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1권 -- >6. 무비를 납치하다.
“이렇게까지 회생을 몰아붙여서 되시겠습니까?”
이고가 군막을 나오기를 기다렸던 전존걸은 이고가 나서자말자 옆에 붙으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군막 안에서 들을 수 없을 만큼 조심스러웠다.
“어르신의 뜻이지요.”
이고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소장도 알기는 하나 너무 궁지로 모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끝내 도구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그 역시 참지정사의 뜻입니다.”
“그렇기는 하오나,,,,,,.”
“훨훨 날수 있는 새를 새장에 가둬둘 수는 없다는 참지정사 어른의 뜻입니다.”
“그럼 위위경을 도모하지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이옵니까?”
“당연히 도모를 해야지요. 용호군 오천에 참지정사 가병이 2천이니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이고의 말에 전존걸은 놀라 눈이 커졌다.
“진정 이의방을 도모 하실 참이시옵니까?”
“그렇게 될 것입니다. 보낼 사람은 보내고 다시 돌려놓을 것은 돌려놔야지요.”
이고는 다짐하듯 말했다. 이것은 무신정변 이전으로 모든 것을 돌려놓겠다는 의미처럼 전존걸의 귀에 들렸다. 하지만 이고는 자신의 조카를 찾아 그 신분을 다시 찾아주고 싶다는 말이었다.
“부장은 대장군을 따를 것이옵니다.”
“참지정사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까?”
“저 역시 용호군이옵니다. 대장군을 따르겠사옵니다.”
전존걸은 이제야 자신의 속내를 정확하게 이고에게 보였다.
“고맙습니다.”
“예. 대장군!”
“그나저나 아무것도 모르는 백화소저가 근심이 많겠군요.”
“장부의 여인이면 이런 마음고생은 따르는 법이지요. 회생이 떠난 후에 안심을 시켜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렇지요. 모든 일이 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고 여러 가지의 의미를 담아 그렇게 말하고 참지정사가 은밀한 밀담을 나눌 때를 떠올렸다. 이고가 이렇게 변한 것은 바로 그 도깨비의 불에 놀아나고 이의방에게 의심을 받을 그때였다.
이고 자신이 이의방의 장군방에서 나와서 퇴궐을 하려던 참이 어두운 나무 그림자 뒤에 숨어 있던 문신 하나가 조용히 이고의 앞을 막아섰다.
“참지정사께서 뵙고자 하십니다.”
“참지정사께서?”
“그렇사옵니다.”
문신의 말에 이고는 영문을 몰라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지금 보지 않는다면 후일 후회를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후회라. 뵈어도 나쁠 것이 없지. 가세.”
이고는 그렇게 말하고 문신을 따라가 참지정사의 앞에 섰다.
“대장군 이고! 참지정사를 뵈옵니다.”
참지정사 강일천은 조용히 서책을 읽고 있다고 책을 덮으며 이고를 봤다.
“앉으시게.”
“예. 참지정사!”
이고는 자리에 앉아 참지정사 강일천을 찬찬히 봤다.
“무슨 일로 소장을 찾으신 것이옵니까?”
“내 그대와 거래를 하기 위함이지.”
“거, 거래라니요?”
이고는 놀라 참지정사 강일천을 봤다.
“도깨비불에 혼이 났더군.”
참지정사 강일천의 말에 이고는 기겁을 했다.
“어찌 아시옵니까?”
“그 불을 만든 자가 누구라고 생각을 하나?”
“누구이옵니까? 사라진 김돈중이옵니까?”
“자네 멀지 않는 곳이 있는 사람을 찾아보게.”
“멀지 않는 곳이라니요?”
이고는 참지정사 강일천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참지정사 강일천을 봤다.
“설, 설마,,,,,,.”
“그래. 내 사위 회생이네. 내 사위가 송악산으로 급히 움직였다고 하더군.”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소장은 도통 모르겠습니다.”
“내게 숨겨진 딸아이가 하나 있지. 그 아이의 이름이 백화라네.”
