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2권. -- >난 공예태후를 만나는 것으로 해 내 계략의 모든 포석을 깔고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신라방에게 개경에서 생산된 인삼 1만근을 넘겨주는 일이었다. 이 일은 만적이 할 것이다. 그리고 내 밀명을 받은 왕준명이 조 필지 상단과 거래를 하기 위해 예성강 포구 상류로 이미 떠난 상태였다.
조 필지 상단에게는 쥐약이 될 4천근의 인삼을 들고 말이다.물론 모든 거래가 끝이 났을 때 내 지시를 이미 받은 감찰어사 최철호가 감찰어사대와 무장들을 대동하고 현장을 덮치는 것이 내 계획의 전부였다.
“일이 잘 될 거야!”
난 개경 인근의 삼밭에 도착해 그렇게 중얼거렸고 내가 삼밭으로 다가오자 저 멀리서 만적이 나를 보고 뛰어왔다.
“주군! 오셨습니까?”
“일은?”
“이곳까지 해서 총 만 200근입니다.”
“그럼 200근은 덤으로 줘.”
“200근이면 금자 200냥입니다. 주군!”
“큰 거래니 손해 볼 것이 없다.”
“예. 주군.”
“너는 조 필지 상단이 눈치를 채지 못하게 신라방에 이 인삼을 넘기면 된다.”
“알고 있습니다.”
“은밀히 움직여야 할 것이다.”
“예. 주군. 그런데 거래 대금은 무엇으로 받아오면 되겠습니까?”
만적은 인삼 1만근의 거래 대금을 환으로 받아 올 것인지 아니면 금자로 받아 올 것인지를 내게 묻는 거였다.
“그냥 주는 대로 받아와.”
“그냥 주는 대로 받아 오란 말씀이십니까?”
내 말에 놀라 눈이 커지는 만적이었다.
“그래. 무엇을 주던 군말 하지 말고.”
“예. 주군.”
그렇게 만적은 신라방 상단의 총방주인 김승주를 만나기 위해 떠났고 상인으로 위장을 한 별초들이 만적을 호위하듯 따랐다. 물론 원거리에서는 내 가병들이 은밀히 만적을 보호하기 위해 따르고 있었다.‘만사불여튼튼이지.’난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만적을 보며 씩 웃었다.
“그럼 이제 예성강 상류로 가 볼까?”
난 바로 말에 올랐다.
“조 필지 그놈이 놀라는 꼴을 보고 싶군.”
난 예성강 상류가 있는 어두운 하늘 쪽을 보며 씩 웃었다.예성강 포구 상류.원래 불법적인 짓을 하게 되면 주변을 살피게 되는 것인지 조 필지와 그의 상단 행수들 그리고 금자 200만 냥을 호위하고 있는 상단 무사들은 주변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물론 잔뜩 긴장을 한 왕준명도 주변을 살피며 먼저와 기다리고 있는 조 필지 상단에 다가섰다. 난 늦게 도착을 했지만 그 모습을 나무숲에 숨어 지켜봤다.
‘이 어딘가에 감찰어사대가 잠복해 있겠지.’난 최철호 어사를 떠올렸다.조 필지는 내가 아닌 왕준명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회생공은 오지 않으신 건가?”
“회생공께서는 급한 일이 있다 하셨습니다.”
“급한 일?”
조 필지는 순간 어이가 없다는 눈빛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다. 얼마나 급한 일이기에 금자 2만 냥에 대한 거래를 뒤로 하고 갔냐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렇소.”
“좋소. 인삼은 어디에 있소?”
조필지가 왕준명에게 물었다.
“그 전에 금자는?”
조급할 것이 없는 왕준명이 허세를 부리듯 먼저 거래대금으로 줄 금자를 보자고 말했고 조 필지는 인상을 찡그리며 뒤에 있는 수레를 봤다.
“저 수레에 있소.”
“여시오.”
“지금 조필지 상단을 못 믿겠다는 건가?”
“매사에 확인을 잘 하는 것이 서로 좋은 일 아닙니까?”
왕준명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좋소. 그럼 그대가 금자를 확인하고 나는 인삼을 확인하겠소.”
“편하실 대로.”
