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1권 -- >흥선의 방.흥선의 방은 거의 난장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필사한 많은 지도들이 방바닥에 널려 있었고 탁자 위에는 온통 먹물을 얼굴에 묻힌 흥선이 뭔가 열심히 기록을 하고 있었다. 뭐 하나에 집중을 하는 모습이 놀랍기만 했고 또 이렇게 집중을 할 수 있는 것이 대단하기만 했다.
“형님의 꿈을 키워드리려면 정보가 있어야 해.”
흥선은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씩 웃었다. 요즘 들어 무척이나 신이나 있는 흥선 같았다. 그리고 회생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하나씩 뭔가 회생에게 주고 있었다.
처음 가복을 회생에게 줬고 그 다음이 만적 그리고 이제는 이 고려에 대한 지형정보면 각종 중요한 정보를 요약하고 종합해서 주고 있었다.흥선은 진정한 회생의 숨은 조력자였다.
“그나저나 하나로 요약된 지도가 없고 기록이 없다는 것이 어이가 없군! 조정 신료들은 어떻게 세폐를 거둬드리지?”
지금 흥선이 기록을 하고 있는 것은 각 지방의 특산물과 이동로 그리고 군막의 위치와 군성의 위치였다.그렇기 때문에 회생이 놀라는 거였다.
“형님은 어떻게 되었던 북변으로 가실 것이야! 오랑캐들과 싸워야 하시니 이런 게 반드시 필요 해.”
흥선은 다시 혼잣말을 했고 그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있는 이 숭겸은 그저 걱정스럽기만 했다. 마치 회생이 북변으로 가면 흥선도 따라갈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서지 않는 이숭겸이었다.
“마마! 이노신은 그냥 걱정이 될 뿐이옵니다.”
“왜 내가 따라간다고 할까 봐요?”
“그렇사옵니다.”
“답답한 황궁보다 훨씬 좋지요.”
흥선은 인상을 찡그렸다.
“하오나 위험한 곳이옵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곳이지요.”
“하오나 마마께서 돕지 않으셔도 재간이 출중한 회생공입니다.”
이 숭겸의 말에 흥선은 피식 웃었다.
“이제 상선도 회생공이라고 하네. 형님을.”
“다들 그렇게 부르옵니다.”
“그렇지. 다들 그렇게 부르지요. 황실에서는 내 누님과도 혼례를 생각하고 있다지? 그럼 진짜 형님이 되네. 하하하!”
“그렇사옵니다.”
“하여튼 놀랬어. 그 도도한 누님께서 직접 이 사택까지 올 줄은.”
흥선은 씩 웃었다.
“그만큼 재간이 대단한 회생공입니다.”
“재간이 있다고는 하지만 숨기지 않는 것이 문제지요.”
“예?”
“형님이 재주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그럼 적이 늘어날 겁니다.”
“그렇기도 하옵니다.”
“그러니 누군가가 해 줘야지요.”
“예?”
순간 이숭겸은 기겁했다.
“무엇을 하시려고 그러시옵니까?”
“두고 보면 압니다. 언제까지 이의방을 비롯한 무부들과 친하게 지낼 수 없지요. 끝이 날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럼 공적이 됩니다. 제가 없으면 그렇게 됩니다.”
“정말 도우시려는 것입니까?”
“그래볼 참입니다.”
사실 이숭겸은 흥선이 엄청난 식견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그리고 흥선이 처해 있는 상황이 그렇게 흥선을 더욱 영악하게 만들고 지식을 쌓게 하고 식견을 넓히게 했는지도 모른다는 또 있을지도 생각이 드는 이 숭겸이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흥선이 종합한 지도였다. 이 지도만 봐도 고려가 한 눈에 보였다.
‘놀랍다.’고려의 역로를 중심으로 각 지방의 특산물의 표시 및 각종 광산과 군영이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었고 지역의 특성 또한 기록이 되어 있었다.
‘한 달 만에 이 정도로 정리를 할 수 있다면 천재다.’난 흥선이 그저 놀랍기만 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충분히 밥값은 한 것 같았다. 아니 그 이상은 한 것 같았다.
“아주 유용한 것을 종합해 왔구나!”
“예. 모두가 흥선 도련님이 하신 겁니다.”
“대단해! 역시 대단해!”
