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4권 -- >공예태후의 대전.난 담담히 공예태후의 앞에 부복했고 나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그리고 태후의 뒤에 있는 영화공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는 있지만 그저 나를 걱정하는 눈빛만은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서운하신가?”
공예태후는 나의 마음을 정확하게 간파한 것 같았다. 서운하다? 서운한 마음도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난 서운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이 순간 울분처럼 토해낸다면 고려 황실에 파란이 일 것이 분명했다.
“서운하지 않사옵니다.”
“아니 서운해 하시게. 암! 서운한 일이지. 나라고 해도 배신감이 느껴질 것이고 또한 황상의 그릇이 작다고 탓할 것이네. 암 그렇고말고.”
이 말을 통해 공예태후도 이제는 자신의 차남인 명종황제를 포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사실 내가 금으로 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곳이 죽을 자리라면 죽으면 그만이다.
물론 난 그 자리를 절대 죽을 자리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금적금왕이라는 말이 있다.
적을 사로잡으려면 우두머리부터 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중국 당나라 시대에 천재적인 시인 두보라는 자가 있다.
그가 쓴 시 중에 이런 말이 있다.활을 당기려면 강하게 당겨야 하고 화살을 쏘려면 멀리 쏘아야 하며 사람을 쏘려면 먼저 그 말을 쏴서 쓰러트려야 하며 적을 잡으려면 먼저 그 우두머리를 잡으라는 말이 있다.
지금 딱 내게 해당되는 말이다.이제 난 결심을 했다. 지금까지는 무인본분 위국헌신이라는 생각으로 이 고려에서 살았다.
아니 그렇게 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꿈이 달라지면 나갈 길도 달라지는 법이다.
이왕 결심을 했으면 그 뜻을 크게 해야 한다.그것이 역성혁명이든 숙부의 자리를 찬탈하는 것이든 이제는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는 거다. 그렇다면 크고 강하게 당기는 활처럼 움직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위험한 요소들부터 제거해야 한다.
그 위험한 요소는 내적인 것도 있지만 외적인 것이 더 많다. 100년 후에 일어날 일이라고 해서 소홀히 한다면 내가 이룬 일들이 모두 100년 후면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또한 지금 내 적은 고려를 위협하는 금이 아니라 고려를 희롱하고 있는 야율강과 금나라 황제다. 그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순순히 금으로 간다는 것이다.‘금과 몽골이 철천지대원수가 되게 만들어주지.’난 금을 통해 몽골을 더욱 혼란에 빠트릴 생각으로 금으로 가는 것이다. 또한 이번 금나라 입조를 통해 돌아오는 길에는 새로운 이름으로 또 새로운 꿈으로 고려에 돌아올 것이다.
수백 년 후에 일어날 일은 난 지금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지만 그 역사를 아는 나는 음모를 꾸미고 계획하는 일도 어렵지 않으니 말이다.
‘이 씨가 했던 그대로 할 것이다. 그리 된다면 아버님의 세상이다.
’그래서 내가 그 사지로 가기 전에 새롭게 창설되는 고려 3군의 상장군이 된 것이다.난 공예태후를 보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부마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네.”
“소신에게 당부하실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내 말에 공예태후가 날 잠시 뚫어지게 봤다. 그리고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나처럼 지그시 입술을 깨물다가 나를 봤다.
“이 장모에게는 아들이 많다는 것을 잊지 마시게. 그리고 고려는 지금 황상의 고려만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시게.”
“그 말씀은,,,,,,,.”
난 놀라 공예태후를 봤다.
“부마가 이역만리 금에서 무사귀환을 하게 되면 많은 것이 바뀌지 않겠나.”
“태후마마!”
놀랍다.오래 산 이들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그런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끝까지 부마를 믿을 것이네. 부마를 믿어.”
이 순간 공예태후의 마음도 지금의 황상에게서 돌아선 것이 분명했다. ‘아버님께서 재등극 하실 기회가 있겠군.’내가 새로운 마음을 먹으니 새로운 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2. 도천밀교 부본주 김돈중!김보당의 사택.김보당 일파들은 김보당의 사택에 모여 있었다.
“바로 일을 진행하시는 것입니까?”
장순석이 김보당을 보며 물었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
“당장은 어렵다고 하시는 것은?”
“이회생이 아직 금으로 가지 않았고 이의방이 저렇게 눈을 크게 뜨고 있으니 말이네.”
