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2권. -- >
“그렇사옵니다. 원래 계획 했던 것이나 조금 당길 뿐이옵니다.”
사실 내가 이렇게 태후를 찾은 것은 태후도 명종과 함께 야율강의 농단에 휘청거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태후는 명종과 다르게 여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결과를 가지고 왔다.‘몇 백 년을 앞당겨 6진을 개척하는 꼴이 되겠군.’내 머릿속에는 고려의 역사 말고도 수많은 역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역사들 중에 조선 세종 대 동북방면의 여진족을 대비해 두만강 하류 남안에 설치한 국방 의 요충지를 떠올렸다.
후대는 그것을 육진이라 했다.즉, 종성(鐘城)·온성(穩城)·회령(會寧)·경원(慶源)·경흥(慶興)·부령(富寧)의 여섯 진을 말한다.
만약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화 된다면 993년 거란이 소손녕을 장수로 삼아 고려에 침입해 왔을 때, 고려조정에서는 중신(重臣)을 시켜 항복하자는 의견과 서경 이북의 땅을 베어주고 절령을 경계로 삼자는 견해 등이 나왔다. 이에 성종도 할지론을 따르려 했으나 적장의 석연치 않은 행동을 간파한 서희는 저들의 출병이 영토의 확장에 있지 않음을 아뢰고 왕의 동의를 받아 직접 적진에 나아가 소손녕과 담판하게 되었다.
이 담판에서 소손녕은 침입의 이유로 고려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는데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고구려 땅을 침식하고 있으며 자기 나라와 땅을 연접하고 있으면서도 바다 건너 송을 섬기고 있다는 점을 들고, 따라서 만약 땅을 베어 바치고 무사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서희는 우리나라는 고구려를 옛 터전으로 했으므로 고려라 이름하고 평양을 도읍으로 한 것이다.
만일 지계(地界)로 논한다면 상국(上國)의 동경(東京)도 모두 우리 경역 안에 있는 셈인데 어찌 침식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압록강 안팎도 역시 우리 경내였는데 여진이 그곳에 자리 잡고 있어 도로의 막히고 어려움이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심하다.
조공을 받치지 못하는 것은 여진 때문이다. 만약에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의 옛 땅을 되찾아 성보(城堡)를 쌓고 도로가 통하게 된다면 감히 거란에 조공하지 않겠냐고 답변했다.
서희의 당당하고 조리 있는 변론을 들은 소손녕은 군사를 돌리고, 약속대로 고려가 압록강 동쪽 280리의 땅을 개척하는 데도 동의해 강동6주를 개척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서희의 담판이었다. 그런데 지금 회생은 그것을 넘어서는 거대한 담판을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 담판의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세종의 육진 개척이었다.‘뭐 사실 금에서는 북변은 버린 땅이기도 하지.’금은 북송을 멸망시키고나 후 대부분 중원으로 이주를 했다. 그래서 북변인 후일 육진이라 불리는 곳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송 정벌에 국력을 쏟아 부었지만 매번 실패를 했고 국력은 약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현 금나라 황제가 등극하고 나서 내치를 중요시하면서 국력을 키우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그곳을 지금 야율강이 부각시키고 있는 거였다.
“종성(鐘城)·온성(穩城)·회령(會寧)·경원(慶源)·경흥(慶興)·부령(富寧)까지를 야율강에게 받아낼 것입니다.”
내 말에 공예태후는 놀라 눈동자가 커졌다.
“가능하겠는가? 부마도위!”
“처음은 암묵적으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허나 힘을 키워 넘보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난 300년을 앞서 육진을 개척할 생각을 했다. 태후에게 말한 것처럼 우선은 암묵적인 인정이다. 하지만 그 암묵적인 인정을 힘을 통해 내 번국의 영토로 만들 생각을 난 하고 있었다. 사실 야율강이 내게 길을 열어준 것인지도 몰랐다.
“허나 그곳에는 여전과 요의 잔당들이 득실거린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네. 부마도위.”
“물론이옵니다. 오랑캐는 원래 오랑캐로 잡아야 하옵니다. 우선은 여진을 포섭하여 요의 잔당들을 몰아내고 후일 여진도 완벽히 복속시킬 것입니다.지금 내가 태후에게 말한 것은 공산당들이 주로 쓰는 화전양면 전술이다. 허나 이것만큼 좋은 전술도 없을 것이다.
“좋은 생각이네. 하여튼 이 태후는 부마만 믿을 것이네.”
“예. 믿으셔도 됩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다 나 좋자고 하는 일이기도 했다.‘6진을 개척하면 두만강 뱃길에 꽤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엄청난 것들이 참 많이 있지.’미래의 기억이 있다는 것은 이래서 참 좋은 법이다.