“그렇사옵니다.”
이것만 있으면 충분할 것 같았다.
“이것이 내게는 보화다. 정말 보화야!”
난 정말 만족스러워했다. 그럼 이제 산삼 씨를 어떻게 심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 같았다.
“만적아!”
“예. 주군!”
“너는 어디다 산삼 씨를 심으면 좋겠느냐?”
내 물음에 만적은 날 물끄러미 봤다. 마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
“여기다 심으실 참이옵니까?”
역시 만적도 예측력이 좋은 아이였다.
“아닐 것 같으냐?”
“많은 것을 북변 갑산에 옮기시는데 몇 년이 걸려야 캐 먹을 수 있는 것을 그것도 귀하게 구한 것을 이곳에 심으실 것 같지는 않사옵니다.”
“옳다. 역시 넌 영악하다.”
“예. 주군!”
다시 만적의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난 다른 곳을 생각하고 있다.”
“북변 갑산이옵니까?”
여기까지가 만적의 예견력일 것이다. 만적이 말한 북변 갑산에는 인삼을 재배할 환경이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러니 그곳에 절대 이 귀한 산삼 씨를 심을 수는 없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예?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네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시키시면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무엇을 하면 되옵니까?”
“옹기장을 구해와라. 그리고 이 도성에 있는 옹기를 모두 구해와라.”
“옹기요?”
“그래. 옹기가 필요하다. 그것도 꽤 큰 것으로.”
“당장 옹기장을 데리고 오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당장이다. 이제 며칠이 더 지나면 나는 다시 등청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처리할 것은 처리하고 가야겠다.”
“알겠습니다. 주군! 제가 바로 왕준명과 함께 옹기장을 수소문해 오겠습니다.”
“그럼 나는 그동안 며칠 북변에 가봐야겠다.”
순간 다시 만적은 놀라 나를 봤다.‘벌써 한 달이나 지났어. 속말말갈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야!’전에도 말했지만 내 스승인 최준께서 개경으로 올라오는 장계 중에 속말말갈이 귀부를 해 오는 장계를 빼내어 감추고 내가 그들을 차지하게 만들려 했다. 이제야 그것을 이루려는 거였다.
“성치 않은 몸으로 북변에 가 보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따지고 보면 서북변이지.”
“왜 옵니까?”
“많이 알려고 하면 다친다.”
이건 농담이다. 하지만 그 농담 속에 항상 진담이 들어 있는 법이다. 가신은 주군보다 많이 알아서는 절대 안 된다. 그렇기 나는 만적을 조교하고 있었다.
“예. 주군!”
“제가 채비를 하겠습니다.”
“네가 할 것은 옹기장을 구하고 또 꽤 많은 식량을 확보해서 서북 변으로 왕준명을 보내는 것이다.”
“서북 변으로요?”
“그래. 전서구를 통해 연통을 할 것이다. 그럼 바로 움직이면 된다.”
“식량이라,,,,,,,.”
내 말에 만적이 난색을 보였다.
“왜 그러느냐?”
“요 근래에도 너무 많이 식량을 사서 북변으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용호군에서 보는 눈이 곱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왕준명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를 간 것이냐?”
“용호군 군막에서 불러 갔습니다.”
이건 무척이나 중요한 일인데 지금에서야 내게 보고가 된 거였다.
“왜 지금 그걸 말하는 것이냐?”
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송구하옵니다. 주군!”
“으음,,,,,,.”
식량을 다량으로 구입을 하면 군량미처럼 보이게 된다. 물론 난 군량미를 구입한 것은 맞다.
북변 갑산에 가 있는 2천의 내 가병들과 별초낭장 박현준과 50의 별초들이 먹을 군량미인 것이다.그리고 그것을 이제야 용호군이 감지를 한 것이다.
물론 2천의 가병들까지 알아내지는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분명 이것은 충분히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만적이 지도를 수집하는 것 역시 감지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뭐야? 왜 이렇게 항상 엉뚱한 곳에서 일이 터지는 거야!’난 짜증이 밀려왔다.
이제 이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말 이고와 담판을 지어야 했다.‘정말 이고를 만나야 하는 거군!’이고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여인이 무비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신경이 쓰였다.
‘이의방의 첩실이 되었다는 보고는 없었는데,,,,,,.’박철우와 한 회는 내 가신이 되어 각각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큰일은 아니었다.
