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3권 -- >사신관 고달기의 처소.고려를 배신한 고달기는 야율강의 계집처럼 야율강을 보며 술을 따르고 있었다. 그런 고달기를 야율강이 야릇하게 보고 있었다.
허나 그의 눈빛에는 고달기가 보통의 계집은 아니라는 생각을 담고 있는 듯 했다.‘고려든 금이든 둘 중 하나는 망칠 계집이다.
’야율강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달기가 자신의 옆에 있다는 것이 복이 될지 화가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허나 지금 고달기만큼 급변해버린 고려 정세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는 여자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야율강이었다.
“오늘 해가 뜨면 어떤 결정이든 내려지겠지.”
“그렇사옵니다. 대인.”
“분명 내 판단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대인의 판단이 무엇입니까?”
“지금 고려왕은 명분이 없다. 또한 정통성이 없다. 그것이 가장 큰 약점이 될 것이다. 무신들에 의해 왕이 되었으니 스스로 정통성이 없다고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를 등에 업으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얻고자 하는 모든것을 얻게 될 것이다.”
야율강의 말에 고달기는 씩 웃었다.
“그 웃음은 무엇을 의미하지?”
처음 고달기를 봤을 때 예사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야율강이었다. 또한 야율강은 거란인들 중에서도 몇 되지 않게 풍수와 관상을 볼 줄 아는 위인이었다. 천문에 밝고 팔괘에 능통하였기에 거란인으로 금의 신하가 되고 황제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 거란과 금은 철천지원수지간이라 할 수 있었다.금에 의해 거란이 망했고 거란이 망하기 전에 금의 주축세력인 여진인들을 핍박했으니 말이다. 또한 금의 핵심세력 중 하나인 발해인들 역시 거란에 의해 멸망을 했기에 금이 강해지고 제일 먼저 칠 나라가 바로 거란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발해의 복수를 해 준 금일 것이다. 그리고 따지고 본다면 금은 고려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었다. 항상 고려가 자신을 따르기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는 금을 배척하고 송과 유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이것이 바로 금이 고려에게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었다.정말 따지고 본다면 금과 고려는 같은 맥족으로 한 뿌리인데 말이다.
“고려왕이 금을 따르고자 해도 무신들이 그렇게 되게 두지 않을 것입니다. 고려무신들은 강성하고 자존감이 강합니다. 아시다시피 수십 년 전에 금이 수차례 정벌을 시도했지만 매번 척준경이라는 장군에 의해 대패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고려의 무장들은 금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척준경,,,,,,,.”
야율강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사실 고달기의 말이 아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렇습니다. 아직도 죽은 척준경의 망령이 고려 무인들의 뇌리에 박혀 있습니다. 또한 척준경의 부장들이 지금 고려의 대장군들이 되어 있습니다. 이 소응이 그렇고 또 기탁성이라는 대장군이 그렇습니다.”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고달기였다.물론 그것은 고달기의 부친이 되는 죽은 채원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일 거다. 정말 채원이 파락호에 불학무식한자이기는 했으나 딸 하나는 모질게 잘 키워낸 것 같았다.
“그렇지.”
“더욱 더 고려를 압박해야 할 것입니다.”
“더 고려를 압박한다?”
“그렇습니다. 뿌리가 같다고 해서 항상 같이 손을 잡고 웃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금이 송을 치는 것보다 고려를 치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진정 고달기가 원하는 것은 고려의 패망이었다.
“너는 고려인데 고려가 망하는 것을 원하고 있구나.”
야율강은 고달기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려가 망하면 새로운 나라가 만들어지겠지요. 호호호!”
고달기가 요사스럽게 웃었다.
“새로운 나라?”
“그렇습니다. 고려가 만들어지기 전에 신라가 있었고 신라가 있기 전에 고구려와 백제도 같이 공존을 했습니다. 또한 그 전에 부여가 있었습니다. 그 전에도 무엇인가가 있어왔습니다.”
정말 많은 것을 아는 고달기였다.
“그렇기는 하지.”
“고려가 망해야 금이 살 것입니다.”
고달기는 이제 노골적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다.
“쉬운 일은 아니다. 금이 아무리 강성하다고는 하나 겨우 이제 내치의 안정을 찾았다.”
“안정을 찾았으니 이제는 힘을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송을 치려는 것 아닙니까?”
주변 정세를 정확하게 보고 있는 고달기였다.
“그렇기는 하지. 허나 더 이상 압박할 방법이 없다.”
야율강의 말에 고달기가 야릇하게 웃었다.
“대인께서 틈을 주시면 척준경의 망령들이 기회를 줄 것입니다.”
“기회를 준다?”
“이 상황에서 가장 크게 고려를 압박할 수 있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대인.”