김보당의 말에 장순석과 그 자리에 모인 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한 야망을 꿈꾸고 있는 그들이지만 여전히 회생과 이의방은 두려운 존재가 분명했다.
“무부들이 어리석은 머리로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은 모두 그들의 뒤에 회생이라는 책사가 있기 때문이지. 적의 가장 큰 장점을 무력화시키고 움직인다면 승산은 우리에게 있음이네.”
“하오시면?”
“우선은 회생 그놈이 금으로 가야 할 것이야. 그러고 나서 일을 도모해도 도모해야 할 것이네.”
“회생이 금으로 가고 나서요?”
“그래. 그게 순서지.”
“그럼 저희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번 사냥에서 후일을 도모할 일을 만들어야지.”
“이번 사냥에서 어찌 말입니까?”
“분명 내 추측이 확실하다면 이대장군이 무슨 일을 꾸며도 꾸밀 것이야!”
김보당이 차갑게 웃었다.
“이소응이 일을 꾸민단 말입니까?”
“그의 사택에 사병들이 모이고 있어. 이소응은 분명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할 것이야. 이번이 그러니 우리에게도 기회라면 기회겠지.”
“이소응이 누구를 노린단 말입니까?”
“어리석다면 야율강을 노리겠지. 하지만 조금이라도 머리가 있다면 이의방을 노리게 될 것이야.”
“이의방을 말입니까?”
순간 장순석은 놀라 김보당을 봤다.
“그래. 그래야 권력을 손에 쥘 수 있을 거니까.”
“그럼 그 모든 것을 보고 계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적이 적을 죽여주겠다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하하하!”
“하옵시면?”
“이소응이 야율강과 이의방을 벤 후 우리는 이소응을 생포하면 되는 것이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강화에 계신 상황도 베면 되는 것이고.”
김보당은 무서운 일을 꾸미고 있었다.깊은 밤 옥사.이의민은 목에 칼을 쓰고 차분히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 순간 이리도 차분히 앉아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은 그에게 가해진 모진 고신 때문일 것이다.
“내가 토사구팽을 당하는 것인가.”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이의민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의민은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매 순간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비록 자신이 금나라 장군의 목을 베었다고는 해도 고려 조정이 이리도 자신을 모질게 고신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이의민의 생각이었다. 또한 이미 그는 이의방과 회생의 결심을 받고 움직인 거였다.
“내가 뭔가를 잘못 생각한 것인가?”
이의민이 그런 생각을 할 동안 옥사 입구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계집이다.’타고난 무장인 이의민이기에 지금 옥사 입구에서 걸어오는 자가 여자라는 것을 직감했다.그리고 그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이별장이십니까?”
혜월이 회생의 부탁을 받고 옥사를 찾은 거였다.
“그렇소.”
“회생공의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
“회생의?”
“그렇습니다. 모진 고신이 있더라도 참아 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아내기만 해라? 그저 참아내다가 죽으라는 말인가?”
나직하지만 분노가 가득한 말이었다.
“회생공께서 단 한 말씀만 전하라 하셨습니다.”
“무슨 말을?”
“옥련사를 잊지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회생공도 절대 잊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옥련사를?”
“그렇습니다.”
혜월의 말에 이의민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알았네. 그리 하지.”
이 순간 자신이 믿을 존재는 여전히 회생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의민이었다.망건이 기거하는 별채.그곳에는 김보당이 이미 파악한 것처럼 장정들이 모여 있었다.
물론 이소응에게 말한 것처럼 금나라 오랑캐 야율강을 척살하기 위해 모은 장정들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모인 자들은 모두 도천밀교의 밀군들이었다.
“준비는 다 됐습니다.”
건장한 장정 하나가 차분히 앉아 있는 망건에게 말했다.
“우리가 노릴 것은 금나라 오랑캐 야율강이기도 하지만 이의방이기도 하다.”
망건은 말에 다소 놀란 듯 장정들이 망건을 봤다.
“이의방을 노린단 말씀이십니까?”
“종국에는 황제를 노리게 될 것이다.”
순간 망건의 눈동자가 붉게 변했다.
“황제,,, 황제를 노린단 말입니까?”
“고려의 황제는 오랑캐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이제는 때가 된 것이다. 마른 들판에 불씨가 떨어졌다. 그 불씨가 이제 고려를 활활 태울 것이다.”
