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277화 (277/620)

< -- 간웅 14권 -- >사냥터로 정해진 산의 깊은 계곡 옆에 만들어진 동굴.

“일은 어찌 되고 있나?”

계곡 옆 동굴에 몸을 숨긴 김돈중이 망건에게 물었다. 어찌 보면 이곳이 작전 총지휘소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들어서는 입구는 작으나 그 안의 터가 생각이상으로 넓어 많은 병력을 숨기기 충분했고 이곳에는 100여명의 거란족 오랑캥 야율강의 척살조가 대기하고 있었다.

“몰이꾼들은 모두 밀군으로 모두 교체했사옵니다. 이 모든 것이 이 소응을 끌어 들리자고 하신 부본주의 혜안 때문입니다.”

비록 이 순간까지도 망건은 김돈중을 완벽하게 믿을 수는 없으나 그의 책략이 놀랍기만 했다. 사실 김돈중은 금나라 사신 야율강이 개경에 도착했다는 통문을 받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생각으로는 야율강이 크게 고려황실을 어지럽힐 것이고 이 기회야 말로 자신이 도천밀교에서 진정 부본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또한 그는 회생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었다.

회생 그가 누구인지 무비와 함께 아니 회생을 지켜보고 있었던 거였다.

“결국 고려황실과 황제가 도천밀군에 의해 독안에 든 쥐 꼴이 된 거군.”

“그렇습니다. 부본주!”

“그럼 이제 금나라 오랑캐를 척살하고 또 이의방을 비롯한 무부들을 척살하면 되겠군.”

“예. 부본주! 산 도처에 밀군들을 미리 매복시켜놨습니다.”

“잘 했네. 이제 도천밀교가 다시 고려의 중심이 될 것이네.”

“예. 부본주! 그런데 아쉬운 것은 난신적자 김보당 일파와 변절한 강일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망건의 말에 김돈중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보당이야 워낙 기회주의자이니 난신적자의 길을 걷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강일천공이 무부들과 결탁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들리는 소문에는 숨겨놓은 딸이 회생과 음통하여 무부들의 편에 섰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숨겨놓은 딸?”

“그렇습니다. 부본주.”

망건의 말에 김돈중은 오래 전 흥왕사로 갈 때 황제의 어가를 따르던 백화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럴지도 모르지.”

“분명 그럴 것입니다.”

“하여튼 의외야! 그게 아니라면 태후께서 강일천을 움직인 것일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부본주.”

“그럼 나머지 5군은 어찌 하고 있나?”

“동서남북 군이 각각 응양군과 용호군을 비롯한 황성을 포위할 준비를 끝냈습니다. 전서구만 날면 바로 사방에서 치고 들어갈 것입니다.”

“중군은?”

“중군은 신수군에 잠입한 밀군들과 함께 신수군을 장악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고려 조정의 눈을 피해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줄 알았던 도천밀교의 밀군들이 이렇게 크게 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이 모든 것이 도선대사를 비롯해 묘청대사의 힘이시다.”

김돈중은 다시 한 번 묘청의 능력과 영도력에 놀라워했다.

“그렇습니다. 천기가 흐려져 첫 천지개벽은 실패로 돌아갔으나 이번만은 실패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야지. 그래야하고 말고. 더 이상 고려가 오랑캐의 손에 놀아나게 할 수는 없다.”

“그렇사옵니다. 부본주.”

그때 망건이 부본주인 김돈중의 눈치를 봤다.

“거사 후는 어찌 하실 생각이십니까?”

“거사 후에 진정한 미륵을 찾아 도천밀교의 본주로 추대하고 그분의 영도를 받아야겠지.”

“하오나 사라진 도천밀서를 가지신 분이 과연 있을지 의문입니다. 또한 그것을 파쇄 하실 만큼의 배포가 있으신 분이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도천밀서를 가지시고 또 그것을 파쇄 하시는 분이야 말로 진정한 본주시겠지.”

“예. 그렇습니다. 이제 곧 도천의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옳다. 그래야하지. 그래야 젊은 날 나의 과오도 씻을 수 있을 것이다.”

김돈중이 도천밀교 부본주가 된 것은 뼈를 깎는 자기반성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자기반성이 각 지부에 흩어져 있는 분주들을 설득한 것 같았다. 물론 그것만이 모든 이유는 아니었다.

