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1권 -- >난 순간 내 이성과 상관없이 몸이 주르륵 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리고 그 순간 강화에서 외로이 잊히는 의종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야! 나로 인해 사셨으니,,,,,,.’그래도 그것만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종을 아니 내 부친을 지켜준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그때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가 떠올랐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지그시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이의방은 끝내 이의민을 시켜 내 부친이 되시는 의종을 참살하려 들 것이다.
’이것이 역사다.그리고 난 그 역사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의 동지가 내일은 적이 될 수도 있겠구나!’이거야 말로 절로 인상이 찡그려지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내 숙부가 되는 이고를 설득하고 내 편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용호군의 군영으로 갈 것이다.”
“예. 주군! 이랴!:나는 별초 하나와 급하게 말을 달려 다시 용호군 군막 앞에 섰다.
“백화가 저 안에 있다.”
이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저 안으로 다시 들어갈 이유가 존재했다.
“가자!”
“예. 주군!”
“만약 일이 틀어진다면 백화를 보호에서 피해야 할 것이다.”
내 명령에 별초가 나를 봤다.
“왜 그러느냐?”
“마님께서도 똑같은 말을 하셨습니다.”
“똑같은 말이라,,, 정말 바보 같은 사람이구나.”
“그렇사옵니다.”
“가신은 주군의 명을 따라야 할 것이다.”
“옳은 판단을 하겠사옵니다.”
위급한 상황에 놓이면 내 말보다 백화의 말을 따르겠다는 의미였다. 난 그런 별초를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뜻대로.”
난 그렇게 말하고 용호군 군막으로 들어섰다. 용호군 군막.이고는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이렇게 빨리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 분명 이해가 되지 않는 눈빛이었다.
“이의방의 사택에 불을 질렀나?”
“그렇습니다.”
“역시 대담하군.”
이고는 약간은 놀라워했다.
“그곳에서 사라진 것은 전각 하나와 무비겠지.”
“그렇습니다. 원하시는 것을 얻기 위해서 그리 했습니다.”
“내 원하는 것을 얻었나?”
이고는 자신의 조카의 행방을 내게 묻고 있었다. 지금도 이고는 내가 자신의 조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 아니 내가 말을 한다고 해도 믿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습니다. 놀라운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놀라운 결과?”
“그렇습니다. 아주 놀랍지요. 그 전에 하나만 묻겠습니다.”
“묻는다? 묻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인데?”
“제가 묻지요.”
“걱정 마시게. 백화라는 처자는 안전하게 있네.”
“그렇습니까? 하지만 제가 묻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무엇인가?”
“진정 조카라는 아이를 찾으시면 낙향을 하실 것이옵니까?”
“전에도 말하지 않았나?”
“숨겨진 황자의 신분인데 그냥 그 아이를 데리고 낙향을 하실 참이십니까? 이것은 기회라고 생각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내 말에 이고는 당황을 했는지 아니면 놀랐는지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군.”
황자라는 말을 이고는 내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말을 하니 더욱 조바심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렇습니다. 아주 놀랍더군요.”
“어딘가? 누군가? 그 아이가 어디에 있는가? 말을 해 주시게. 말을!”
이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답부터 하십시오.”
“답부터라,,,,,,,.”
“그렇습니다. 답을 하소서.”
“그 아이를 위해서 가장 좋은 선택을 할 것이네.”
애매모호한 대답이다.
“만약 그 아이가 이 개경이 싫다면 어찌 하실 것이옵니까?”
“이 개경이 싫다. 황도가 싫고 황자의 신분이 싫다?”
“그렇습니다.”
“아직 어리니 그럴 수도 있지.”
순간 난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아니 갈 수 도 있다.’
“이제 말을 해 주시게. 내 억울히 죽은 누이를 위해서라도 그 아이를 찾아야 하네.”
간절한 눈빛이 한 번 번뜩였다. 이고의 저 눈빛 속에는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듯 했다.
“찾은 것이 중요하겠습니까? 그가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까?”
“그 아이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네.”
이고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난 이고를 뚫어지게 봤다.
“앞에 있지 않습니까?”
내 말에 이고가 나를 노려봤다.
“뭐라? 뭐라 한 것이냐?”
이것은 살기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아서 보이는 살기였다.
“저라 했습니다.”
“뭐라? 너다! 너라고? 이런 아무리 급하다고 하나 그런 거짓으로 나를 속일 수 있을 것 같으냐?”
이고는 역시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견구라 하더이다. 이름이 그렇게 불렸고 갑산의 관노로 있었다 하더이다.”
“견, 견구,,,,,,.”
“그렇습니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저라 하더이다. 그래서 저도 놀랍더이다.”
“네, 네가 견, 견구,,,,,,.”
“그렇습니다. 숙부라 불러도 되시겠사옵니까?”
“믿, 믿어지지 않음이야!”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저도 믿지 못했습니다. 왜 제가 무비를 숨겼는지 아시옵니까?”
“너는 옥새의 행방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 옥새는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뭐라? 네가 옥새를 가지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대전 뒤편 못에 있습니다. 제가 거기에 던졌습니다.”
“그럼 왜 무비를 이의방에게 보낸 것이냐?”
