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268화 (268/620)

< -- 간웅 13권 -- >야율강과 고달기가 마주보고 술이 몇 순배 돌았다. 그리고 조금씩 자신이 취해간다는 것이 느껴지는 야율강이었다. 그 취함과 동시에 참을 수 없을 만큼의 욕정이 피어나고 있는 야율강이고 흐릿한 눈빛으로 야율강은 자신을 보며 야릇하게 웃고 있는 고달기를 봤다.

“왜 그리 저를 보시는 것이옵니까?”

순간 야율강은 그리 혼미한 정신에도 자신이 고달기에게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릿해지는 정신과 함께 달처럼 차오르는 욕정이 그 증거일 것이다.

‘못 보던 향로라 이상하게 여겼어야 했는데,,,,,,,.’참으로 표독스럽고 집요함이 하늘을 찌르는 계집이라는 생각이 드는 야율강이었다. 허나 자신이 고달기의 계략을 간파했다는 내색을 여전히 하지 않는 야율강이었다.

“그대가 진정 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욕정이 끌어 오르는 순간에 야율강이 물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으음,,,,,,,.”

한 번의 신음과 함께 야율강의 손이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스르륵 고달기의 손가락 끝으로 향했다.

살짝 접촉이 이루어지는 순간 짜릿한 느낌이 드는 것은 절대적으로 미혼향 때문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 야율강이었다.‘내가 바라고 있었단 말인가?’어쩌면 고달기가 피워놓은 향은 야율강에게 스스로 면죄부를 주는 그런 것 같았다.

“저는 대륙을 호령하는 진정한 남자를 품는 것이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대륙을 호령하는 남자라,,,,,,.”

“그 남자가 제가 고려의 패망을 가져다 줄 것이고 또한 제 아들에게 고려가 사라져버린 땅에 새로운 나라를 줄 것입니다.”

“참으로 표독하다.”

“그것이 제 매력이지요.”

고달기의 야릇한 말에 지금까지 억눌렀던 야율강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리고 손끝과 손끝의 접촉이 일순 입술과 입술의 접촉으로 변해버렸다.야율강은 이 순간 자신이 그어 놓은 선을 스스로 넘었다.

미혼약에 취했다는 스스로의 변명과 함께.오래 참은 야율강이니 그것이 뿜어지는 순간 거칠기가 사막의 사자 같았고 용맹한 것은 며칠 굶은 들판의 늑대 같았다.순간 야릇하게 몸을 꼬는 고달기의 몸을 덮치는 야율강의 거친 숨결이 고달기의 몸에 느껴졌다.

“줄 것이다.”

그 말을 시작으로 고달기는 끝내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위한 첫 포석을 깔았다. 그리고 폭풍 같은 시간이 아주 오래 흘렀고 처음 사내를 안 고달기는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거란인의 야만스러움이 철저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너는 참으로 요녀다.”

여전히 거칠기만 한 야율강이 아래에 파르르 떨며 누워 있는 고달기에게 말했다.

“그, 그것이 저의 매력이지요.”

“그 매력이 나를 망치게 될 것이 분명할 것이다.”

“후회하시나요?”

“후회? 후일 후회를 해도 지금은 내 선택에 만족할 것이다.”

야율강의 입술이 다시 한 번 고달기의 입술을 덮쳤다. 숨이 막힐 만큼 오랜 시간의 입맞춤이었고 고달기는 살이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숨까지 막히는 답답함을 밤새도록 느껴야 했다. 그리고 그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야율강의 눈빛도 고달기의 눈빛도 달라져 있었다.

“내가 너의 여불위가 되어 달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되어줄 것이다. 진의 여불위처럼 끝장이 난다고 해도.”

“그리 되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 되지 않는다?”

“예. 저는 오직 당신만 볼 것이니까요. 그리고 제가 모실 황제께서는 그리 오래 천수를 누리지 못할 거니까요.”

정말 표독한 고달기가 분명했다. 그녀는 고려의 화근이기도 하지만 곧 금의 화근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적극적으로 도울 야율강이었다.

만약 그가 이 고려에서 자신을 노리는 이 소응을 비롯한 서경의 대령후까지 그들의 계획대로 비명횡사를 하고 고달기 역시 끈 떨어진 연이 된다면 그것은 금의 축복이 분명할 것 같았다.난 사택으로 돌아온 후 바로 가신들을 불렀다.

그 이름대로 살겠다고 한 후 스스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기에 준비를 해야 했다.

“다 모였는가?”

