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3권 -- >상선 최준이 기거하는 처소.
“용손~ 십이지이~ 십팔~ 자위왕~”
상선 최준의 앞에서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용손십이진 십팔자위왕이라는 참요를 목청껏 불렀고 그 참요를 들은 상선 최준이 찰나의 순간이지만 인상을 찡그렸다가 다시 평온해졌다. 하지만 상선 최준의 옆에 있는 두 명의 환관들은 아이들이 부른 참요를 듣고 기겁한 기색이 역력했다. 두 명의 환관이 놀랐다는 것은 용손십이진 십팔자위왕이라는 참요의 숨겨진 참 뜻을 잘 알고 있다는 증거일 거다.
“상, 상선 어른,,,,,,,.”
환관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상건 최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되었네.”
“하오나 상선어른!”
“되었다고 했네. 이것이었군.”
상선 최준이 환관에게 더는 말하지 말라는 뜻을 담아 말을 하고 아이들을 봤다.
“저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쥐어주고 은밀히 황궁에서 내 보내게.”
최준이 차분히 자신을 보고만 있던 환관에게 말했다.
“예. 어르신!”
아무 말도 없던 환관이 짧게 대답을 하고 아이들을 봤다.
“가자!”
그렇게 아이들이 환관을 따라 나서자말자 조금 전 무척이나 놀란 기색을 보였던 환관이 최준에게 바짝 다가왔다.
“이제 어찌 하옵니까?”
“무엇을?”
“아이들이 부른 참요를 듣고도 그리 평온하시옵니까?”
환관의 말에 상선 최준이 잠시 물끄러미 환관을 봤다. 자신의 옆에 있던 환관은 무척이나 오래 옆에 두고 돌봐줬던 환관이었다.
“지금 불러진 참요가 누구를 옥조이는 참요인지 아시지 않사옵니까?”
상선 최준에게 말하는 환관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다급함이 서려 있었다.
“이씨겠지.”
“그 이씨에 양자되시는 회생 공도 포함되어 있사옵니다.”
회생이 최준의 양자를 자처한다는 것까지 안고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이 환관이 최준의 최측근이라는 증거일 거다. 그렇기에 이렇게도 다급한 걸 거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이렇게 평온하실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이제 내가 어찌 해야 할까?”
“회생공께 대전에서 일어난 일을 알려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이것은 분명 무신들에게 밀린 문신들이 무신들의 핵심인 위위경과 회생공을 노리고 꾸민 음모이옵니다.”
“음모라,,,,,,.”
“그렇사옵니다. 분명 음모이옵니다. 용손십이진 십팔자위왕의 참요가 저잣거리에 돌 때마다 황궁에는 피가 뿌려졌사옵니다.”
“그렇지. 피를 부르는 참요이긴 하지.”
“이제 어찌 하옵니까?”
“분명 대전에서 우리가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네.”
“그렇사옵니다. 상선 어른! 회생 공께 알려야 하옵니다. 그리고 대비를 하시게 해야 하옵니다. 이번 일이 크게 벌어진다면 다시 한 번 황궁에는 피바람이 불 것이옵니다.”
환관은 여전히 회생을 걱정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허나 이렇게 큰일이라면 우리들은 나서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야.”
상선 최준의 말에 환관이 놀라 상선 최준을 다시 봤다.
“상선 어르신!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아시고도 회생공께 알리지 않고 함구하시겠다는 말씀이시옵니까?”
“나는 상선일세. 그리고 모든 환관을 책임져야 하는 소임이 있네.”
“허나 양자되시는 분의 일이옵니다.”
“허나 우리가 이번 일을 발설하게 된 것을 알게 되면 하찮게 여겨지는 환관들의 목이 추풍낙엽처럼 수도 없이 떨어지게 될 것이네.”
“하오나 은혜를 모르는 자는 금수에 불과하옵니다.”
“금수라?”
“그렇사옵니다. 모든 자들이 저희를 불알 없는 고자라 괄시할 때도 회생공은 저희를 위해주고 사람대접을 해 줬습니다. 그런데 이리 위급한 일이 있는데 알리지 않는다면 은혜를 모르는 금수가 분명할 것이옵니다.”
환관에게 다부지게 말했고 그때 최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마치 환관의 말에 감명을 받은 듯 그런 표정이었다.
“자네 진정 그리 생각을 하는가?”
“그렇사옵니다. 제가 상선 어르신을 모신 세월이 17년 이옵니다. 또한 회생 공에게 은혜를 입었사옵니다. 저는 비록 불알 없는 고자이기는 하나 신의 없는 자는 아니옵니다. 제가 당장 달려가 회생 공께 알리겠사옵니다.”
“정말 그래주겠는가?”
“예. 제가 할 것이옵니다. 이번 일이 알려져 목이 잘린다고 해도 저는 회생공과의 신의를 지킬 것이옵니다.”
그 순간 상선 최준이 환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고마우이.”
“아니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옵니다.”