점점 더 놀라운 이야기만 하고 있는 참지정사 강일천이었다.
“왜 이런 말씀을 저에게 하시는 것이옵니까?”
“그래서 거래라고 하지 않았나?”
“무엇을 위한 거래이옵니까?”
“자네는 자네가 원하는 것을 나는 내 사위와 딸아이의 안전을 충분히 서로 만족하는 거래가 되지 않겠나?”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시옵니까?”
“무비이지 않나? 자네의 복수심은 정말 모질더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권력이기도 하고.”
이고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저는 무장이옵니다. 무장이 권력을 탐하면 무부가 되는 거이옵니다. 또한 정치를 하면 백성이 고단해지옵니다.”
“권력이 싫다?”
“권불십년이라 했습니다.”
“자네는 참 오래 살겠군.”
참지정사는 이고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물론 나 역시 오래 살고 싶네. 그래서 거래를 하자는 거야.”
“어떤 거래이옵니까?”
“이제 자네는 아니라고 해도 위위경의 의심을 사게 되었네. 의심은 없던 귀신도 만드는 법이지. 자네가 왜 용호군 대장군이 된지 아는가?”
“모르옵니다.”
“자네는 욕심이 없기 때문이네. 위위경의 뜻대로 움직이고 또 그에게 위협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에 그 요직에 내림승차를 시킨 것이지.”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의심을 사게 되었네. 위위경의 칼끝이 이제는 자네를 향할 것이네. 채원을 정리하려는 위위경이네. 잘 생각해 보게.”
“지금 제가 위위경을 도모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이제는 나 역시 내 사위를 위위경의 도구로 두고 싶지는 않네. 그렇게 쓰일 아이가 아니네. 그 아이는 꿈이 큰 아이야!”
회생은 안빈낙도를 원했지만 다른 이들은 회생이 더 큰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또한 결국 참지정사 강일천은 이고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거였다. 그를 통해 회생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주고자 했다.
“소장이 이의방을 도모하는 것에 성공을 하면 참지정사께서 얻으시는 것이 무엇이옵니까?”
“약간의 권력과 내 사위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보내주는 것이지. 내 딸아이와 함께.”
“회생은 북변으로 나가고 싶어 합니다.”
“나도 보내줄 참이네. 그런데 그것을 위위경이 막고 있지.”
이것은 참지정사 강일천의 오해였다. 위위경인 이의방도 회생을 어느 시점이 되면 자신의 딸과 북변으로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모르고 있는 참지정사였다. 이것은 소통의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모두 다 회생을 걱정하는 마음은 하나였다.물론 그 걱정의 차이와 내용 그리고 목적은 각각 달랐다.
“자네는 내 사위를 압박해주게.”
“압박이라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위위경의 옆에 둬서는 안 될 것이야.”
“그 말씀은?”
“북변으로 보내야지. 다시 찾아야 할 땅이 아닌가.”
참지정사의 말에 이고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오나 쉽지 않은 일이옵니다. 회생의 재간을 감당할 능력이 없사옵니다.”
“내 딸아이를 볼모로 잡으면 어렵지 않을 것이야.”
순간 다시 한 번 이고는 놀랐다.
“백화소저를 볼모로 잡으라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그러고 나서 선택을 하라고 강요를 하시게.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무엇이든 자네의 말을 따라줄 것이네.”
“위위경을 도모하라고 해도요?”
“그럴 것이네.”
“나쁘지 않는 거래군요. 저도 살고 회생도 살고.”
“그래. 덤으로 권력까지 가지게 되지.”
“저는 오래 살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게 원하는 것을 얻는다면 낙향을 할 참이옵니다.”
이고의 말에 참지정사는 인상을 찡그렸다.
“낙향?”
“저는 이 개경이 이제 진절머리가 나옵니다.”
“그런가?”
정말 욕심이 없는 이고였다.
“무장이 있을 곳이 못 되옵니다. 제가 비록 문신들의 횡포와 괄시에 정변에 동참을 하였으나 그것은 오직 무비를 압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권력 따위는 저는 싫습니다.”