“거사가 있던 밤. 김돈중이 제가 말했습니다. 너에 대해 알고 싶으면 무비를 죽이지 마라. 그 말이 무비를 살리게 했습니다.”
“진, 진정이더냐?”
“다급하다고 해서 거짓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너다? 너 단 말이지?”
이고가 다시 나를 뚫어지게 봤다. 그리고 나를 보며 웃었다.
“그래서 처음 보는 순간부터 네게 끌린 것이구나! 내가. 피는 그래 물보다야 진하지.”
이고도 조금씩 나를 받아드리는 것 같았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것이옵니까?”
내 물음에 다시 이고가 나를 봤다.
“어찌 하고 싶으냐?”
이것은 내가 원하는 답이었다. 지금 이고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나를 끌어안고 엉엉 울고 싶은 그런 눈빛이었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차갑게 굴었다.
비록 그가 내 생물학적 숙부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거였다.‘내 흔들리는 마음이 흔들린다면 이 고려가 위급에 놓인다.
’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 뜻을 따라 주실 것이옵니까?”
내 물음에 이고는 나를 잠시 물끄러미 봤다.
“무엇이냐? 들어보자. 그리고 결정을 하자.”
“저를 당분간 조카라 부르지 마십시오.”
“뭐라?”
“저는 이 고려의 황자가 되지 않을 것이옵니다.”
“무엇이라 했느냐? 너의 신분을 찾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않느냐?”
이럴 줄 알았다.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 나는 이미 예상을 했다.
“찾아서 무엇을 합니까?”
“무, 무슨 말이냐?”
“저 스스로 부친을 몰아내고 옹립한 숙부를 다시 몰아내자고 하실 참이십니까? 그래서 무엇이 남는 것입니까? 검에 피만 가득하지 않겠습니까?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는 잊고 살 것이옵니다. 이미 저는 불효 불충을 저지른 몸이옵니다.”
난 무비의 표현으로 이고를 설득했다. 내가 황자라는 신분이 밝혀져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부친을 몰아낸 패륜아가 될 뿐이었다. 그리고 또 옥좌를 안기 위해서는 수많은 피를 흘려야 한다. 그래서 얻어진 옥좌라면 버리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잊고 산다?”
“그렇습니다. 황자의 숨겨진 신분도 저는 잊을 것입니다.”
“회, 회생아!”
이고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는 빼앗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할 것입니다.”
“쟁취라니,,,,,,.”
“이 좁은 고려가 아닌 북변으로 가 제 스스로 만들어낼 것이옵니다.”
내 포부에 이고가 순간 돌처럼 굳어졌다.
“북, 북변으로 가서,,,,,,.”
“그렇습니다. 저랑 같이 북변으로 가시지요.”
“북변으로?”
“그러시겠습니까?”
“으음,,,,,,.”
이고가 신음을 했다. 고민에 빠진 거였다. 사람이 신선이 아니니 욕심이라는 것은 있는 법이다. 나를 통해 그 욕심을 키워보고자 했을지도 모를 이고였다.
“역시 참지정사의 눈이 틀리지 않았군.”
뜬금없는 이고의 말에 난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너를 북변으로 보내라 하더라.”
“참지정사께서요?”
“그래. 그렇게 되었다.”
“그럼 저랑 가시겠습니까? 다 잊고.”
물론 난 당장 북변으로 갈 수는 없었다. 역사는 내 부친이 되는 의종을 죽게 만들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그리고 내가 그것을 알고 있는 이상 막아야 했다. 그 다음이 북변인 거다.
“가자! 이곳의 일을 갈무리를 하고 가자.”
이고는 이곳의 일을 갈무리를 하자고 말했다. 그것은 이의방에 관한 일이 분명할 것이다.
“진정이십니까?”
“나도 무장! 너를 도울 수 있다면 내 무엇이든 할 것이다. 그래. 북변이다. 네가 원한다면 내 북변의 칼바람이 너를 향해 몰아칠 때 너의 앞에 설 것이다.”
이 순간 나는 가족이라는 존재와 함께 뛰어난 무장 하나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건 분명 득이다.’
“예. 대장군!”
내 말에 이고는 조금은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왜 그러십니까?”
“여전히 나를 대장군으로 부르는구나!”
“숙부님이라고 불리기를 원하십니까?”
“그렇게 부르지 않겠다는 것이구나.”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도 회생이고 앞으로 회생입니다. 그 무엇도 아닌 회생입니다.”
“으음,,,,,,.”
“버릴 것입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것은 버릴 것이옵니다.”
“알겠다. 너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겠다.”
“예. 대장군!”
“불러주지 않는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니지. 너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조카다.”
“그렇지요. 그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대장군!”
“알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태자비 간택 일에 채원을 도모할 것이옵니다.”
“채원을?”
이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하옵니다. 채원을 도모할 것이옵니다.”
‘이제 내가 숨긴 검들이 진가를 보일 때다.’난 이런 날을 대비해서 대전의 나인을 모두 내 무사로 교체를 했다. 또한 환관들 중 검을 다룰 20여명을 어사대에 배치를 했다. 그리고 별초들 역시 50여명을 견룡에 배치한 상태였다.
‘간택일이니 모두 비무장을 할 것이다.’오직 견룡만이 무장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둘을 목숨을 도모하는 것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는 것만큼 수월한 일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