왕준명은 조 필지를 보며 씩 웃으며 앞으로 나섰고 왕준명을 따라 상단무사로 위장한 별초 둘이 왕준명을 따랐다.그리고 왕준명이 수레 앞에 서자 조 필지 상단의 행수들이 왕준명이 잘 보라고 금자가 든 궤짝을 열어보였다. 그 순간 번쩍이는 금자가 왕준명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한 상자에 금자 천 냥 씩 20상자요.”
“하하하! 내 살다 이보다 더 큰 거래는 다시는 못할 것이요.”
“그래야 할 것이요. 제 명에 살고 싶다면.”
분을 참지 못한 조 필지 상단의 행수 하나가 퉁명스럽게 말했고 왕준명은 그 행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만한 금자면 명줄을 걸어 볼만 하지.”
그렇게 왕준명이 금자를 확인할 때 조 필지는 인삼이 실린 수레를 확인하며 탐욕스러운 눈동자를 번뜩였다.그리고 모든 확인이 끝나고 나서 수레를 그대로 두고 사람들만 이동을 해 자리를 바꿨다.
“정말 큰 거래인데 회생공과 직접 하지 못해 아쉽다고 전해 주시오.”
조필지가 차분히 말했다. 비록 인삼 한 근당 평상시의 시세보다 몇 배나 주고 사기는 했지만 고려의 인삼을 모두 독점한다는 생각에 꽤나 큰 기대감에 차 있는 듯 했다.
“그렇게 전하겠소.”
“은밀히 진행하는 일이니 고려 조정과 황실이 모르게 해야 할 것이오.”
“알고 있소. 이번 일이 발각이 되면 목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것을.”
왕준명은 그렇게 말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것을 아는 자들이 이렇게 고려 조정을 기망하는 밀거래를 하는 것인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내가 보기에도 정말 극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감찰어사 최철호의 호령과 함께 순식간에 조필지 상단과 왕준명이 이끌고 온 별초들이 포위가 됐다.
‘정말 멋진 등장이시군.’난 순식간에 횃불을 들고 밀거래를 하고 있는 조 필지 상단과 왕준명을 이끌고 온 내 별초들을 포위한 감찰어사대를 보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내가 웃는 것에 반해 조 필지는 감찰어사대의 등장에 기겁을 했고 왕준명은 너무나 놀란 척을 하기 위해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누가 나랏법으로 금하는 밀거래를 하는가?”
감찰어사 최철호가 지엄한 목소리로 호령했다.
“국법을 어긴 자들을 모두 포박하라.”
감찰어사 최철호의 명에 순간 별초들이 두 상단을 포위했고 그와 동시에 조 필지 상단의 상단무사들이 검을 뽑아들었다.
“반항을 하겠다는 것이냐?”
감찰어사 최철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와 동시에 조필지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모두 검을 버려라.”
“하오나 대인,,,,,,.”
“하늘이 나를 버리는 것이지. 지금 무력충돌이 있다면 진정 우린 고려에서 더 이상은 상단을 꾸릴 수가 없다.”
“하, 하오나,,,,,,,.”
상단 무사 중에 수장 격인 자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어쩔 수 없다. 어서 검을 버려.”
챙!챙! 챙!일제히 검이 바닥에 버려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엇을 하느냐? 저 간악한 상인 놈들을 어서 포박하지 않고.”
“예. 감찰어사!”
일제히 감찰어사대의 장졸들이 무기를 버린 조 필지 상단의 상단 무사들을 포박했고 또한 왕준명이 이끌고 온 별초들을 포박했다.그때 장중을 호령하던 감찰어사 최철호가 왕준명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네는 감찰어사 이회생의 가신이 아닌가?”
놀란 어투로 묻는 최철호를 보자 왕준명은 고개를 돌렸다.
“어찌 된 일인가?”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뭐라 할 말이 없다.”
쫙!순간 감찰어사 최철호가 왕준명에게 따귀를 때렸다.
“이 사실을 회생도 아는가? 설마 곧 부마도위가 될 회생공이 나랏법으로 금하는 밀거래를 자행했단 말인가? 어서 말하라.”
감찰어사 최철호가 크게 노해 소리를 치자 이미 포박이 된 조필지가 최철호와 왕준명을 봤다.
“제가 독, 독단으로 한 짓입니다.”
“어찌 내게 독단으로 이 엄청난 짓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이실직고 하지 못할까?”
감찰어사 최철호가 소리를 질렀다.
“회생공은 모르십니다. 저 혼자 저지른 일입니다.”
