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223화 (223/620)

< -- 간웅 11권 -- >

“그, 그래도 명심해라! 너 역시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언젠가는 너도 패, 패자가 될 것이다. 그때 너, 너도 나와 다,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럴 것이요.”

순간 타오르는 태양에서 쏟아지는 빛살이 내가 쥔 검날에 비쳐 번쩍였다.

“그래. 네놈도 그, 그럴 것이다.”

“허나! 너처럼은 구차하지 않을 것이다.”

“구, 구차? 사는 날에 구차함은 없다. 처절하게 후회 없이 사는 것이다.”

채원은 마지막 이 순간에 혼신을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악랄한 놈! 너는 악귀 같은 놈이다. 너는 끝내 나를 집어삼키고 너를 믿어주는 이의방을 삼키고 이 고려를 삼킬 것이다. 아귀 같은 놈! 야차 같은 놈!”

“그럴지도.”

난 그렇게 말하고 검을 들어올렸다.

“가라! 다시 태어나거든 검을 쥐는 무부는 되지 마라.”

“내 죽어서라도 너를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다. 내 악귀가 되어 너를 죽일 것이고 이 고려를 망하게 할 것이다.”

“원하는 대로.”

난 채원을 노려봤고 검을 다시 고쳐 잡았다. 그리고 힘껏 채원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서어억!떼루룩 툭!욕심이 하늘을 찌르던 채원이 그렇게 허무한 생을 마감했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한 순간에 정리가 된 거였다.문하성 문신들의 방 앞 복도.한명의 문신이 급하게 복도를 뛰고 있었고 그가 향하는 곳은 김보당이 직무를 보는 방이었다.

“이 궁에 다시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야!”

문신의 얼굴에는 다급함이 가득했다. 다다닥! 다다닥!절대 하늘이 무너져도 뛰는 법이 없는 문신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문신의 체통 따위를 지킬 때가 아닌 듯 그리 급히 뛰었다.

“대부께 알려야 해! 대부께.”

역시 중얼거리는 혼잣말에 다급함이 가득했다.

“대부! 대부!”

문신은 그렇게 소리치며 김보당의 방 앞에서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그의 모습에 집무를 보고 있던 김보당은 놀라 젊은 문신을 봤다.

“체통 없이 무슨 일인가?”

“대부! 체통을 따질 때가 아니옵니다.”

“체통을 따질 때가 아니라니.”

“변란이옵니다. 별난!”

젊은 문신은 변란이라 말했다. 그의 말에 놀란 김보당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변란? 무슨 말인가?”

“이 황궁에 다시 무부들의 변란이 난 것 같사옵니다.”

“무부들의 변란?”

“그렇사옵니다. 대전이 통제되었사옵니다. 대전 앞에는 견룡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나이다.”

그것은 회생이 혹시나 몰라 대전의 경계를 강화한 것을 문신이 본 거였다.

“대전이?”

“그렇사옵니다.”

그때 다시 한 명의 문신이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그의 얼굴에도 다급함이 가득했다.

“대부! 큰 일이옵니다.”

“자네는 또 무슨 일인가?”

“용호군이 황궁을 포위했나이다.”

“황궁을?”

김보당은 그의 말에 기겁을 했다.

“대장군이 된 무부 이고가 황궁 정문을 막아서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들 문신의 말에 우간의 대부 김보당은 놀라 경악했다.

“용, 용호군이? 변란이군. 변란이야! 도대체 또 이 황궁에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어찌 하여야 하옵니까?”

다급한 마음에 젊은 문신이 우간의 대부 김보당에게 물었다.우간의 대부 김보당.그는 후일 역사의 한 쪽을 장식한 김보당의 난의 주역이었다.

본관은 영광이며, 평장사 영부의 아들이다. 1171년(명종 1) 우간의대부로서 좌간의 대부 김신윤 등과 함께 정치를 문란케 했던 재상 최윤의, 간의 이원응 등을 탄핵하였으나, 오히려 공부시랑으로 좌천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명종과 무신세력에 대해 비판적이 되었는데, 다시 간의대부로서 외직인 동북면병마사로 좌천되어 갔다. 1173년 녹사(錄事) 이경직·장순석 등과 모의하여 상황 의종을 세운다는 기치 아래 군사를 일으켰다.

그는 부하를 시켜 거제도에 유배 중이던 의종을 경주로 모셔왔으나, 장군 이의민 등이 이끄는 관군에게 패하여 처형당하였다. 조사를 받고 죽을 때, 문신으로서 누가 이 모의에 가담하지 않았겠는가.

하고 말하여, 많은 문신이 죽음을 당하였다. 지금 놀라고 있는 김보당을 역사는 그렇게 기록했다.

김보당은 박차고 일어났던 자리를 황망히 다시 앉았다.

“아무 힘도 없는 우리들이 어찌 할 수 있는가?”