‘한회가 아직 보고가 없었어.’난 이의방의 사택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그곳에 노비를 매수하고 또 다른 노비를 간자로 심었다. 그리고 그 임무에 대한 책임을 한회에게 줬다. 정말 무비는 내 인생의 판도라의 상자일 것 같았다.
‘이고에게 무비를 주고 무마를 시킨다면,,,,,,,.’그럼 이의방이 걸렸다. 정말 한 달 푹 쉬었더니 머리가 아픈 일이 생긴 것이다.
정말 좋아만 할 때가 아닌 듯 했다. 대량의 식량과 각종지도의 수집!이것은 달리 보면 역심으로도 보일 것이 분명했다.
‘젠장! 북변에 가야 하는데 언제 간단 말이야! 언제!’난 점점 더 짜증이 밀려왔다. 처리 할 일은 태산! 몸은 아프고 하나뿐이다. 그러니 일은 쌓이기만 하는 거였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내 외침에 홍련이 방으로 들어왔다.
“예. 주군!”
“별초 몇에게 채비를 하라고 해라.”
“채비라 하시면?”
“이고 대장군의 군막으로 갈 것이다.”
“예. 주군!”
우선은 이고를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어떻게든 설득을 해야지. 어떻게든.’일이 잘 진행되고 있는 판에 제동이 걸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다급한 모습이 만적은 주눅이 들어 있었다.
“괜찮다. 내가 처리할 것이다. 너는 옹기장이나 데리고 와라.”
“예. 주군!”
난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용호군 군막 내에 있는 이고 대장군의 군막 앞.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지.”
이고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러시지요.”
나 역시 조용한 곳에서 이고와 담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되었던 분명 무슨 곡절이 있으니 저렇게 대담하게 황제폐하의 견룡을 구금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고가 먼저 자신의 군막으로 들어섰고 내와 백화가 들어서려는 순간 부장 전존걸이 백화를 막아섰다.
“밖에서 기다리시오.”
부장 전존걸의 말에 백화는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급하니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난 백화를 보며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하오나 상공.”
지금 이 순간 백화는 만약의 순간을 대비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나는 호랑이 굴로 들어와 있었고 백화가 하려는 일을 해야 할 때면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난 그렇게 백화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나 역시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정말 호랑이 굴로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 상공.”
그렇게 이고의 군막 밖에 백화와 다섯의 별초가 남았고 나만 이고의 군막으로 들어섰다.
“앉아라!”
항상 내게 하대를 하는 이고였다. 물론 내게 바라는 것이 처음부터 없었기에 저러는 걸 거다. 하지만 오늘은 그 눈빛이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예. 대장군!”
난 조심히 대장군인 이고의 앞에 앉았다. 그리고 순간 군막이 조용해졌다. 나와 이고는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봤다. ‘눈빛이 달라! 뭔가 있어.’난 오늘 따라 이고의 눈빛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꽤 많이 상했다고 들었는데 괜찮은가?”
참 이게 무슨 마른하늘의 날벼락도 아니고 옹기를 이용할 참에 난 황당히 이곳 용호군 군막까지 와야 했다. 이것부터 일이 꼬인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수습이 어려워질 것 같아서 이렇게 달려온 것이고 이의방에게 보고하지 말라는 법도 없어 이렇게 달려온 거였다.‘이의방에게 보고를 한다면 모든 일이 엉망진창이 된다.
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 어떤 면에서는 사면초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런가? 그런데 이곳까지는 무슨 일로 왔는가?”
이고는 다 알면서도 내게 물었다. 이런 인물이 참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인물일 것이다. 모두 다 내게 원하는 것이 있어 그것을 주면 되는데 이고는 내게 원하는 것이 없었다. 물론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내가 내어줄 수 없는 것이니 없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제 하급 무장이 이곳에 갇혀 있다고 들었사옵니다. 그래서 왔습니다. 황제폐하의 견룡이 용호군 군막에 구금이 되어 있다는 것이 소장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갇혀 있다?”
“그렇습니다. 설마 모르시고 계신 것이옵니까?”
난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했다. 그리고 내 물음에 이고는 부장인 전존걸을 힐끗 봤다.
“그런가?”
“그렇사옵니다. 조사할 것이 있어 데리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