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1권 -- >8. 채원을 도모하다.공예태후의 전각.오늘이 바로 태자비를 간탁하는 날이고 또 난적 채원이 내 계략에 의해 도모되는 날이기도 했다.
‘채원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어야 한다.’채원의 마음이 들뜬다면 허점이 생기게 될 것이고 난 그 허점을 노리면 되는 거였다.
이렇게 난 이른 새벽 바로 황궁 비밀 통로를 통해 황궁으로 들어와 공예태후를 보고 있었다.‘태후마마의 도움이 필요하다.
’태후마마!그는 내 할마마마가 되는 여인일 것이다. 이제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이 고려 황실을 위하는 일이 될 것이다.
“뭐라? 채원의 딸을 태자비로 간택하라?”
“그렇사옵니다.”
“찢어 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을 놈의 딸을 태자비로?”
모처럼 태후마마가 나를 째려봤다.
“반나절 정도이면 되옵니다.”
난 차분히 공예태후에게 말했다.
“반나절?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반나절이옵니다. 오늘 해가 중천에 뜨기 전에 채원은 도모가 될 것이옵니다. 채원이 역신으로 척살을 당한다면 그의 여식도 태자비가 될 수는 없을 것이옵니다.”
“채원을 도모한다?”
“그렇사옵니다.”
“할 수 있겠느냐?”
“소장이 실패를 한다면 황실은 모른 척을 하시면 되옵니다.”
“모, 모른 척을 해?”
“그렇사옵니다. 저 혼자 행하는 일이 될 것이옵니다.”
내 말에 공예태후는 인상을 찡그렸다.
“너의 말이 진정이었구나!”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무인본분 위국헌신! 모든 공은 황실에 돌리고 모든 화는 네가 안고 가려는 것이구나.”
“그렇사옵니다.”
예전은 나 살기 위해 또 내 안위를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지금은 단 1할이라도 황실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다를 것이다.
“알았다. 그렇게 할 것이다.”
“감사하옵니다. 태후마마!”
난 태후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 순간 태후는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그나저나 황제가 너를 곱게 보지 않는 것 같구나!”
“그렇사옵니까?”
“그래. 나는 네가 걱정이 되고 또 내 장자인 상황제가 걱정이 된다.”
이 순간 태후가 내게 뭔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걱정이 되시는 것이 있사옵니까?”
“회생아!”
“예. 태후마마!”
“하늘에 뜨는 태양이 몇이냐?”
태후마마의 말에 난 속으로 인상을 찡그려야 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을 태후마마도 걱정하고 있는 거였다.
“하나이옵니다.”
“그런데 지금 태양이 둘이 되어 있다. 이 늙은이는 그것이 걱정이 된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황제가 아무리 성군이라고 해도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형을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상황제께서는 제가 약조를 하셨나이다.”
“그렇지. 허나 나무가 가만히 있고자 해도 바람은 움직이게 만드는 법이다. 또한 자꾸 황제를 부추긴다면 권세를 얻고자 하는 이가 음모를 꾸밀 수도 있을 것이다.”
역시 오래 사신 만큼 많은 것을 생각하는 태후였다.
“그 말씀은?”
“지금의 황제는 명분이 없다. 그리고 지키고자 하는 것이 너무 많다.”
“그럼 폐하께서 상황제 폐하를 시해하시기라도 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허나 내가 살아 있는 한 골육상쟁은 보고 싶지 않구나!”
“알겠나이다. 방법을 한 번 찾아보겠사옵니다.”
“그래. 이 늙은이가 또 사위에게 큰 걱정을 만들어줬구나.”
태후마마의 말에 난 절로 인상을 찡그렸다.하지만 나 역시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분명했다.‘태후 마마의 말씀이 틀리지 않다. 하늘의 태양이 둘이 될 수는 없음이다.’이건 다시 말해 내 부친이신 의종폐하의 목숨이 곧 풍전등화에 놓인다는 거였다.
“그럼 채원이 도모가 되면 누가 태자비가 되어야 하겠느냐?”
태후마마는 거사 후의 일을 내게 물었다.
“누구로 하시고 싶사옵니까?”
“나는 너와 같다.”
“이의방의 차녀로 하심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위위경에게 더 큰 힘을 주자는 말이냐?”
“당분간은 그리 되어야 할 것이옵니다.”
“당분간은?”
“그렇사옵니다. 저는 곧 북변으로 갈 것이옵니다.”
내가 편히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 고려 조정에 뜻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북변으로 간다?”
“그렇사옵니다. 태후마마! 제가 없는 고려 조정에 위위경이 단단히 지켜낼 것이옵니다.”
