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196화 (196/620)

< -- 간웅 10권 -- >

“진준 상장군께 알려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부장 이충의 말에 장군 한 섬은 피식 웃었다.

“계집과 술에 빠져서 어디 신경이나 쓰시겠는가?”

“그렇기는 하옵니다.”

“내 위위경께 고하고 올 것이니 준비를 하시게. 만일을 대비해야 할 것이야!”

“예. 장군!”

이렇게 장군 한 섬은 응양군을 장악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급하게 자신의 군막을 박차가 나갔다.

“말을 준비해라! 장군께서 황궁으로 가신다. 말을 준비해라!”

한 섬이 밖으로 나서자 부장 이충이 소리를 질렀고 그와 동시에 장졸 하나가 준마 한필을 끌고 급하게 뛰어왔다.

“오르시지요. 장군!”

이것이 달라진 장군 한 섬의 위상이었다.

“오냐!”

장군 한섬은 급하게 말에 올랐고 그를 호위하기 위해 10명의 무장들이 따라 말에 올랐다.

“황궁으로 갈 것이다. 이랴!”

그렇게 장군 한 섬은 황궁으로 달렸다. 점점 더 급박해지는 순간이었다.

7. 스스로 인질이 된 백화!난 단상에서 내려와 분주히 움직이는 가병들을 봤다. 이제 저들은 내 가병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 식읍인 북변 갑산의 식읍민이 될 것이 분명했다.

사실 갑산은 개마고원 일대가 분명할 것이다.그리고 그 곳에는 사람이 살기 무척이나 척박한 곳이 분명할 거다. 그러니 북변으로 이주를 하면 노비였던 자도 면천을 시켜준다는 걸 거다. 그러니 이들 이천의 가병들이 식솔과 함께 북변 갑산으로 간다면 내게는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 사지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되겠군.’엄청난 힘을 가지는 것도 이 송악산이라는 사지를 빠져 나갔을 때의 일이 되는 것이다. 정말 세상사 쉬운 일이 하나 없다고 하지만 2천의 대병력을 은밀히 빠져나가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사지를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내 앞에 나를 주군이라고 부르겠다고 한 박철우가 공손히 서서 물었다.

“언제까지 나를 주군이라고 부를 거지?”

난 박철우를 노려보며 물었다. 이 순간 박철우가 내가 생각하는 만큼 영악하다면 내 말에 검이 서려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을 통해 자신을 시험한다는 것도 알 것이다.

“예? 무,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박철우는 조금 놀란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하지만 이 표정은 약간 의도된 표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끼를 부르겠다고?’난 박철우를 보며 피식 웃었다.

“내 네가 난적 채원의 책사 구실을 해 왔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물론 이것은 박위가 준 정보를 나 나름 재해석을 해서 다시 묻는 거였다. 병부 서고를 지키던 박위는 내게 박철우가 손자의 36계를 즐겨 빌러 갔다고 말했다. 그것만 봐도 채원의 책사 노릇을 한 것이 분명했다.그리고 그가 책사 노릇을 잘 했기에 성질 급한 채원이 준동을 하지 않고 지금까지 꾹꾹 참은 걸 거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박철우는 다시 한 번 내 말뜻을 진정 모르겠다는 눈빛을 하고 다시 물었다.‘모르쇠로 일관하겠다는 건가? 하지만 어쩌지 난 다 알고 있는데.’

“지랄병이 걸린 것처럼 해서 채원에게서 도망을 친 거지.”

“어, 어떻게 아십니까?”

약간 목소리가 떨리기는 했으나 내 말에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번만은 의도된 표정이 아닌 것 같았다.

“주군이라는 것이 신다 버리는 짚신은 아닐 건데 그렇게 버려서야 되겠나? 내 어떻게 변절자를 가신으로 믿을 수 있겠나?”

“다 아시니 더 드릴 말씀은 없사옵니다.”

“할 말이 없다?”

“그렇사옵니다.”

“그럼 나도 언젠가는 버려지겠군.”

난 인상을 찡그렸고 박철우는 나를 물끄러미 봤다.

“주군은 주군이 어떤 존재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박철우가 갑자기 내게 물었다.

“뭐라? 무슨 의도에서 묻는 거지?”

