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251화 (251/620)

< -- 간웅 13권 -- >대전.만조백관들이 모여 있다. 용상에는 최대한 담담한 표정으로 의연해 보이려고 기를 쓰고 있는 명종이 앉아 있었고 좌측에는 무신들이 우측에는 문신들이 명종의 앞에 부복을 하며 명종이 하교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는 금나라 순문사 야율강이 요구한 것에 대해 상론하는 자리였으나 이미 명종의 마음은 금나라 순문사 야율강의 요구를 들어주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짐은 중신들의 의견을 존중할 것이요.”

명종은 중신들의 의견을 따르겠다는 말로 회의를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명종은 자신의 외척인 위위경 이의방을 봤다.허나 이미 이의방의 의중에는 내가 피력한 생각이 깊게 자리 잡고 있기에 명종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여전히 비겁하시다.’

난 명종을 힐끗 보며 떠오른 것이 비겁하다는 생각이었다. 자신이 금나라 칙서를 받기 위해 굴욕적인 조건을 들어주고자 하면서도 그 책임을 지금 ‘짐이 중신들의 의견을 존중할 것이요.’ 라는 말로 책임회피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후일 문제가 생기고 백성들의 민심이 돌아섰을 때 그 모든 일들이 자신의 책임이 아닌 무신들의 책임으로 돌리고자 하는 얄팍한 술수 인 거다.‘황제로써 이러면 안 된다.

’난 명종을 보며 내 부친인 의종을 떠올렸다.광인이지만 의종은 모든 것을 책임지려고 했다.

그에 반해 내 숙부인 명종은 책임회피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해두고 있는 거였다.이런 군주는 오래 갈 것이다.

허나 말년이 평온하지는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끝내 믿고 따르는 신하들이 모두 등을 돌릴 것이니 말이다.

“기탄없이 말해 보시구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중신들에게 다시 한 번 명종이 말했고 또 한 번 이제는 외척인 그대가 나서줘야 한다는 눈빛으로 이의방을 봤다.이의방 역시 내게 들은 말이 있기에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서야 할 자리가 분명할 것이다.누가 뭐라고 해도 그가 외척이니 말이다.

“폐하! 신 위위경! 아뢰옵니다.”

역시 이 회의의 포문을 연 것은 위위경이다.

“말씀해 보시게. 그대는 무신들의 거두이니 그대의 뜻이 곧 무신들의 뜻이겠지.”

명종의 말에 대전이 싸늘해졌다.지금 권력을 잡고 있는 자는 분명 위위경 이의방일 거다.

허나 그가 무신들의 거두라고 불리기에는 여전히 연륜이 짧고 그를 추종하지 않는 세력이 너무나 많았다.그 대표가 늙은 대장군들과 또 망령이 나 있는 이 소응이었다.

단지 그들은 이의방의 위세에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송구하옵니다.”

“기탄없이 말해 보시게.”

“예. 폐하!”

“금나라 사신인 야율강의 요구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정의 간섭이며 굴욕적인 요구사항이며 백성들의 피눈물을 황실과 조정이 짜내게 되는 결과를 가지고 올 것입니다.”

이의방의 말에 명종 황제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명종은 이의방의 입에서 자신이 생각했고 그에게 요구한 것을 듣고자 했다. 그런데 첫 포문이 귀에 참으로 거슬리는 말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인가?”

“그렇사옵니다. 고려의 백성이며 황실의 무인들이 왜 저 멀리 대륙에 가서 대륙의 전쟁에 피를 흘려야 하옵니까?”

“그렇사옵니다.”

그때 주책없는 이소응이 나섰다. 그 순간 명종 황제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가 다시 부드러워졌다.

“허나,,,,,,,.”

위위경 이의방이 힘을 주어 말하다가 잠시 중신들을 쭉 둘러봤다.

“이 모든 것은 황실을 보위하는 고려의 무장들이 힘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또한 고려가 옛 영화를 잃고 국력이 약해졌기 때문이옵니다. 그것은 금나라 사신인 야율강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 반성하고 자책해야 하 것이옵니다.”

“그, 그렇소.”