“대, 대부!”

“그저 숨을 죽일 뿐이지.”

“하오나,,,,,,.”

“지금은 그래야 하네. 지금 뭔가 일을 버린다면 횃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의 신세가 될 것이네.”

“예. 대부!”

젊은 문신이 짧게 대답을 했고 김보당은 여전히 표정이 어둡기만 했다.

“이 황실이 어떻게 되려고 끝이 변란이 이어진단 말인가.”

스르륵!난 내 스스로 태후 전 처소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공예태후와 해월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큰 거사다 보니 그녀 역시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어쩌면 고려 황실의 입장에서 본다면 숨을 죽이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도 같은 거였다. 내게 힘이 되어줄 병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2천에 달하는 가병들이 있다.

물론 그들의 무궁한 충성심을 기대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그래도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이 있는 거였다. 그리고 200명 가까운 일당백의 별초들이 있다. 또한 수련 무사들이 천명 가까이 있다. 3천이 넘는 병력이 내게 있는 거였다.

그것도 누구도 모르는 그런 병력들이 말이다. 또한 공예태후에게 채원의 일을 보고하고 나서 북변으로 달려가 속말말갈족 족장과 담판을 한다면 3천에 가까운 속말말갈족 부족이 내 식읍민이 된다.그렇게 된다면 나는 최소한 정예기병 5백을 얻게 되니 고려 군영 중 2군의 군세는 되지 못해도 6위의 군세 정도는 될 것 같았다.

정말 두 달 만에 이룬 쾌거인 거다. ‘미리 밝힐 필요는 없겠지.’모든지 숨겨두는 것이 좋은 법이라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힐끗 공예태후를 봤다.

지금의 공예태후는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궁금해 하는 듯 했다.

“소장 회생! 역적 채원을 도모하였나이다.”

“그런데 채원의 딸을 어쩔 것이냐?”

“채원의 딸 말이옵니까?”

난 왜 이 순간에 공예태후가 채원의 딸의 거취를 이야기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적의 가솔로 죽거나 관노가 되어야 하는데,,,,,,.’이것이 일반적인 이치다.

“왜 그러시옵니까? 태후마마!”

“그 아이의 심성이 꽤나 담백하고 온화하더구나!”

“하오나,,,,,.”

“그렇지. 그 아이만 살려둘 수는 없겠지.”

“관노로 보낼 것이옵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배품이옵니다.”

모질 때는 한 없이 모질어야 한다.

“관노라,,, 아비만 잘 만났어도 충분히 태자비는 되지 못해도 비빈은 될 수 있을 아이인데,,,,,,.”

“어쩔 수 없사옵니다.”

“알았다. 내 네가 하자는 대로 할 것이다.”

난 그렇게 일을 마무리 지려고 했다.

“그럼 소장은,,,.”

“앞으로 부마라 칭해라!”

“태후마마!”

“태자비의 국혼이 있은 후 너의 혼례도 서두를 것이다.”

“예. 태후마마!”

살다보면 또한 거칠게 몸부림치다보면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다.‘고모가 내 아내가 된단 말인가,,,,,,.’

“태후마마! 부마도위 물러나옵니다.”

바로 짧은 목례로 태후께 예를 보이고 조심히 몇 발자국 물러나며 돌아섰다.

“열라!”

난 나직이 명령을 내렸고 문밖에 있던 나인으로 위장을 한 여무사들이 문을 열었다.그리고 다시 문이 닫혔고 난 여무사들에게 나직이 말했다.

“감시를 철저하게 해야 할 것이네.”

이제는 난 누구도 믿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그때 조용히 내 생물학적 외숙모가 되는 해월이 나와 나를 봤다.그녀는 예전과 다르게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예전 일은 많이 송구했사옵니다.”

난 나직이 말했다.

“다 지난입니다.”

해월 외숙모는 나인들을 의식해서 내게 존대를 했다.

“그리 생각을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다 아시고 놀라셨겠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출생의 비밀을 알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태후마마를 잘,,,,,,.”

난 내 말꼬리를 흐렸다. 총명한 숙모님이니 내가 흐린 말이 뭔지 잘 알 것 같았다.

“걱정을 마십시오.”

“예. 그럼 저는 이만 처리할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녀 역시 말꼬리를 흐렸다. 그것은 아마 영화공주의 일을 말하는 걸 거다.

“항상 있어왔던 일이지 않사옵니까?”

황실의 근친혼은 항상 있어왔던 일이니 다르게 생각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아 말했고 해월 숙모 역시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모든 결정을 하셨으니 마음을 단단히 잡수셔야 할 것이옵니다.”

“예. 그렇게 할 것입니다.”

“후일을 위해서라도 태자와 폐서인은 반드시,,,,,,.”

순간 난 놀라 해월 숙모를 봤다.

“그, 그 말씀은,,,,,,.”

“꼭 그리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준비를 하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봅니다.”

