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238화 (238/620)

< -- 간웅 12권. -- >다소 어둡던 얼굴이 밝아지는 왕거였다.

“그렇사옵니다.”

“허나 오랑캐 황제가 사신이 참살 당한 것을 알게 되면 군사를 움직일 수도 있소.”

왕거는 이소응을 보며 말했다.

“대령후께서는 절대로 금이 그럴 정도의 여유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유가 없다?”

“금나라 오랑캐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송과의 결전을 치룰 준비를 하고 있다고.”

이소응의 말에 왕거도 고개를 끄덕였다.

“굳은 날에 비가 쏟아져야 밝고 빛나는 새날이 오는 법입니다.”

망건은 두 노망난 늙은이를 부추겼다.

“그렇지.”

“그렇소.”

왕거의 승낙에 이소응이 망건을 봤다.

“준비를 하시게.”

“예. 대장군.”

망건은 짧게 말하며 이미 준비를 하고 있던 예전을 떠올렸다.한성 북악산 기슬.검은 도포와 검은 갓을 쓴 사내가 병장기를 들고 실전을 방불케 하는 대련을 펼치고 있는 병사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머리에는 노란 띠를 두른 것이 꽤나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 용호쌍박이라고 할 정도로 자웅을 가리지 못하는 두 사내에게 검은 도포와 갓을 쓴 사내의 시선이 고정됐다.

“용호쌍박이라 할 만하군.”

“그렇사옵니다.”

옆에 있던 사내가 대답을 했다.

“정말 대단해.”

“분주에 있는 군사들 중 그 실력이 가장 탁월한 자이옵니다.”

“그런가?”

“예. 그렇습니다.”

“이번 일에 적격인 것 같군.”

“예. 그럴 것이옵니다.”

“날이 흐려 큰 비를 뿌리지 않는다면 밝고 빛나는 새날이 오지 못하지.”

“그렇사옵니다. 반드시 금나라 오랑캐를 참살하겠습니다.”

“허나 쉬운 일은 절대 아닐 것이네.”

“물론이옵니다. 소장 역시 응양군이 금나라 오랑캐를 호종한다고 들었사옵니다.”

“응양군은 무부 이의방의 친위군이네. 그러니 신경을 써야 할 것이야.”

“물론이옵니다.”

“두 용사를 부르게.”

검은 갓을 쓴 사내가 말했다.

“예.”

그리고 검은 갓을 쓴 자의 앞에 용호쌍박의 무위를 보이던 두 사내가 섰다.

“한성 분주님을 뵈옵니다.”

“그대들의 노고가 참으로 값지다.”

검은 갓을 쓴 사내가 그렇게 말하며 스스로 검을 갓을 벗었다. 그 순간 갓 속에 얼굴을 숨긴 자는 다름 아닌 망건이었다.

“감사하옵니다.”

두 사내의 우렁찬 대답에 망건은 회상에서 깨어났다.서경유수관에 마련된 대령후의 내실.

“과연 이소응이 성공할 수 있겠사옵니까?”

악비군의 무장이 대령후에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덫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지.”

“허나 실패를 하게 된다면 후일을 도모하기가 곤란해집니다. 또한 괜히 대령후께서 개입된 것을 알게 된다면 난처해 지실수도 있습니다.”

“이소응은 버릴 패이니 실패를 해도 나쁠 것이 없지. 또한 과언 조정이 금나라 사신이 그냥 뜬금없이 왔다고 생각을 하겠는가?”

“예?”

“그렇다면 조정은 정말 썩은 것이지.”

대령후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 말씀은,,,,,,.”

“알게 되겠지. 허나 안다고 해도 이미 참살된 사신의 일을 수습하고 방비를 하나라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에 놓일 것이야.”

“그렇기는 하옵니다.”

“이소응은 이소응의 몫이 있는 것이지. 하하하!”

이렇게 이소응은 대령후에게 이용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대령후에게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이러니 멍청하고 노망난 늙은이라는 소리를 듣는 거였다.