천지개벽이라고 말하는 거사가 성공한 후에 시국을 안정시키고 조정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문신의 거두였던 김돈중이 돈천밀교에서는 누구보다 필요했기 때문이었다.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에 이렇게 김돈중은 재기에 성공하고 있는 거였다.

둥~ 둥둥~ 둥둥~그때 동굴 밖에서 북소리가 울렸다.

“이제 시작될 모양이군.”

“그렇사옵니다. 이 북소리가 난신적자들의 목을 베는 신호가 될 것입니다.”

“완벽하게 준비를 했다고는 해도 움직임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네.”

“물론입니다. 하늘이 주신 기회를 허망하게 망칠 수는 없습니다.”

“옳은 말이네. 옳은 말이야!”

김돈중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둥~ 둥둥~ 둥둥~그때 몰이꾼들이 사냥감 몰이를 끝냈다는 북소리가 울렸다.

“폐하! 몰이꾼들이 준비가 끝난 모양입니다.”

이 사냥터 경비를 책임진 이 소응 대장군이 명종황제에게 고했다. 그의 눈빛은 평온해 보였으나 그 눈빛 안에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모든 욕망이 담겨 있는 듯 보였다.

“그럼 사냥을 시작하면 되겠군.”

명종황제는 야율강을 보며 말했다.

“예. 참으로 오랜만에 해 보는 사냥이옵니다.”

“그렇지요. 짐도 그렇소.”

명종황제는 이 사냥이 끝나면 고려의 공주가 될 채원의 딸을 봤다.

“공주는 위험하니 이곳에 있게.”

명종황제는 이 순간 스스럼없이 채원의 딸을 공주라 말했다. 이미 결정된 사항이니 그렇게 부르는 것이고 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공주라는 소리를 들은 채원의 딸은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을 찰나에 순간 보이고 그것을 내게 들키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다.무장의 딸로 시작해 내 계략에 의해 단 몇 시간 만이었지만 태자비로 간택이 되었다가 다시 아비인 채원이 죽고 죄인의 신분이 되어 관노로 떨어져서 더러운 오랑캐의 몸시중이나 드는 공녀가 되었다가 이렇게 다시 공주라고 불리니 말이다.

정말 여자의 인생 중에 이보다 더 파란만장한 인생은 없을 것이다. 허나 그 모든 것이 이 고려에는 위급한 일이 될 것이다.

또한 그녀가 금으로 가서 금의 실력자인 황자의 총애를 받게 된다면 분명 자신과 아비의 복수를 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 분명할 것이다. ‘후일 황제께서 며느리가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난 문뜩 그게 궁금했다.

“저도 사냥에 참여해도 되겠사옵니까? 황제폐하!”

채원의 딸은 당돌하게 명종황제에게 청을 했다. 그리고 난 그녀가 무슨 영문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지 의구심이 들면서도 조금씩 불안해졌다.

“공주가 사냥을?”

그러고 보니 채원의 딸도 가볍게 보이지만 갑주를 입고 있었다. 갑주를 입은 모습이 부자연스럽지 않고 편안한 것을 봐서 처음 갑주를 입어본 것은 분명 아닌 것 같았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공주가 활을 쏠 줄을 아는가?”

명종황제는 신기하다는 듯 채원의 딸을 보며 물었다.

“제 선친께서 활을 다룰 줄 아시는 고려의 무장이셨습니다. 황제폐하도 아시는 무장이옵니다.”

“무장이라? 또한 짐이 안다? 그렇다면 일개무장은 아닐 것인데?”

“그렇사옵니다.”

“놀랍군. 아비가 강하게 여식을 키웠군.”

“그렇사옵니다. 저는 강하게 키워졌습니다. 그래서 활도 제법 다루옵니다. 보시겠사옵니까?”

채원의 딸은 명종황제에게 말하고 바로 말의 옆구리에 끼워 놓은 각궁을 꺼내 시위를 당겼다. 각궁은 탄력이 남다른 활이라 일반적인 남자들도 쉽게 시위를 당기지 못하는 강한 활이다. 그런데 여자의 몸으로 각궁의 시위를 당기는 모습을 보고 난 채원의 딸이 참으로 예사 계집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위를 당기는 모습이 서툴지 않다.’참으로 아비는 어리석은 존재였으나 그 딸만큼은 무서운 계집으로 크기 충분할 것 같았다. 또한 그녀가 금으로 간다면 황자든 황제이든 총애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자는 가녀린 계집을 즐기기도 하지만 자신과 같이 칼을 다루고 활을 당길 수 있으며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할 수 있는 계집에게도 묘한 매력을 느끼니 말이다.사실 미모가 탁월해 눈에 띄는 것은 화무십일홍이라고 해서 금방 질리기 마련이다.