난 이렇게 태후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태후를 놀래게 해야 할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사실 지금 하려는 말을 하기 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태후마마!”
난 다소 무거운 눈빛으로 조심히 태후를 불렀다. 태후 역시 내 눈빛에 무엇인가 중요하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나를 빤히 봤다.
“더 할 말이 있는가?”
“송구한 말씀을 올려야 할 것 같사옵니다.”
“뭔가?”
“어찌 만리나 떨어진 금에서 이렇게 빨리 고려의 내부 사정을 알았다고 생각을 하시옵니까?”
내 물음에 공예태후는 인상을 찡그렸다.
“개경에 간자가 있다는 말인가?”
“그럴 것입니다. 허나 고려를 더 크게 위협할 간자는 서경에 있사옵니다.”
“서경?”
“그렇사옵니다. 서경에 대령후께서 계시옵니다.”
내 말에 태후가 기겁을 했다.
“부, 부마도위 지금 이 늙은이에게 무슨 말을 하시는가?”
“대령 후이옵니다. 분명 이 모든 분란은 대령후가 조장한 것이옵니다.”
난 다부지게 말했다.
“대, 대령후라고 했나?”
“그렇사옵니다. 태후마마! 그것을 알려드리기 위해 왔나이다.”
“정말인가?”
“예. 확실하옵니다. 대령후가 모든 꾸민 일이옵니다.”
“어, 어찌 고려 황자가 금에게,,,,,,,.”
“사람의 욕심은 끊이 없는 법입니다.”
“그, 그 말은 대령후가 용상을 찬탈할,,,,,,,.”
공예태후는 너무나 놀랐는지 더는 말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아셔야 하기에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황상도 아는가?”
“아직 모르시옵니다.”
“모르게 해야 할 것이네. 비록 황상이 온후한 성격을 가졌기는 하나 자신의 것을 빼앗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네.”
누구나 사람이라면 그럴 것이다. 허나 그런 것에 더욱 민감한 사람은 항상 있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 지키려는 것이 옥좌라면 더욱 그럴 것 같았다.
“알겠사옵니다. 허나 최후에는 알게 될 것입니다.”
“나는 형제간의 골육상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네.”
“깊이 고려하겠사옵니다.”
“이 늙은이는 부마만 믿을 것이네.”
“예. 태후마마!”
“그런데,,,,,,,.”
내가 태후에게 많은 것을 줬으니 이제는 얻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더 할 말이 있는가?”
“제가 북변의 방비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재물이 들어갈 것 같사옵니다.”
결국 이것을 얻기 위해 대령후까지 거론한 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 군비를 확충하고 병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재물이 있어야 하지.”
“송구하옵니다.”
“송도 인근에 황족인 왕거가 관리하는 염전이 있지.”
사실 나도 그게 필요해서 온 거였다.
“그러하옵니까?”
“왕거 그 늙은이가 요즘 노망이 들었다는 소리가 조정에서 파다하더군.”
“저는 모르는 일이옵니다.”
“그리 명을 재촉하다가는 황실이 관리하는 염전도 무부들에게 빼앗기고 말지.”
염전은 황족만이 관리하는 거였다. 그러니 내가 직접적으로 염전을 내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태후는 내가 염전을 줄 방법을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러하옵니다. 계속적으로 이대장군과 결탁을 하고 위위경과 반목하는 것 같사옵니다. 위위경과 반목을 하게 되면 채원의 꼴이 되옵니다.”
내 말에 공예태후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영화에게 상단 하나를 꾸려보라고 하지.”
놀라운 생각이었다.영화공주는 내 배필이니 그녀가 관리하는 염전은 내 것이 되는 거였다.
“황공하옵니다. 태후마마!”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죄를 찾아내서 귀양을 보내야 할 건데?”
공예태후는 왕거를 귀양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뭐 사실 경거망동을 하다가 급살 맞아 죽는 것보다 백배는 좋은 일일 것이다.물론 이 역시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송상과 엮어 보내면 되지.’난 속으로 씩 웃었다. 하지만 표정은 최대한 어둡게 지었다.
“그런데 말이옵니다. 태후마마께서 말씀을 하시니 드리는 말씀이온데,,,,,,,.”
난 공예태후의 눈치를 봤다. 난 견룡행수이면서 부마도위고 또 감찰어사다. 그러니 누구의 죄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죄를 찾은 모양이군.”
공예태후가 나를 빤히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에게 내가 염전을 얻기 위해 왔다는 생각을 하는 듯 했다.
“송구하옵니다. 조사를 하다 보니.”
“무언가?”
“왕거 대인께서 송상과 결탁을 해 염전에서 산출되는 소금의 양을 조작하여 황실에 납부될 재물을 착복했사옵니다.”
내 말에 공예태후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미 알고 있다.”
“덮어야 하겠지요?”
난 밉살스럽게 말했다.
