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1권 -- >9. 야율강에게 뒤통수를 맞은 고려 황실.난적 채원이 내 계략에 의해 참살된 지 이틀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채원은 눈에 가시 같은 존재에 불과했던 거였다.
그저 이의방도 자신에게 반기를 든 채원을 제거했다는 것에 만족할 뿐이었다. 사실 채원을 참살한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조정에서 논의되고 있었다.
그것은 금나라 황제에게 명종의 책봉 칙서를 받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일 때문에 조정은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그리고 그일 때문에 지금 난 이의방에게 불려와 있었다.
이미 이의방은 명종황제의 외척이 되어 있었다. 태자가 다음에 황제가 되면 이의방은 황제의 장인인 국구가 되는 거였다. 그렇기 때문에 금나라 황제의 칙서를 받는 일은 이의방에게도 아주 중요한 일이 되어 있었다.
“누구를 보내면 좋겠나?”
이의방이 내게 물었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내 반문에 이의방이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몰라서 묻는 것인가? 아니면 모른 척 하겠다는 건가?”
또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 역시 공식적으로 이제는 공예태후의 사위가 되어 있다는 거였다. 물론 여전히 나는 이의방의 사위로 대접받고 있었다. 또한 이의방도 내게 자신의 딸을 소개한 상태였다.이것은 아주 미묘한 문제였다. 하지만 여전히 나와 이의방은 한배를 탄 동지라는 것 역시 변하지 않고 있었다.
“가만히 두고 보시면 될 일이옵니다.”
“가만히 두고 본다?”
“그렇사옵니다. 장인의 의중에 문극겸공이 있듯 문신들의 수장인 조영인공의 의중에도 문극겸 공이 있을 것이옵니다.”
그제야 이의방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사위처럼 생각을 하고 있네.”
“그럴 것이라 생각했사옵니다.”
“그런데 말이네,,,,,,.”
“달리 하실 말씀이 있사옵니까?”
“그들이 만약 딴 마음을 품는다면 어찌하면 좋겠는가?”
진정 이것을 이야기 하고 싶어 나를 부른 거였다.
“딴 마음이라고 하시면?”
“사위 자네도 이미 생각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 될 수는 없습니다.”
“없다?”
“그렇습니다. 만약 문신들이 딴 마음을 먹고 장인과 무신들을 축출하기 위해 금나라의 군대를 나라 안으로 끌어드린다면 그들은 역신이 되는 것이고 현 황제폐하를 부정하게 되는 것이옵니다.”
내 말에 이의방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후일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
“그렇기는 하옵니다. 그러니 호위무장을 믿음직한 사람으로 택하시면 될 것입니다.”
“믿음직한 사람?”
“그렇사옵니다. 장인.”
“자네 말고 누가 있겠는가?”
사실 난 이미 이의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의방이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이의민 별장이 어떠하옵니까?”
“이 별장?”
“그렇사옵니다. 충성을 다할 것이옵니다.”
내 말에 이의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별장이 있었지.”
“이별장을 통해 만일을 대비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사옵니다.”
“알았네. 하여튼 채원이 도모된 이 마당에 이번 일만 잘 되면 누구도 사위와 내게 도전을 하는 자는 없을 것이네.”
분명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앞으로 있을 수많은 내란을 이의방이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사옵니다. 누구도 장인께 도전하지 못하게 할 것이옵니다.”
“하하하! 그래! 사위와 내가 의기투합을 한 이상 누구도 우리를 도모할 수는 없을 것이야!”
“그렇사옵니다. 장인!”
“그리고 말이야.”
“예. 장인!”
중서문하성 방안.조영인을 비롯한 문신들이 심각한 얼굴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있는 참지정사 역시 표정이 굳어져 있기는 마찬가지였고 그들의 모습을 찬찬히 보고 있는 김보당의 눈빛이 사납기만 했다.
“새 황제폐하께오서 금황제의 윤허를 반드시 받아야 할 것이네.”
조영인이 차분히 앉아 있는 문극겸을 봤다.
“알고 있사옵니다. 문하시중.”
“만약 금황제의 윤허를 받지 못한다면 그것이 빌미가 되어 고려는 전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네. 어떠한 빌미도 줘서는 안 될 것이네.”
지금 문극겸은 명종의 즉위를 금나라 황제에게 윤허 받기 위해 떠나는 사신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알고 있사옵니다. 소신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윤허를 받아오겠사옵니다.”
“그래야 할 것이네. 만약 그들이 이번 양위를 빌미로 군사를 일으킨다면 이 나라의 사직이 위태롭게 될 것이야!”
“그런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문극겸이 장담을 하듯 말했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네.”
“제가 어떻게든 막을 것이옵니다.”
“그럴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이번 참에 금황제의 힘을 빌려 정변을 일으킨 무부들을 치는 것은 어떻사옵니까?”
그때 차가운 눈으로 조영인과 문극겸을 보고 있던 김보당이 말했고 그 순간 조영인을 비롯한 문극겸 그리고 참지정사 강일천까지 인상을 찡그렸다.