“압박을 해서?”
“제 조카가 어디에 있는지 찾고 싶을 뿐이옵니다. 불쌍한 아이입니다. 찾아야지요.”
이고도 솔직하게 참지정사 강일천에게 말했다.
“무비가 어찌 자네 조카의 행방을 안단 말인가.”
“제 누이가 상궁이었습니다. 질투에 눈이 뒤집힌 무비가 제 누이를 죽이고 아이를 빼돌렸지요.”
“뭐, 뭐라?”
순간 참지정사는 기겁을 했다.
“그, 그렇다면,,,,,,.”
이고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찾아야 합니다. 반드시 찾아서 자신이 누군지 알려줘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마당에 그런 것이 소용이 있겠나?”
참지정사의 말에 이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기는 하옵니다.”
“그런 속내가 있었군.”
“그렇사옵니다. 제 숙원만 해결이 된다면 낙향을 할 것이옵니다.”
“으음,,, 낙향이라,,,,,,.”
“그렇사옵니다. 그게 아니 된다면 저 역시 북변으로 가고 싶습니다.”
순간 이번에는 참지정사가 놀라 이고를 봤다.
“자네도 북변?”
“무장이 있어야 할 곳이옵니다.”
이 순간 참지정사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도 가고 싶은 곳이기는 하지. 이 개경은 너무 이전투구에 들끓는 곳이야.”
“예. 참지정사!”
“그런 면에서도 회생은 달라도 다른 인물이네.”
참지정사의 마지막 말에 이고는 회상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회생과 백화가 들어가 있는 군막을 물끄러미 봤다.‘모두 너를 위하고 내가 살길인 것이다.’이고의 군막.나는 천천히 탁자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앉아라.”
“어떻게 되었게 된 것이옵니까? 상공.”
“일이 엉망진창으로 꼬여 내 너와 같이 절벽에 서게 됐다.”
“절벽이라고요?”
“이고 대장군이 내 행보를 다 알고 있다. 아니 너무나 많은 것을 거짓말처럼 알고 있다.”
“어찌 그런 일이,,,,,,.”
백화는 너무나 놀라 말을 끝내지 못했다.
“백화야!”
“예. 상공.”
“내 너를 매번 칼날 같은 절벽 앞에 새우는구나!”
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상공을 위하여 설수 있어 다행이옵니다.”
이 위급한 상황에 백화는 나를 향해 웃어줬다. 그녀는 내게 하늘이다. 너무나 넓은 하늘인 것이다. 순간 난 내게 백화가 무엇을 원하기에 품이 넓은 하늘이 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그런 하늘을 지금 내가 돌아서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화야!”
“예. 상공.”
“이곳에 있어라. 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너를 데리러 올 것이다. 이곳이 칼날 같은 절벽이기는 하나 내 반드시 너를 구하러 올 것이다.”
“예. 상공.”
“내 반드시 너를 오늘 안에 데리러 올 것이다.”
“믿사옵니다. 상공.”
“그래. 믿어라. 이번 일이 끝나면 북변으로 가자. 이 개경은 이제 치가 떨릴 만큼 진절머리가 난다.”
난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공.”
백화가 나를 찬찬히 봤다.
“왜 그러느냐?”
“일을 도모하시다가 힘에 부치신다면 원망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백, 백화야!”
“저는 원망 없을 것이옵니다.”
정말 내가 우러러 볼 하늘같은 백화였다.백화의 말은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돌아오지 않고 바로 북변으로 몸을 피하라는 소리였다. 이것이 바로 백화인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나를 원망할 것이다.”
“상공! 어려운 일이옵니다.”
“어려워도 같이 할 것이다. 내가 다시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온다고 해도 너랑 같이 할 것이다.”
난 그렇게 말하고 백화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백화의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 역시 두려운 거다.
“상, 상공!”
“내 어떻게든 일을 잘 처리할 것이다. 그러니 걱정 말거라.”
“예. 상공 소저는 상공을 믿을 것이옵니다.”
