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3권 -- >명종황제는 야율강과 함께 대전으로 향했고 그들의 뒷모습에는 차가운 살기와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아마도 대전에서 뭔가 엄청난 일을 꾸밀 것이 분명했다.
야율강이 나를 봤던 그 마지막의 눈빛이 서늘했다. 또한 나를 보던 그 서늘한 눈빛에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또한 그 눈빛 안에는 한없이 고려의 지존인 명종황제를 하찮게 보는 그런 것이 담겨 있었고 아울러 고려전체를 무시하고자하는 의미가 담겨 있는 듯 했다. 정말 씹어 삼켜도 시원치 않을 놈이 분명했다.
허나 분명한 것은 그를 여전히 나는 금까지 안전하게 살려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당장 베지 못해도 벨 기회는 충분히 있음이야!’난 멀어지는 명종황제와 야율강을 봤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망설이거나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이제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내 머리위에 있는 이름이 나를 더욱 빠르게 움직이게 만들고 있는 시점이다. 그리고 지금 여전히 피 비린내가 나는 이 연회장에는 나를 시기하며 음모를 꾸미는 듯한 눈빛을 한 김보당이 나를 보고 있었다.또한 그런 김보당을 보는 무장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또 한 번의 반목이 싹을 틔우고 있는 시점인 거다.
“사위!”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던 이의방이 나를 담담히 불렀다.
“예. 장인어른!”
“자네와 중방에서 조용히 이야기 좀 할까 하는데.”
이의방이 뭔가 내게 할 말이 있는 듯 했다.
“예. 그러시지요.”
“가세.”
“예. 장인어른!”
난 이의방에게 짧게 말하며 머릿속에는 이의방이 취중진담처럼 내게 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도 보마도위며 앞으로도 부마도위일 것이다. 참으로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이었다.
“오늘 참 좋은 날이기는 했어.”
이의방은 혼잣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이의방을 따라 중방으로 향했다. 어쩌면 오늘이 이 고려의 역사가 달라지는 그 시발점이 되는 날일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를 통해 내 삶을 개척할 것이다.’난 좀 더 커 보이는 이의방의 등을 보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대전 내실 전각.명종황제가 말한 것처럼 내실 중앙에 놓인 탁자 위에는 차가 올려 있고 명종황제와 야율강은 차분히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이 순간 물이 고인 듯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이 둘은 서로의 마음을 숨기고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뭔가 부탁을 하고 싶어 하는 명종황제의 눈빛과 그 부탁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시원하게 말을 하지 않는 야율강의 모습이 하나는 비겁한 들개 같고 또 하나는 차가운 뱀 같았다.하지만 이 자리가 차만 마시기 위해 온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이 둘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차의 향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쓰군.”
명종황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사옵니까? 저의 차는 그 맛이 새롭기만 합니다.”
명종황제와 야율강이 마시는 차는 같은 차가 분명할 것이다. 한명의 차 맛이 쓰고 또 한명의 차 맛은 새롭다는 것은 이 순간 각자의 상황과 속내를 정확하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새롭다하셨소?”
“그렇사옵니다. 참으로 새롭사옵니다.”
“뭐가 그리 새롭소?”
명종황제의 물음에 야율강은 들고 있던 찻잔을 차분히 탁자에 내려놓으면 명종황제를 봤다.
“상황이 새로워졌으니 그 차 맛 역시 새로운 것 같사옵니다. 황제폐하!”
“상황이 새로워졌다?”
“그렇사옵니다. 새로워졌사옵니다.”
“무엇이?”
“제가 처음 대전에서 황제폐하를 알연할 때만해도 고려의 부마도위는 충신이라는 생각을 했사옵니다.”
“그렇지 부마도위는 충신이지. 어린나이지만 그가 든든히 황실을 보위하고 있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명종황제는 야율강에게 했고 그 말에 야율강은 참으로 무엄하게 피식 웃었다.
“왜 웃는가?”
“그가 이 고려의 충신일수는 있으나 황제폐하의 충신은 분명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옵니다.”
야율강의 말에 명종황제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의 속내를 들켜버렸다는 그런 표정이 분명했다.
“소신의 추측이 틀리었사옵니까?”
“틀리지도 않고 맞지도 않네.”
“그렇사옵니까? 황제폐하께는 부마도위가 계륵이 되는 것이옵니까?”
“계륵? 계륵이라 그럴지도 모르지.”