“정말 고마우이.”
“지금 당장 은밀히 궁을 빠져나가 회생 공께 알리겠사옵니다.”
“그러시게.”
“예. 상선어른.”
환관이 짧게 대답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환관이 돌아섰고 그 순간 환관 최준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일이 급하고 여러사람의 목숨이 달렸으니 곧장 가시게.”
최준은 많은 의미를 담아 회생에게 가서 알리겠다는 환관에게 말했다.
“예. 상선어른.”
환관이 급히 밖으로 나갔고 그 순간 지그시 입술을 깨무는 최준이었다.
“있는가?”
그 순간 상궁의 복색을 여인 하나가 조심히 뒤에서 나와 최준의 앞에 섰다.
“예. 상선어르신!”
“저자가 회생의 사택으로 향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향한다면 베어야 할 것이네.”
지금 상선 최준의 앞에 서 있는 상궁은 회생이 은밀히 대전에 심어놓은 여무사 중 하나였다.
“저자를 의심하는 것이옵니까?”
“만사불여튼튼이지.”
“예. 알겠사옵니다. 상선어른.”
“정말 일이 다급하게 되었어. 참요라니! 그것도 용손십이지 십팔자위왕의 참요라니,,,,,,,.”
상선 최준은 이제야 이마의 골이 폐이도록 인상을 찡그렸다.
“왜 그러시옵니까? 상선어른!”
궁에 들어 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여무사였던 상궁은 용손십이지 십팔자위왕의 숨을 뜻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설명을 하면 아주 길지. 하여튼 회생이 궁지에 몰릴 판이네. 그러니 절대 저자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네.”
“예. 상선어른.”
여무사 출신의 상궁이 짧게 대답을 했고 그와 동시에 상선 최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야! 같이 가세. 혹여 기우가 맞아 떨어진다면 내가 보내줘야겠지.”
상선 최준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지낸 세월의 정이라는 것이 있으니 말이다.쾅쾅쾅! 쾅쾅쾅!깊은 새벽.개도 잠든 이 새벽에 회생의 사택 대문을 요란하게 누군가 두드렸다.
“뉘시오?”
억쇠는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 급히 대문으로 달려가 문도 열어주지 않고 물었다.
“황궁에서 왔네.”
황궁에서 왔다는 말에 억쇠가 놀라 급히 문을 열었다. 보통 황궁에서 사람이 올 때면 은밀히 숨어들듯 들어서는 것이 보통인데 이렇게 요란하게 문까지 두드리는 것을 봐서는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억쇠였다.
“황궁에서 오셨다니요?”
“회생공 있는가?”
지금 억쇠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상선 최준과 여무사 출신인 상궁이었다. 그들이 지금 이곳에 온 것은 상선 최준의 처소에서 그렇게도 회생을 걱정하던 환관이 배신을 했다는 증거일 거고 또한 상선 최준도 명종황제와 또 누군가로부터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증거일 거다.
“예. 주인마님께서는 내실에 계시옵니다.”
“안내하시게.”
“뉘시옵니까?”
황궁에서 왔다는 말에도 당돌할 만큼 따지듯 묻는 억쇠를 보고 상선 최준이 인상을 찡그렸다.
“황궁에서 왔다고 하지 않았나?”
“허나 뉘신지 알아야 아뢸 것이 아입니까?”
억쇠가 이렇게 누군지 따지는 것은 억쇠 역시 들은 풍문이 있어 자신의 주인인 회생이 적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거다. 또한 이 순간 이 사택을 경호하는 별초들이 자신을 주시하며 보호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왜 그리 꼬치꼬치 캐묻는 가?”
“몸에서 풍기는 피 냄새 때문입니다.”
그제야 상선 최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야 말로 회생공의 충복이군.”
“저는 이집 노복이 아니라 주인마님의 가신입니다.”
억쇠가 다부지게 상선 최준을 보며 말했다.
“알았네. 일이 급하네. 궁에서 최준이 왔다고 전하시게.”
“우선 들어오십시오.”
난 내 양부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최준이 내 사택에 왔다는 말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와 동시에 홍란의 안내를 받은 최준이 내 사택 내실로 들어섰다.
“이 깊은 밤에 어인 일이시옵니까? 아버님!”
내 아버님이라는 말에 최준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최준이 나를 봤다.
“일이 급하게 되었네.”
“일이 급하다니요?”
“우선 앉으시게.”
상선 최준이 자리에 앉으려 했고 난 그의 팔을 잡았다.
“아들이 상석에 자리 하는 법은 없습니다. 상석에 좌정 하시지요.”
내 말에 다시 한 번 최준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회생아!”
“앉으시지요. 좌정하시여 차근차근 이야기를 하시지요.”
“그러자.”
최준이 상석에 앉았고 그제야 난 무릎을 꿇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이 깊은 새벽에 무슨 일이시옵니까?”