가장 어린 만적부터 가장 나이가 많은 박위까지 다 모여 나를 조심히 보고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주군.”

벽란도의 상권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던 박위가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별초낭장 박현준을 대신해서 이 사택의 경비와 내 호위를 담당하고 있는 무장과 그의 수하 별초들도 모여 있었다.

“경원이라고 했나?”

내가 처음으로 박현준을 대신하고 있는 경원이라는 별초 무장의 이름을 불렀다.

“그렇사옵니다. 주군.”

“너는 당장 북변으로 가 박현준과 날랜 별초들을 개경으로 데리고 와라.”

갑작스러운 내 명에 이 자리에 모인 가신들과 사람들이 놀라 나를 봤다. 사람들 그 중에는 흥선도 있었고 흥선을 여전히 보좌하고 있는 이숭겸도 있었다. 사실 이숭겸은 내 부탁을 받아 북변 초산에 다녀온 것에 대해 보고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한 것 같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자리에 오지 않던 이숭겸이 조심히 내게 물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이숭겸이나 흥선에게는 모든 것을 말해 줄 수는 없었다.

“위급한 일이 생겼소. 그건 그렇고 잘 다녀오셨소?”

“이번 일을 고려 조정에 보고하지 않는 것은 이제 저 역시 회생 공과 한배를 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럴 것입니다.”

“예. 잘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좋은 결과도 가지고 왔습니다.”

이 숭겸의 말에 난 모처럼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게 숙원 했던 일이 드디어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 결과가 어찌 되었소?”

“속말말갈의 족장 니르파의 귀부를 받았습니다.”

속말말갈의 귀부를 받아냈다는 말에 난 표정이 더욱 밝아졌다. 정말 중요한 시점에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사실 귀부를 받지 않은 상태에도 난 지속적으로 속말말갈족에게 식량을 보냈다. 그리고 그런 내 정성이 통한 거였다.

“족장의 이름이 니르파입니까?”

“그렇습니다. 말갈어로 니르가 화살입니다. 니르파는 화살나무라는 뜻입니다. 말갈족이 말하는 화살나무는 우리의 자작나무 같은 뜻입니다. 단단한 것이 정말 자작나무 같은 사내입니다.”

이숭겸은 속말말갈 족의 족장 니르파에게 반한 듯 보였다.

“그 수가 어찌 됩니까?”

대략적인 수는 3천이 넘는다고 했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병사로 쓴 숫자였다.

“정예로 꾸린다면 일천이고 수를 중시한다면 1500은 족히 될 것입니다.”

놀라운 숫자다.부족민이 겨우 3000이 조금 넘는데 그 중에 기마병으로 쓸 자가 최대 1500이라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놀랍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을 타는 모습을 본다면 더욱 놀라실 것입니다.”

“그리 대단합니까?”

“말을 타는 것이 신출기묘하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고려도 따지고 본다면 기마민족이다. 허나 그 기마민족의 기운은 고려가 망한 후부터 조금씩 사라져 갔다. 그리고 이제는 기병보다는 보명 위주의 군진이 만들어지고 있는 형국이었다.

“참으로 잘되었습니다. 참으로 하하하!”

심각한 일만 겹쳐지던 내게 모처럼 웃게 만드는 보고였다.

“더 많은 속말말갈족을 모은다면 1만 기병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하하!”

내 말에 이숭겸이 난색을 보였다.

“왜 그러시오?”

“니르파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북변에 남은 마지막 속말말갈족이라 하였습니다.”

“더는 속말말갈이 없다는 겁니까?”

“다른 속말말갈들은 모두 서쪽으로 향했다고 들었습니다.”

“서쪽?”

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들이 향한 곳이 헝가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 중에 헝가리 인의 조상인 마자르족이 동방에서 왔다는 가설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설의 증거가 되는 것이 바로 헝가리의 인명이다.

헝가리의 인명은 어순이 성씨와 이름의 순으로 배열이 되는 것인데 그것은 다른 서방과는 반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중국을 최초를 통일한 진시황제가 몽골어를 쓸 줄 아는 여진족이라는 가설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여진족의 뿌리가 맥족에서 왔음을 말하는 거고 진시황제 역시 고려의 조상인 맥족이라는 거였다.

하여튼 이숭겸이 말한 나머지 속말말갈족이 서방으로 이주했다는 말은 사실일 확률이 클 것이다. 고구려에 속해 있던 말갈족이 고구려가 망하면서 요동을 등지게 됐고 그것이 말갈족의 이동을 강요한 것이 분명했다.