“허나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밀군들이 필요합니다.”
“이미 다른 지부에도 병력을 요청했다. 그리고 속속 고려 황도로 몰려들고 있다.”
“어찌 하실 생각이십니까?”
“무부들이 했던 그대로를 할 것이다.”
망건이 말한 무부들은 무신정변을 일으키고 성공시킨 자들을 말할 것이다.
“진정한 거사를 하실 참이십니까?”
“그래. 부본주가 이미 허락했다.”
망건의 말에 도천밀교의 밀군들은 모두 놀라 기겁해 망건을 다시 봤다.
“비록 부분주가 분주들에 의해 부본주가 되었으나 아직 도천밀서를 손에 넣으신 것은 아니십니다. 어찌 도천밀교의 운명을 자격도 없는 자에게 맡기시려는 것입니까?”
“도천밀서를 손에 쥐시고 우리를 이끌어주실 분이 나오기 전까지 그 때를 만들려는 것이다.”
“하오나 부본주는 믿을 수 없는 자입니다.”
“그렇지. 믿을 수 없는 자이기는 하지. 허나 능력이 있는 자이기도 하다.”
스르륵!그때 문이 열렸고 당당히 사내 하나가 들어섰고 그의 등장에 도천밀교의 밀군들은 놀라 그를 봤다.김돈중그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더 놀랍게 그는 도천밀교의 부본주로 나선 거였다.
분며 팔색조와 같은 변신일 거다. 사실 그는 회생의 말에 구명이 되어 감악산에서 죽지 않고 생을 연장했다. 그리고 서경으로 가 지하에 숨은 도천밀교들을 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목숨을 건 결단이 분명할 거다. 도천밀교의 창시자인 묘청을 끝내 벤 자가 그의 부친이니 말이다.
허나 도천밀교는 김보당을 충분히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도천밀교에게 김보당의 출현은 충분히 자극이 되기 충분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도천밀교가 원하는 것 역시 고려의 권력이라는 거였다.그렇기에 적이라고 할 수 있는 김보당과 손을 잡을 수 있는 거였다.
“부본주를 뵙습니다.”
망건이 자리에서 일어나 짧게 목례를 했다. 분명한 것은 마음으로 따르는 존경의 표시는 아니었으나 도천밀교의 부본주에 대한 예의는 확실했다.
“나를 믿을 수 없는 자라고 하셨소?”
김돈중이 조금 전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자라고 말한 밀군을 봤다.
“송구합니다.”
“그대의 생각이 틀리지 않소. 여전히 그대들에게 나는 믿을 수 없는 자가 분명할 것이요.”
김돈중이 담담히 말했다.
“그렇게 말씀을 해 주시니 더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맞소. 나는 지금까지 그대들에게 그리고 도천밀교에게 믿음을 보여주지 못했소. 아니 내 아버님의 탐욕에 의해 고려의 번영을 가로막은 것이 분명합니다. 허나,,,,,,,,.”
김돈중이 좌중을 쭉 봤다.
“허나 늦었다고 생각을 할 때 가장 빠른 법입니다. 이제 고려 황도의 기운이 다 된 것 같소. 나의 아버님께서 권력에 눈이 멀지 않았다면 묘청대사와 함께 서경으로 천도를 했을 것이요. 이제 잘못 된 것을 바로 잡을 때입니다. 그래서 내가 부본주가 될 것이요. 그리고 그 진심을 받아드렸기에 분주들이 나를 부본주로 추대한 것이 아니시오?”
“그렇습니다. 부본주.”
“나는 명확하게 할 것이요. 지금 황실을 어지럽히고 있는 난신적자들과 검으로 황실을 겁박하는 무부들을 모두 몰아낸 후 그대들의 생각대로 서경으로 천도를 계획할 것이요. 또한 바른 황제를 옹립하여 대제국 고려를 건설하는 것에 일조할 것이요.”
도천밀교의 첫 나갈 길은 서경천도였다.그리고 그 다음이 금을 정벌하여 대제국 고려가 되는 거였다.
그것이 도천밀교의 대망이었다. 그리고 그 대망을 따르겠다고 김돈중이 나타나 말했으니 적이 아군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리고 김돈중은 스스로 자신의 부친을 질타하며 과거의 잘못을 시인했기에 조금은 그 믿음이 간 것도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