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0권 -- >뿌우웅! 뿌우우웅!낮은 중저음의 불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소리를 들은 용호군 중군 추격 기병들이 모두 말머리를 돌렸다.
“쉽게 생각을 했는데 정말 김돈중이 와 있는 건가?”
대장군인 이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도망을 친 김돈중이라고 하셨습니까?”
부장이 놀라 이고를 봤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런 전략을 쓰지 못하지. 우리를 습격한 놈들을 소모시켜서라도 우리를 유인하려는 계략은 김돈중이 주로 쓰는 전략이다. 아니 그의 애비인 김부식이 주로 쓴 계략이지.”
우연하게 회생이 사용한 전략과 김부식이 묘청과의 전투에서 쓴 전략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사옵니까?”
“그래. 그러니 추격을 하지 마라.”
“예. 대장군.”
“이제는 저 초입에 군막을 설치하고 적을 찾는데 주력을 해서 이 밤이 가지전에 모두 소탕을 해야 할 것이다.”
“예. 대장군!”
부장이 짧게 대답을 했지만 이고는 머릿속으로는 이 밤이 지나기 전에 저 모두를 토벌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꾸 황궁이 마음에 걸렸다.‘저들이 우리의 포위를 뚫고 황궁으로 향한다면 일이 복잡해지는데,,,,,,.’이고는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회생은 이 순간 정말 죽음의 위기에서 생환한 거나 다름없었다.
“워워워!”
나와 50여기의 별초들은 죽을힘을 다해 용호군 중군 추격대를 따돌리고 용호군이 있는 송악산 초입 반대편에서 말을 멈췄다.
“괜찮으십니까? 주군!”
내가 말을 멈추자 두경승이 급하게 말에서 내려 내 말고삐를 잡고 내 안부를 물었다. 어쩜 그런 물음도 당연할 거다. 내 뒤에 별초가 내게 날아온 화살을 모두 맞아줬다고는 하지만 내 뒤 어깨 쪽에는 3발의 화살이 박혀 있었다.
“으윽! 괜찮다.”
내가 화살을 맞은 것을 백화가 봤다면 놀랄 것이 분명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을 했지만 파고드는 고통에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쿵!그때 내 뒤에 있던 별초가 모든 기력이 다했는지 내 허리를 꼭 쥐고 있던 팔에서 힘이 풀리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난 급하게 말에서 내려 바닥에 떨어진 별초를 안았다.
다행이 아직 기병은 죽지 않았다.
“죽지마라!”
50명의 별초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주, 주군,,,,,,.”
죽어가는 별초가 나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죽지 말라고 했다.”
“죄, 죄송합니다.”
“그딴 소리 말고 죽지만 마라.”
난 소리를 질렀고 내 외침은 50여명의 별초들의 심장을 뜨겁게 뛰게 했다. 하지만 끝내 내 품에서 기병은 죽었다. 난 어금니를 꽉 깨물며 진심으로 죽은 기병에게 마음속으로 사죄했다.‘미안하다. 하지만 꼭 연극만은 아니었다.’난 천천히 별초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놓고 일어섰다.
“이곳에 별초 조장이 있나?”
“예. 주군!”
별초 조장 하나가 내 앞에 나섰다. 역시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하루 전만해도 여전히 나는 자신이 보호해야 할 어린 주군이었으니 지금의 나를 보는 눈빛은 충심으로 따라야할 주군으로 보는 듯 했다.
“너와 별초 둘은 이곳에 남아 묻어줘라.”
“주군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내 이번 일이 끝나면 다시 찾아 성대히 장사를 치러 줄 것이다.”
난 다시 싸늘한 시체가 된 죽은 별초를 봤다.
“나를 위해 죽은 이 무장의 이름이 무엇이지?”
난 이 순간 나를 위해 죽은 가신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은 승이고 성은 허입니다. 허승! 충심이 강한 무장이었습니다.”
“허승! 기억하마! 내 뛰는 가슴과 함께.”
“감사하옵니다.”
마치 별초 조장은 자신을 기억해주는 것처럼 내게 감사해했다.‘이제 시작이다.
이제!’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제 내 첫 번째 복선은 깔린 거였다.
이제는 두 번째 일을 진행해야 했다.9. 용호군 척후를 척살하다.
회생이 목숨을 걸고 용호군 중군을 향해 돌진을 하며 2천의 가병들을 살리기 위해 고전분투를 하는 동안 그 회생의 마음도 모르고 가병들은 여전히 의심의 눈빛으로 포로 아닌 포로로 남아 있는 백화와 별초 둘을 노려보고 있었다.
“오지 않는다면 저 계집을 죽이고 도망을 칠 것이야!”
가병 중 하나가 마치 백화가 들으라는 듯 소리를 질렀다. 정말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들이지만 이렇게 자기 살 구실만 찾고 있었다.그것을 보고 한회는 답답하기만 했고 그를 보고 있는 박철우는 안타깝기만 했다.
“저것이 노군의 현실일 것이요.”