“아쉽군요.”

난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후일 초원의 푸른 늑대 새끼인 테무친을 상대할 때 그 선봉에 세워야겠다는 계획을 접어야 했다.

“허나 충분이 강력한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럼 그들은 여전히 초산에 있습니까?”

“은밀히 갑주로 이주를 시켰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그럼 전 이만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보고를 끝내자말자 이숭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이 자리를 피해주는 것 같았다.

“고생하셨습니다.”

내 말에 이숭겸이 흥선을 봤다.

“가자.”

“저는 여기에 있을 거예요.”

흥선의 말에 이숭겸이 나를 봤다.

“그냥 두셔도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냥 앉아계셔도 됩니다.”

“제가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게 되면 저는 태후마마께 아뢸 것입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 없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숭겸이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참으로 지혜롭고 신의 있는 인물이 분명할 것이다. 그리고 이숭겸이 내 편은 되지 못해도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리 급한 소집을 한 것입니까? 형님!”

이렇게 질문을 할 수 있는 위인은 흥선뿐일 것이다.

“이제 곧 금나라 순문사가 돌아간다. 그를 안전히 금까지 보내야 한다.”

“이리 다급해하시는 것은 많은 것이 걸리시는 모양이군요.”

“그래. 걸리는 것이 너무 많다. 이소응도 그렇고 서경도 그렇고.”

난 그렇게 말하며 왕준명을 봤다. 그는 내게 이제 200만 냥짜리 가신이었다. 그를 귀양 보내지 않기 위해 내놓은 은자가 200만 냥이니 말이다.

“이 소응은 어떤가?”

“그의 사택으로 장정들이 계속 모이고 있습니다.”

“장정들이?”

“그렇습니다. 아마도 한성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한성?”

“그렇습니다. 촌구석 한성 사투리를 쓰는 것을 봐서 분명할 것입니다.”

고려의 황도가 개경이기에 그때까지 한성은 변방은 아니더라고 개경보다는 분명 촌이었다. 그리고 개경 토박이인 왕준명에게는 한성은 시골이라면 시골일 것이다.

“이소응이 은밀히 한성에서 사병을 숨겨두고 양성할 정도의 머리가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 같습니다. 한성에서 온 장정들은 이소응을 따르는 것보다 그의 부장인 망건이라는 자를 더욱 따르는 것 같습니다.”

“망건?”

“그렇습니다. 이소응의 책사노릇을 하는 무장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말씀드린 것처럼 장정들이 망건을 더 따른다는 것입니다.”

“확인해 보면 알겠지.”

그 순간 내 머리에 번뜩 스치는 것이 있었다.

“장정들이 한성 출신일수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한성 사투리를 쓰는 것을 봐서 그럴 공산이 큽니다.”

“잘 됐군. 보기 싫은 것들을 한 번에 싸잡아 정리할 기회군.”

“예?”

왕준명이 영문을 몰라 날 봤다. 그리고 다른 가신들도 모두 왕준명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오직 흥선만이 내 의중을 알겠다는 듯 씩 웃었다.

“흥선 네가 말해 보거라.”

“역모로 역으실 참이십니까? 형님!”

역시 영특함이 남다른 흥선이었다.

“옳다.”

“그런데 누구와 같이 역으실 참이십니까?”

“김보당! 내 그 망할 놈의 금나라 순문사 야율강을 안전히 금으로 보내고 나서 김보당과 같이 엮어 정리를 할 참이다.”

“망할 놈이기는 하나 죽어서는 안 되는 놈이 바로 야율강이군요.”

“그래. 지금 고려는 힘이 없고 금나라 순문사가 죽게 되면 바로 전쟁이다. 그러니 우선은 살려 보내야 한다.”

“그렇지요. 형님!”

흥선이 씩 웃었다.

“그래서 박현준이 개경에 와야 하는 것이다.”

난 경원을 보며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주군.”

“그리고 혹시 모르니 내 전 가병들과 속말말갈의 기병들 모두를 출정 준비를 해 두라고 알려라.”

“예. 주군.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그래. 쉬지 않고 달려야 할 것이다.”

“예. 주군.”

경원이 내게 짧게 목례를 하고 일어섰다. 이제 드디어 야율강을 안전히 보낼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순간이었다.

“내일 대전에서 황제폐하의 칙서가 전해지면 금나라 사신은 곧 떠날 것이다. 그때부터 우리는 바짝 긴장을 해야 한다.”

“예. 주군!”

일제히 내 가신들이 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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