“주군이 가신을 타고 난세를 이끄는 것이옵니까? 가신이 주군을 타고 모시는 것이옵니까?”

이것은 참으로 머리 아픈 질문이었다.

“그럼 그대는 어떻게 생각을 하나?”

머리가 아픈 질문에서는 되묻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답을 회피하시는군요.”

박철우는 내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을 했다.

“그럼 다시 여쭈겠습니다. 주군이 준마이오리까. 가신이 준마이오리까.”

고금 중원의 영웅들은 자신을 준마에 비교했고 가신들은 자신을 옳은 길로 이끌어주는 기수라고 여기는 자들이 많았다. 유비도 그렇게 했고 유방도 그랬다.

그 둘의 성격은 조금 우유부단한 면이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에 반해 결단력이 있는 항우는 자신이 기수가 되어 가신들을 이끌었다.

‘병서 좀 읽었다고 잘난 체를 하겠다는 건가?’난 박철우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중원 영웅들에 비해 칭기즈칸은 자신을 기수로 가신들을 준마로 여겼다. 그래서 칭기즈칸의 사견사준이라는 말이 생긴 거였다.

사준사구(四駿四狗). 사구사준이라고도 불린다. 네 마리의 충성스런 준마와 충견을 뜻하며, 칭기즈 칸을 도와 몽골 제국을 건국한 8인의 건국공신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준은 내정과 전략에서 활동한 인물이며, 사구는 전투에서 공훈을 발휘한 인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몽골 제국의 역사를 기록한 원조비사에 나온 4마리의 준마, 4마리의 충견에서 유래한다.난 이 순간 문뜩 칭기즈칸이 떠올랐다.

‘그는 아직 꼬맹이겠지.’지금은 서기로 따지면 1170년이다. 그리고 내가 꼬맹이라고 말한 칭기즈칸은 이제 겨우 8살이 될 것이다. 그에게 곧 시련이 닥칠 것이고 그 시련을 극복하면 고려가 시련이 닥칠 거라는 것을 난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내 몸이 자유로워져야 무슨 수를 내도 낼 것인데,,,,,,.’난 칭기즈칸을 생각하며 인상을 찡그렸고 그런 나를 보고 있는 박철우는 내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 칭기즈칸과 비슷한 성향일 것이다.

“자꾸 서로를 숨기려고 하는군. 숨기기만 하면 얻는 것이 없지.”

“그렇습니까?”

“어떠냐고 물었지?”

“그렇사옵니다.”

“그럼 그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말하는 것부터 시작을 하지. 내가 그대의 생각을 말 할 테니 그대는 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해 보게.”

순간 박철우는 놀라는 것 같았다.

“주군께서 제 생각을 말씀하시겠단 말입니까?”

“왜 못할 것 같나?”

“아니옵니다. 이 고려에서 주군께서 못하실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귀에 단 아첨은 분명하지만 박철우도 적이었던 나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자네는 주군이라는 존재가 존마라고 생각을 하겠지. 가신이 이끄는 곳으로 달리는 준마! 그러니 말을 갈아타듯 주군을 갈아타는 것이 아닌가?”

난 일침을 가했다. 물론 이것은 내가 박철우를 내치기 위함은 아니다. 박철우가 진정 어떤 인물인지 알기 위해 이렇게 묻는 거였다.

“그렇사옵니다. 저는 주군이라는 분은 목표를 향해 질주를 하는 준마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 그럴 것이다. 그래서 채원에서 나로 갈아타는 것인가?”

“주군의 말씀에는 검이 서려 있는 듯 합니다.”

“없지는 않지.”

“예. 하오나 옳지 않은 길로 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아니면 같이 휩쓸려 떠내려가야 하옵니까? 주군이라는 준마가 힘이 떨어져 달리지 못한다고 주군을 떠나는 가신은 표리부동한 자일 것입니다. 허나 저는 패악을 일삼고 악행을 저지르려는 주군이었던 자를 떠난 것이옵니다.

주군께서 가신을 선택할 수 있듯 가신도 모실 주군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옵니다. 저의 주군은 충신은 되지 못하여 난신은 되더라도 역신은 되지 말아야 할 것이옵니다.

박철우에게는 주인을 선택하는 분명한 기준이 있는 듯 했다.

