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2권. -- >개경 송방.표면적으로 벽란도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개경 송방의 본전의 분위기는 침울하다 못해 긴장감까지 감돌고 있었다. 개성상인.고려 때도 개성에는 시전을 설치하고 정부의 보호 아래 국내 각 지역과 송나라를 대상으로 활동을 하던 상인들이 있었으나 일반적으로 송상이라고 하면 조선의 사상(私商)을 가리킨다.
고려 때 개성에서 활동하던 대규모 상인들은 조선건국 후에도 상업 활동을 계속했으며, 벼슬길이 막힌 고려의 일부 관료들도 상업에 종사했다. 이들은 전국적 규모의 상업을 통해 조선 초부터 많은 이익을 올렸다. 그러다 조선 후기에 들어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고 청과의 무역이 활발해짐에 따라 그 활동이 더욱 두드러졌다.
이들은 각지에 송방을 설치해 전국을 무대로 상업활동을 했으며, 역관을 비롯한 관상(官商)과 밀착하거나 의주상인·동래상인들과 연계를 맺으며 대외무역에 적극 참여했다. 이렇게 번창하기만 하던 개성상인 송상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거였다.
물론 그 위기를 자초한 것은 그들의 탐욕이지만 그 위기를 표면화시킨 것은 이회생이었다.
상석에 개경 송상의 거두인 윤지순이 앉아 있고 행수들은 그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대방 어르신!”
대방이라 함은 송상의 거두인 윤지순을 말하는 거였다.행수 하나가 윤지순의 눈치를 보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
“으음,,,,,,.”
허나 개경 송상과 가장 많은 거래를 하고 있던 송의 조 필지 상단의 상단주인 조필지가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이렇다 할 답을 낼 수 없는 윤지수였기에 한숨만 늘어나고 있었다.
“이러다가 조필지 그자가 자복이라도 하는 날에는 지금까지 쌓아놓은 송상의 입지는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옵니다.”
행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허나 쉽게 토설을 하지는 못 할 것이야!”
드디어 송상의 거두인 윤지순이 입을 열었다.
“하오나 고신에 이겨낼 자는 없습니다. 대방어르신!”
“고신이라,,, 누가 감히 송나라 황실과 줄이 닿아 있는 조 필지를 고신한단 말인가?”
윤지순은 믿는 구석이 있는 듯 했다.
“하오나 무부들이 이번 기회를 노려 뭔가 많은 것을 얻으려 하지 않겠사옵니까?”
행수는 지레 걱정을 하고 있었다.
“무부들이라,,,,,,.”
“그렇습니다. 대방어르신!”
“그럴 수도 있겠군. 허나 조 필지 그자가 머리가 있다면 쉽게 토설하지는 않을 것이야!”
“그건 모르는 일이옵니다. 감찰어사 최철호라는 자는 외압에 굴복하는 그런 자가 아니라하옵니다. 역적 채원의 죄도 끝까지 추궁한 자라고 하옵니다.”
행수의 말에 절로 인상을 찡그리는 대방 윤지순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되물음에 대답을 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또한 지금 이 순간 답을 가지고 있는 자 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저 자신들이 저지른 죄가 밝혀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허나 회생이 이미 먹잇감으로 지목을 한 상태였기에 개경 송상도 곧 탈탈 털리게 되어 있었다.
“우선 사태를 지켜보세.”
결국 탁상공론으로 끝이 나는 듯 했다.그때 젊은 행수 하나가 윤지수를 봤다.
“이번 사태를 잘 살펴야 할 것이옵니다.”
젊은 행수의 말에 윤지수를 비롯한 다른 행수들이 그를 빤히 봤다.
“누가 그것을 모르는 건가? 이치돈!”
대방 윤지순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번 사태는 탐욕이 화를 부른 것입니다. 조 필지는 인삼을 독점하고자 했기에 이런 사태가 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파가 송상까지 올까 해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잘 생각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대방 윤지순이 이치돈을 노려봤다.
“조필지는 지금 덫에 걸린 것입니다.”
“조필지가 덫에 걸렸다?”
