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3권 -- >중방이 있는 전각.중방은 무신정권의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현시점에서 고려의 모든 일이 결정되는 최고 의결기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장악하고 있는 자가 바로 이의방이었다. 허나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에 불과했다.
진정한 중방을 지배하는 자는 바로 나였다. 무신혁명이 일어난 지 6개월 만에 그리고 내가 최준을 양부로 모신지 5개월 만에 그의 충고로 내가 장악한 곳이 바로 중방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중방에 속해 있는 낭장방과 산원방의 낭장과 산원들과 내가 의기투합했으니 이 중방의 숨겨진 지배자는 나일 것이다.사실 중방은 고려시대 최고위 무신 합좌기구다.
고려 중앙군인 2군(軍) 6위(衛)의 정·부지휘관인 상장군(上將軍)(정3품)과 대장군(大將軍)(종3품) 총 16명의 합좌기구로 기록상으로는 1167년에 내 생부이신 의종께서 설치한 곳이 바로 중방이었다. 그리고 중방 아래에는 각각 장군방(將軍房)·낭장방(郎將房)·산원방(散員房) 등이 있어 하위직급에도 나름의 합의기 구가 존재했으며 관직의 서열과 같이 상하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구조이기에 내가 은밀히 양부인 최준의 충고를 받아 처음 낭장방을 장악했고 그 다음으로 산원들이 모이는 산원방의 산원을 빠르게 장악했다.
그리고 내가 모은 재물은 그들의 안위와 안락을 위해 사용했다. 돈이 움직이는 곳에 마음이 움직이는 법이고 그들에게 나는 자신들의 궁핍한 삶을 바꿔준 고마운 인물이었다.
중방이 있는 전각 이의방의 집무실에서 정신을 가다듬은 이의방과 그를 지켜보고 있는 나만이 자리하고 있었다.그리고 이의방은 차분히 나를 보며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 보였다.
“사위! 왜 그리 무모한 짓을 했나?”
“예? 무엇이 무모하다하시는 것이옵니까?”
“내 말하지 않았나? 쌀섬이나 좀 더 적선을 하듯 주면 된다고 했는데 왜 황제폐하께 그리 극명히 대항을 한 것인가?”
이의방의 말에 난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실수를 인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젊은 치기에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나이다.”
“젊은 치기라? 그리 받아드리기에는 사위의 성정이 누구보다 냉정하다는 것을 이 장인이 알고 있는데 내가 틀린 것인가?”
내가 이의방을 잘 알듯 이의방 역시 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찌 보면 나와 이의방이 성공시킨 무신혁명이다. 그러니 서로에 대해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거였다.
“장인어른!”
난 뚫어지게 이의방을 봤다.
“장인어른께서는 폐하를 얼마나 믿으시옵니까? 또한 폐하께서는 외척이신 장인어른을 얼마나 믿고 있다고 생각하시옵니까?”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건가?”
내 미래를 위해서는 지금 이간책 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또한 점점 더 공고해져가는 이의방과 명종황제의 관계를 깰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제폐하께서 간밤에 은밀히 문신의 거두로 거듭나려고 하는 김보당을 대전에 불렀사옵니다.”
내 말에 이의방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김대부를?”
“그렇사옵니다. 무언가를 상론하고자 부른 것이 분명할 것이옵니다.”
“상론이라? 그것도 은밀하게?”
“그렇사옵니다. 그 무엇인가가 장인어른과 제가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라면 이것은 장인과 저의 위기가 분명할 것이옵니다.”
내 말에 호랑이 같은 이의방의 눈빛이 더욱 사나워졌다.
“폐하께서 김보당을 부른 것이 내 위기라는 것은 자네가 뭔가 일을 꾸미고 있기 때문이지 않나?”
“그렇기 보이십니까?”
“나는 사위의 장인이기도 하지만 황제폐하의 외척이기도 하네. 태자마마의 비가 내 차녀인 것을 모르는 건가? 어찌 그런 나를 황제폐하께서 위기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의 말을 내게 하는 것인가? 나와 폐하의 사이를 이간질해서 자네가 얻는 것이 무엇인가?”
이의방이 따지듯 내게 물었다.
“제가 얻으려는 것은 장인어른과 저의 안락함이옵니다.”
“안락함을 위해 이런 말을 하고 또 그런 행동을 연회장에서 했다고 내게 말하는 건가?”
“그렇사옵니다.”
그 순간 이의방이 나를 잠시 물끄러미 봤다.
“태후마마께서 무슨 말을 하신 것인가?”
이 순간 내가 태후의 사위라는 것을 떠올린 이의방이었다.
