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252화 (252/620)

< -- 간웅 13권 -- >자리를 피한 명종황제가 향한 곳은 공예태후의 처소였다.갑작스러운 명종황제의 방문에 공예태후는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평온한 마음이 되어 한없이 명종황제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변했다.

서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권력을 겨루고 있는 관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공예태후는 명종황제의 모후로 명종황제를 걱정하고 있는 거였다. 그에 반해 명종황제의 눈빛은 무척이나 비장해 보였다.

아마도 대전에서 위위경이 자신의 편이 되어 준 것 때문일 것이고 이제는 자신의 모후를 꺾을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금나라 사신의 일 때문에 황상께서 고심이 크시겠소.”

“아니옵니다. 어마마마!”

“그래. 일은 어찌 진행을 할 것이요?”

사실 이번 일에 대한 전말을 회생에게 들은 공예태후였다. 그리고 내심 대령후가 걱정이 되기도 하는 공여태후이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증명하는 걸 거다.

회생은 고려 황실의 안정과 사직을 안녕을 위해 대령후를 처단해야 한다는 투로 말했지만 그것이 내심 마음에 걸리는 공예태후였던 거였다.

“우선은 금나라의 요구조건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러시오?”

명종황제가 금나라 사신의 요구를 들어주게 되면 대령후가 아무리 암계를 꾸민다고 해도 일이 크게 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공예태후였다.

“그렇사옵니다. 소자는 이번 일을 통해 많은 생각이 들었사옵니다.”

“무슨 생각이 드셨소?”

“금에게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할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쿵!순간 공예태후는 심장이 내려앉은 느낌을 받았다.

“무, 무엇이라고 하셨소?”

“소자는 곧 결심을 할 것이옵니다.”

이것은 엄청난 일에 대한 통보나 다름이 없었다.

“무슨 결심을 하시겠다는 거요?”

“누구도 다시는 제 용상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게 할 것이옵니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이옵니다.”

“황상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고 계신 것이요?”

공예태후의 표정이 굳어졌다.

“힘을 키울 것이옵니다. 또한 황실의 안녕을 도모하기 위해 극단의 조치라도 취할 것이옵니다.”

지금 명종황제가 한 말은 공예태후의 귀에는 강화도에 유배되어 있다시피 한 의종황제를 정리하겠다는 투로 들렸다.

“허나,,,,,,,.”

“고려의 황제로 이제는 오직 고려와 백성만을 생각할 것이옵니다.”

모든 위정자들이 그렇듯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항상 말하는 핑계가 바로 백성이었다. 그리고 지금 명종황제 역시 백성이라는 핑계를 통해 일을 꾸미려 했다.

“황상,,,,,,,,.”

“소자가 만약 불효를 저지른다고 해도 이 소자의 고충을 깊이 헤아려 주시옵소서.”

이것은 일방적인 통보다.

“허나,,,,,,,.”

“소자는 뼈를 깎는 아픈 마음으로 생각을 정리했사옵니다.”

“허나 그리 되면,,,,,,,.”

“그리 사시는 것보다 정리가 되시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사옵니다. 어마마마!”

이제 진심을 말하고 있는 명종황제였다.

“이, 이 어미는 그리 된다면 황상을 다시 보지 않을 것이요.”

공예태후도 단호해졌다.

“그러면 오늘이 어마마마를 뵈옵는 마지막 날이 되겠습니다.”

역시 단호했다.이것이 바로 권력일 거다.

“황, 황상!”

“이 고려는 소자의 고려이옵니다. 이제는 소자의 뜻에 따라 통치될 것이옵니다.”

명종황제는 엄청난 통보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영화공주가 내실 안의 분위기도 모르고 내실로 들어섰다.

“황제폐하를 뵈옵니다.”

“국혼 준비를 잘 되고 있는 것이냐?”

국혼은 다름 아닌 영화공주와 회생의 국혼을 말하는 거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신경을 쓰지 않던 국혼을 명종황제가 말하고 있었다.

“혼례도감이 설치된 줄 아옵니다.”

“그래. 알겠다.”

명종황제는 짧게 말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그 돌아선 등이 무척이나 차갑다는 것을 영화공주는 느끼고 있었다.

“황상!”

공예태후가 돌아선 명종황제를 불렀지만 명종황제는 돌아서지 않았다.

“그것만 명심하시오. 황상도 이 어미의 자식이고 또한 그도 이 어미의 자식이요.”

이 순간 영화공주만 영문을 몰라 멍하게 공예태후와 명종황제의 등만 볼뿐이었다.다시 대전.명종황제가 나간 대전은 이제 위위경의 기세에 눌려 더욱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위위경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참지정사께서 일천의 가병을 내놓으셨소? 다른 대신들은 어찌 할 것입니까?”