“왕족으로 파렴치하기는 해도 그 죄라면 죽을죄까지는 아니니 그것으로 처리하게.”
“예. 태후마마!”
“허나 송상의 죄는 크게 물어야 할 것이네. 부마도위!”
물론 나 역시 나를 엿 먹인 송상을 그냥 둘 생각은 없었다.
“예. 지금까지 착복한 소금의 값을 몇 배나 더 받아 내고 관계한 놈들을 엄단하여 황실의 권위를 바로 세우겠습니다.”
역시 이런 게 내 전문이다.
“그리하라. 하여튼 대령후의 일은 당분간 비밀로 하게.”
이건 다시 말해 염전과 대령후의 목숨을 바꾸자는 말이 되는 것이다.
“예. 알겠사옵니다. 그럼 소신 물러가겠나이다.”
“그리 하시게.”
난 공예태후로부터 많은 것을 얻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바로 내가 향한 곳은 바로 최준 스승이 있는 환관의 전각이었다. ‘이번 참에 조필지에게도 큰 타격을 줄 것이다.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처리하는 것이 내 특기라면 특기다. ‘신라방이라고 하셨어.’인삼이 돈이 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것을 조필지에게 팔면 큰 이익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조필지에게도 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필지가 내게 산 인삼을 절대 다른 곳에서는 팔지 못하게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날 건드리면 다 죽는 거야!’이미 난 최준 스승님께 신라방 상단과 연락을 취해 달라고 부탁을 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답을 오늘에서야 들으려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부족한 재물도 조금이나마 융통하기 위해 가는 것이기도 했다. 어쩌면 최준 스승님은 내게 마르지 않는 화수분 같은 존재일 거다.
역시 환관은 돈 모으는 재주는 탁월하니 말이다. 그러다 문뜩 난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간웅 조조도 환관의 손자였는데 말이야,,,,,,.’그러고 보니 나 역시 간웅의 기질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내가 영웅이라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그저 간사하고 영악한 것이 조조 같다는 거였다.
“다다익선이지.”
난 환관들의 전각 쪽 하늘을 보며 씩 웃었다.벽란도에 위치한 한적한 여관.딱 봐도 누군가의 눈을 피하기 아주 좋아 보이는 여관에 금나라 복장을 한 사내들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의 입고 있는 금나라 복장이 그들에게 무척이나 어색해 보인다는 거였다.
“오랑캐의 복색이라 참으로 불편합니다.”
상석에 앉아 있는 중년의 사내를 보며 젊은 청년이 말했다.
“우리는 이곳에 있을 동안 철저히 금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조필지 상단의 눈을 피할 수 있다.”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그래. 우리 신라방이 중원에서 살아남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예. 아버님!”
“대인 허나 최준이라는 환관을 믿을 수 있겠사옵니까?”
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중년의 사내가 물었다.
“비록 우리 신라방이 조필지의 간계에 의해 상권이 쇠퇴되었다고는 하나 정보력에 있어서는 아직 건재하네. 그리고 난 최준을 믿네.”
대인이라고 불린 남자가 중년의 남자를 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버티는 것 역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력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래. 맞네.”
지금 대인이라고 불리는 자는 신라방 총 방주인 김승주였다. 꽤나 신비스러운 인물이었기에 그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자는 없었다.혹자는 신라의 왕족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자도 있었고 또 혹자는 궁예의 숨겨진 후손이라고 말하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바로 신라방 총 방주라는 거였다.
“우선은 최준과 연대를 해야 할 것이네.”
김승주는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말투로 봐서 최준을 잘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것은 아무리 상단이라고 해도 그 상단을 유지하는 것이 정보력이라는 말이었다. 물론 상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정보라면 정보일 거다. 허나 그것만으로 상단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명심하고 있습니다. 또한 철저히 우리의 목적을 숨겨야 할 것이네.”
순간 김승주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계림의 황룡이 다시 승천하는 날까지,,,,,,,.”
아들의 말에 김승주가 인상을 찡그렸다.
“함부로 발설치 말라고 했다.”
“송구하옵니다. 아버님!”
“우선은 상단을 재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상인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재물이 있어야 군사를 키우고 또 재물이 있어야 일을 도모할 수 있다.”
“옳은 말씀이시옵니다. 대인!”
중년의 사내가 말했다.
“계림의 황룡이신 대인의 명을 따를 뿐이옵니다.”
“그 모든 일은 상단이 재건 된 후의 일이네. 또한 나는 계림의 황룡이지 못할 것이네. 내 아들이야 말로 진정한 웅지를 펼칠 수 있게 준비를 할 것이네. 허나 내 아들이 계림의 황룡이지 못한다면 진정한 계림의 황룡을 찾는 것이 내 소임이 될 것이네.”
김승주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아들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