“성공을 하면 좋고 실패를 해도 벌집을 쑤셔놓은 꼴이 될 것이니 나쁘지 않지.”

“그렇습니다. 대령후!”

“허나 북변 천리장성 넘어서도 야율강이 온다면 반드시 제거를 해야 할 것이네. 그게 고려에게도 송에게도 이로운 일이니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대령후.”

“그건 그렇고 송황제폐하의 병환이 날로 깊어 간다고?”

“그렇사옵니다. 조필지 상단에게 계속 인삼을 요구하는 것을 봐서 옥체가 많이 상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쯔쯔쯔! 먹고 즐기고 운동을 하지 않고 계집을 탐하니 그리 되는 것이지.”

대령후의 말에 악비군 무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눈빛은 좋지 않아. 충성스러운 황제의 신하가 되던 그게 아니라면 나를 따르던 둘 중 하나만 충실히 해.”

“송구하옵니다.”

“하여튼 야율강이 북변 갑산까지 당도를 한다면 급습할 곳을 잘 선정해.”

“예. 대령후.”

야율강은 회생의 목숨을 노리고 있고 대령후와 이소응은 야율강의 목숨을 노리고 있으니 참으로 복잡하고 다급하게 돌아가는 형국이었다.몽한정이라는 여관의 내실.벽란도에서도 분명 번화가가 있을 것이고 또 다시 음침한 곳이 존재할 것이다.

사실 벽란도는 수많은 나라의 상인들이 찾아드는 국제 무역항이기에 번화하면서도 음침하며 화려하면서도 퇴폐적이었다. 또한 그런 상인들과 뱃사람들을 상대하기 위해 유곽도 무척이나 발전한 것도 사실이엇다.고려는 조선과 다르게 성적으로 무척이나 개방된 나라였다.

그건 다시 말해 조선과 다르게 여자들의 지위가 상당히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그것이 성적으로 개방된 이유이지는 못할 것이다.

하여튼 벽란도 외곽에 자리 잡고 있는 유곽을 겸비한 여관인 몽한정은 그 이름까지 몽한적이었고 또한 드나드는 손님 역시 꽤나 다양했기에 이곳을 숙소로 정한 신라방 총방주 김승주가 몸을 숨기기에는 충분했다.난 몽한정을 가기 전에 갑주를 벗고 평복으로 갈아입었다.

화려한 비단옷에 꽤나 수려한 용모차기였기에 유곽들이 들어선 곳에서 나를 잡는 계집들이 상당했다. 하지만 내 눈에 차는 계집은 없었다.사실 사택에 백화가 있고 황궁에 영화공주가 있으면 겨우 얼굴을 한 번 그것도 인사한번 나누지 못했지만 절대가인인 이의방의 장녀가 있으니 저런 싸구려 계집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허나 나도 사내기에 진한 분내가 그리 싫지는 않았다.

“도련님! 이곳에서 쉬시어요. 호호호!”

상대하는 사람들이 그리 기품 있는 종자들이 아니기에 유곽의 기둥이나 벽에 기대여 야릇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계집들 역시 들판에 피는 흔한 들꽃 같아 보였다.

“몽한정이라는 곳이 어디요?”

워낙 유곽이 즐비한 곳이기에 몽한정을 찾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호호호! 몽한정이요?”

“그렇소.”

“이 계집의 이곳이지요. 호호호.”

싼 티가 자르르 흐르는 유곽 계집이 살짝 자신의 젖무덤을 내게 보이며 나를 유혹하듯 희롱했다.

“그곳이 몽한적이기는 하나 내가 찾는 곳은 몽한정이요.”

“예. 압니다.”

“어딥니까?”

“쭉 가시면 있습니다. 오시는 길에 소첩을 잊지 마십시오.”

그래도 유곽 계집의 농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고 난 몽한정의 찾을 수가 있었다. 내가 몽한정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제법 눈치 있어 보이는 점원이 헤헤 거리며 내 앞에서 허리를 굽실거렸다.

“최준공을 기다리는 손님이 있는가?”

내 말에 힐끗 나를 점원이 봤다.

“없습니다.”