“그렇사옵니다. 분명 덫에 걸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덫은 송상의 목을 졸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치돈은 자신의 이야기를 빤히 듣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당당히 말했다.
“목을 조른다. 그럼 어찌 하자는 건가?”
“누가 조필지의 목을 조르고 있는지부터 알아내야 할 것입니다.”
“그야 감찰어사이지 않나?”
“겨우 감찰어사가 송나라 황실과 연결되어 있는 조 필지를 건드릴 수 있다고 보시는 것입니까? 대방어르신!”
순간 윤지순은 뭐가 크게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럼 그 이상이 있다는 건가?”
“그렇사옵니다. 지금 감찰어사대가 곧 부마도위가 될 이 회생을 감찰어사대로 연행했다고 하옵니다.”
이치돈의 말을 들은 대방 윤지순은 기겁을 했다. 부마도위까지 연행했다는 것은 일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였다. 또한 조 필지 상단과 연결되어 있는 모든 상단을 조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였다.
“부마도위 이 회생을?”
“그렇사옵니다. 그것을 저희는 유심히 살펴야 하옵니다.”
“그 점을 유심히 살피다니?”
의문이 연속되는 순간이지만 대방 윤지순은 뭔가 길이 보인다는 생각이 드는 눈빛을 보였다.
“그렇습니다. 지금 조 필지 상단의 목을 조르는 것은 황실입니다.”
엄청난 억측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이렇게 이치돈이 억측을 할 수 있는 것은 이 회생이 감찰어사대의 뇌옥으로 연행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황, 황실이다?”
“그렇사옵니다. 아무리 감찰어사대의 최철호 어사가 강직하다고는 하나 쉬이 부마도위를 연행할 수는 없사옵니다. 또한 이 회생이 누구이옵니까? 위위경 이의방의 사위이기도 하옵니다. 그런 자를 연행할 수 있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이 다 이 회생이 꾸민 일이라는 것이옵니다.”
쿵!순간 윤지순은 심장이 내려앉은 듯 했다.
“그, 그렇구나! 그리 되는 것이구나.”
“이제 저희 송상이 선택할 것은 딱 하나뿐이옵니다.”
이치돈은 그렇게 말하고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무엇이냐?”
“이 회생에게 납작 엎드려 살려달라고 비는 일이옵니다.”
“부마도위에게 빌어?”
“그렇사옵니다. 벽란도 상권의 반을 헌납하더라도 비는 것이옵니다.”
“괜한 소리를 하고 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행수 하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괜한 소리 같아 보이십니까? 사태를 보십시오. 사태를!”
“장부에 기록된 것이 없다. 그리고 그 기록된 것이 있다고 해도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시국이 장부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죄를 받는 세상이었습니까? 찍으면 찍히는 세상입니다.”
이치돈은 지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으음,,,,,,,.”
그저 이야기를 듣고 있는 대방 윤지순은 길게 신음을 할 뿐이었다. 이치돈의 말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나?”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이치돈의 말에 모두 다 눈이 커졌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다 내놓는다?”
“그렇사옵니다.”
“지금까지 이룬 것을 다 내놓으면,,,,,,,.”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순간은 분명했다.
“목숨을 건질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상인이 권력에 가까이 가는 것도 경계해야 하는 것이지만 멀어지는 것도 경계해야 하옵니다. 이번 참에 다 내놓고 다시 권력에 가까이 붙는 것이옵니다. 그렇게 된다면 곧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권력이라 함은?”
“이번 일을 꾸민 이 회생이옵니다. 그는 이 고려의 권력이옵니다.”
이치돈은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보고 있는 듯 했다.
“우리가 그럼 무엇을 하면 되는 것인가?”
윤지순은 이치돈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착복한 세액과 그동안 얻은 이문을 모두 내놓고 바짝 엎드리는 것입니다.”
“다 내놓는다?”
“그렇사옵니다.”
“그것도 이 회생에게 다 내놓는다?”
“그렇습니다. 분명 이 회생은 감찰어사대에 조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황실의 최고 어른이신 태후가 나설 것이고 바로 옥에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나겠사옵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조 필지는 3배 이상의 세액을 내고 인삼을 가져가게 될 것입니다.”
