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261화 (261/620)

< -- 간웅 13권 -- >악공들의 흥겨운 연주소리와 무희들의 농염한 춤사위로 흥겹기만 했던 연회장은 일순간 시리게 파란 하늘보다 더 차갑게 살기로 식어 있었다.지금 저 연회장 중앙에 서 있는 두 무장을 보고 있는 사람들 중 누구도 그냥 그런 비무라고 생각하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참 묘하게 일이 돌아가는군.’난 서로를 보고 있는 할타와 이의민을 잠시 보다가 상석에 앉아 있는 명종황제와 금나라 순문사 야율강을 봤다.여전히 명종황제는 금나라 순문사 야율강의 눈치를 보고 있기는 했으나 좀 전과는 다른 눈빛을 보였다.

마치 이번 비무에서 이의민이 금나라 대장군 할타를 꺾어주기를 바라는 그런 눈빛이었다.‘마지막 자존심은 남아 있다는 건가?’그래야 할 것이다.

그런 마지막 자존심도 없다면 이 고려의 지존이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니 말이다.지존은 권위가 있어야 하며 또 위엄이 있어야 한다.

허나 지금까지의 명종황제는 이 치욕스러운 날에 스스로의 비굴함으로 그 정점을 찍는 듯 했고 그것이 내 옆에 앉아 있는 내 장인 이의방에게 스스로도 모르게 치중진담을 나오게 했다.‘저 눈빛은 무엇을 담으려는 걸까?’고려 지존으로써의 마지막 자존심을 담았다고 하기에는 명종황제의 눈빛에는 조금은 이상했다.

마치 신기한 기물을 본 것처럼 유심히도 이의민을 찬찬히 보고 있는 것이 내심 불길한 마음까지 들게 만드는 것은 내가 예상한 기우가 점점 더 현실이 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또한 지속적으로 나를 관찰하듯 주지하던 김보당 역시 이의민을 보며 야릇한 눈빛을 보였다. 정말 이 비무는 많은 것을 바꿔놓을 비무처럼 느껴졌다. 또한 여전히 나를 보고 있는 금나라 순문사 야율강의 눈빛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이 순간을 즐기면서도 오늘 반드시 이루어야 할 일이 드디어 이루어지고 있다는 눈빛으로 나와 두 무장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아직 날 노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건가?’문뜩 드는 생각에 그가 왜 이리도 나를 경계하고 제거하려는 궁금해졌다.

‘무언가를 행하려 한다면 시련이 많아지는 법이겠지.’난 이 순간이 나를 위한 시련 같았다. 그리고 그 시련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너무도 이제는 잘 알고 있기에 나도 모르게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내 이름대로 살 것이다.

’난 다시 한 번 다짐을 하고 연회장 중앙에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금나라 대장군 할타와 이의민을 봤다.그리고 보니 많은 무희들이 춤을 추던 자리라 진검승부를 하기에는 충분히 넓어 마치 바람이 부는 들판에 서 있는 듯 느껴졌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는다.’이것은 내 장인 이의방의 명이었고 또한 내 부탁이기도 했다. 그리고 난 둘 중 누가 죽던 사실 상관이 없었다.

참으로 간사하다. 그리고 참으로 잔인하다. 내가 내 이름대로 살기로 마음을 먹은 순간 내 영악함은 사악함으로 변해갔다.

‘이의민에게는 미안하지만 둘 중 누가 죽어도 내게는 득이 될 수 있다.’이것은 내 스스로의 배신일 거다.

허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파랗게 시린 하늘 아래 죽어 마지막 날이 되는 자가 금나라 대장군 할타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난 그런 생각으로 할타와 이의민을 다시 찬찬히 봤다.

정말 이제 금방이라고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를 것 같았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할타가 나직이 이의민에게 말했다. 아마 이 자리에서 저 둘을 지켜보는 사람들 중에 오직 나만이 할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할타의 말에도 이의민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저 할타를 보며 씩 웃고 있었다.이 살벌한 순간에도 이의민은 무척이나 여유가 있는 듯 보였다.

스르릉!이의민이 자신의 말에 아무런 대답이 없자 할타도 괜한 말을 했다는 듯 피식 웃으며 검을 뽑았다.할타의 검이 바람의 눈물처럼 운다. 또한 어찌 보면 할타는 바람일 것이다.

매서운 눈매만큼 날렵해 보이는 몸과 검이 하나가 된 듯 보였다. 그에 반해 이의민은 무거움 그 자체였다.

거대한 부월을 살짝 위에 숨기듯 들고 산처럼 고요하게 또 여유롭게 할타를 볼 뿐이었다.

“필사! 이얍!”

할타가 거친 외침과 함께 고요한 산처럼 서 있는 이의민에게 돌진했다. 그 돌진과 함께 이의민의 머리를 향해 뿜어지는 검이 차갑게 빨라보였다.

그 순간 그때까지 뒤에 숨겨둔 듯 가려져 있던 거대 부월이 육각의 빛살을 받으며 번쩍였다.쨍!귀를 찢을 것 같은 파성과 함께 검과 부월이 부딪쳤다가 급히 뒤로 튕겨져 나가는 것처럼 떨어졌다가 다시 부딪쳤다.