점점 더 다른 방향으로 위위경이 이야기를 하자 말까지 더듬는 명종황제였다. 사실 오늘 어전 회의에서 이의방은 입안의 혀처럼 굴어줄 거라고 여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말하는 단어 하나마다 뼈가 있고 서슬이 퍼런 검이 숨겨져 있고 그 숨겨진 모든 것들이 따지고 보면 황실을 질책하고 있으니 놀랍고 화가 치미는 명종이었다.

“그래서 위위경은 금나라 사신 야율강의 요구를 묵살하자는 것이요?”

명종은 답답한 마음에 반문했다.

“통탄스럽지만 그럴 수는 없사옵니다.”

“그럴 수는 없다?”

“그렇사옵니다. 아무리 고려 무장들의 기세가 강하다고 하나 북변에서 밀려드는 금나라 100만 대군을 막을 여력이 없사옵니다. 그러니 금나라 사신의 요구조건을 따라줘야 할 것입니다.”

“진정 통탄스러운 일이구려.”

명종도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사옵니다. 금나라 사신의 요구를 들어주고 이제는 실리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이 형국에서 실리를 얻을 수 있겠소?”

“금이 송과 전쟁을 하고 또한 고려가 금에 지원군을 파견한다고 해도 지략이 있는 무장을 보낸다면 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지략이 있는 무장을?”

명종황제는 이의방을 말을 듣다가 힐끗 나를 봤다. 그리고 그의 눈빛을 내게 들키고 말았다.

“그렇사옵니다. 지략이 뛰어난 대장군 중 한 명을 파병군의 수장으로 보낸다면 무모한 전투를 벌이지 않을 것이옵니다. 또한 금이 고려에 지원군을 요청한 것은 대외적으로 송을 압박하기 위함이옵니다. 그러니 고려의 군대를 사지로 몰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꽤나 설득력이 있는 위위경 이의방의 말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구려.”

“그렇사옵니다. 폐하! 또한 금이 중원으로 크게 진출을 한다면 이번 파병을 통해 고려는 북변을 금으로부터 얻어내야 할 것입니다.”

“북변까지?”

명종황제는 위위경 이의방의 말에 흥이 났는지 계속 질문을 했다.

“그렇사옵니다. 스스로 형제국 임을 자처했고 또한 원대하게 중원을 정복하겠다는 금입니다. 그러니 중원 정복을 이룬다면 북변은 얻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당당히 북변을 요구한다?”

“그렇사옵니다. 그러니 진심으로 돕는 척을 해야 할 것입니다.”

“진심으로 돕는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위위경의 말을 듣던 명종황제가 다시 중신들을 봤다.

“중신들은 다른 의견이 없는가?”

허나 이 순간 누구도 의견을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오나 그것은 우리만의 생각이옵니다.”

드디어 반대의견이 나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반대의견은 내가 항상 망령든 노인이라고 말하는 이 소응에게서 나왔다.

“우리만의 생각이라?”

명종이 이대장군을 봤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금이 비록 지금은 강성하다고하나 고려의 무장들이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사옵니다. 또한 금이 고려를 이긴 적도 없습니다. 왜 고려가 굴욕적인 조건을 수락해야 하옵니까? 천리장성을 부수하고 무문 신들이 대동단결한다면 금이 100만 대군을 이끌고 온다고 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사옵니다. 또한 지금까지 막아왔습니다.

거의 20년 동안 전쟁이 없었던 고려였다. 지금 이 소응 대장군이 했던 말은 모두 인조 때 척준경이 금을 막고 승리했던 때를 말하고 있는 거였다.

“막지 못한다면?”

“막을 수 있사옵니다.”

이대장군이 단호히 말했다.

“허나 확신만으로 금나라 사신의 요구를 거부할 수는 없소. 실리가 중요합니다. 이대장군.”

김보당이 모처럼 위위경 이의방의 편을 들며 나섰다.

“실리라? 금이 송을 정벌한다면 그 다음은 고려가 될 것이옵니다. 순망치한이라고 했사옵니다. 폐하!”

이대장군은 김보당의 말을 무시하고 명종황제를 보며 간곡하게 간했다.

“순망치한이라,,,,,,,.”

“그렇사옵니다.”