“혼자 했다?”
“그렇사옵니다. 감찰어사!”
“절대 혼자 했을 리가 없다.”
그때 감찰어사대의 무장 하나가 궤짝에서 금자를 들고 놀란 기색으로 감찰어사 최철호에게 달려왔다.
“감찰어사 나리.”
“왜 그러느냐?”
“이것을 보십시오.”
무장이 감찰어사 최철호에게 금자를 내 보였다.
“이것은 금자가 아니냐?”
“그렇사옵니다. 궤짝 20개에 모두 금자가 들어있사옵니다. 족히 1만 냥은 넘어 보입니다.”
“뭐라? 일, 일 만 냥?”
“그렇사옵니다.”
무장의 대답에 감찰어사 최철호가 다시 왕준명을 노려봤다.
“족히 만 냥이 넘는 거래를 네놈 혼자 저질렀다고?”
“그렇사옵니다. 회생공은 모르는 일입니다.”
다시 왕준명이 혼자 저지른 일이라고 고하자 감찰어사 최철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안 되겠다. 저놈이 바른 말을 할 때까지 처라!”
그와 동시에 포박되어 있는 왕준명에게 전 별초였던 무장들이 달려가 매질을 했다.퍽퍽!퍼어억!
“으악! 으윽!”
“어서 실토를 하지 못할까?”
“저 혼자 한 것이옵니다.”
“바른 말을 할 때까지 쳐라.”
“예. 감찰어사!”
무장이 대답을 하고 정말 모질게 왕준명을 매질했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조 필지와 조 필지 상단의 행수들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그리고 그들이 몸을 떠는 순간 서슬이 퍼런 감찰어사 최철호의 독기어린 눈동자가 조 필지를 노려봤다.
“이 자와 거래를 한 자의 수장이 누구냐?”
그 순간 조 필지는 고개를 숙였고 예전 만적을 만났던 행수가 고개를 들었다.
“소인이요.”
“네놈은 어느 상단의 소속이냐?”
“나는,,, 나는,,,,,,,.”
“어서 말하지 못할까?”
“조필지 상단이오.”
행수는 자신이 조 필지 상단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렇게 자신의 상단 명을 밝힌 것은 조필지 상단이 송황실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것을 고려조정이 알기 때문이었다.
“조 필지 상단?”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조 필지는 어디에 있느냐?”
감찰어사 최철호의 말에 조 필지는 더욱 고개를 숙이는 듯 했다. 허나 아무리 고개를 숙여도 끝내 탄로가 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조필지가 고개를 들었다.
“여기에 있소.”
“네놈이 정말 조필지란 말이냐?”
조 필지는 고려에서도 꽤나 영향력이 있는 위인이었다. 고관대작들에게 상납하는 뇌물도 상당한 위인이니 말이다.
“그렇소.”
“네 이놈! 어찌 고려 황실의 은총을 입고 벽란도에서 장사를 하는 자가 나랏법으로 엄중히 금하는 밀무역을 한단 말이냐?”
“급한 거래라 고하지 못했을 뿐이요. 거래 후에 고려 조정에 납부할 세액을 내려고 했소.”
조 필지는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 했다.
“네 이놈! 지금 네놈이 고려의 감찰어사를 기망하려는 것이냐?”
“정말 고하려 했소.”
“안 되겠다. 저놈도 매질을 해라.”
감찰어사 최철호의 명에 일제히 무장들이 달려들었고 그와 동시에 조 필지는 왕준명 보다 더 모질게 매질을 당했다.퍽퍽퍽!
“으악!”
“그만!”
감찰어사 최철호가 그만하라고 명을 내리자 지금까지 조 필지를 매질하던 무장들이 뒤로 물러났다.
“다시 거짓을 고한다면 매질을 할 것이다.”
“으윽!”
“다시 묻겠다. 저기 있는 왕준명이라는 놈은 자신이 혼자 저지른 일이라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이냐?”
그 순간 조 필지는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감찰어사 최철호를 보는 듯 했다.
“그, 그렇소. 자신 혼자 거래를 하는 것이라고 했소. 그렇기에 이렇게 은밀히 거래를 하는 것이오.”
“진정이더냐?”
“그렇소.”
“더 조사를 해 보면 나오겠지.”
감찰어사 최철호는 고개를 돌려 감찰어사대의 무장들을 봤다.