“불가하오.”
제일 먼저 불가하다고 말한 사람은 참지정사 강일천이었다.
“하오나 그것도 방법이 될 것이옵니다. 참지정사!”
“물론 그 역시 방법이 될 수는 있으나 무부들의 치기 위해 금의 군대를 나라 안으로 끌어 들인다면 끝내 이 나라는 오랑캐의 말발굽에 짓밟히게 되어 사직이 위태롭게 될 것이네.”
참지정사의 말에 조영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참지정사의 말이 옳습니다.”
조영인까지 안된다고 말을 하자 김보당이 인상을 찡그렸다.
“하오나 무부가 이미 황실의 외척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또 무엇이 되려 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옵니다.”
김보당도 지지 않겠다는 듯 말했다.
“무엇이 된다니?”
“군권을 쥐고 있는 이의방이 역심이라도 품는다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김보당이 도전적인 눈빛으로 강일천에게 물었다.
“위위경이 역심을?”
“사람 마음은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금나라의 군대를 이 나라에 끌어드릴 수는 없네.”
“답답해서 드리는 말씀이옵니다.”
“알고 있네. 하지만 말씀을 자중하시게.”
“왜 참지정사께서도 무부들이 두려운 것이옵니까?”
그 순간 담담했던 참지정사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이 사람이!”
“그만들 하십시오. 우리끼리 자중지란을 보인다면 무신들이 더욱 날뛰게 될 것입니다.”
그제야 김보당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고 다시 강일천도 표정이 담담해져서 김보당을 봤다.
“김대부의 충정은 나 역시 알겠소. 허나 때를 기다리는 것도 필요한 법이요.”
“예. 제가 무례했사옵니다.”
김보당이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여전히 눈빛은 사납기만 했다.
“하여튼 모든 것이 문극겸공에게 달렸소. 반드시 금황제의 칙서를 받아오시오.”
“예. 알겠습니다. 문하시중! 소신의 몸이 바스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금황제의 책봉 칙서를 받아오겠나이다.”
“우리는 그대만 믿겠소.”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이미 금황제의 사신이 북변을 지나 서경에 도착해 있다는 것을.견룡행수의 방.난 내 방에 차분히 앉아 이의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견룡행수님!”
기다리고 있던 이의민의 목소리가 복도에서 들렸다.
“들어오세요.”
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바로 이의민이 들어왔다.
“별장 이의민이 견룡행수를 뵈옵니다.”
이의민은 바로 나를 보고 부복을 했다.
“왜 이러세요. 형님!”
난 이의민을 형님이라고 불렀다. 사실 이의민은 내심 내 거짓말에 의해 나를 동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형님이라니요? 저는 겨우 별장이옵니다.”
“우리끼리 왜 이러십니까? 앉으세요. 앉아!”
내 극진한 환대에 이의민은 그제야 표정이 밝아졌다.
“고맙소.”
“둘이 있을 때는 말씀을 놓으세요.”
“아무리 그래도 직위가 있는데,,,,,,,.”
이의민은 살짝 말꼬리를 흐렸다.
“하하하! 괜찮습니다.”
사실 내가 이의민을 이렇게 대접하는 것은 이의민을 포섭하기 위함이다. 내가 그를 포섭하려는 첫 번째 이유는 그의 무위가 삼국지에 나오는 여포를 능가할 정도라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는 역사에서 그가 바로 내 부친이 되는 의종의 등뼈를 부러트려 죽게 만든 위인이기 때문이었다.
‘적이 될 수도 있는 자는 항상 눈앞에 둔다.’이것이 내 철칙이라면 철칙이다.
그리고 만약 온전히 내가 이의민을 조종할 수 있다면 후일 내가 꾸밀 역사까지 속일 계략에 쓰기 위함이었다. 하여튼 난 이의민과 친분을 쌓기 위해 이렇게 노력을 했다.
“그래 왜 보자고 한 것이냐?”
이의민은 내 눈치를 보면서도 내게 말을 놨다.
“감축드릴 일이 있어서 모셨습니다.”
“감축?”
“그렇습니다. 형님!”
“무슨 말이냐?”
사실 거의 대부분의 무장들이 거사 후에 벼락출세를 했다. 오직 이의민만이 여전히 별장의 직위에 있었고 그것이 불만인 이의민이었다.
물론 그 역시 내가 사전에 꾸민 일이었다.‘이의민의 벼슬은 내가 준다.
’소인배를 얻으려면 3가지를 준비하면 되고 대인을 품에 안으려면 2가지를 생각하면 된다는 말이 있다.소인배를 얻기 위해서는 벼슬과 재물 그리고 권력을 주면 되는 거고 대인을 품에 안으려면 신의와 대의를 생각하면 되는 거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의민에게 벼슬을 주고자 했다.
“곧 중랑장이 되실 것입니다.”
내 말에 이의민은 놀라 나를 봤다.
“중랑장?”
“그렇습니다.”
“네가 나를 천거한 것이냐?”
“동생 좋다는 게 뭡니까. 예. 제가 위위경에게 천거를 했습니다.”