사실 이대장군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때 명종황제가 나를 봤다.

“부마도위는 어찌 생각을 하는가?”

이렇게 난처할 때만 난 부마도위가 됐다. 정말 재수 없게 말이다.

“소신이 무엇을 알겠사옵니까?”

“이번 일은 고려의 사활이 걸린 일이니 그대도 황실의 일원으로 말해 보라.”

명종황제의 어투에서는 자신의 편을 들라는 투로 말하는 것 같았다.

“소장의 생각으로는,,,,,,,.”

난 말을 하다가 잠시 중신들을 봤다.

“그래. 부마도위의 생각은 어떠한가?”

“소신의 생각으로는 위위경의 말씀이 옳은 것 같사옵니다. 전쟁은 생각으로만 하는 것이 절대 아니옵니다.

비록 고려 무장의 기세가 강하다고하나 그 병력의 수가 10배가 넘는 금과 대적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입니다. 또한 하늘이 도와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고 해도 그 전란이 일어날 곳이 분명 고려 영토가 될 것이고 그리 되면 더욱 고려는 피폐하게 될 것이옵니다.”

내 말에 대전 신료들의 표정이 모두 어두워졌다.

“그리 되겠지.”

“시간을 버는 것이옵니다.”

“시간을 번다?”

“그렇사옵니다. 우선 위위경의 말씀처럼 정규군과 대장군 한명을 파견하여 금과 송의 전란이 일어나면 그 추후를 보는 것이옵니다.”

“깊이 관여하지는 않는다는 거군?”

“그렇사옵니다. 깊이 관여하지 말아야 할 것이옵니다. 전쟁의 승패는 누구도 모르는 것이옵니다. 만약 금이 송에 압승을 거둔다면 전과를 새워 금나라 황제에게 북변을 요구할 전공을 새우면 되는 것이고 만약 승이 금을 이긴다면 파병 군들은 빠르게 퇴각을 해서 북변을 도모하면 되는 것이옵니다.”

내 말에 모인 중신들이 기겁을 했다.

“북변을 도모한다?”

“그렇사옵니다. 고려가 북변을 영토라고 여기고 있사오나 그것은 황실과 조정의 입장이옵니다. 금나라 사신의 말처럼 금이 북변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사오니 따진다면 지금의 북변은 누구의 땅도 아니옵니다.”

“으음,,,,,,,,.”

명종황제는 내 말을 듣고 잠시 신음을 했다.

“허나 북변을 도모하다 금나라의 군대가 고려로 향한다면?”

“그럴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송이 지금까지 당한 것이 있는데 기세를 잡고 물러서겠사옵니까?”

“옳은 말이군.”

“그렇사옵니다. 그러니 추후를 보고 여차할 때 북변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정규군 5천과 중신들의 사병 역시 차출하여 파병해야 할 것이옵니다.”

“무슨 말을 하시는 건가? 견룡행수!”

명종황제는 나를 부마도위라 불렀는데 문신들의 영수인 조영인은 나를 견룡행수라 부르고 있었다.

“왜 그러시옵니까? 문하시중!”

“사병까지 차출을 해서 파병한다면 대병력이 되는 것이네.”

“그렇사옵니다. 우리가 내놓은 군량을 우리가 먹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뭐라?”

조영인은 내가 한 말의 뜻을 몰라 멍해졌다.

“금나라 사신은 군대를 파병하는 것과 함께 상당량의 군량까지 요구했사옵니다. 그 군량이 금나라 군대에게 넘어간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고려 백성이 지게 될 것이옵니다.”

“그렇지.”

명종황제가 날 보며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허나 최소한의 희생을 통해 전란을 막을 수 있다면 후일 황제폐하의 치세에 가장 큰 업적이 되실 것이옵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좋겠는가?”

명종이 이의방을 봤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누구를 파병군의 대장군으로 임명하면 좋겠는가?”

순간 일이 빠르게 진행됐다.

“지략이 출중하고 또한 수많은 전공을 새우신 분이어야 할 것이옵니다.”

점점 내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 무장이 누가 있는가?”

명종황제의 물음에 위위경 이의방은 찬찬히 중신들을 봤고 그저 아무 말도 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경진 대장군을 봤다.