이 순간 이 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고달기였다. 진정 계집이 한을 품으면 서리가 아니라 대설이 내리는 모양이다.
“무엇이냐?”
야율강의 물음에 고달기의 눈가에 살기가 감돌았다. 또한 그 살기를 야율강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송구하오나 제 판단으로는 대인이 시해되시는 것이옵니다.”
고달기의 말에 야율강이 고달기를 뚫어지게 봤다.
“너라는 계집은 참으로 뱀 같은 머리를 가졌구나! 정말 차가운 판단이다. 허나 내가 죽어 금에게 이득이 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 순간 야율강은 거란인으로 거란인의 한계를 고달기에게 보였다. 또한 야율강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또 가문이 번성하기 위해 거란을 버리고 금을 택한 거라는 것을 고달기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거란인이다. 거란인이 금에 충성을 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스스로 살아남아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거란이 멸망하고 서요로 쫓겨 난 후 오직 나와 내 가문은 살아남기 위해 투쟁했다.”
“호호호! 그런가요. 그러니 이번에도 다시 투쟁을 하셔야죠.”
“투쟁이라?”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겁니다. 대인께서 그들의 검에 당하신다면 이년은 누구를 의지합니까.”
“나를 의지하겠다는 것이냐?”
야율강은 다시 고달기를 봤다. 그리고 찬찬히 그녀의 관상을 다시 살폈다. 그 순간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제왕지기의 기운이 느껴지는 야율강이었다.
‘황제를 낳을 상이다. 내 왜 진작 보지 못했단 말인가?’순간 야율강은 기겁을 했다.
‘허나 그 다음이 문제이구나!’야율강은 고달기에게서 또 다른 면을 관상으로 봤다.
“그럼 넌 무엇이 되고 싶으냐?”
“무엇을 만들어주시겠습니까.”
역시 뱀처럼 차가운 판단력을 가진 고달기였다.
“내가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냐?”
“그렇지 않사옵니까? 저는 한낱 공녀에 불가하옵니다.”
“무엇이 되고 싶으냐?”
“제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입니까?”
다시 한 번 답을 회피하는 고달기였다.
“으음,,,,,,,.”
“지금은 제가 무엇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고려를 압박할 빌미를 제공해 주는 거냐는 겁니다.”
“내가 죽으면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지금 가시면 아니 되시지 않습니까? 제가 낳을 아들의 스승이 되어,,,,,,,.”
고달기는 야릇하게 웃으며 뒷말을 흐렸다.
“그래 좋다. 더욱 고려를 압박할 방법을 찾아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이의방의 목을 베어야 할 것이고 또한 이의방의 머리가 되고 있는 이 회생의 목을 베어야 할 것입니다.”
고려를 멸망시키는 것이 고달기의 큰 전쟁이라면 위위경인 이의방과 이회생을 제거하는 것이 그녀의 작은 전투일 것 같았다.
“이 회생이라?”
“그렇습니다. 이 고려 정세에 이의방과 이회생을 제거하지 않고 고려를 압박하거나 멸망시킬 순 없습니다.”
고달기의 말에 야율강이 야릇하게 웃었다.
“하나의 돌을 던져 새 두 마리를 잡아야 한단 말이지.”
“그렇사옵니다.”
“그러려면 사냥만한 것이 없지.”
뭔가 계략이 떠오르는 야율강인 듯 보였다. 그리고 잠시 야율강이 고달기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쉬시게. 자네가 한 말을 내 깊이 생각해 보지.”
“생각까지 해 주신다면 감사하옵니다.”
고달기의 말에 야율강이 다시 한 번 고달기를 봤다.‘황제를 낳을 관상이 분명해! 이것은 내게 또 하나의 기회일 것이야!’야율강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곧 시간이 지나면 그대에게 하대를 할 처지가 못 되겠군.”
“그러십니까?”
야릇하게 웃는 고달기였다.
“진정 고려의 적이 그대라는 것을 고려는 알지 못하기에 큰 화를 입게 될 것이야.”
“주무시고 가시지 않겠사옵니까?”
고달기가 야릇하게 야율강을 봤다.
“뭐라?”
“그것이 저의 소임이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내게 그대가 낳을 아들의 스승이 되어 달라는 건가?”
야율강이 뚫어지게 고달기를 봤다.
“옛 중원에서는 여씨가 여씨가 아니 될 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순간 야율강이 기겁한 눈빛으로 고달기를 봤다.
“뭐라?”
지금 야율강이 놀라는 것은 고달기가 진시황의 출생 가설중 하나를 야율강인 자신에게 말하고 행하고자 하기 때문이었다.고달기가 말하는 여씨는 바로 진나라의 재상 여불위였다.
여불의 그는 원래 양책(陽翟:河南)의 대상인(大商人)이었다. 그는 국경을 넘나들며 국제무역을 하는 대상인이었다. 또한 이를 통해 억만금을 모은 전국시대에서도 가장 알아주는 대부호이기도 했다.
