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1권 -- >
“그런 모양이군.”
이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정말 몰랐을까?’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어 힐끗 전존걸을 봤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는 눈빛이었다.
‘왜 저러지?’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이고가 내게 이렇게 대하는 것은 뭔가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뭔가는 내가 꾸미고 있는 일의 전부를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일부는 감지했다는 걸 거다.
“워낙 용호군에 많은 일이 일어나 대장군인 나도 모르는 일이 많지. 또 모르고 처리되는 일도 많고.”
상명하복의 군부에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밟아온 행적은 절대 작은 일이 아니니 분명 보고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사옵니까?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네. 그런 일이 종종 있네.”
“하오면 무슨 영문으로 제 하급 무장을 구금하고 계신 것이옵니까?”
“구금이라? 말이 좀 과격하군. 데리고 있는 것이지.”
“스스로 걸어 나가지 못하면 구금이 아닙니까?”
“그렇기도 하지. 그래서 하급 무장을 직접 데리러 온 것인가?”
“저의 부하이옵니다.”
“그렇지. 그런데 무슨 일이 있어서 회생이 구금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지?”
이고가 다시 자신의 부장인 전존걸에게 물었다.
“다량의 식량을 확보하고 북변에 보낸 것에 대해 취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량의 식량?”
“그렇사옵니다. 대장군! 3천 이상의 인원이 너끈히 한 달을 먹을 분량의 식량이옵니다. 그 정도의 식량이면 군량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옵니다.”
전존걸은 나를 보며 말했다.
“군량미라니요. 제가 무슨 군사가 있어서 군량미를 비축한단 말입니까? 말도 되지 않습니다.”
“어디 말이 되지 않는 것이 한두 가지인가?”
이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대장군! 너무 심한 억측이옵니다.”
“그런가?”
“그렇사옵니다.”
난 그렇게 말하고 전존걸을 노려봤다. 그러자 전존걸 역시 나를 째려봤다.
“북변이 기근이 든 것은 아십니까?”
어디든 이 고려는 기근과 같은 폭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천재와 인재를 더해서 지방 관리들의 폭정이 더해지니 기근이라면 기근일 것이다. 그런데도 곡식들을 잘만 왜로 금으로 거란으로 빠져 나갔다.
“북변에 기근이?”
“그렇습니다. 그곳에 제 식읍이 있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보낸 것입니다. 3천명이 한 달은 너끈히 먹을 식량이라 하셨습니까? 과하군요. 겨우 이천이 보름도 먹지 못하는 식량이옵니다.”
“그 역시 엄청난 양이지 않나?”
전존걸은 내 말을 반박하듯 말했다.
“맞아! 북변에 회생의 식읍이 있지.”
이고는 다시 전준걸은 보며 말했다. 마치 이고는 나와 전존걸의 중간에서서 이야기를 조율해주는 것 같이 보였다.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각종 지도를 모은 일일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가장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그 두 가지가 하나로 뭉쳐지면 어떤 억측이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내가 이곳을 괜히 왔다는 생각도 들었다.‘내가 급한 마음에 패착을 행한 것인가?’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럼 지도는 어떻게 설명을 할 것인가?”
그 순간 대장군인 이고의 목소리가 변했다. 나 역시 이고가 아예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믿지 않았기에 놀라지도 않았다.
“왜 제가 역심이라도 품었을까. 그러십니까?”
내 말에 이고는 피식 웃었다.
“그래. 그게 있었지. 역심이야 누구나 품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고는 정말 오늘 나랑 척을 지기 위해 작정을 한 것 같았다.
“그 누구나에 위위경도 포함되어 있다 보십니까?”
내 반격에 이고는 잠시 인상을 찡그렸다.
“나를 위위경으로 압박할 생각은 말거라. 위위경의 권세가 대단하기는 하나 그것은 너도 알듯 모래성과도 같은 것이다.”
순간 이고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송구하옵니다.”
“난 너의 솔직한 대답을 듣고 싶다. 네가 멍청한 채원도 아니니 그런 마음을 헛되게 품지 않을 거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후일은 모르나 아직은 아니겠지.”
이고는 나를 노려봤다.정말 예리한 판단일지도 몰랐다.이제 나는 무엇이든 선택을 해야 했다. 이고와 거래를 하던 내 솔직한 것에 대한 행동을 밝히든 뭐든 하나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제 솔직한 대답을 원하십니까?”
“그렇지. 나는 전에 솔직하게 네가 말하지 않았느냐?”
순간 나는 이고가 무비를 내게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설마 무비를?’이건 순간 이의방과 이고가 척을 지는 일이 될 것 같았다. ‘뭔가 이고와 이의방이 앙금이 있는 것이야!’난 그렇게 밖에 생각을 할 수 없었다.나는 힐끗 전존걸을 봤다.
