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4권 -- >어이없게 내가 공격을 당했으니 그 답으로 난 옛날처럼 당당하다고 말한 거였다. 그리고 속이 좁은 명종황제가 어떻게 나올지도 궁금했다.
“예. 아옵니다. 황제폐하!”
“안다? 부마도위가 공주를 안다?”
“그렇사옵니다.”
“어찌 아는가?”
“황제폐하도 야율강 대인의 옆에 있는 공주마마를 아십니다.”
“짐도 안다?”
“그렇사옵니다. 저 여인의 운명이 편하게 흘렀다면 황제폐하의 며느님이 되셨을 것입니다.”
난 명종황제의 마음에 고춧가루를 뿌리듯 말했다.
“며느리가 되다니?”
순간 명종황제는 놀라는 눈빛이 역력했다.
“역신으로 죽은 채원의 딸이옵니다. 그리고 지금 공주가 되어 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역신 채원이 저에게 목이 베어지던 그날을 말이옵니다. 그때 태자비에서 관노가 되었던 계집이 바로 공주이십니다.”
내 말에 명종황제는 놀라 기겁해 채원의 딸을 뚫어지게 봤다.
“뭐라?”
“역신으로 황제폐하의 명에 의해 제가 목을 벤 채원의 딸이 바로 공주이십니다.”
“으음,,,,,,,.”
명종황제는 깊게 신음을 하고 채원의 딸과 야율 강을 번갈아봤다.
“순, 순문사! 그대도 알고 있었나?”
“예. 황제폐하! 소신도 알고 있었사옵니다. 허나 소신은 조금 다르게 알고 있습니다.”
“다르게 알고 있다?”
“그렇사옵니다.”
“그대가 알고 있다는 것이 무엇인가?”
“소신은 공녀가 된 공주를 처음보고 그 기품이 놀라워 왜 공녀가 되었는지 물었사옵니다. 그리고 지금 위위경인 이의방 공과 그 아비가 권력쟁투를 벌이다가 더러운 계략에 말려 방심을 하다가 궁에서 급변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더러운 계략?”
채원의 목을 벨 때 내가 꾸민 계략의 일부분을 명종황제가 담당했다. 이것은 나와 명종황제 둘을 동시에 조롱하는 말이었다.
“그렇사옵니다. 권력쟁투에서 승리하지 못했으니 역신으로 죽은 것이 아니옵니까?”
야율강은 이 순간 따지듯 말했다.
“으음,,,,,,,.”
“소신이 틀렸다면 송구하옵니다.”
“짐은 모르겠소. 허나 어찌 된 사정인지는 모르겠으나 역신의 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가 짐에게 이런 일을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처음으로 명종황제가 어두운 표정으로 금나라 순문사 야율강에게 따지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야율강이라면 이런 것까지 예상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 대답은 소녀가 해도 되겠나이까?”
채원의 딸이 바로 말에서 내려 명종황제께 무릎을 꿇었다. 아마도 내가 나중에 문제를 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의도적으로 이 일을 꺼낸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 오늘을 위해 철두철미하게 준비한 것이 분명했다.
“네가?”
명종황제는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채원의 딸을 봤다. 여전히 그의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 만약 이 순간 야율강이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견룡군에게 지시해 목을 벨 것 같은 그런 눈빛이었다.채원과 채원의 딸은 내 숙부인 명종황제에게는 참으로 비참한 과거 중 하나일 것이니 말이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해 보라. 짐은 지금 매우 기분이 좋지 않다.”
“예. 소신은 부마도위가 말씀 올린 것처럼 역신으로 죽은 채원의 딸이옵니다. 제 아비는 역신이 되기 전까지 황제폐하를 보위에 올린 개국공신과 다름이 없사옵니다. 허나 권력쟁투에 지고 그리 역신으로 죽었사옵니다. 아비가 권력쟁투에서 승리했다면 이 자리에 없을 위인이 참 많이 있습니다.”