특히 여불위는 수완이 뛰어나고 이재에 밝았다. 여불위가 조(趙)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으로 갔을 때 진나라의 서공자(庶公子)로 볼모로 잡혀 있는 자초(子楚)를 알게 되었고 그의 상황을 알아보고 자신의 후일을 자초에게 거는 모험을 감행했다.
사실 자초는 진나라의 소왕(昭王)의 둘째 아들인 안국군(安國君)의 가운데 아들이었다. 남자와 남자가 서로 친해지고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계집이 필요했고 마침 여불위에게는 여자가 있었는데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그 여자를 자초에게 주었다. 또한 여불위는 자초가 진나라로 귀국할 수 있게 도움을 제공하였고 후일 자초는 왕위에 올라 장양왕(莊襄王)이 되었다.
그 공로에 의해 여불위는 진나라 승상(丞相)이 되어 문신후(文信侯)에 봉하여졌다. 장양왕이 즉위한지 3년 만에 죽자 《사기(史記)》에 여불위의 친자식이라고 기록된 태자 정(政:始皇帝)이 왕위에 올랐으며 그가 진시황제이다.
최고의 상국(相國)이 되어 중부(仲父)라는 칭호로 불리며 중용되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태후(太后:진시황의 모후이자 여불위의 첩)와 밀통관계를 유지하였다. 하지만 여불위는 이 관계가 두려워 노애라는 사내를 태후에게 보내어 정을 통하게 하였다. 태자 정이 성장하여 태후와 노애의 관계를 알게 되었고 노애는 태자를 제거하려는 반란을 일으켰다가 극형을 당하였다.
여불위는 이 사건에 연루되어 상국에서 파면되어 촉 땅으로 귀양을 가게 되고 만다. 여불위는 점점 압박해오는 진왕 정의 중압감을 못 이겨 마침내 자살하니 진정 파란만장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여씨의 말년이 그리 평온하지는 않았지. 쉬시게.”
야율강이 짧게 말하며 고달기의 처소를 나왔고 그 순간 고달기는 등을 돌린 야율강을 뚫어지게 노려봤다.‘나를 알고 내치지 않았으니 어떤 방법이든 그대는 내 품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정말 독한 계집이 바로 고달기였다.
지금 이 순간 그녀가 태자비의 신분에서 공녀로 변해 있었지만 그녀가 태자비가 되었다고 해도 분명 회생과는 적이 될 것이 분명했다.고려라는 숲에 머리 좋은 여우는 하나면 족하니 말이다.
위위경 이의방의 사랑채.난 한참을 말없이 나를 보고도 아무 말도 없는 이의방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 결정이 서지 않은 것이야!’분명 이의방은 뭔가 중요한 결정을 하기 위해 나를 부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결정을 내 의견을 통해 마무리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예전 흥왕사에서 첫 거사를 다짐할 때처럼 말이다.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은 이의방이 나를 사위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였다.
물론 나 역시 이의방을 장인이 될 위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내 장인이 될 위인이 내게도 위험하고 이 고려황실에도 위험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는 거였다.
‘한 치 건너 두 치라고 했어.’난 나도 모르게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따지고 보면 고려황실은 내 본가이고 위위경은 내 처가이니 당연히 본가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위!”
이제야 이의방이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예. 장인어른.”
“나는 지금 사위와 장인으로 보고 있는 것이네.”
“이미 들어 알고 있습니다.”
난 나직이 말했다.‘정말 뭔가 중대한 결정을 할 참이야!’이건 분명 고려황실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황제폐하를 옹립한 것은 내 사위이지.”
위위경 이의방은 과거를 회상하듯 말했다.
“장인의 뜻이라고 생각되옵니다.”
“내 뜻이다? 그렇지. 사위의 뜻이 곧 내 뜻이 되었던 순간이었으니까.”
“무엇이 그리 답답하시옵니까?”
내 물음에 위위경 이의방이 나를 뚫어지게 봤다.
“황제께서 내 차녀의 시아버지가 되시는 분께서 안타깝게도 금과 굴욕적인 화친을 생각하고 계시네.”
위위경 이의방의 말에 난 지그시 눈을 감았다. 물론 여기까지는 내가 예상하고 있던 거였다.
“저를 부르신 것은 뜻을 같이 하기 위함이시옵니까?”
“그렇지.”
“제 의견이 마지막 결정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있기는 하옵니까?”
내 말에 위위경 이의방이 나를 빤히 봤다.
“사위가 이 장인을 이해시킬 수 있다면.”
이 순간 난 다시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고려의 나갈 길에 무척이나 큰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정말 답답한 숙부이군.’난 명종황제가 떠올라 인상을 찡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