림하실 것이다.”
“폭군 때문에 미륵이 세상에 강림하다니요?”
도천밀군이 되물은 그 순간 김돈중의 표정은 빠르게 굳어졌다.
“이, 이곳에 투입된 밀군들은 모르고 있음이야!”
김돈중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러십니까? 부본주?”
도천밀군의 간부가 놀라 따라 일어섰다.
“멍청한 내가 고려를 망치고 있다. 왕자께서 위험하시다. 왕자님께서 위험하시다.”
김돈중은 작은 빛이 들어오는 동굴을 봤다.
“무슨 일이십니까? 부본주? 왕자님이라니요? 황제 말고는 사냥에 참여한 왕족은 없습니다.”
“회생을 죽여서는 아니 된다. 내 실수다. 내 뼈아픈 실수다. 아니 된다. 아니 된다. 절대 왕자님을 죽게 해서는 안 된다.”
“난신적자 회생이 왕자라니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미륵이 되실 분이다. 폭군이 다시 여는 세상에 밝은 빛을 가지고 올 미륵이 되실 분이다.”
김돈중은 도천밀군 간부가 이해 할 수 없는 말만 계속하고 있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그가 미륵이 되실 분이다.”
“미륵이라니요?”
“그가 도천밀서에 예언된 분이시다.”
“확실한 것입니까?”
“그래. 확실하다. 어서 그분을 구해야 한다. 내 실수다. 내가 도천밀서에서 예언된 분을 지금 해하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태평스럽게 앉아 있었구나. 막아야 한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김돈중이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너무나 다급한 김돈중의 표정이었기에 도천밀군 간부도 표정이 굳어졌다.
“찾아라! 어서 찾아야 한다. 어서!”
“예. 부본주!”
하지만 이 순간 이 넓은 숲에서 회생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는 일이었다.============================ 작품 후기 ============================야율강에게 화살을 맞은 백호의 밥으로 고달기를 던져주려고 했는데 하도 문제가 있다고 해서 이렇게 고쳤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