“지략이 출중하고 무위가 뛰어나며 군사들에게 신망을 받는 분이어야 할 것입니다.”

“옳은 말이네.”

“소신의 생각으로는 경대장군이 적임자라 여겨지옵니다.”

순간 놀란 눈이 된 경대장군이 이의방을 봤다.

“경대장군이?”

“그렇사옵니다. 송과 금의 전란의 추후를 보고 판단해야 하니 지략과 인내심이 뛰어난 경대장군이 적임자 일 것이옵니다.”

나는 이번 일을 통해 경대승의 부친인 경대장군과 또한 경대승을 정리하고자 했다.

“경대장군!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미 말이 나왔으니 결론이 난 거나 다름이 없었다.

“폐하께서 명하신다면 따르겠나이다. 허나 군사는 소장이 이끌고 간다고 해도 금나라에서 요구한 군량은 어찌 확보를 한단 말이옵니까?”

“그 재물은 소장이 내겠사옵니다.”

위위경이 당당히 나섰다.

“위위경께서?”

“그렇사옵니다. 소장이 은자 50만 냥을 내놓겠사옵니다.”

위위경의 말에 대전은 모두 기겁을 했다.

“은자 50만 냥이라고 했소?”

“그렇사옵니다. 금나라에게 줄 군량을 백성들에게 거출한다면 그 피해가 막심할 것이옵니다. 그러니 제가 황실의 일원으로 희생을 할 것이옵니다.”

물론 지금 위위경 이의방이 내놓겠다는 은자 50만 냥은 내가 조 필지에게서 강탈한 바로 그 은자였다.

“적은 돈이 아니오. 위위경!”

명종황제도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소장의 가문이 책임지겠사옵니다.”

위위경 이의방이 단호하게 말했다.

“고맙소.”

명종황제가 위위경에게 고맙다는 표현으로 이미 이번 논의는 명종의 뜻대로 되고 있었다.

“위위경께서 금나라에게 줄 군량과 경대장군이 이끄실 군대의 군량을 내놓겠다고 하셨으니 다른 대신들은 사병을 각출하여 혹여 있을 북변 전란에 힘을 실어주셔야 할 것이옵니다.”

난 이 여세를 몰아 내가 생각했던 계략을 굳히려 했다.

“위위경이 군량을 내놨으니 사병을 각출하라?”

“그렇사옵니다.”

내 말에 대신들이 날 뚫어지게 봤다.

“이 모든 것이 고려가 힘이 없기 때문이지요. 소신 참지정사! 사병 일천을 내놓겠사옵니다.”

내 또 한 분의 장인이신 참지정사가 내 말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듯 나섰다.

“역시 참지정사이시오.”

명종황제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이제 큰 틀은 잡혔으니 세부적인 사항은 중방에서 대신들이 상론해서 정하면 되겠구려.”

명종황제는 이제 자신이 빠져 나갈 때라는 생각을 한 듯 보였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그럼 이래나 저래나 오래 금나라 순문사를 봐야하겠구려.”

“군량이 준비되고 또한 군사가 준비되어야 하니 그럴 것이옵니다. 폐하!”

위위경이 이제는 정말 입안의 허처럼 굴었다.

“그렇다면 금나라 사신을 위무함에 있어서 한 치의 소홀함도 없게 하시오. 이번 결정된 사항을 금나라 순문사에게 알리기 위해 성대한 연회를 열까 하오? 경들의 생각은 어떻소?”

앉으나 서나 금나라 사신의 눈치를 보고자 하는 명종황제였다.

“준비하겠나이다.”

“그러시오.”

명종황제는 짧게 말하며 용상에서 일어섰다.

“세부적인 사항은 참지정사와 위위경이 회의를 주관하시오.”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모두 얻었으니 빠져나가려는 속셈이었다.

“예. 황제폐하!”

황제가 대전을 떠나겠다고 하니 대신들이 모두 부복을 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저 난 조금 전 나를 봤던 그 차가운 눈빛이 떠올라 인상을 찡그렸다.‘세상에서 나만 잘 난 것은 분명 아닐 것이야!’자신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자가 끝내 당하는 법이다. 나는 명종황제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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