“말하기 불편하더냐?”
“편하지는 않습니다.”
내 말에 전존걸이 인상을 찡그렸다.
“소장 물러가 있겠사옵니다.”
“그러시게.”
이고의 말에 전존걸은 목례를 하고 빠르게 이고의 군막을 빠져나갔다.
“이제 되었느냐?”
“감사하옵니다.”
“그래. 무엇 때문에 그 많은 식량과 지도를 모은 것이냐? 그리고 그것이 역심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을 영악한 너도 잘 알 것인데 왜 그렇게 누구나의 의심을 감수하면서까지 한 것이냐?”
99가지를 주고 하나를 숨긴다. 이번도 이래야 할 것 같았다.
“사실 둘 중 하나만 했다면 너의 하급 무장을 감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너를 의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내 식읍에 식량을 주기 위해 구매할 수 도 있었다고 생각을 했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럼 보여드리겠습니다. 제 마음을.”
난 바로 탁자 위에 만적이 내게 받친 족자 지도를 올려놨다.
“보십시오.”
내가 탁자 위에 두 장의 족자를 올려놓자 이고는 그 족자에 관심을 가졌다.
“무엇이냐?”
“모았던 지도입니다. 하나를 보시면 이해가 될 것이고 또 다른 것을 보시면 제가 역심을 품었다고 의심도 하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내 말에 이고는 다시 인상을 찡그리며 지도를 펼쳤다.
“이것은 대외 무역에 관한 지도이지 않느냐?”
“그렇사옵니다. 제 식읍이 북변이라 척박한 땅에 농사를 지어 식읍민을 살릴 수 없다고 생각을 해서 상단을 하나 꾸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구하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런 것이냐?”
이고는 그렇게 말하고 다른 지도를 봤다. 난 이고가 지도를 보자 인상을 찡그렸다. 사실 내가 처음 보인 지도만 보고 오해를 풀어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고는 그렇게 하지 않고 두 장의 지도를 모두 봤다.‘우선 무역로를 보여줬으니 다음도 설명이 되지.’이고는 두 번째 지도를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이, 이것은,,,,,,.”
이고가 지도 속에서 주목을 한 것은 각 지방의 군영이 있는 것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그 지도에 있는 더 많은 정보를 이고가 보지 못하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보신 것은 군영이 주둔한 지역일 것입니다.”
난 최대한 당당히 말했다. 원래 방귀를 뀐 놈이 성을 내야 다른 자가 말이 없는 법이다.
“당당하군.”
“그렇습니다. 저를 의심하시니 그런 군영의 위치만 보일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죄라는 것을 아느냐?”
군영의 위치를 지도에 포기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는 시대였다. 적에게 기밀을 누설할지 몰랐기에 그런 거였다.
“군영의 위치만 보이시고 그 옆에 있는 지방 특산 물목의 기록을 보이지 않으시죠. 또한 이동로도 보이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게 중요하더냐?”
“그렇습니다.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상단을 하나 꾸렸다고.”
“그랬지.”
“그 상단이 해외 무역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고려 내에서 재물을 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어떻다는 거지?”
“군영만큼 많은 물자를 소비하는 곳은 없을 것이옵니다.”
내 말에 이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군상이 되겠다는 것이야?”
사실 내 말에 틀린 것도 없을 것이다. 군영만큼 완벽한 소비 집단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이야기가 믿음이 갈 것 같았다.
“그렇습니다.”
“내 알기로는 재물이 꽤 있는 줄 아는데?”
여전히 이고는 나에 대한 의심을 풀지 않았다. ‘역시 99가지를 내어지고 하나를 숨겨야겠군.’
“그렇사옵니다. 제물은 꽤 있사옵니다.”
“그런데 왜 군상까지 하며 의심을 사려는 것이냐?”
“제가 조정에 숨긴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순간 내 말에 이고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게 무엇이냐?”
“놀라지 마시옵소서.”
난 이고를 우선 안심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너를 보면 항상 놀라니 괜찮을 것이다.”
“예. 대장군!”
“무엇이냐? 조정을 속였다면 위위경도 속였다는 것인데 무엇을 속인 것이냐?”
“예. 위위경도 모르는 일이옵니다.”
“무슨 일을 꾸미는 것이냐?”
난 잠시 이고를 봤다. 밥이 되기 위해서는 뜸을 드려야 하는 법이다.
“초산이라는 곳을 아시옵니까?”
“초산?”
“그렇사옵니다.”
“그곳은 안북 도호부가 있는 곳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곳에 안북 도호부가 있사옵니다. 그리고 고려에 기부를 하려는 속말말갈족의 한 부족이 저를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순간 이고의 눈빛이 커졌다. 정말 나를 만나고 몇 번을 놀랐을 이고였지만 이처럼 크게 놀라는 것은 나도 처음 봤다.