내 말에 이의민이 나를 빤히 봤다.
“정말이더냐?”
“그렇습니다. 곧 금나라로 가는 사신들을 호위하게 될 것입니다.”
내 말에 이의민이 놀라 나를 봤다.
“금나라로 향하는 사신을 호위한다고?”
“그렇습니다. 돌아오시면 장군의 반열에 오르실 것입니다.”
내 말에 이의민이 기겁을 했다.
“정말이더냐?”
“그렇습니다. 제가 꼭 그렇게 만들 겁니다.”
내 말에 이의민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고맙다. 회생아! 고마워!”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한방을 날리는 일만 남은 거였다.
“저는 절대 옥련사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옥련사!전에도 말했듯 그곳에서 이의민의 어미가 사노비로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말한 거였다.
“암! 그래야지. 그리고 이 형이 너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다. 또한 누구도 너를 위협하는 자가 있다면 이 부월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형님!”
그때 내 방으로 조심히 견룡 하나가 들어섰다.
“무슨 일이냐?”
“중방에서 견룡행수님을 찾습니다.”
“중방에서?”
“그렇사옵니다.”
“알았다.”
난 짧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지요. 중방으로 가시면 중랑장이 되실 것이옵니다.”
“알았다.”
이의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중방.위위경을 필두로 한 중방에서도 무신들이 한참 회의를 하고 있었다. 물론 회의의 주제는 문극겸을 호위할 무장을 선출하는 일이었다.
“이번 사신들을 호위할 무장으로는 이의민 별장이 좋을 것 같소.”
이의방이 말을 꺼내자 모두 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누구도 이제는 이의방을 말에 토를 달수는 없었다.
“그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입이 가벼운 이광정이 먼저 이의방의 말에 찬동을 했다.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 이의민은 놀라 이의방을 보고 있었다.
“소신이 말이옵니까?”
“그렇다네. 자네가 이번에 가줘야겠네.”
“하오나 저는 별장에 불가하옵니다. 위위경! 그리 큰 소임을 수행할 수 없사옵니다.”
이의민이 위위경의 눈치를 봤다.지금 이의민은 내가 알려준 대로 말하는 거였다.
“그렇군! 자네가 아직 별장이군. 그대를 중랑장으로 명하겠네.”
순식간에 별장인 이의민이 중랑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제가 말이옵니까?”
“그래! 그래도 격이라는 것이 있지. 자네가 중랑장은 되어야 문신들이 무시를 하지 못할 것이네. 물론 문대부야 무신들을 괄시하지는 않겠지만 말일세.”
“제가 진정 중랑장이 되는 것이옵니까?”
이의민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듯 되물었다.
“그래. 그러니 사신단을 잘 호위하게. 그리고,,,,,,,.”
순간 이의방의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나를 봤다.이건 내가 이제 나서라는 거였다.
“문대부가 비록 무신들에게 우호적이기는 하나 딴 마음을 품는다면 처단을 하라고 이의민 중랑장을 보내는 것이옵니다.”
순간 중방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딴 마음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견룡행수!”
이광정이 내게 물었다.
“만약 문신들이 딴 마음을 품고 우리 무신들을 치기 위해 금의 힘을 빌리고자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뭐라?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차분하게 있던 이고가 나섰다.
“누구도 모르는 일이옵니다.”
내 말에 무신들이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그리고 또 문대부가 금황제의 칙서를 받아오지 못한다면 전란이 벌어질 수도 있소이다. 그러니 우리는 저들의 침략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오.”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이의방이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위위경! 그러기 위해서는 중방이 나서서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고 치안을 안정시켜야 할 것이옵니다.”
“옳다. 견룡행수의 말이 옳다.”
이의방의 말에 모두 다 고개를 끄덕였다.
“중방이 나서서 민심을 수습하다니요? 어찌 조정에서 해야 할 일을 중방이 한 단 말입니까?”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이 듣고 있던 이소응이 위위경인 이의방을 보며 말했다.
“이대장군! 문신들이 지금까지 무엇을 했습니까?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 중방이 나서서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허나 잘못하다가는,,,,,,,.”
“권력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이겠지요.”
내 말에 이 소응 대장군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다네.”
“잡은 권력이라면 좋은 일에 휘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권세를 잡고 예전의 문신들과 다를 것이 없다면 위위경과 이대장군께서 하신 거사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거사가 되는 것이옵니다.”
“으음,,,,,,,.”
내 일침에 이소응은 더는 할 말이 없는 듯 했다.
“하여튼 이의민 중랑장의 소임이 크네.”
이의방이 이의민을 보며 말했다. 이건 더 이상 노신들을 자극하지 말라는 신호이기도 했다.
“예. 소장! 임무를 완수할 것이옵니다.”
그때 급하게 중방 복도로 뛰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물론 그 발자국소리는 나만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발자국 소리가 지금 나는 곳은 중방이 있는 전각 밖이니 말이다.‘다급한 발자국소리다.’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그리고 그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중방으로 향하는 복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