채원의 딸은 당돌하게 나와 이의방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이 자리에 없을 사람이라,,,,,,,,.”
물론 명종황제가 그 사람이 누군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제 아비가 역신으로 죽었다는 것이옵니다. 그 이유가 어찌 되었던 조정과 황실에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죄이지요. 죄입니다. 그래서 소녀는 그 죄를 씻고자 제가 금으로 가겠다는 것이옵니다. 아비의 죄를 딸이 씻고자 하는 마음을 깊게 헤아려주시옵소서.”
궤변이 분명했다. 허나 호소력 있는 채원의 딸의 어투에 약간은 명종황제의 마음이 누그러진 것 같았다.
“아비의 죄를 딸이 씻는다?”
“그렇사옵니다. 제가 대국으로 가 고려 공주의 당당함을 보이고 고려를 위해 일할 것이옵니다. 금의 입장이 아닌 고려의 입장에서 고려를 위해 이 한 몸 바칠 것이옵니다. 그러니 제 아비의 죄를 사해 주시옵소서.”
채원의 딸은 이번 일로 두 가지를 원하는 것 같았다.가문의 복권과 함께 자신에게 불리해질 과거를 스스로 드러내서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킬 생각이 거였다.
‘참으로 그 지혜가 뱀처럼 차갑다.’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채원의 딸이 절대 금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참에 베어야 해!’난 다시 한 번 채원의 딸을 베겠다는 결심을 했다.
“네 말이 사실이더냐?”
“그렇사옵니다. 제 어미와 동생은 여전히 관노로 있사옵니다. 그러니 제가 성심을 다해 고려를 위해 움직일 것이니 제 어미와 동생을 가엽게 여겨주십시오. 황제폐하.”
이 순간 채원의 딸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여자의 눈물은 큰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난 오늘 알았다. 조금 전까지 겨울의 강처럼 얼어붙어 있던 명종황제의 마음이 더욱 풀리는 것 같아 보였다.그리고 채원의 딸의 말에 잠시 명종황제가 물끄러미 채원의 딸을 보다가 야율강을 봤다.
“그대는 어찌 생각을 하는가?”
“제가 고달기를 한 달 가까이 봤습니다. 고달기보다 영민한 여인은 이 고려에 없을 것입니다. 대국으로 보낸다면 참으로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분명 대국 황자나 황상께 총애를 받을 여인이옵니다.”
그것을 반대로 말한다면 큰 화가 된다는 걸 거다.
“그런가? 그대는 그리 생각을 하는가?”
“그렇사옵니다. 대국 황제폐하의 주변에는 대륙 각 곳의 여인들이 차고 넘칩니다. 지고지순한 고려의 여인을 보낸다면 화려한 꽃들 속에서 피어 있는 작은 꽃에 불과할 것이옵니다.”
“그렇지.”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
“알았네. 과거는 흘러간 강물이지. 돌리수도 없지만 기억할 필요도 없지. 오늘이 중요한 것이야.”
명종황제는 고개를 돌려 채원의 딸을 봤다.
“그런데 어찌 너의 이름이 고달기인 것이냐?”
“아비가 역신으로 죽었나이다. 그러니 소녀가 어찌 채씨의 딸이라고 할 수 있겠사옵니까? 오직 아비의 죄를 씻기 위해 고려를 위해 달게 움직이는 여인이 될 것이라고 고달기라고 이름을 바꾸었사옵니다.”
“그 뜻이 기특하구나.”
“황공하옵니다. 폐하!”
“알았다. 일어나라. 짐이 너의 충심과 죽은 아비에 대한 효심을 믿겠다.”