명종황제는 이회생의 얼굴을 한번 떠올리며 그 얼굴 위에 공예태후와 자신의 친형인 상황제 의종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들은 피를 나눈 혈족이 분명했으나 자신이 이 고려의 옥좌를 지키고 고려의 황제로 당당히 자리하기에는 걸림돌이 되는 인물들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참으로 불충한 자가 분명할 것이옵니다. 신하된 자로 버리지도 품지도 못하는 자라면 그 자체가 불충이지 않겠사옵니까.”
야율강의 말에 명종황제는 잠시 야율강을 뚫어지게 봤다.
“짐에게 그렇게 말하는 의도가 무엇이요? 순문사.”
“제가 황상폐하의 근심을 덜어드릴 수 있을 것 같아 말씀 올리는 것이옵니다.”
“짐의 근심을 덜어준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이 고려의 지존은 지금 두 명이옵니다. 그렇기에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이렇게 야율강은 마지막까지 고려를 흔들려 했다.
“으음,,,,,,,,.”
고려의 지존이 둘이라는 말에 명종황제는 크게 신음을 했고 그 모습을 본 야율강은 자신이 던진 미끼를 어리석은 명종황제가 덥석 물었다는 만족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아니시옵니까?”
“,,,,,,,.”
“고려에는 지존이 두 분이나 되고 또한 그 권력이 그 두 분께 향하지 않고 있으니 종국에는 황권이 땅에 떨어지고 황실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미미한 처지가 될 것이옵니다.”
무척이나 현실적이면서도 냉철한 판단이 분명했다. 허나 그 현실적인 말이 귀에 거슬리는 명종황제였다.
“순문사!”
다소 역정스러운 어투로 명종황제가 순문사 야율강을 불렀다.
“힘을 잃은 황실과 황제는 그저 허수아비로 전락하게 될 것이며 그리 된다면 후일 금나라 사신단의 행차에는 다른 황제폐하께서 사신단을 맞이할 수도 있사옵니다.”
“뭐라 했나?”
처음으로 명종황제가 야율강을 노려봤다.
“그대는 짐이 이 고려의 지존이 허수아비로만 보이는 것인가!”
“지금 바로잡지 않는다면 끝내 그리 될 것이옵니다.”
“뭐라? 황제는 하늘이 내리는 것이야! 어찌 감히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함부로 신하된 자들이 황제를 폐위시키겠다고 논할 수 있다는 말인가?”
황제는 하늘이 내린다?따지고 본다면 자신도 무신들에 의해 추대된 황제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명종황제의 최대 약점이며 지금 이렇게 금나라 순문사인 야율강과 독대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어쩌면 명종황제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분명할 것이다. 또한 이렇게 금나라가 자신을 압박하는 이유가 정변을 일으킨 무신들에 의해 추대가 되었기 때문이고 강화에 여전히 상황이라는 미명으로 숨이 붙어 있는 의종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명종은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어리석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거였다.
자신의 말에 대노한 명종황제를 야율강이 찬찬히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압박과 치욕을 줄 것이 아니라 달래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듯 했다.
“소신이 그리고 금제국이 황제폐하를 어찌 도와드리면 되겠사옵니까?”
“그, 그대와 금이 짐을 돕는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사실 신은 금제국 황제폐하의 명을 받고 고려를 장악하고 있는 역신들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왔나이다.”
순간 야율강의 말에 명종황제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그, 그것이 무슨 말인가? 누구를 역신이라는 건가?”
“황제를 폐위하고 상황이라는 미명으로 유폐시킨 자들을 말하는 것이옵니다. 그 중심에는 이의방이과 이고가 있다고 들었사옵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 책사 노릇을 하고 모든 것을 꾸민 자가 바로 이 고려의 부마도위인 이 회생이라는 놈이라 들었사옵니다.
제 말이 틀리었사옵니까? 그들은 절대 폐하의 충신이 될 수 없는 자들이옵니다.”
“순, 순문사,,,,,,,.”
이의방과 이고 그리고 이 회생을 비롯한 무신혁명의 무장들을 역신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그들의 추대로 등극한 자신까지 금나라에서는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 순간 또 한 번 명종황제는 강화에 있는 의종황제의 얼굴이 떠올랐다.
진정 따지고 본다면 자신이 이런 위기에 놓인 것은 의종황제가 여전히 강화에 살아 있기 때문이고 그를 살린 것이 회생과 자신의 모후인 공예태후 때문이라는 생각마저 드는 명종황제였다. 하지만 그런 명종황제지만 그를 비겁하다고 탓할 필요는 없었다. 그 누구라도 황제라는 지존의 자리에 오른다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 한 일도 할 것이니 말이다.