“위위경이라,,,,,,,.”
태후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이건 위위경이 나만큼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표현이었다.
“그렇사옵니다. 믿으셔야 한다면 완벽하게 믿으셔야 하옵니다.”
“만약 그가 역심을 품는다면?”
순간 태후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북변에 제가 있을 것이옵니다. 제가 그곳에서 유유자적하면서 지내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황실을 보위할 강군을 양성해 놓을 것이옵니다. 그러니 그런 걱정은 마시옵소서.”
“알았다. 네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는구나!”
“그건 그렇고 네가 북변으로 간다면 영화는 어떻게 할 것이냐?”
공예태후의 물음에 난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공주마마를 말씀이시옵니까?”
“그래. 영화 말이다. 너는 이미 내 부마가 되겠다고 약조를 했다.”
참으로 완벽한 자신만을 위한 유권해석이었다. 하지만 거절한 적도 없으니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으음,,,,,,.”
이 순간 난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 고려에서 근친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숨기고 있는 신분이지만 영화공주와 나는 고모와 조카의 사이였다. 그렇다고 거부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왜 데리고 가지 않으려는 것이냐?”
내 신음에 공예태후는 내 마음을 파악한 듯 했다.
“가능하다면 그러고 싶사옵니다.”
아무리 이 고려 황실이 근친혼이 성행한 황실이라고 해도 내가 내키지 않았다.‘어떻게 고모와 혼인을 할 수 있단 말이야,,,,,,.’내 답이 공예태후는 나를 빤히 봤다.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예?”
“처음 너에게 영화를 보내려고 한 것은 너도 알다시피 이 고려를 보위하라고 그런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태후마마!”
“결국은 정략혼이지.”
“예. 태후마마!”
“하지만 이제 그 아이의 마음이 너에게 있다.”
그 역시 알고 있는 일이었다. 내가 사경을 헤맬 때 백화가 가까이서 나를 지켰다면 영화공주는 한발 물러나 내가 깨어나기를 마음 조렸다는 것을 백화에게 들었다.
“나는 어미로 그 아이의 뜻을 따라 줄 것이다.”
정말 놀라운 선택이고 부담스러운 선택일 것이다.
“하오나,,,,,,.”
“그 아이가 너를 따라 북변으로 간다면 나는 막지 않을 것이다. 여인이 한 번 마음을 주게 만들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경고와 다짐 같은 거였다.
“하오나,,,,,,.”
나는 계속 하오나를 반복했지만 내 마음에 품고 있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아니 한다고 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내 어린 딸이 슬퍼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공예태후는 내게 마지막 일침을 가했다.
“태후마마!”
“그 아이의 선택을 따를 것이다. 네가 가고자 하는 길을 막지 않지만 그렇게 할 것이다.”
공예태후가 못을 박듯 말했다.
“예. 알겠나이다.”
세상사 살면서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것이다. 현대인의 기억을 가진 나에게 고모와의 근친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 고려에서는 있어 왔던 일이다. 이 시대에 왔으면 이 시대를 흐름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내가 황자로 살지 않을 것이니 누가 알겠는가.’난 그렇게 나를 다독거렸다.
“그래. 그럼 내 채원의 딸을 태자비로 간택을 하마.”
“예. 태후마마! 그때 채원을 도모할 것이옵니다.”
태자비로 간택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이 내전으로 채원과 태자비가 된 채원의 딸이 와야 했고 그 틈을 이용해서 난 채원을 도모할 것이다. 참으로 태자비가 될 채원의 딸에게는 모진 일이지만 그것 이외에 방법은 없었다.
“그래. 알았다.”
“물러가겠나이다.”
이의방의 장군방.이의방은 모처럼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회생이 말한 것처럼 눈에 가시처럼 여겨졌던 채원이 오늘에서야 제거가 된다는 생각을 하니 신이 난 이의방이었다. 또한 자신의 딸이 태자비가 된다는 생각에 더욱 들뜬 이의방이기도 했다. 이미 회생은 이의방에게 모든 계획을 말하고 떠난 상태였다.
“이제 곧 시작이 되겠군.”
“그렇사옵니다. 주군!”
간신배처럼 위위경 이의방의 옆에 착 달라붙어 있는 이광정이 아첨을 하기 위해 헤헤거리며 말했다.
“내가 태자의 장인이 된다고! 하하하!”
“그렇사옵니다. 그렇게 되실 것이옵니다. 또한 주군께서 마음만 먹으신다면,,,,,,.”
이광정은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이의방을 봤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고사에 조비의 사례도 있지 않사옵니까?”
“조비의 사례?”