난 이제 가야했다. 단 하루의 시간이 있을 뿐이었다.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하지만 내게 있는 시간은 단 하루다.‘드디어 무비를 만나는구나!’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난 그렇게 돌아서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군막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오늘을 잊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래. 너의 성정으로 잊지 못하겠지.”
“그렇사옵니다.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백화를 볼모로 한 것을 저는 절대 잊을 수는 없습니다.”
난 이고를 보며 소리쳤다.
“그럴 테지.”
내 말에 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비를 너무 쉽게 보지는 마라.”
“그럴 것입니다.”
“내일 하루다. 알겠느냐?”
“예.”
난 마지막으로 이고를 노려봤다. 그리고 바로 군막을 빠져나와서 이의방의 사택으로 말을 달렸다. ‘이의방이 없어야 할 것인데,,,,,,.’이미 왕준명은 구금에 풀려나 나를 따르고 있었고 다섯의 별초 역시 나를 따랐다.
“워워워!”
나는 이의방의 사택 앞에 서서 왕준명을 봤다. 지금 이 순간 왕준명은 당장이라도 혀를 깨물고 죽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송구하옵니다. 주군! 죽, 죽여주시옵소서.”
“됐다. 너의 잘못만은 아니다.”
이것은 모든 것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한 내 잘못이 분명했다. 흥선이 그려낸 지도를 보며 그렇게 수집된 정보들이 다른 이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내 잘못이고 또 많은 군량미가 개경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 내 잘못이기도 했다.
물론 난 그때 쓰러져 있었기에 조치를 할 수 없었으니 모든 일의 결과는 내 가신들의 주군인 내가 책임져야 하는 거였다.‘내 잘못이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왕준명을 봤다. 여전히 왕준명은 당장이라도 혀를 깨물 것 같아 보였다.
“너는 지금 당장 달려가 만적에게 내 모든 가산을 북변으로 옮기라고 해라.”
이제는 떠나야할 개경이고 향해야 할 북변이었다.
“북, 북변으로 말씀이시옵니까?”
“그렇다. 북변이다. 그리고 또 문장필 공에게 전해 가병들을 북변으로 이동을 시키라고 해라. 오늘 밤이 지나기 전에 내 사택을 모두 비워라.”
난 이제 결단의 순간인 거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왕준명을 봤다.
“그리고 흥선에게 전해라! 참 즐거웠다고 그러니 원래의 곳으로 가시라고 해라.”
“예?”
내가 흥선에게 존대를 하니 왕준명이 놀라 나를 봤다.
“그리 전하면 알 것이다.”
“알겠사옵니다.”
“가지 않는다고 하시면 참으로 위험하다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주군!”
“이번만은 실수가 없어야 할 것이다.”
“예. 주군!”
왕준명은 내가 다짐을 하듯 말했다.
“어서 움직여라. 어서!”
“예. 주군!”
왕준명은 내게 말하고 말 머리를 돌려 내 사택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난 위위경의 사택을 물끄러미 봤다.
“어떻게 하지?”
“왜 그러시옵니까?”
“저 안에 내가 필요한 계집이 있다.”
이제 내게는 무비는 그냥 계집인 것이다.
“계집이란 말씀이십니까?”
별초들은 놀라 나를 봤다.
“그래! 계집이다.”
“그러하면 보쌈을 하면 되지 않사옵니까?”
별초 하나가 아무렇지 않게 내게 말했다. 그리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어려운 일일수록 쉽게 움직이면 되는 거였다.
“보쌈?”
“그렇사옵니다. 그게 가장 좋지 않겠사옵니까?”
“그래. 맞다. 가서 보쌈을 하자.”
난 쉽게 일을 처리할 생각을 했다.
“사택 가장 깊은 안가에 무비가 있다.”
순간 별초들은 놀라 나를 봤다.
“계, 계집이라고 말한 것이 무, 무비이옵니까?”
“그래. 지금 내가 가장 필요한 계집이 바로 그 무비다. 아무에게도 들켜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