“3배 이상의 세액이라고?”
“그렇습니다. 이 회생의 간계에 탈탈 털리게 되는 것입니다.”
“인삼 거래 금액이 얼마라 하였는가?”
이건 누구도 모르는 극비사항이었다.
“짐작하건데 최소 은자 100만 냥 이상은 될 것이옵니다.”
이치돈의 말에 윤지순은 기겁을 했다.
“은자 100만 냥이라 했는가?”
“그렇사옵니다. 기본 세액이 그렇게 되면 은자 10만 냥이옵니다. 허나 3배 이상을 더 주고 인삼을 가지고 갈 것이옵니다. 아무리 그래도 송나라 황실과 연이 닿아 있으니 말입니다. 철저히 계획된 입이옵니다.”
이치돈의 말에 모두 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는 얼마나 내놔야 하는 건가?”
이 순간 대방 윤지순과 나머지 행수들은 모두 이치돈을 봤다.
“다다익선이옵니다.”
그 말에 지그시 모두 다 입술을 깨물었다.
“하오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사옵니다. 이번 참에 저희 상단은 조 필지 상단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사옵니다. 그리고 더 큰 그늘로 상단을 의탁하게 될 것이옵니다.”
“더 큰 그늘이라면?”
“황실과 중방의 핵심인 이 회생에게 상단을 의탁하는 것이옵니다.”
“알았네. 분명 위기이기는 하나 기회이기도 하군.”
지금까지 개경 송상은 송나라 상단인 조 필지 상단에게 간섭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벽란도를 장악하고 있는 조 필지 상단의 힘을 벽란도에서 걷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란 생각을 하고 있는 이치돈인 것이다.
“얼마를 내놓으면 되겠는가?”
“최소 100만 냥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100만 냥이라고 했나?”
“그렇사옵니다. 그 정도는 헌납을 해야 상단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알았네. 그렇기 하지.”
대방 윤지순이 드디어 결정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자네가 이 회생을 만나게.”
“예. 대방어른!”
이회생의 움직임을 통해 일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건 이치돈이 그만큼 사태를 보는 눈이 탁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했다.감찰어사대의 뇌옥.뇌옥 문이 요란하게 열리고 난 감찰어사대의 장졸에 이끌려 뇌옥으로 하옥되는 듯 보이고 있었다.
“놔라! 이놈들! 내가 누군지 모르고 이런 짓을 하는 것이냐?”
내 불호령에 감찰어사대의 장졸들은 기겁을 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송구하옵니다. 부마도위님 아니 감찰어사님.”
“내가 부마도위와 감찰어사이기만 하더냐? 난 견룡행수다. 이놈!”
“아오나 이철호 어사의 불호령이 있어서,,,,,,.”
“내 이놈들 내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송, 송구하옵니다.”
“그래. 오냐! 내 뇌옥에 들어가 주지. 허나 그 책임은 너희들이 저야 할 것이다.”
난 버럭 소리를 지르며 스스로 뇌옥으로 들어섰다. 그 모습에 장졸들은 더욱 기겁을 했고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조필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최대한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사옵니다.”
장졸 하나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내 이곳에 오래 있지 않도록 가서 영화공주께 전해라! 내가 여기에 있다고.”
“하오나 그렇게 하다가는,,,,,,,,.”
최철호 어사에게 목이 잘린다는 투로 말하는 장졸이었다.
“내가 곧 나가게 되면 다 목이 잘릴 것이다. 고하는 자만 살려둘 것이다.”
내 말에 장졸들이 기겁을 했다.
“전, 전하면 살려주시는 것이옵니까?”
“그래. 살려줄 것이다. 또한 상도 줄 것이다. 뭐 하느냐? 문을 닫지 않고 내 세상이 아무리 험하게 돌아간다고 해도 부마도위가 이렇게 뇌옥에 갇히는구나!”
“송구하옵니다.”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장졸들은 조심히 문을 닫고 불이 나게 밖으로 나갔고 난 분이 풀리지 않는 얼굴로 조필지와 왕준명을 노려봤다.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면 어찌한단 말이요.”
난 버럭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