“태후마마께서요?”
“그렇지 않나 자네는 누가 뭐라고 해도 태후마마의 부마도위이지 않나?”
“그 허울뿐인 부마도위이지 않사옵니까? 아직 국혼도 이루어지지 않았사옵니다.”
이것은 달리 말해 이의방의 장녀와의 혼례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허울뿐인 부마도위라,,,,,,,.”
“그렇사옵니다. 그러니 이 사위가 드리는 말씀을 아무런 곡해 없이 들으셔야 하옵니다. 장인어른.”
그 순간 이의방이 나를 잠시 다시 봤다.
“그러고 보니 자네와 나도 허울뿐인 사위와 장인이군.”
“그렇사옵니다. 허나 장인어른과 저는 흥왕사에서 결의한 혁명동지이옵니다.”
“혁명동지!”
이의방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사옵니다. 장인어른이 쓰고 계신 외척이라는 감투는 허망한 허울에 불과하다고 제가 말씀드렸사옵니다.”
“으음,,,,,,,.”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장인께서 힘을 잃으시면 황제폐하께서는,,,,,,.”
“그렇지. 태자비를 폐서인시키겠지.”
이의방이 내 말을 자르며 말하고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사옵니다. 그런데 지금 황제폐하께서 그것도 금나라 순문사가 이 고려 조정을 어지럽히고 있는 이 시점에 그것도 은밀히 김보당을 불렀사옵니다. 장인께 아무런 언질도 상의도 없이 말이옵니다. 무엇을 의미하겠사옵니까? 분명 정확하지는 않지만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할 것이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군권이 내게 있고 자네가 황제를 한 치의 틈도 없이 감시를 하고 있는데 어찌 일을 꾸민다는 건가?”
“지금 이 순간에도 금나라 사신 야율강과 독대를 하고 계신 황제이옵니다.”
아무렇지도 않는 사실이 위협으로 변할 수도 있는 법이다.
“독대라,,,,,,,.”
“그렇사옵니다. 지금의 고려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참으로 많이도 일어나고 있사옵니다. 만약 황제폐하께서 금나라 사신 야율강과 밀약을 하신다면 그 밀약은 분명 장인과 저에게는 비수가 되어 돌아올 것이옵니다.”
“으음,,,,,,,,.”
기우에 가까운 비약이 분명했다. 허나 이미 틈이 벌어지고 있는 상태이기에 이의방은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밀약이라? 어떤 밀약을 말하는 건가?”
“만약에 황제께서 금나라 순문사에게 역으로 금의 대병을 요청한다면 어디에 쓸 것 같사옵니까?”
“뭐라?”
순간 이의방이 어이가 없다는 투로 날 봤다.
“만약이라 했사옵니다.”
“아무리 만약이라고 해도 황제께서 우매한 분이 아니신데 그런 일을 하시겠나.”
“지켜야 할 것이 참으로 많으신 황제폐하이십니다. 또한 자신이 지킬 것이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고 장인께서 주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불안하지 않겠사옵니까.”
“지금 그, 그 말은,,,,,,,.”
“제가 그것까지 예상하고 장인께 문신들의 병력을 모아 북변으로 보내자고 한 것이옵니다. 만약 황제폐하께서 야율강과 밀약을 했다면 금으로 파병될 군대가 북변에서 금의 대군을 막게 될 것이옵니다.”
물론 그것은 지금 생각해 낸 것이다. 하지만 아귀가 착착 맞으니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건 자네의 기우네.”
“장인! 만사불여튼튼이라 하였사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 고려는 또한 장인어른의 패권은 불안정 하옵니다. 만약 장인어른의 패권이 공고했다면 어찌 김보당 따위가 무신을 무부라 그렇게 소리칠 수 있겠사옵니까.”
적이 한 말을 내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것이 내 장점일 거다.
“무부라,,,,,,,.”
이의방이 연회장에서 김보당이 했던 말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이제 그 혁명의 혈겁이 지난지도 여섯 달 밖에 지나지 않았사옵니다. 그런데 지금 문신의 거두라고 해도 김보당이 스스럼없이 모든 무신들의 영수이신 위위경이신 장인어른의 앞에서 겁 없이 이의민을 무부라 했사옵니다. 그것은 황제폐하께서 어떤 언질을 주지 않고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언사이옵니다.”
이 순간 내 논리에는 한 치의 틈도 없었다.
“지금 사위가 내게 한 말은 다 옳다. 허나 현실이 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것이 많다.”
