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272화 (272/620)

< -- 간웅 14권 -- >

“음지에서 일어날 일을 양지로 끌어내면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막을 회생도 금으로 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 계획대로 일이 될 것입니다.”

“어찌 명분을 만든단 말인가?”

“황족을 참할 수 있는 죄는 오직,,,,,,,.”

김보당은 참으로 무례하게 상황제인 의종을 겨우 황족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김보당이 난신적자가 될 기운을 타고 났다는 증거가 분명할 것이다.

“반역이지.”

“그렇사옵니다. 만약 상황제께서 복위의 난에 휘말리신다면 저희에게 명분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복위의 난?”

“예. 황제폐하!”

“그 누가 있어 상황제를 다시 복위시킬 난을 꾸민단 말인가?”

명종황제는 이 순간까지 모를 것이다. 며칠 전만해도 김보당이 의종을 복위시킬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는 것을.

“모진 고신에는 없던 죄도 있게 만들어지는 법입니다.”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가?”

“이대장군이옵니다.”

이대장군은 이소응을 말하는 거였다.

“이소응?”

“소신이 알아본 바로는 이대장군은 젊은날 척준경의 부장이었다고 합니다. 척준경이야 말고 배금정책의 수장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기질을 고스란히 받았을 것입니다. 또한 불학무식한 무부이옵니다. 일을 벌려도 충분히 벌릴 위인이 바로 그입니다.”

“이대장군이 일을 벌인다?”

“그에게도 고려를 위한 충심 따위는 있을 것입니다.”

“충심 따위라,,,,,,,.”

명종황제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속으로는 김보당이야 말로 후일 난신적자가 될 공산이 크다는 생각을 했다. 허나 분명한 것은 그가 난신이 된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난신이로세! 난신!’명종황제는 속으로 뇌까렸다.

“그렇사옵니다. 사병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충분히 뭔가 일을 꾸밀 것이 분명합니다.”

“사병이 모여진다는 것은 역심을 품었다는 건가?”

“역심을 품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심에 강화에 계신 분을 올려놓을 것입니다.”

김보당의 입가에는 살짝 미소가 머금어졌다.

“허나 이대장군이 야율강에게 적의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없지 않나?”

“대전에서 항상 금나라에게 적의를 품고 있던 자가 이소응입니다. 또한 야율강에게 가장 적의를 보이는 자 역시 이소응입니다. 또한 모진 고신에 없던 역심도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도 하겠지.”

“예. 사냥터에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의심을 받을 것이옵니다.”

김보당의 말에 명종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하라. 명분이 생긴다면 더욱 좋은 일이지. 짐은 그저 뒤에서 슬퍼할 뿐이지.”

견룡대가 주둔하고 있는 전각.난 이의방과 이야기를 끝낸 후 부마도위 이전에 견룡행수이기에 견룡대 전각으로 향했다. 견룡대 전각에서는 명종황제가 있는 대전이 훤히 보였다.

‘주인이 될 자격이 없다.’난 그렇게 뇌까리며 견룡대 전각 앞으로 걸었고 내가 다가서는 것을 확인하자 견룡군들이 나를 보고 군례를 올렸다.

“견룡행수를 뵈옵니다.”

“특별한 것은 없겠지?”

“예. 김보당 대부께서 대전으로 자주 드나드시는 것 말고는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내색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내게는 가장 특별한 거였다.

“그래 알았다.”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아주 멀리에서 느껴졌다. 나를 보고 있는 견룡군 둘이 표정의 변화가 없는 것을 봐서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인기척이 분명할 것이다.

‘내 감각이 더욱 강화되고 있음이야!’평상시에도 이런 감각의 발전은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허나 만약 내가 있는 곳이 전장이라면 이 탁월한 감각은 전장에서 승리를 가져다 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숙모시군.’발자국소리로 난 지금 견룡군 전각으로 걸어오는 여인이 해월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무슨 일이실까?’그리고 그런 생각을 할 동안 해월이 견룡군 전각으로 들어섰다.

“태후전 상궁 해월이 부마도위를 뵈옵니다.”

내 뒤에 견룡군 둘이 있으니 해월외숙모는 내게 존대를 했다.

“무슨 일이신가?”

“태후마마께서 뵙고자 하십니다.”

“아신 것인가?”

“상심이 크시옵니다. 그리고,,,,,,,.”

“그리고?”

“공주마마께서는 간밤부터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시옵니다.”