이 순간 명종황제는 고달기의 꾀에 넘어가고 말았다. 아니 누가 가든 금으로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딸인 어린 공주를 안 보낸다는 것만으로 명종황제는 고달기라고 이름을 고친 채원의 딸을 용서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부터는 고달기는 역신의 딸이 아닌 명종황제의 양녀의 신분이 되어버린 거였다.‘고달기? 고려를 망칠 달기가 되겠다는 거군.’난 단번에 채원의 딸이 왜 고달기로 이름을 바꿨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너의 어미와 동생을 사면해 줄 것이다. 아니 다시 너의 가문을 복권시켜 줄 것이다. 그러니 너는 대국으로 가서 고려를 위해 지극정성으로 대국 황제를 보필해야 할 것이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그렇게 고달기는 자신이 원하는 것처럼 두 가지 모두를 얻게 됐다. 하지만 그녀가 얻은 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척살할 마음을 먹었으니 말이다.
“그럼 이제 사냥을 해 볼까요? 순문사!”
“예. 황제폐하!”
야율강도 무척이나 사냥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순간 짐승을 잡을 생각을 한 사람은 이 자리에는 오직 황제뿐일 거다. 나는 나를 향해 살기를 뿜어내는 고달기를 잡을 생각이고 고달기는 야율강을 이용해 나를 잡을 생각이니 말이다.
‘네년이 사냥을 나서준다면 내가 한결 수월해지지.’난 고달기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녀 역시 나를 노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달기의 옆에는 몇 명의 금나라 무장이 호위를 하듯 서 있으니 말이다.
금나라 무장은 여진인이다. 그것은 달리 말해 그 뿌리가 우리와 같은 동이이며 예맥이라는 거고 활을 다룸에 있어 고려의 무장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난 이미 파악해 놓은 상태였다.
또한 마상궁술로만 따진다면 고려보다 위에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여진족은 유목민족으로 태어날 때부터 말에서 태어나고 죽을 때도 말에서 죽는다는 소리가 있다.
물론 그것은 아주 멀리 있는 가장 위험한 적이 될 몽골도 마찬가지였다.활을 다룸에 있어 그 순위가 여진이 갑이 분명할 것이고 고려가 을일 것이다. 그리고 말을 다르는 것에는 몽골이 갑이고 여진이 을이 분명할 거다. 그러니 여진인 금의 무장이 마상에서 나를 노린다면 나는 실로 위급해 질 것이 분명했다.
‘나를 잡겠다는 생각이군.’난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요즘 들어 안 사실이지만 활을 다룸에 있어 제일 중요한 요건은 시력이었다. 그리고 대범함이었다.
활은 눈이 좋아야 하고 그 좋은 눈으로 표적을 정확하게 봐야 하면 또한 대범하게 적의 머리를 노려야 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다.그리고 나 역시 활을 꽤나 잘 다룬다는 것을 알았다.
쉬이잉!그때 뺨을 때린다고 생각할 정도의 바람이 불었다.이 바람이 내게 불리할지 유리할 지는 두고 봐야 알 것 같았다.
‘바람이 분다. 바람은 나를 위해 불게 만든 것이다.’둥~ 둥둥~ 둥둥~다시 북소리가 울렸다.
이제는 진정 사냥이 이뤄질 참이다. 그러고 보니 이 순간이 딱 황제 노릇 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몇 명의 즐거움을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고 있으니 말이다.
“황제폐하! 몰이꾼들이 짐승들을 몰고 있사옵니다.”
이 소응이 순간 나와 이의방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뭔가 저 늙은이도 일을 꾸미는 모양이군!’이 자리는 정말 각자의 계략에 의해 움직여지는 아수라장이 분명했다.
이 순간 중요한 것은 내가 채원의 목을 벨 때 내가 짜놓은 판에 채원을 올렸던 것에 비해 나는 이 소응과 야율강 그리고 고달기가 짜놓은 판에 올라 있다는 거였다.그것은 내가 무척이나 위험하다는 거였다.
‘나는 극복할 수 있다.’요즘 들어 무한한 자신감을 나도 모르게 보여주는 나였다.
“그런가?”
명종황제가 멀리 들판 반대편 쪽 산을 봤다.