허나 이렇게 스스로의 능력을 보이는 계집이라면 두고두고 찾게 될 것 같았다.‘미색도 반반하고 몸매도 뛰어나고 거기다가 남자들이 좋아할 저런 능력까지 가졌으니 위험하다.

’난 채원의 딸을 보며 오직 그 생각만 들었다.

“시위를 당기는 것이 대단하구나! 각궁의 시위를 당기고 있어. 너는 참 대단한 공주다.”

“소녀가 활을 조금 다룹니다. 보시겠사옵니까?”

그리고 바로 채원은 각궁에 화살을 먹여 다시 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마치 표적을 찾겠다는 듯 몸을 돌려서 내게 화살을 겨눴다. 그 순간 마치 시위를 나서 나를 죽이고 싶다는 눈빛을 내게 보였다.

이것은 일종의 위협이며 조롱이었다.화살이 먹여진 시위를 내게 겨누며 내가 어떤 행동을 할지 보겠다는 그런 당돌함이었다.

허나 이럴 때일수록 나는 당당해야 했다. 나는 그녀가 내게 시위를 겨누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모습으로 찬찬히 그녀를 봤다.

“이 화살은 소녀가 마음먹은 표적을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옵니다.”

순간 채원의 딸의 눈동자에서 나를 향한 살기가 뿜어졌고 내 옆에 가만히 있던 이의방이 나를 보며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내게 속삭였다.

“몹쓸 계집이로세.”

“그렇습니다. 장인! 아주 몹쓸 계집입니다. 이 고려에 있으면 고려를 망하게 할 계집이고 금에 있으면 금과 함께 고려를 망하게 할 계집입니다.”

나 역시 누구도 듣지 못하게 이의방에게 작게 속삭였다.

“오늘 참 많은 사고가 있겠군.”

이건 채원의 딸을 사고로 죽이라는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그럴 것 같습니다. 이 산에 범과 호랑이가 산다고 들었습니다.”

“계집이 사냥을 나간다. 딱 범의 밤이 되기 좋겠군.”

“예. 장인어른.”

난 이의방에게 그렇게 말하고 태연히 명종황제와 채원의 딸을 봤다.

“하하하! 정말 공주가 대단하군.”

명종황제는 채원의 딸을 칭찬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난 내게 시위를 겨눈 채원의 딸을 노려봤다.

“폐하께서 허락해주신다면 이 시위를 놔서 앞으로 어버이가 되실 폐하를 위해 큰 짐승을 사냥하겠사옵니다.”

당찬 것이 난 그날 채원의 목이 떨어질 때를 떠올렸다.‘그래! 참으로 당찬 여인이었다. 그래서 내 마음이 너그러워진 걸 거다.’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허락한다. 공주도 사냥에 참여해라.”

“어머!”

그 순간 채원의 딸은 마치 실수라도 하듯 시위를 놔버렸다. 한 마디로 이건 실수를 가장한 나에 대한 공격이 분명했다.난 날아든 화살을 급히 피해 채원의 딸을 봤다.

“송구하옵니다. 부마도위님! 제가 괜한 짓을 해서 부마도위님을 위급에 빠트릴 뻔 했습니다.”

채원의 딸은 기겁한 표정으로 내게 달려와 거짓된 진심을 담아 말했다. 이 순간 완벽하게 날 노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내게 위협을 주기 위함이 분명했다. 또한 나에 대한 조롱이 분명했다.

“아닙니다. 공주님! 꽤나 그 옛날처럼 당당하십니다.”

내 말을 듣고 명종황제가 날 봤다.

“부마도위 괜찮은가?”

내심 황제도 내가 화살을 맞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김보당과 요즘 놀아나는 꼴을 보니 나를 자기편으로 생각하지 않고 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자신보다 능력을 보이는 신하를 곁에 두기에는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는 황제였다. 하지만 명종황제는 날 걱정하는 투로 말했다.

“제가 아무리 미력하나 여인이 쏘는 화살에 맞아 비명횡사를 할 정도는 아닙니다. 폐하!”

“하하하! 그렇지. 공주가 큰 실수를 할 뻔 했어. 그런데 부마도위! 그대의 말을 들으니 예전부터 공주를 아는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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