이건 압박이었다.

“그럼 소장은 500의 가병과 군량 500석을 내놓겠소?”

문하시중 조영인이 마지못해 말했다.

“그렇다면 김대부는 어찌 하실 참이십니까?”

내가 진정 노린 것은 김보당과 후일 그와 같이 거병을 해 난을 일으킨 위인들의 가병이었다. 적이 될 자들의 가병을 다른 적을 이용해서 죽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상책일 것이다. 내가 갑자기 나서자 김보당이 나를 뚫어지게 봤다.

“견룡행수로 묻는 것이요? 아니면 부마도위로 묻는 것이요?”

이것은 나에 대한 무시며 조롱일 거다. 무엇으로 말을 해도 권력에 붙은 자로 보이니 말이다.

“부마도위입니다.”

이왕 권력에 붙은 자로 보인다면 명종황제의 측근으로 보이는 것이 지금은 좋을 것 같았다.

“그렇습니까? 부마!”

갑자기 김보당이 내게 존칭을 했다. 이것은 나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롱하는 거였고 난 그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내 그냥 두지 않을 것이야!’역시 적은 이렇게 정해지는 법인가 보다.

“어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나 역시 가병 500을 내놓겠소.”

“겨우 문신의 중추이신 대부께서 겨우 500의 가병을 내놓으신단 말입니까?”

“뭐라고요?”

“제가 알기로는 사택에 기거하고 있는 가병만 해도 2천이 넘고 문중의 가병까지 하면 족히 하나의 군영을 이룰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내 말에 김보당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감찰어사까지 겸하고 있으니 속속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려?”

“5천의 가병이면 족히 거병을 할 수도 있는 병력이지요.”

내 말에 모여 있는 중신들이 기겁을 했다. 지금 거병이라는 단어는 거의 반역이라는 단어처럼 들릴 것이다.

“일개 문신이 어디 감히 그런 무모한 짓을 하겠소?”

“그렇다면 이번 황실과 조정의 위기를 김보당 대부께서 구국의 일념으로 구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얼마를 내게 원하시는 것이요?”

김보당이 나를 노려봤다.

“봉토를 지키는 일에 가병 1천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내 말에 김보당이 기겁했다.

“무엇이요? 가병 4천을 내놓으라는 말이요?”

“조정과 황실이 위기이옵니다. 위위경께서는 은자 50만 냥을 내놓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그만큼의 재물을 내놓을 수 있소.”

“허나 이미 재물은 충분해졌습니다.”

내가 이렇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이고 외숙과 참지정사 강일천이 나와 김보당을 번갈아봤다.

“그러고 보니 김대부께서 딴 마음이 있으신가 봅니다. 가병을 내놓은 일에 그렇게 기겁을 하시니 말입니다.”

이고 외숙이 내 편을 들겠다는 듯 말했다.

“무슨 말씀이시오? 용호군 대장군!”

김보당이 이고를 노려봤다.

“그렇지 않다면 사병을 내놓는 일에 그리 궁색할 필요 없지 않소.”

“으음,,,,,,,.”

나와 이고 외숙은 김보당이 마치 거병을 할 것처럼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문무대신들은 나와 위위경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모두가 희생을 해야 할 시기입니다. 상황이 좋게 흘러 우리가 파병한 군대가 북변을 완벽하게 장악을 하게 된다면 이번에 각출한 대신들에게 아주 많은 것이 돌아갈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이의 희생을 요구할 때 허망한 대가를 말하는 경우가 많았고 나 역시 그러고 있었다.

“부마도위의 생각이 옳은 것 같소이다. 지금은 위기입니다.”

위위경도 나를 부마도위라 말했다. 견룡행수라 말하면 자신의 자위가 되는 것이니 이렇게 나를 부마도위로 높인 거였다.내가 하는 말보다 위위경이 하는 말이 더 무게감이 있는 듯 했다.

“장공은 어떻게 할 것이요?”

위위경이 김보당일파라고 할 수 있는 장순석에게 물었다.

“소장은 일천 가병과 군량 1천석을 내놓겠사옵니다.”

이렇게 나와 위위경의 강요로 인해 꽤 많은 군량과 가병들이 모였다.그러고 보니 이렇게 모인 가병의 수가 2만이 가까웠다.

정말 마음만 먹고 가병들만 잘 훈련시킨다면 북변이 아니라 그 넘어도 충분히 도모해 볼 수 있는 병력의 수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허점이 있다는 것을 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머릿수만 채울 수 있지.’난 김보당을 노려봤다.

“혹여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씀이오나 대신들께서 각출할 가병을 다른 노비나 비루한 자들로 바꾸신다면 그것이야 말로 불충일 것이옵니다.”