“그렇사옵니다. 뭔 후일의 일이겠사오나 어렵지도 않을 것이옵니다.”
순간 이 광정이 이의방의 마음에 역심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었다. 아첨은 귀에 단 법이다.
“어렵지 않다?”
“그렇사옵니다.”
“위위경의 오른편에 견룡행수 회생이 있고 왼편에 용호군 대장군 이대장군이 있사옵니다. 또한 응양군이 위위경의 한 마디면 창검을 고쳐 잡을 것이옵니다.”
이 광정이 더 강하게 역심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대는 지금 내가 역천의 검을 들라는 소린가?”
순간 이의방이 살기를 뿜어냈다.
“위, 위위경!”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런 말을 내게 한다면 그대의 대장군의 직도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대의 목도 온전치 않을 것이다.”
“위, 위위경! 저는 그저,,,,,,.”
순간 뿜어졌던 살기가 거둬졌다.
“다 알고 있네. 자네의 충심을 그러니 괜한 소리를 하지 말게. 나는 지금으로 만족하네.”
이의방의 말에 순간 이광정의 눈빛이 빛났다.‘회생 공에게 전하면 되는 것이야!’이광정이 이렇게 목숨을 걸고 이의방에게 역심을 불어넣은 것은 모두 회생이 지시한 일이었다. 지금 이 순간 회생은 이의방의 본심이 어떤지 정확하게 알아야 했다.
“송구하옵니다. 위위경! 다시는 망언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야 할 것이네.”
“예. 위위경!”
태후전 전각.공예태후는 한창 태자비 간택에 열중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세 명의 소녀를 봤다.
“너의 아비가 누구더냐?”
기품이 흐르는 것을 봐서 조영인 문하시중의 딸이 분명해 보였다.
“문하시중 조영인이옵니다.”
바르게 말하는 것이 역시 문신대가의 영애라 배운 것이 많아 보였다.
“그럼 너는?”
“위위경 이의방의 여식이옵니다.”
두 명의 소녀는 자신 아비의 이름을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리고 다시 공예태후가 마지막으로 채원의 딸을 봤다.
“그럼 너는?”
“대장군의 여식이옵니다.”
채원의 딸은 자신의 아비의 직위만 말할 뿐 이름을 말하지 않고 그 모습에 공예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공예태후는 찬찬히 세 소녀를 봤다. 누구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조영인의 여식은 원래 문벌대가의 여식이니 저런 기품이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으니 겨우 몇 달 전만해도 행수의 신분이었던 이의방과 채원의 딸이 저렇게 기품을 보인다는 것이 놀랍기만 한 공예태후였다. 사실 따지고 본다면 이의방 역시 대단한 가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의방의 숙부가 문하시중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의방이 무신이 되고 난 다음부터 괄시를 받은 거였다.
“내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예. 하문하시옵소서.”
“태자비가 된다면 어찌 할 것이냐? 우선 너부터 말을 해 보아라.”
이의방의 여식에게 물었다.하지만 이의방의 여식은 그저 태후를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온화한 눈빛으로 찬찬히 태후만을 보고 있는 거였다.
“할 말이 없다는 것이냐?”
“된다는 것은 없기에 드릴 말씀도 없사옵니다.”
“만약이라도 된다면?”
“그때 말씀 드리겠나이다. 아직은 위위경의 여식일 뿐이옵니다.”
순간 태후의 눈이 뚫어지게 이의방의 여식을 봤다.
“알았다. 그리하자.”
그리고 고개를 돌려 다른 소녀를 봤다.
“그럼 네가 말을 해 봐라.”
이제는 조영인의 여식에게 물었다.
“아버님께 말씀을 올려 문신들을 규합하여,,,,,,.”
“되었다.”
공예태후는 문하시중 조영인의 여식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왜 그러시옵니까?”
조영인의 여식은 당돌하게 공예태후에게 되물었다.
“너는 정세를 보는 눈이 없다.”
공예태후는 그렇게 말하고 채원의 여식을 봤다.
“네가 말해 보아라!”
“소녀는 그저 태자마마를 보필할 뿐이옵니다. 제가 태자비가 된다면 제 아비가 외척이 돌 것이오나 그것은 아비의 일이옵니다. 저는 황실의 여인이니 아비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겠사옵니까.”
채원의 여식의 말을 듣고 공예태후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아비만 아니었다고 해도 태자비로 손색이 없을 것인데,,, 아니 이제 태자비가 아니 되는 것이 더 좋은 것이지.’공예태후는 고개를 돌려 해월을 봤다.
“채원 공을 들라고 하라!”
이 순간 계획대로 채원의 여식이 태자비로 간택이 되는 순간이었다.
“예. 태후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