“저희 황제폐하께서 하명하셨사옵니다. 고려의 동태를 살피고 호제하는 상황께서 겁박을 당하고 있다면 바로 돌아와 금의 100만 대군을 몰고 하늘의 뜻을 거스른 고려의 죄를 징치하라 하셨사옵니다.”
“고, 고려의 죄, 죄를 징치한다? 그, 그 말은 짐, 짐을 폐위, 폐위시키겠다는 것인가?”
“그렇사옵니다. 폐하!”
참으로 무섭고 위험한 말을 야율강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것은 이미 야율강에게 명종황제는 너무나 쉽고 하찮은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인간의 사악한 마음을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악한 자의 마음을 가장 잘 파악하는 자는 바로 그 보다 더 사악한 마음을 가진 자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황궁에 두 명의 사악한 자 야율강과 회생이 서로의 틈을 노리고 있는 거였다.
“짐, 짐은 그대를 소홀히 대하지 않았고 또한 금황제께서 내린 하교를 충실히 수행할 참이네. 그런데 짐을 이리도 압박하면 어찌 한단 말인가?”
“그러니 이 차의 맛이 새로워졌다는 것이옵니다.”
그제야 명종황제는 처음 야율강이 차의 맛이 새로워졌다는 말을 한 이유를 알았고 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참으로 비굴하고 나약한 황제가 분명할 것이다.
명분이 없고 정당성이 없는 황제의 모습이 이럴 것이다. 그리고 욕심이 많은 황제가 또 이럴 것이다. 스스로 황제의 본분을 지킨다면 회생이 속임 없고 욕심 없이 고려 황실을 보위해 줬을 것인데 스스로 그 안락함을 버리려는 무지한 황제가 바로 명종황제였다.
물론 이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일 것이다. 고려 지존인 자신보다 더 돋보이는 회생에게 시기심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이고 명종황제의 마음일 것이다. 또한 그 마음에 불을 당긴 것은 바로 용손십이진 십팔자위왕의 참요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짐을 그대가 어떻게 도울 것인가?”
명종황제가 드디어 사악한 야율강의 덫에 걸리는 순간이었다.
“소신은 곧 금으로 갈 것이옵니다. 그 자체만으로 소신이 황제폐하를 도울 수 있을 것이옵니다.”
야율강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또한 제가 본국으로 돌아갈 때 폐하께서는 아니 이 고려는 금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하셔야 할 것이옵니다.”
“이, 이미 그것은 준, 준비를 했네.”
“그렇사옵니까? 그러면 아무 심려도 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야율강이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짐이 할 일은?”
순간 명종황제의 표정이 차갑고 싸늘하게 변했다.
“이 고려에 유일한 지존이 되시는 것이옵니다. 나머지는 소신과 대국이 다 알아서 할 것이옵니다.”
야율강의 말에 명종황제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렇게 의미심장한 말로 명종과 야율강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엄청난 밀약을 하고 말았다.
그것은 또한 회생의 위기라면 위기가 분명했다. ============================ 작품 후기 ============================추천이 좀 되면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ㅠㅠ하하하! 현대백수 다 죽었습니다. 추천 요구를 다하고요. 수많은 연중과 또 그보다 더 큰 테러인 리셋까지 하는 무도한 짓을 했지만 40등 언저리에 간웅이 올라 있는 것이 영 마음에 쓰이네요. 참 이래서 사람은 간사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작가 수입이 줄어든 것도 쓰리네요. 그러고 보니 너무 무모한 짓을 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언제 일등하나 이런 마음으로 글을 썼는데 이제는 언제 20등 안에 드나 이런 생각으로 글을 쓰니 사실 흥이 나지 않네요. 하지만 그래도 씁니다. 간웅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은 진정 간웅의 열혈독자님이시니 말입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씁니다. 그리고 또 항상 감사한 마음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비축분이 5편이 되었습니다. 아마 오늘하고 내일까지 해서 15편 정도의 비축분을 만들 생각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최소 10일까지는 오늘 글이 올라오려나 하는 걱정은 안 하셔도 되실 것 같습니다. 그래도 1월에는 4일째 연재를 하고 있으니 신년 다짐은 작심 3일이 안되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간웅의 진성 독자님들이 저를 20등 안에 들게 만들어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점점 더 꿈이 소박해지는 현대백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