박철우는 아쉽다는 듯 말했고 한회도 고개를 끄덕였다.한회와 박철우도 백화의 앞에서 혹시나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백화를 보호하고 있는 것은 2명의 별초와 한회 그리고 박철우가 전부였다.
“주군들이라는 것들이 믿음을 주지 못해서 그런 것이지 않겠소.”
“그럴 것이요. 목숨을 요구하기만 했지. 어떤 보상도 도치도 없었소.”
“그럴 것이요. 하지만 주군은 분명 다를 것이요.”
박철우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한회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렇습니다. 분명 이번 주군은 다를 것 같습니다.”
“예. 그렇지 않다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저 어리석은 것들만 모르고 있는 것이 문제지요.”
한회는 가병들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주군은 오직 우리들을 살리기 위해 저렇게 고전분투를 하시고 계실 것인데 우리는 그저 주군의 내자가 되시는 분을 인질로 잡아놓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입니다.”
“그나저나 주군께서 오시기 전에 아무 일도 없어야 할 것인데,,,,,,.”
한회는 가병 장들의 눈치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 조금만 더 지체가 된다면 무슨 사단이 나도 날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리고 박철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히 백화를 향해 조심히 걸어갔다.
“불편한 것은 없으시옵니까?”
한회가 조심히 백화에게 물었다.
“나는 괜찮네.”
“그나저나 눈빛이 좋지 않습니다.”
한회의 말에 백화가 가병들을 한 번 힐끗 봤다. 그들은 지금 인내심이 바닥이 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들고 달려들 것 같았다. 그리고 가병들 중에는 야릇한 눈빛으로 백화를 보는 자들도 있었다.참으로 무례한 눈빛이 아닐 수 없었다.
“저렇게 통제가 안 되는 것들을 어떻게 이 산에 은거를 시켰는지 놀랍군요.”
백화는 한회가 대단하게 보였다.
“가병 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병록?”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없어졌으니 고삐가 풀린 상태가 된 것입니다.”
한회의 말에 백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상공께서 저들을 위해 한 일이 저들을 저렇게 준동하게 만든 거군요.”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이 천성이 노비라 자기 탓을 하기보다 주인 탓을 하는 것이 몸에 베여 저러고 있습니다.”
“저들의 잘못만은 아니지요. 믿음을 주지 못한 주인들의 잘못이지요.”
“그렇게 생각을 해 주시면 감사하옵니다.”
“지금은 달리 생각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백화도 좋게 생각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반드시 회생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다시 올 거라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
“만약! 저들이 주군이 오시는 것을 더는 참지 못하신다면,,,,,,.”
한회는 가병들의 눈치를 보며 백화에게 조용히 말했다.
“못하면?”
“피하십시오. 저와 박철우님과 호위무사들이 어떻게든 막아보겠습니다.”
“막는다고 막아지는 일은 아니지요. 저는 이 자리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상공을 기다릴 겁니다.”
백화는 그렇게 말하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그때 우려했던 일이 드디어 일어났다.
“젠장!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건 아니야! 왜 오겠어. 죽으려고 와? 용호군이 포위를 했는데 어떻게 우리를 살린단 말이야!”
가병 장 하나가 소리를 쳤다. 그 하나가 이렇게 소리를 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군중심리라는 것이 있고 한 없이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가병들은 자신들의 불안한 마음을 풀 희생양 같은 것을 찾고 있는 듯 했다.
“맞아! 누구 우리를 구하러 오겠어. 그 어린놈은 계집을 이용해서 도망을 친 거야!”
이제 회생을 주군이고 부르지도 않았다.한없는 불신인 것이다.
“무엄하다.”
백화가 앙칼지게 소리를 질렀다.
“무엄하기는 뭐가 무엄해! 네년도 그 어린놈에게 속은 것이야!”
가병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 검을 뽑았다. 이제 정말 초조한 마음이 폭력적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그와 동시에 긴장을 한 별초 둘이 검을 뽑았고 박철우와 한회도 검을 뽑았다. 그 순간 가병 장들과 가병들은 한회의 박철우의 모습을 보고 잠시 놀랐다.
“한회 총가병장! 그쪽에 설 거요?”
가병 장 하나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눈빛으로 한회에게 물었다.
“이 버러지 같은 것들아! 주군은 우리를 위해 동분서주하시고 계시다.”
“그건 누가 알겠소. 벌써 겁이 나서 개경을 벗어났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요.”
“한회 가병 장 그곳에 있으면 우리도 더 이상 한회 가병 장을 동지라고 생각하지 않겠소.”
“그래요. 총 가병 장! 계집과 저들을 죽이고 도망을 칩시다. 가병 록이 없는 이상 이 송악산만 벗어나면 북변이든 남변이든 그것도 안 되면 어느 섬이든 가서 숨어 살면 살 수 있을 거요.”
역시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가득한 2천의 가병들이었다. 그 모습을 백화가 보고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노비로 살다가 그 자식까지 노비로 살게 만들 자들이구나!”