난 최준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하염없이 불안해졌다. 황궁에서 사람이 은밀히 올 때마다 궁에서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일이 일어날 때에도 최준이 직접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직접 왔고 그 만큼 엄청난 일이 황궁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손십이진 십팔자위왕을 아는가?”
최준이 자리에 앉자말자 다짜고짜 내게 물었다.
“예?”
“모르는군.”
최준은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뜻이옵니까?”
“용손십이진 십팔자위왕은 파자네.”
“파자라고요?”
난 최준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파자는 하나의 이어지는 한자를 떨어뜨려 만드는 것으로 한자의 모양을 살리거나 그 의미를 가지고 말장난을 하는 것을 말하는 건데 글자를 쪼개었다는 의미로 파자(破字) 혹은 파자를 가지고 놀았다는 의미로 파자희라고 부른다네. 허나 놀이치고는 십팔자위왕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 숨겨져 있네.”
“소자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사옵니다.”
“용손십이진 십팔자위왕!”
최준이 다시 한 번 무겁게 내게 말했다.
“무슨 뜻이옵니까?”
난 최준에게 물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최준이 말한 한자들을 부수고 깨고 붙이며 그 뜻을 찾으려 했다. 분명 지금 최준이 말한 말은 내게 무척이나 중요하거나 위험에 빠트릴 말이 분명했다.
‘용손이라,,, 용손,,,, 용손이면 고려 황족을 말하는 것인데,,,,,,.’고려의 황족들은 스스로 용의 후예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난 뭔가 머리에 번뜩 스치는 것이 있었다.
“왕 씨의 나라인 고려에 이 씨가 왕이 된다는 도참사상을 근거로 한 요설이네.”
도참사상이라면 이 고려의 근간이 되는 사상이 분명할 건데 최준은 그 도참사상을 근거로 한 요설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그 순간 난 최준이 말한 용손십이지 십팔자위왕의 숨겨진 뜻을 간파했다.
“누군가 저나 제 장인을 노리는 것입니까?”
내 물음에 지그시 최준이 입술을 깨물었다.
“누구이옵니까?”
“표면적으로는 이 참요를 고한 김보당이겠지만 그 내면에는 황제폐하가 계시네.”
쿵!난 모처럼 심장이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다.
“황, 황제폐하께서요?”
“분명할 것이야. 처음부터 황상께서는 회생 너를 보는 눈빛 속에는 시기심이 가득했어.”
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나 역시 느끼고 있던 부분이었다.
허나 황제가 나를 노린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일이 참 묘하고 다급하게 돌아가고 있었다.사신관에서는 호시탐탐 야율강이 나를 노리고 있었고 황궁에서는 황제가 나를 노리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니 이것이 위기라면 최고의 위기가 될 것 같았다.
“허나 요설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사람에 따라 또한 그 품은 뜻에 따라 요설이 되기도 하고 예언이 되기도 하지.”
내 양부인 최준이 진정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 인 것 같았다.
“무슨 말씀을 하시고자 하시는 것이옵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말보다 네 선택이 중요하지.”
“저의 선택이라고요?”
“그래. 십팔자위왕이라는 요설에 당할 건가? 아니면 신성한 도참의 예언을 받들 것인가?”
내 양부인 최준이 진정 원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속으로는 왕씨이고 불리는 것은 이씨이며 내 스스로 보이는 것은,,,,,,,.’지그시 입술이 깨물어지는 순간이었다.
또 한 번 하늘이 내게 선택을 강요하는 순간이었다. ‘용손십이진 십팔자위왕이라!’난 머릿속으로 다시 한 번 뇌까렸다.
이 도참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내가 이 순간을 어쩌면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그와 동시에 뇌가 태후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무인본분 위국헌신!’두 말이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양부께서는 소자인 제가 어떤 결정을 내리시기를 원하시옵니까?”
내 물음에 물끄러미 최준이 날 봤다.
“난 회생 네가 무슨 결정을 내리던 도울 것이야.”
“지금 당장 결정할 일은 아닌 것 같사옵니다.”
“그렇지. 패자위적성자위왕[ 敗者爲賊成者爲王 ]이니 최대한 신중해야 할 것이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십팔자위왕의 망령에는 대비를 해야 할 것이네.”
“예. 알겠사옵니다. 아버님! 이번 일을 황제께 고한 것이 김보당이라 하셨지요.”
“그래. 김보당! 그자가 벌린 일이네.”
선택을 미룬 나지만 적이 누군지 다시 한 번 명확해진 나이기도 했다. ============================ 작품 후기 ============================2013년 계사년 현대백수의 목표가 예전처럼 간웅을 한달 30일 연재를 하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졸작이지만 애착이 많이 가고 쉬는 아침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겨우 쓴 것이 고작 이거니 참 힘드네요.그렇게 정했습니다.2013년 계사년 현대백수의 첫번째 목표는 간웅을 연중 없이 한달동안 꾸준히 연재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첫목표가 이뤄지면 연중없이 완결까지 가는 겁니다.
그리고 독자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