챙! 챙!바람보다 빠른 검과 태산만큼 무겁고 거대한 부월의 파성이 이어졌다.쉬웅!할타가 다시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부월로 막지 못한 이의민이 간신히 몸을 비틀어 자신의 목을 향해 뿜어지는 검을 피하려 했다.서걱!순간 할타의 검이 뭔가를 베는 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다.

이 작은 소리까지 내가 자극될 만큼 잘 들린다는 것은 난 그만큼 이 순간을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그래도 다행인 것은 할타가 베어낸 것은 이의민의 옷깃이었다. 그리고 옷깃이 베어지는 순간 할타는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고 그 반대로 이의민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다음은 목이 될 것이다. 피를 뿌리기에는 참 좋은 날이다.”

할타는 다시 한 번 이의민을 압박하듯 말했다. 허나 여전히 이의민은 아무런 말도 없이 빠르게 자세를 수습하고 거대한 부월을 고쳐 잡았다.

저벅! 저벅!할타가 자신감에 차 있는 듯 이의민에게 다가갔고 그와 동시에 부월을 고쳐 잡은 이의민은 몇 걸음 비켜서는 이의민이었다.이 대결을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은 할타가 기선을 제압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의민의 표정은 담담하면서도 여유로웠다.

‘할타가 자신감에 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스스로도 그 걸음이 조심스럽다.’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할타가 접근하고 있는 그 찰나의 순간 마치 3류 무협영화처럼 둘의 사이에 바람이 한 번 칼처럼 휘몰아쳐 지나갔고 그 바람의 끝에 이의민의 미소가 내 눈에 보였다. 그리고 이의민은 자신이 보였던 웃음을 거두자마자 할타에게 달렸다. 이의민이 달리자 할타 역시 동시에 이의민을 향해 뛰었고 그 둘은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서로를 향해 검과 부월을 휘둘렀다.

쉬웅!귀를 찢을 것 같은 마찰음이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누군가가 베어졌다는 걸 거다.

척!

“으윽!”

둘이 동시에 착지를 하며 빠르게 돌아서는 순간 이의민의 어께에서 가슴까지 길게 옷이 갈라지며 피가 비쳤다. 그 순간이라면 눈이 동그래질 법도 한데 여전히 이의민은 짧은 신음 한 번을 토해 낼뿐이었다.

“이얍!”

피를 봐서 인가 이의민이 기합을 지르며 할타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이의민의 부월이 할타의 허를 가르며 들어왔고 처음으로 할타가 날아드는 부월이 섬뜩했는지 뒤로 물러서며 가까스로 피했다.

그와 동시에 놀란 눈빛을 보이는 할타였다. 마치 이런 실력이 있는 자가 왜 지금까지 검에 옷깃이 베이고 또 어깨에서 가슴까지 자신의 검에 베였는지 모르겠다는 눈빛이었다.

“실력을 숨긴 건가?”

“네가 말한 것처럼 이 자리는 둘 중 하나의 죽음을 원하고 있지. 허나 난 그 후까지를 생각해야 하지.”

나직이 말하는 이의민이지만 내 귀에는 생생히 들렸고 그 순간 이의민이 그저 무지한 무장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까지 생각을 한다?”

“칼든 자는 말을 아끼는 법이다.”

이의민은 자신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번개 같은 속도로 부월을 수평으로 휘두르며 할타를 공격했다. 챙!그 순간 가까스로 이의민의 부월을 막은 할타였지만 뒤로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가 이의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챙챙! 챙챙!이의민의 부월이 할타의 검에 부딪쳤다가 떨어지면서 동시에 몸을 돌려 마치 어검을 펼치듯 검을 허공에서 놨다가 역으로 고쳐 잡고 이의민이 배를 찌르려 했다. 그 순간 이의민이 하늘로 힘껏 뛰어올라 할타를 뛰어 넘으며 할타의 얼굴을 걷어찼다.

퍽!이의민의 첫 공격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으윽!”

할타 역시 단발마와 같은 신음을 했을 뿐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 대결을 펼쳐 갔다.보통의 비무라면 이쯤에서 끝이 나야 했다.

허나 지금 이 순간 누구도 이 비무를 멈추게 하는 자는 없었다.정말 할타가 말한 것처럼 둘 중 누구 하나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알게 해야 끝이 날 비무 같았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둘은 조금도 밀리지 않는 진검대결을 이어갔고 할타의 공격은 날카롭고 춤을 추는 듯 흥겨웠고 이의민의 방어는 산처럼 무겁기만 했다. 그리고 가끔 이어지는 공격에 할타는 스스로 그 공격이 섬뜩하다는 것을 숨기지 못했다.

“이제 끝을 봐야겠소.”

이의민의 말에 지그시 입술을 깨무는 할타였다.

“나를 끝까지 조롱했군.”

“무장이 실력이 없다면 조롱을 받아 마땅하지 않소?”