순간 난 이 점원이 나를 경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없다?”

“그렇습니다. 나를 오라고 한 곳이 몽한정이 분명한데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군.”

“하여튼 최준이라는 분을 기다리는 손님은 없습니다.”

“그럼 이왕 온 김에 술이나 한 잔 하고 가야겠다.”

아마 신라방은 벽란도를 장악하고 있는 조 필지 상단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이 점원을 매수한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이 몽한정 전체가 신라방의 것일 수도 있었다.

‘은밀히 움직여야 하니 이런 걸 거다.’이럴 경우는 급한 놈이 찾기 마련이다.

사실 나도 급하기는 했으나 상단 존폐의 기로에 서 있는 신라방보다는 덜할 것 같았다.

“그러십니까? 모시겠습니다.”

점원이 바로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나를 음침한 복도로 안내했다. -아아아~ 아아아~복도를 지날 때 내 귀를 자극하는 야릇한 소리가 들렸다. 여관과 유곽을 겸하고 있기에 계집들의 교성이 이렇게 벽을 넘는 거였다.내가 계집의 교성에 살짝 인상을 찡그리자 점원이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이런 곳은 처음이십니까?”

“즐기지는 않는 편이지.”

“그렇지요. 가끔 특별한 것이 생각이 날 때 들리는 곳이지요. 이곳이 허름해 보여도 없는 계집이 없고 또 없는 술이 없습니다.”

점원은 묻지도 않는 말을 내게 잘도 주절거렸다.

“그런가?”

“예. 대인! 송의 계집부터 금의 억척스러운 계집까지 아라사의 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백옥 같은 피부의 계집도 서역의 파란 눈까지 두루 있습니다.”

점원은 마치 내게 그중 하나를 고르라는 듯 말하는 것 같았다.

“고르라는 건가?”

“예. 그래도 술을 치는 계집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그럼 아라사의 계집으로 하지.”

아라사는 현대의 러시아를 말한다. 내가 러시아의 계집을 고른 것은 나도 백마의 환상이 조금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곳입니다.”

점원이 내게 내실을 안내했다. 그리고 난 탁자에 앉아 점원을 봤다.

“술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이곳은 계집이 먼저고 술은 다음인 것 같았다.

“진한 이야기를 해야 하니 독한 술이 좋겠군.”

“아라사의 독한 화주가 있습니다.”

난 점원의 말에 아라사의 독한 술이 보드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게.”

난 그렇게 말하고 은자 주머니에서 주전 하나를 꺼내 점원에게 줬다.

“나를 찾는 손님이 계신다면 모시게.”

“그럽죠.”

점원은 짧게 말하고 내실을 나섰다. 매캐한 냄새가 나는 것이 꼭 밤꽃 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역시 적성이 안 맞는 곳이야!”

하지만 이 정도는 되어야 타인의 눈을 피할 것 같았다.그리고 잠시 후 점원이 말한 금결 머리카락을 지닌 아라사의 계집이 다소 야시시한 옷을 입고 들어왔다.‘역시 이곳은 술보다 계집이 먼저군.’난 그런 생각이 들어 피식 웃었다.

“아나스타샤라고 합니다.”

금발의 외국 계집이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니 신기할 뿐이었다.

“술은?”

“이곳은 술보다 계집이 먼저이옵니다. 상공.”

백화 이후에 상공이라는 소리를 저 아라사 계집에게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아나스타샤가 말한 것처럼 점원이 꽤나 푸짐한 안주와 술을 가지고 왔다.

“편히 지내십시오.”

점원은 내게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갔다. ‘이곳에 기다리면 찾아 올 것이야!’지금 이 순간 내게 부족한 것은 시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 또한 이만큼 신라방이 신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잔 올리겠나이다.”

아나스타샤는 조심히 그리고 야릇하게 옷소매를 살짝 걷어 올렸다. ‘꽤나 미인이군.’난 술을 따르려고 술병을 잡은 아나스타샤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 같은 동양인은 서양여자를 보면 묘한 매력을 느낀다. 물론 서양의 사내도 동양의 여자를 보면 신비감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독한 보드카를 공복에 마시면 금방 취할 것 같은데?”