“그렇사옵니다. 반대편 끝에서부터 짐승들을 몰고 있사옵니다. 산 초입이면 충분히 큰 짐승을 만나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이 산에는 표범과 맹호가 있다고 하옵니다.”
“표범과 맹호가 있다?”
“그렇사옵니다.”
“불곰도 있다고 들었사옵니다. 저는 황제폐하와 공주마마를 위해 송악산에서 여기까지 넘어온 아비 불곰과 암컷 새끼불곰을 잡아 진상하겠사옵니다.”
송악산 불곰!그건 죽은 채원의 별호였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을 잘 아는 고달기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하하하! 부마도위가 짐을 위해 불곰을 잡겠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그럼 짐이 맹호를 잡아 그 가죽을 벗겨 대국 황제께 조공하면 좋겠구나.”
고려 황제인 자가 스스로 오랑캐를 대국이라 부르며 또 사대를 하며 조공까지 바치겠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야율강이 조롱을 담은 눈빛을 숨기지 않고 보고 있었다. 마치 고려에 오기 전까지는 고려는 참 위험하고 두려울 수 있는 나라였는데 막상 이 고려에 와 보니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다는 것을 확인한 것 같은 눈빛이었다.
“대국 황제폐하도 그리 된다면 참으로 기뻐하실 것이옵니다.”
“그렇지요. 하하하”
“사냥 준비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이 소응이 재촉을 하듯 말했다.
“하하하! 나 역시 그대 덕에 모처럼 즐겁겠군. 내 오늘 맹호를 잡을 것이네.”
“황공하옵니다. 폐하!”
“순문사! 우리 내기를 할까?”
“내기 말씀이시옵니까?”
“그래. 가장 큰 짐승을 잡는 자가 승자가 되는 것으로 말이네.”
그 순간 야율강이 나를 힐끗 봤다. 마치 그의 눈빛은 나를 잡겠다는 거였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을 하는 것이네.”
명종황제는 짧게 대답을 하며 앞으로 말을 몰아 나갔고 견룡들이 명종황제를 호위하며 말을 달렸다. 그리고 야율강도 말을 몰아 앞으로 나서며 날 봤다.
“부마도위도 같이 즐기며 불곰을 어디 잡아 보시오.”
“그러지요.”
난 이 순간을 진심으로 즐길 생각을 했다.‘암 즐겨주지. 그러고 말고.’난 야율강을 씹어 먹을 것 같이 놀려봤다. 하지만 내 화살을 절대 야율강에게 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허나 채원의 딸이라면 상관없는 일이다.그리고 내가 잡을 짐승은 저기 날 여전히 표독한 눈빛으로 보고 있는 채원의 딸이 될 것이다.
“그럼 난 먼저!”
야율강은 타고 있는 말에 박차를 가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채원의 딸인 고달기도 앞으로 말을 몰아 나갔다. 그 다음으로 명종황제가 견룡군들의 호위를 받으며 앞으로 달려 나갔고 이제 남은 것은 나와 내 장인인 이의방뿐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사위!”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이의방이 날 보며 물었다.
“아주 큰 암컷을 잡아 볼 생각입니다.”
내 말에 이의방이 멀어지는 고달기를 봤다.
“활로 쏘면 야율강이 트집을 잡을 것이 분명해!”
“사냥이 비록 즐기라고 있기는 하나 참으로 위험하지 않습니까?”
난 멀어지는 고달기를 보며 살기를 뿜어냈다.
“그렇지.”
“장인께서는 어찌 하시겠습니까?”
내 물음에 이의방이 사냥터 막사 주변을 쭉 둘러봤다.
“이곳에 영, 묘한 기운이 돌아.”
이의방은 내게 그렇게 말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고 보니 허리에는 위위경이 된 후 좀처럼 차지 않던 환두대도가 차여 있었다.
“따로 장인께서 생각해 두신 것이 있사옵니까?”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