“그런가?”

“예. 부마도위님.”

영화공주가 나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에 난 묘한 감정이 피어났다.

“태후께서 나를 찾으시니 가야겠지. 앞장을 서시게.”

그렇게 나와 해월 외숙모는 공예태후의 전각으로 향했다. 그리고 으슥한 곳으로 접어들자 조금 전까지 담담했던 해월 외숙의 표정이 이제야 나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변했다.

“어찌 하실게요?”

해월 외숙모는 내가 조카이기는 하나 하대를 하지 않고 물었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사신으로 간다고 들었소. 금까지 가는 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지 않소. 외숙께서 참 많이 걱정하셨소.”

이 말은 어제도 은밀히 해월과 이고 외숙이 만났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마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비명횡사를 할 것입니다.”

내 말에 해월 외숙모의 눈동자가 커졌다.

“뭐라고요?”

“야율강이 저를 노리고 있습니다. 외숙모님.”

“그 금수만도 못한 금나라 오랑캐가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못 간다고 하십시오. 태후마마께 아니 가게 해 달라고 말씀하세요.”

해월 외숙모도 나를 걱정하는 듯 했다.

“아니 가고 싶으나 아니 갈 수 없고 가야 하는 길입니다. 가야 일이 해결됩니다.”

“드릴 말씀은 아니나 조금 더 조카님이 꿈을 크게 키우세요. 외숙이 큰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조카님의 외숙은 조카님을 위해서라면 칼산지옥이라도 가실 분이십니다. 그러니 조카님께서 꿈을 크게 키우세요. 그래야 살길이 열리십니다.

비밀은 없습니다. 그 비밀이 밝혀지면 조카님도 조카님의 생부께서도 위급해지십니다.

해월 외숙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실,,,,,,,,.”

해월 외숙모가 내 눈치를 봤다.

“사실 지금도 위급하시지요.”

내가 뭔가 알고 있다는 눈빛을 보이자 역시 내 조카님이라는 눈빛을 보이는 해월 외숙이었다.

“그일 때문에 찾으시는 것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냥 아직은 두고 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당연한 행동일 것이다. 명종황제든 의종황제든 다 같은 자식이니 어찌할지 고민스러울 공예태후일 것이다.

“그렇습니까?”

“허나 분명한 것은 무척이나 진노해계십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색하지 마세요. 두고 보시겠다고 하셨으니 말입니다.”

“예. 숙모님! 그건 그렇고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부탁이요?”

“예.”

“뭡니까? 조카님의 부탁이라면 뭐든 이 외숙모가 할 것입니다.”

“옥에 이의민 별장이 갇혀 있습니다.”

“알고 있지요.”

“그 이의민 별장에게 한 마디만 전해 주십시오.”

“뭐라고 전하면 되겠습니까?”

“옥련사를 잊지 말자 전해주십시오.”

난 김보당이 이의민에게 접근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옥련사요?”

“예. 그리고 옥에 갇혀 있을 때보다 나올 때가 더 위험하다고 전해 주십시오.”

“나올 때가 더 위험하다니요?”

“그런 것이 있습니다. 또한 조카들은 제가 잘 보살피겠다고 전해주십시오. 그만큼 오래 걸릴 거라고 말씀해 주시고요.”

“조카님의 큰 뜻이 있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그리만 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조카님!”

이소응의 사택.이소응의 앞에는 언제나 그랬듯 망건이 차분히 앉아 있었다.

“며칠 후에 금나라 오랑캐를 위한 사냥이 있을 것이네.”

꾸미던 일이 진행이 되자 이소응은 자랑을 하듯 망건에게 말했다.

“때가 온 것이옵니다. 주군.”

“그렇지. 때가 왔지. 어디 감이 금수보다 못한 오랑캐 따위가 이 고려를 능멸하고 살아 돌아갈 수 있겠는가. 아니 되지. 그리는 절대 아니 되고 만약 그리 된다면 지하에 계신 척상장군께서 지하에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것이네.”

역시 김보당의 예상대로 이소응은 척준경을 따르는 것이 분명했다. 허나 그것은 스스로의 명분에 불과했다. 그의 진심은 망건이 심어놓은 망상에 가득 사로잡혀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사냥터가 어디인지가 중요합니다. 주군.”

망건의 말에 이소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허나 아직 사냥으로 금나라 오랑캐를 위무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네.”

“그것을 알아내셔야 합니다.”