내 말에 아나스타샤는 조금은 놀라 나를 봤다.

“이 술이 보드카인 것을 어찌 아시옵니까?”

“그냥 좀 알아.”

난 그렇게 말하고 씩 웃었다. 그리고 금발의 러시아 미녀가 내게 술을 권했다.

“독하시면 차에 섞어 드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럼 폭탄주가 되어 골이 깨지게 돼.”

물론 아나스타샤는 폭탄주가 무슨 뜻인지 모를 것이다. 하지만 모처럼 현대의 말을 쓰니 새롭기는 했다.

“폭탄주가 무엇입니까?”

“그런 것이 있어.”

“예.”

이곳의 특징이라면 계집들이 눈치가 빠르다는 거다. 그리고 묻지 말라는 뜻을 보이면 더는 묻지 않는 다는 거다. 난 그렇게 러시아 미녀 아나스타샤와 독한 보드카 몇 잔을 나눠 마시며 나 나름대로의 계집 감상을 했다.

러시아 미녀들은 원래 큰 키에 풍만한 가슴 그리고 잘록한 허리로 유명하다. 그리고 아나스타샤는 전형적인 백계 러시아인 같았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백계 러시아 계열은 러시아에서는 귀족층에 해당됐다. 물론 그건 내가 가지고 있는 현대의 지식 중 일부였다.

아나스타샤의 출신을 묻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술을 마시고 몸을 섞는 것이 여자에 대한 예의라 참기로 했다. 사실 현대도 그렇지만 고려에서도 진상은 분명 있을 것이다.

뭐하고 살았냐?부모는 있느냐?왜 이런 곳에서 일을 하느냐?동정심 가득한 눈빛으로 묻는 진상을 있을 것이다. 그런 진상에게 돌아오는 것은 야릇한 미소 속에 숨겨진 계집의 진심을 담은 욕일 것이다.

‘그나저나 왜 나를 안 찾는 거지?’원래 급한 놈이 먼저 찬기 마련인데 술이 몇 순배 돌아가도 신라방 사람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누구를 기다리십니까?”

역시 이런 곳에 있다 보니 눈치가 빠른 것 같았다.

“기다리기는 하는데 오지를 않네.”

“못 찾으신 것은 아니십니까?”

아나스타샤는 야릇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

“총방주께서 곧 오실 겁니다.”

순간 난 뒤통수를 크게 한 대 후려 맞은 기분이 들었다. 신라방 소속 사람들이라고 해서 난 나와 같은 용모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다.그런데 지금 아나스타샤의 입에서 총방주라는 말이 나왔다.

“내가 당한 건가?”

“저희가 조심스러운 것이지요.”

“하하하! 이곳 전체가 신라방이군.”

“그렇습니다. 비록 매입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이곳은 숨겨진 신라방 벽란지점입니다.”

역시 아라사 계집이 유창한 우리말을 할 때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두 명의 사내가 조심히 내실로 들어왔다.

“최준 공은 오시지 않았습니까?”

중년의 사내가 나를 보며 물었다.‘김승주군!’나는 내게 묻는 중년이 신라방 총방주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예의를 갖추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례하였습니다. 신라방 총방주님을 뵙습니다.”

난 허리를 숙였다. 급한 것이 비록 저들이지만 예의를 보일 때는 보여야 하는 거였다. 그리고 내가 단박에 신라방 총방주를 알아보자 김승주는 조금 놀란 것 같았다.

“반갑소. 그런데 최준공은 오시지 않았습니까?”

이리 어렵게 만난 것은 저들이 내가 아닌 최준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승님께서는 황궁에 일이 있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스승님과 하시고자 하는 일은 저와 상의 하시면 됩니다.”

난 최준에게 꽤나 호감이 있어 보이는 김승주라고 생각을 했기에 최준 스승님을 내 앞에 새웠다.

“그러지요. 서서 상의를 할 수가 없으니 앉으시지요.”

김승주가 내게 자리를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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