백화가 검을 뽑아들며 앙칼지게 소리를 질렀다.
“뭐라? 이년이 정말 미쳤나? 죽고 싶은 것이냐?”
“이 순간 죽고 사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인가? 너희들을 봐라! 너희들은 겁에 질렸으면서 또 살고자 하면서 자신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 않느냐? 누군가가 해주기를 바라고 또 그게 안 될 때는 또 원망을 하고 정말 치가 떨리는 노비 근성이다. 왜 나의 상공께서 너희들을 구명하려는 지, 나는 이유를 모르겠다.
”
“뭐라,,,,,,.”
백화와 맞섰던 가병은 뭔가 말을 하려다가 말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말 자체가 없는 거였다.
“뽑은 검이라면 어서 나를 베어라. 나를 베면 속이라도 시원할 것이다. 하지만 기억해라! 평생 아니 네놈이 씨를 뿌린 새끼들까지 노비 근성의 굴레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백화가 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이 고려에서 백화만큼 다부진 여인도 없을 것이다.
“뭐, 뭐라고 했소?”
백화의 다부진 질책에 가병의 말투부터 달라져 있었다.
“기다려라! 아직 이 밤이 지나려면 한 참이나 남았다. 만약 날이 밝기 전까지 상공이 오시지 않는다면 너희들이 나를 베지 않아도 이 구차한 삶을 이어가지 않고 혀를 깨물 것이다.”
백화는 가병들을 노려보며 소리를 쳤고 이 순간 누구하나 백화에게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 가병들의 산채로 달려왔고 그 순간 백화가 인상을 찡그렸다.
“적이다.”
백화의 외침에 일제히 가병들은 검을 뽑아들었고 2천의 창검이 한 순간에 산채로 달려드는 별초낭장 박현준을 향해 겨눠졌다.
“적이다!”
가병 하나가 소리를 쳤고 그 순간 산채로 뛰어든 자가 별초낭장 박현준이라는 것을 인식한 백화가 소리를 쳤다.
“멈춰라! 주군께서 보내신 자다.”
백화의 앙칼진 목소리에 가병들은 여전히 별초낭장 박현준을 노려봤다. 그리고 그 순간 별초낭장 박현준은 2천의 가병들이 자신을 노려보는 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백화를 향해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가신이 마님을 뵈옵니다.”
이제 백화는 마님으로 불렸다.
“어떻게 된 것인가요?”
“주군께서는,,,,,,,.”
별초낭장 박현준은 회생이 용호군 중군을 향해 돌격을 감행하기 위해 말을 몰고 달려갔다는 소리를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상공께서는?”
“저에게 지시를 하시고 다른 일이 있어 움직이셨다가 이곳으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 다른 일이 무엇입니까?”
백화가 별초낭장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것이,,,,,,.”
하지만 차마 별초낭장 박현준은 회생이 하고 있는 백화에게 말을 해 줄 수가 없었다.
“제 상공의 일입니다. 어서 말하세요.”
“상공께서는 50기의 별초를 이끌고 용호군 중군을 공격하기로 하셨습니다.”
별초낭장 박현준의 말에 2천이 모여 있는 장중에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뭐라고요?”
순간 백화는 기겁을 했다.
“송구하옵니다. 이 가신이 말렸으나 워낙 완고하셔서,,,,,,,.”
별초낭장 박현준의 말에 백화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가병들을 봤다.
“들었느냐? 너희들이 믿지 못하는 내 상공께서 그리고 너희들의 주군께서 지금 너희들을 구명하기 위해 악전고투를 하고 계신다. 이것이 너희들의 주군이시다.”
백화는 앙칼지게 소리를 질렀고 2천의 가병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백화에게 계집이라고 소리쳤던 가병이 백화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다가왔고 그 모습을 본 별초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 여차하는 순간 별초의 검이 그를 노릴 태세였다.백화도 자신에게 소리를 쳤던 가병을 봤다.
“더 할 말이 있느냐?”
“그, 그것이,,,,,,.”
“그것이 뭐? 아직도 나를 죽여야겠다는 마음에는 변화가 없는 것이냐?”
다시 한 번 백화가 앙칼지게 소리를 질렀다.
“그, 그게 아니라,,,,,,.”
“그럼 무엇이냐?”
“이 망할 놈의 주둥이를 힘껏 때려주십시오.”
순간 가병의 말에 백화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너희들의 다급한 마음을 내 어찌 모르겠느냐? 이해할 것이다. 또한 상공께서도 이해를 하실 것이다.”
백화가 쉽게 용서를 한다는 투로 말을 하자 가병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이십니까?”
“하지만 똑같은 무례를 두 번 저지른다면 네가 너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예.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 순간 백화는 주변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너무 손을 놓고 있는 듯 해.”
“왜 그러십니까? 마님!”
별초낭장 박현준이 백화를 보며 물었다.
“그대가 이렇게 무사히 내게로 올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 아닌가?”
“그렇사옵니다. 모두 다 손을 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