칼을 든 자는 말을 아껴야 하는 법이라고 말한 이의민이지만 이 순간 말이 길어졌다.

“말은 아끼는 법!”

그와 동시에 할타가 이의민을 향해 달려들었다. 또한 이의민도 할타를 향해 달려들며 거대한 산 같은 부월이 할타를 향해 휘둘러졌다.퍼어억!투탁하다 못해 무겁게 느껴지는 파음이 내 귀를 자급했다.

“으윽!”

신음보다 더 큰 비명이 나직이 들렸고 할타의 입에서 피가 뿜어졌다. 퍼퍽!그와 동시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의민이 다시 들고 있던 부월을 빠르게 휘둘러 할타의 팔을 찍었다.

“으악!”

이번에야 말로 신음이 아닌 진정한 비명이 연회장 중앙에 터져 나왔고 그 순간 난 할타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보는 대신 상석에 앉아 있는 야율강의 표정을 살폈다.허나 여전히 야율강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리고 내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듯 나를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쉬웅!순간 다시 이의민의 부월이 바람을 갈랐다. 그와 동시에 할타가 빠르게 뒤로 몸을 뺐다.

“오래 모시지 못해 송구하옵니다.”

할타가 찰나의 순간이지만 마치 야율강이 들으라는 듯 소리를 질렀고 그 순간 야율강은 자신의 앞에 놓인 술잔을 들었다. 한없이 여유로움을 보였던 야율강이지만 술잔을 들어 올리는 손에는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허나 여전히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머금어져있었고 그 미소가 왠지 불길했다.그리고 그 불길한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왜 야율강이 미소를 머금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젠장!”

쉬웅!바람을 가르는 할타의 검이 나를 향해 뿜어졌고 그 순간 장중이 놀라 웅성거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의 몸놀림이 할타의 검보다 빨랐다는 거였다.

“뭘 하는 짓인가?”

난 버럭 소리를 지르며 옆에 호위를 하듯 서 있던 무장이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려 했다. 허나 내가 검을 휘두를 틈도 없이 이의민의 부월이 할타의 등을 내려찍었다.쩌억!

“푸아!”

할타의 입에서 피가 뿜어졌고 그 피는 고스란히 내 얼굴을 적셨다.쿵!피를 뿜어낸 할타가 고목이 쓰러지듯 무릎을 꿇었다.

눈빛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그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을 것 같았다. 퍼어억!순간 거대한 부월이 내 눈앞에서 한 번 번쩍였고 그와 동시에 할타의 머리가 박살이 났다.

끝내 이렇게 이 비무는 누군가의 죽음을 불러왔다.‘끝내 나를 노렸음이야!’난 죽어 바닥에 쓰러진 할타를 보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전히 여유를 부리고 있는 야율강을 봤다.

표면적으로는 비무이니 고려의 무장이 금의 대장군을 죽였는데도 여전히 여유롭다는 것은 그 역시 나처럼 사악하다는 증거일 것이다.탁!하지만 그것도 잠시 야율강이 자신의 손으로 탁자를 내려치며 박차고 일어섰다.

“어찌 감히 비무 중에 금나라 대장군을 죽인단 말인가?”

표정에는 노함이 가득했으나 눈빛에는 여유로움이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은 할타를 벤 이의민이 아닌 내게로 향하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참거나 뒤로 물러서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금의 대장군은 비무중에 고려의 부마도위에게 검을 휘둘러도 된다는 것인가?”

순간 내가 벼락처럼 소리를 질렀다.

“뭐라?”

“이 자리에 저 죽은 자가 나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보지 못한 자가 없다. 그저 고려의 무장은 고려의 무장으로 부마도위를 지키기 위해 금나라의 정신 나간 무부를 벤 것이다.”

내 일갈에 야율강이 나를 죽일 듯 노려봤다. 물론 나 역시 지지않겠다는 듯 야율강을 노려봤다.

“견룡군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 금나라 대장군을 참살한 저 무부를 추포하지 않고!”

그때 연회석에서 벌떡 일어난 김보당이 멍해져 있는 견룡군을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난 힐끗 김보당을 봤다.‘이것이었나? 그렇게 유심히 보던 이유가 그 추악한 일을 위함이었다는 건가?’난 김보당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역시 역사라는 놈은 틀어진 물고를 바로잡으려는 속성이 있는 듯 했다. 아마 지금 이의민을 추포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김보당은 다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엄청난 꿍꿍이가 있고 그 엄청난 일에 끝내 이의민을 이용할 것 같았다.

‘어쩜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르지.’============================ 작품 후기 ============================내일도 아마 이 시간에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밤 10시 정도에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그 전까지는 노블레스 상위작들을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참 제가 T스토어에 간웅이 전자책으로 나왔다고 말씀 드렸는데 삭제되었습니다.

물론 더 좋은 간웅 전자책을 위한 저와 조아라 전자책 출판팀의 판단에 의해 결정된 사항입니다.아마 1월 안에는 다시 올라 가게 될 겁니다.

그때 다시 올라가면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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