“이놈들을 모두 황성 옥에 가둬라.”
“예. 감찰어사!”
이렇게 내 계획은 착착 진행이 되고 있었다.같은 시간 대전.중방을 박차고 나선 이의방의 공예태후 전에서 돌아온 명종황제를 독대하고 있었다. 이의방이 부복한 모습을 보고 있는 명종황제의 표정은 침울하기만 했다.
“이 야심한 밤에 위위경께서 어인 일인가?”
“중방에서 금나라 순문사의 패악 무도한 행동 때문에 회의가 이어지고 있나이다.”
“패악 무도하다?”
“그렇지 않사옵니까? 황제폐하!”
이의방은 이 독대의 순간까지도 강경하게 금나라 순문사를 질타하듯 말했다.
“그대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가?”
“그렇사옵니다. 이 야심한 시각까지 회의가 이어지고는 있사오나 모두 다 탁상공론에 불가하옵니다. 조정신료들은 금나라 황제의 100만 대군이 두려워 그저 전전긍긍하고 있나이다. 하오나 황제폐하께서는 심려를 거두십시오. 이 위위경이 있는 한 금나라는 절대 천리장성을 넘지 못할 것이옵니다.”
“천리장성을 못 넘는다? 전쟁을 하잔 말인가?”
이미 화친을 생각하고 금나라 순문사 야율강이 요구한 군량미를 지원할 생각을 하고 있는 명종황제였기에 이의방의 말이 달갑지 않았다.
“그렇사옵니다. 고려의 무장들이 굳건히 황제폐하와 고려의 사직을 지켜낼 것이옵니다.”
“능히 이길 수 있겠는가?”
“능히 이길 수 있사옵니다.”
“만약에 지게 된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짐이 만약이라고 했네.”
“그런 일은,,,,,,,.”
“만약에 고려의 무장들이 금나라 대군을 막지 못하게 된다면 나는 폐위가 될 것이고 그대의 사위인 태자는 폐서인이 될 것이네.”
명종황제의 말에 위위경인 이의방이 인상을 찡그렸다.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굴욕적이기는 하나 금은 천하를 호령하는 대국이네. 또한 짐과 그대는 지킬 것이 많네. 그대는 그대의 사위인 태자가 황제가 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는가? 또한 그대의 외손이 다음 황제가 되는 것을 봐야 하지 않는가?”
“황제폐하!”
“짐은 금나라 황제와 화친을 하고 싶네.”
이 순간 이의방이 고려의 충신이 되고자 했다면 명종황제의 생각을 꺾어야 했다. 허나 그도 인간이었다.
“그 말씀은,,,,,,,.”
“그렇다네. 비록 엄청난 양의 군량을 금에게 내어주어야 하겠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짐이 금나라 황제의 등극 칙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네. 그렇게만 된다면 짐은 만천하에 정통성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네.”
명종황제는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대는 고려의 충신이 되겠는가? 짐의 외척이 되겠는가?”
이 순간 이의방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제폐하!”
“짐은 그대가 짐을 지키는 굳건한 외척이 되었으면 하네.”
명종황제의 말에 이의방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고 옥좌에 앉아 있던 명종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복을 하고 있는 이의방에게 다가와 이의방의 손을 잡았다.
“짐은 그대가 짐과 태자를 보호해 줄 거라고 믿네.”
“황제폐하!”
“그리해 줄 것이지?”
“황공하옵니다. 그렇게 할 것이옵니다.”
이의방은 이 순간 충신의 길을 버리고 외척의 길을 선택하고 있었다.
“그래요. 그래! 짐이 믿을 곳은 오직 그대뿐이요.”
“황공하나이다.”
“날이 밝으면 대전회의를 열 것이요. 그대는 짐이 한 말을 잘 생각해서 조정신료들의 공론을 모아주시오.”
“알겠사옵니다.”
이렇게 전쟁까지 불사하며 고려의 무장의 위신을 지키려 황제에게 독대를 신청했던 이의방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외척의 길로 가는 첫 순간이었다.
“또한 그 누구도 짐을 겁박하지 못하는 군대를 키워주시오.”
“예. 황제폐하.”
“짐은 이 고려의 지존이고 태자는 국본이며 그대의 사위라는 것을 명심하시오.”
“황공하나이다. 황제폐하.”
============================ 작품 후기 ============================추천 한 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