내 말에 위위경과 참지정사 그리고 이고만을 제외하고 모두 다 인상을 찡그렸다.

“누가 그런 불충을 저지른단 말인가?”

이의방도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혹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할 것이야! 그렇지 않습니까? 참지정사?”

“그렇소. 위위경! 나는 내 가병록을 내놓겠소. 중방에서 파견한 장수가 선발을 해 가시오.”

역시 척하면 착인 거다.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다른 문신들은 표정이 굳어졌다.

“그거 좋은 방법이옵니다. 참지정사!”

“그렇다면 부마도위는 얼마나 내놓으시겠소?”

김보당이 내게 물었다.

“저는 가병 300을 내놓겠습니다.”

내 말에 김보당이 피식 웃었다.

“내게는 가병 4천을 내놓으라고 하면서 겨우 300?”

“제가 가진 모든 가병이옵니다.”

난 무섭게 김보당을 노려봤다.

“으음,,,,,,,.”

이제 김보당은 할 말이 없었다.

“그럼 누가 가병들을 선발하는데 적임자 같습니까?”

위위경이 참지정사 강일천과 나를 번갈아왔다.

“경대장군의 장남이 어떠하옵니까?”

경대장군의 장남이라면 경대승을 말하는 거였다.

“저의 장자라니요?”

경진 대장군이 기겁했다. 이건 다시 말해 자신과 함께 전란지로 떠나야 한다는 말이 되는 거였다. 차출한 자가 그냥 이 황궁에 남아 있다는 것이 말이 안되니 말이다.

“그렇습니다. 부친이 대장군이 되어 가시는데 그 장자가 병력을 차출함에 있어서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을 것이옵니다.”

내 말에 모든 대신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좋은 생각이요?”

위위경도 내 말에 동의를 했다.

“가서 경대승 교위를 데리고 오시오.”

위위경인 이의방이 무신들이 서 있는 곳 말석의 무장에게 지시를 했다. 드디어 이 고려 정국에 경대승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예. 위위경!”

무장 하나가 급히 대전을 빠져 나갔다.그리고 잠시 후 다소 놀란 표정의 경대승이 대전으로 들어와 부복했다.

정말 역사책에서 기록된 것처럼 기골이 장대한 것이 참 무장의 모습 그대로였다.역사적으로 경대승은 무신정변으로 권력을 장악한 무신(武臣)들이 횡포와 비리에 분개하여 정중부(鄭仲夫)와 그의 아들인 정균(鄭筠)을 제거하려 했다.

1179년(명종 9) 9월 허승(許升), 김광립(金光立) 등 무사 30여 명과 함께 정중부(鄭仲夫)와 그의 아들 정균(鄭筠), 사위인 송유인(宋有仁) 등을 죽이고 조정의 실권을 장악했다. 명종(明宗, 1131~1202)은 정균(鄭筠)이 차지하고 있던 승선(承宣)의 벼슬을 주려 하였으나 경대승(慶大升)은 문관(文官)이 맡아야 한다며 이를 사양하였다. 그리고 무신정변 세력을 제거하여 중방(重房)을 무력화시키고, 무신정변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 문관(文官)과 무관(武官)을 고루 등용하였다.

신변 보호를 위해 도방(都房)을 설치하였고, 무신(武臣)의 동정을 감시하고, 유언비어(流言蜚語)를 엄격히 단속하였다.정중부(鄭仲夫) 일당을 제거하는 데 공을 세운 허승(許升)과 김광립(金光立)이 폐단을 일으키자 1180년 이들을 제거하였고, 문관(文官)과 무관(武官)을 가리지 않고 비리를 저지르는 자를 처벌하며 조정의 질서를 회복하려 했다. 하지만 1183년 30살의 나이로 병사(病死)하였고, 그가 죽은 뒤 도방(都房)은 해체되고 경주로 내려가 있던 이의민(李義旼, ?~1196)이 개경으로 올라와 실권을 장악하였다. 그리고 이 역사적 사실이 나를 그토록 경대승을 경계하게 만드는 이유일 거다.

난 이번 금나라 사신의 일을 통해 난을 일으킬 김보당의 힘을 약화시키고 끝내 거사를 해서 성공할 경대승을 타지에서 제거할 생각을 했다.정말 지금의 나는 예전과 다르게 역사를 완벽하게 거스르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스른 역사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쓰고자 했다.

만약 김보당과 경대승이 내 계략 되로 정리가 된다면 이제 남은 것은 이의민뿐이었다.‘이의민은 다르게 대해야겠지.’난 이 순간 이의민이 떠올랐다.

여전히 그는 별장으로 궁핍함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아마 지금쯤이면 도착을 했을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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