“뭐라? 귀부를 하려는 속말말갈족이 있다고?”
“그렇사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이냐?”
이고의 목소리는 떨리기까지 했다.그리고 이제부터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이 제 식읍입니다.”
난 탁자에 펼쳐져 있는 지도에서 내 식읍을 찍었다.
“나도 알고 있다.”
“천리장성 위입니다.”
“그렇지.”
“이곳이 고려의 영토이옵니까? 금의 영토이옵니까? 그게 아니라면 거란이나 다른 여진족의 땅이옵니까?”
내 다부진 물음에 이고는 나를 다시 봤다.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저는 명예롭게 5등 공신이옵니다. 그리고 이 고려에서 처음으로 식읍이라는 형태로 영지를 하사받았사옵니다. 전대미문적인 일이지요.”
내 말에 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세폐의 징수 권한이 주어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곳을 지켜내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이고 역시 북변 갑산이 분쟁지역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속말말갈을 너의 식읍 민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위위경에게 말을 하지 않은 것이냐?”
“말을 하면 무엇을 하옵니까? 속말말갈이 어떤 존재입니까? 뛰어난 마상술을 가진 여진의 한 부족이옵니다. 그런 자들이 2천 가까이 있다면 어떻게 하실 것 같사옵니까?”
내 질문에 이고도 인상을 찡그렸다.
“안북 도호부를 위로 올리려들겠지.”
“그럼 속말말갈족은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자신들을 귀부를 받아주고 전장으로 내몬다고 생각할 것이옵니다.”
“그래서 네가 가진다?”
이고는 내 현란한 말솜씨에서도 내가 숨기려는 핵심을 꼭 끄집어냈다.
“그렇사옵니다. 저도 살아야 하지 않사옵니까?”
내 말에 이고는 피식 웃었다.
“네가 말한 것으로 오해를 풀어 달라?”
“풀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오해십니다.”
“엄청난 짓을 꾸미고 오해라 하하하! 역시 너는 당차고 영악하다.”
이고가 나를 찰나의 순간 노려봤다.
“속말말갈을 꿀꺽 한 것은 큰일을 도모한 것이기는 하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옵니다.”
“그렇게도 보일 수도 있지. 그럼 너는 최소 500의 기병을 얻게 되는 것이냐?”
역시 핵심을 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법이다. 또 그 자리가 사람을 바꿔놓는 법이기도 하다.
“그렇게도 되는 것이옵니다.”
“그럼 말을 몰아오면 이 개경까지 이틀이면 되겠구나! 그럼 너에게 엄청난 힘이 되겠구나.”
순간 난 숨이 턱하고 막혔다.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옵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지.”
이고의 눈빛이 변했다.
“저는 그런 일이 없다하였습니다.”
다짐하듯 말했지만 내심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것도 아니다. 여차하는 순간 내가 마음 난신적자가 되어 권력을 탐하게 된다면 속말말갈의 기병과 내 가병을 이용해 전격전으로 개경을 향해 달릴 거라는 생각도 해 본 것이 사실이었다.
“나도 변하는데 너라고 변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느냐?”
난 순간 당황했다.‘이고가 변해? 무엇 때문에?’답은 간단하다. 이의방과의 관계 때문일 거다. 그리고 그것은 작은 앙금에서부터 시작할 것이 분명했다. 또한 그 앙금의 시작은 도깨비불이라고 표현된 내 전략 때문일 거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내게 한 달 전 변화가 생겼다.”
이고가 말하는 한 달 전은 내가 미친 척을 해서 2천의 가병을 얻은 그때일 것이다.
“무슨 변화이십니까?”
난 다 알면서도 물었고 내 물음에 이고는 다시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엄청난 것을 토해 낼 것 같았다.
“회생아!”
“예. 대장군!”
“너는 만약 무슨 일이 있다면 누구를 택할 것이냐?”
“예?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을 줄 것이다.”
이고는 자꾸 핵심을 말하지 않고 돌려 말하고 있었다. 그만큼 엄청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옵니까?”
“북변이 아니더냐? 그곳에 가서 너의 세상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냐?”
순간 난 숨이 턱하고 막혔다.
“그, 그게,,,,,,.”
“그래서 목숨까지 건 것이 아니었느냐?”
순간 99가지를 주고 하나를 숨기려 했던 것까지 들키고 말았다.
“대장군!”
“처음에는 몰랐지. 아니 너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너는 참으로 담이 크고 영악한 놈이다. 하지만 네가 쓰러진 후에 너의 부하들이 한 일처리는 용호군에게 꼬리가 밟히기 충분했다.”
이고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최대의 위기라는 생각도 들었다.이럴수록 침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