나는 이 순간 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다른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이것 역시 어쩔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깊이 고려하겠습니다.”

내 말에 해월은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서 태후 전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난 여무사들을 힐끗 보며 나직이 말했다.

“해월상궁도 은밀히 감시하여야 할 것이다.”

“예.”

난 복도를 보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내가 복도 모퉁이를 도는 순간 비단옷을 걸치고 단아한 표정으로 복도 중앙에 서 있는 소녀가 보였다.‘둘 중 하나의 여식이겠지.’물론 내가 말하는 둘 중 하나는 채원과 위위경이다.그리고 그녀는 나를 매섭게 보고 있었다.

“제 아비께서 참살을 당한 것입니까?”

최대한 절제된 어투로 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이요?”

“태자비가 될 때부터 일이 잘못되었다고 짐작을 했습니다. 그리 된 것입니까.”

그제야 난 이 소녀가 채원의 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박철우가 내게 한 말이 떠올랐다.-그 재능과 덕망이 그 아비의 딸이라 여기지 못할 정도로 뛰어납니다. 이것이 박철우가 말이었다.‘으음,,, 태후께서 왜 아끼시려는 마음이 생겼는지 알겠군.’난 그런 생각을 하며 채원의 딸을 봤다.

“그렇다.”

“그럼 역적으로 죽은 것입니까?”

“그 역시 그렇다.”

난 무겁게 말하면서도 동정심이 생기는 듯 했다.

“당신이 한 짓입니까?”

이 순간 내게 당당히 당신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떠한 분노도 어떠한 오열도 없이 얼음처럼 차갑게 묻는 저 소녀가 순간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사직과 황실을 위해 역적을 벤 것이다. 네 아비는 난신이고 역적이다.”

“예. 그리 되겠지요. 저는 관노로 보내진다면 제가 완벽히 원망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셔야 할 것입니다. 항상 당신을 저주할 것입니다.”

저 어린 소녀의 눈에도 살기가 뿜어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됐다.

“내게는 길이 두 개가 있다.”

“역적의 딸에게 선택권이 있습니까?”

“네가 말한 것처럼 관노가 되는 것. 그게 아니라면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는 것. 태후마마의 결정이니 선택을 해라.”

나 역시 조금은 가여운 마음이 들었다.

“스님이 되어 당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소. 그러니 나는 관노가 될 것이오.”

“어쩔 수 없지. 그리 될 것이다.”

난 그렇게 말하고 매몰차게 채원의 딸을 스쳐 지나쳤고 해월의 지시를 받은 나인 몇이 복도로 와 채원의 여식을 매섭게 노려봤다.

“가자! 너를 우선은 나인처소에 감금하라는 해월 상궁님의 명령이시다.”

난 나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채원의 딸을 봤다. 그녀는 울음을 터트리지 않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가자니까. 아직도 네가 태자비인 줄 아느냐!”

순간 운명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역적으로 죽은 자의 딸이니 저 소녀의 운명도 칼날에 베인 것처럼 매서울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일 것이다. 모든 것은 승자의 것 패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오직 굴욕과 치욕일 것이다.

서경유수간의 별채.대령후는 아율강이 서경 북문을 통과했다는 것을 야율강을 미행했던 악비군에게 보고를 받고 서경유수의 집무실에서 거처를 별채로 옮겼다.

“여기까지 올 동안 고려의 군사들은 모르고 있었단 말이지?”

대령후는 인상을 찡그렸다. 따지고 보면 그가 부른 거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야율강을 비롯한 금나라 사신단들이 오는 것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음,,,,,,.”

“왜 그러시옵니까? 대령후!”

악비군의 척후가 대령후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고려도 송처럼 되고 있음이야!”

그 말에 악비군의 척후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 그렇사옵니까?”

“아니라고 생각을 하나?”

“옳으시옵니다.”

“그래. 내가 불렀으나 금황제가 총애하는 아율강이 올 줄은 몰랐군. 어떻게 될지 한 번 지켜보자. 하하하!”

“전에 지시한 것은 어떻게 하옵니까?”

악비군의 척후도 아율강이 누군지 잘 알고 있기에 대령후에게 다시 물었다.

“한 번 내린 명은 변하지 않는다. 그가 살해를 당하면 더욱 일이 커지지 그럼 금황제는 그 책임을 반드시 물으려 할 것이다. 결국은 아주 쉽게 내가 보위에 오를 수도 있다는 거지. 하하하!”

“예. 알겠습니다. 대령후!”

“어떻게 일이 진행이 되는지 한 번 보자.”

대령후는 아직 개경의 사정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저런 소리를 하는 걸 거다.

“개경 조정이 아주 난리가 나겠구나!”

대령후는 인상을 찡그렸다.============================ 작품 후기 ============================11월 5일부터 새로운 내용으로 연재를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리메이크 같은 거 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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