여전히 이의방은 내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표면적인 거였다. 분명 속으로는 이 순간이 위기라고 여길 것이 분명했다. 내 장인인 이의방 역시 자신 스스로 지켜야 할 것이 이제는 너무나 많아진 분이니 말이다.‘마지막 일격이 필요하겠군.’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황제폐하께서 나를 경계하신다고 해도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의 황제폐하를 보위에 올린 벽상공신이다. 또한 내게 병권이 있는 이상 그 누구도 내게 대항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께서 조금씩 힘을 키우신다면 또한 문신들이 하나로 뭉쳐진다면 그 자체가 위협이 될 것이옵니다. 그리고 이소응을 비롯한 대장군들이 장인어른께 등을 돌리고 서경이나 남경에서 동시에 거병을 한다면 장인께서도 쉽게 막을 수는 없사옵니다.”
“사위는 자꾸 나를 두려움으로 몰고 있어.”
“그렇사옵니다. 저잣거리에 떠도는 참요를 들어보셨습니까?”
“저잣거리에 떠도는 참요?”
이의방이 내가 이 상황에 뜬금없는 말을 한다는 눈빛을 보였다.
“그렇사옵니다.”
“그런데 지금 참요 따위를 왜 거론하는 건가?”
“들어보시면 이유를 알 것이옵니다.”
“뭔가?”
“용손십이진! 십팔자위왕!”
만약 이의방이 단번에 이 파자의 뜻을 안다면 그 역시 내심으로는 역심을 조금은 품었다는 증거가 분명할 거다. 그리고 모른다면 내 마지막 결정타가 될 것이다.‘눈빛이 떨린다.’역시 연회장에서 보인 치중담은 진담의 확률이 컸다.
“그것이 어떻다는 건가?”
“뜻을 모르시옵니까?”
“참요라 하지 않았나?”
“그렇사옵니다. 저잣거리에서 떠도는 참요이옵니다. 그 뜻은 용손인 고려의 황족이 힘을 잃고 뜻을 새운 이 씨가 왕이 된다는 것이옵니다.”
뜻을 새운 이 씨?지금 이 순간 내 이름대로 살겠다고 한 것 역시 뜻을 새운 것일 거다. 그러니 이 참요 역시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 분명할 거다.
“뭐라? 지금 사위는 이 장인이 역심을 품고 있다는 의심을 하는 건가?”
이의방이 처음으로 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고정하시옵소서. 장인!”
“사위가 장인을 곡해하는데 내가 고정할 수 있겠나?”
“역신 정중부가 참살되었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역신 정중부?”
“그렇사옵니다. 역신 정중부가 장인어른의 지시에 의해 참살되었을 때 그의 아들인 정균은 물론 그의 사위인 장군 송유인도 참형으로 다스려졌습니다. 장인과 저는 같은 운명이옵니다. 그렇기에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옵니다.”
“맞네. 자네와 나는 같은 배를 탔어.”
“예. 장인어른!”
“그런데 지금 내게 그 참요를 말하는 이유가 뭔가?”
“황제폐하께서 김보당을 부른 이유가 바로 그 참요 때문이옵니다. 또한 김보당이 고한 것 역시 저잣거리에서 떠도는 참요를 아뢰기 위해 은밀히 독대를 한 것이옵니다.”
“뭐, 뭐라?”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께서는 장인어른을 외척이라 가까이 하는 척을 하지만 장인어른을 의심하고 계시옵니다. 그리고 혹시나 역심을 품지 않을까 경계하고 계시옵니다.”
용손십이진 십팔자위왕의 참요가 이렇게 쓰일 줄은 나도 몰랐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의방은 이 씨이고 이 고려에 살고 있는 모든 이 씨들에게는 용손십이진 십팔자위왕의 도참은의 예언은 대망이기도 하지만 살생부에 적을 올리는 무서운 말이기도 했다.
“황상께서 김보당에게 그 참요의 진상을 조사케 했다?”
“그렇사옵니다. 대전에 심어놓은 환관이 급히 제가 보고를 한 것이옵니다.”
“으음,,,,,,,,.”
이의방이 다시 한 번 깊게 신음을 했다. 그리고 찬찬히 나를 봤다.
“사위!”
그리고 뭔가 내게 엄청난 말을 하고자하는 눈빛을 보였다.
“예. 장인어른!”
“자네는 어찌 생각을 하나?”
“무엇을 말이옵니까?”
“용손십이진 십팔자위왕을 말이네.”
이의방이 나를 뚫어지게 봤다. 그리고 난 엄청난 역심을 이제야 알게 됐다.‘역심이다.’놀랍고도 무서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