“맞는 말이네.”

“그것을 알아내시는 동안 저는 몰이꾼 속에 충군들을 심어놓겠습니다.”

충군!이소응을 따르는 척을 하는 자들을 망건은 충군이라 불렀다. 물론 그 충이라는 단어에 이소응에 대한 충심 따위는 없었으나 아무 것도 모르는 이소응은 자신을 위한 충성스러운 군대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하시게. 내 어떻게든 장소를 알아내겠네.”

“아마도 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겠지.”

“송악산 일대나 북한산 일대가 될 것입니다. 허나 북한산은 험하니 송악산이 될 공산이 클 것입니다.”

“송악산?”

“그러하옵니다.”

“그렇다면 미리 매복을 해 두는 것은 어떤가?”

“매복을 할 수는 있으나 사냥이 시작이 되면 그 일대가 포위되어 경계를 서게 될 것이옵니다. 그리 되면 퇴로가 사라집니다.”

“뭐든 쉬운 일이 없군.”

“허나 충군들은 목숨을 걸고라도 금나라 오랑캐를 척살할 것입니다.”

“그래야지. 새로운 세상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지.”

“그렇사옵니다. 주군.”

“허나 나는 충군들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찾아볼 것이야. 막힌 퇴로를 통과할 방법을 말이야.”

대전을 나선 김보당에게 장순석이 다가왔다.

“일은 잘되셨습니까?”

“잘될 수밖에 없지.”

김보당의 말에 장순석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왜 그런가?”

“허나 저는 아직 그것이,,,,,,,.”

“우리 이마에 찍히는 불도장도 아닐 것이야. 그러니 걱정을 말게.”

“하오나 황제를 척살하는 일이옵니다. 또한 갑작스럽게 계획이 바뀌어 동지들도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장순석의 말에 김보당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상전벽해라고 해도 될 만큼의 계획 수정이니 말이야.”

“그렇습니다. 복위를 위한 거병이 이제는 참살로 돌린 것에 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는 것 아닌가.”

순간 김보당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그렇기는 합니다. 허나 대의명분이,,,,,,.”

“대의와 명분이라는 놈은 이긴 자의 것이지. 이기고 살아남는 자의 것이 되는 거야.”

“예.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복위가 꿈을 이루는 것에는 빠른 종마라면 그분의 참살 공모는 드린 소와 같지. 허나 느린 소가 천리를 가는 법이네. 천천히 은밀히 움직일 것이야. 그리고 무신의 난을 일으킨 무부들을 모두 쳐낼 것이야. 그리고 그대와 내가 무신과 문신의 수장이 되어 이 고려를 경영할 것이야.”

드디어 속내를 드러내는 김보당이었다.

“예. 대부.”

“어떻게든 지금은 황상의 뜻을 따라야 할 것이야. 그리고 그 황상의 뜻은 우리에게 훗날 엄청난 무기가 될 것이네. 치부를 보인 황제는 다루기가 참 쉽거든. 어찌 보면 성난 범과 같은 상황보다야 유약하고 시기심이 많은 황제를 다루기가 더 편할 것이야.”

진정 난신의 표상이 바로 김보당 일 것이다.

“그건 또 그렇습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야. 1년이면 이 고려는 나의 세상이 되는 것이지.”

김보당의 다짐과 같은 말에 장순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네가 해 줄 일이 있네.”

“소인이 말입니까?”

“그래요. 해 줄 것이 있어.”

“무엇입니까?”

“감옥에 갇힌 이의민을 아주 처절하게 고신을 하시게.”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그자의 이마에 역신의 불도장을 찍어줄 참이네. 그러기 위해서는 버려졌다고 또 배신을 당했다고 여기게 만들어야 할 것이네. 궁지로 몰고 몰아 악만 남게 만들어야 하네.”

“물론 이의방의 수하로 그리 해야겠지요?”

“물론이지. 잘 알아서 하시게.”

“예. 고신을 참으로 잘 하는 자를 압니다.”

“그럼 되었네. 그럼 난 은밀히 이대장군을 만날 것이네.”

“그 노망난 늙은이는 왜,,,,,,,.”

“모든 일을 위한 포석이라고 해 두지.”

김보당은 그렇게 말하고 대전 전각을 뚫어지게 봤다. ‘어떤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는 것이지.’김보당의 입가에는 차가운 미소가 머금어졌다. 물론 그에게 쥐는 권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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