“내가 만약 역신이 된다면 나를 베겠군.”

“어떻게 가신이 주군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습니까. 그저 마지막 주인을 잘못 본 저의 원망하고 제 눈을 파버리겠습니다.”

“마지막 주인?”

“그렇사옵니다. 장부가 뜻을 새우고 출사를 했는데 두 번이나 주인을 잘못 본다면 그게 어디 장부의 눈이겠습니까.”

“그대가 하는 말은 한 치의 틀림도 없다. 하지만 채원을 말릴 생각은 해 보지 않았나?”

“누구의 계략이기에 말릴 수 있겠습니까?”

순간 난 박철우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무어라고 했나?”

“옛 주군을 계략에 빠트려 타락의 길로 걷게 한 것은 지금의 주군이시지 않사옵니까?”

“나를 질책하는 건가?”

“그건 아니옵니다. 계략을 짜는 것은 죄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계략에 빠져 불충한 짓을 저지르는 것은 죄일 것이옵니다.”

난 이 순간 이렇게 말을 잘하는 존재가 왜 군중들 앞에서는 그리도 핵심을 말하지 못했는지 이유를 몰랐다.

“주군과 같이 죄를 짓고 의리를 지켜 죽는 것이 충심을 다하는 가신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자네는 평생 채원을 배신한 자로 낙인이 찍힐 것이네.”

내 말에 박철우도 인상을 찡그렸다.

“그것이 변절자의 운명이겠지요.”

“하지만 자네를 그렇게 부르는 자는 후일 자네를 부러워하게 될 것이네.”

“그렇게 되면 오죽 좋겠사옵니까? 주군!”

“그래. 그렇겠지.”

“지금처럼 변하지 마소서! 그러면 제가 다시 꺾일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대는 내가 어떤 위인이라고 생각을 하나?”

내 질문에 다시 한 번 박철우가 나를 봤다.

“암중계략에 일기당천이십니다.”

“암중계략에 일기당천이라고?”

“그렇사옵니다. 아니셨사옵니까?”

소인배가 꿈인 나를 암중계략을 꾸미고 행동을 할 때는 일기당천이라고 판단을 하고 있는 박철우가 놀랍기만 했다. 뭐 따지고 보면 이곳에 일기당천의 마음으로 왔으니 아예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듣기는 참으로 좋은 말이군.”

“하기도 좋은 말이지요. 하오나 결코 아첨은 아닐 것이옵니다.”

“알았네. 그대에게 버림받지 않으려면 암중계략에 일기당천이어야겠군.”

생각 이상이 인재를 얻으니 기분이 흡족했다. 이 좋은 기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지금 내 명령에 오직 살아남겠다고 죽어라 사다리를 만드는 가병들을 이 사지인 송악산에서 안전하게 빠져 나가야 할 것이다.‘곧 포위가 되겠지.’난 서둘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황궁에 위치한 위위경 이의방의 장군방.

“뭐라? 용호군이 송악산으로 병력을 집결시켰다고?”

“그렇사옵니다. 위위경!”

한섬의 보고를 듣고 위위경 이의방도 놀라 가만히 있어도 부리부리한 눈동자가 더욱 커졌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하던가?”

“알아보고 있사옵니다.”

“내게 통보도 없이 병력을 움직였다고.”

위위경 이의방은 화가 나 있는 듯 했다. 사실 이고에게 용호군을 맡긴 것은 자신이 용호군까지 장악하기 위한 계략 아닌 계략이었다. 그런데 이고는 자신에게 아무런 통보도 없이 병력을 움직였다는 것에 괘씸한 생각을 하고 있는 이의방이었다.

“그렇사옵니까?”

한섬은 혹시나 이고가 이의방에게는 병력의 이동을 연통해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내게 아무런 연통도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하옵니까?”

“지켜보는 수밖에 없지 않나.”

한섬은 다급하게 물었지만 위위경 이의방은 그리 다급한 표정은 아니었다. 용호군이 움직인 방향이 황궁에서 멀어지는 송악산이라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 이유는 이고가 자신처럼 권력집약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었다.

“예. 위위경! 하오나 혹시 몰라 응양군은 출병 준비를 하라고 지시를 했사옵니다.”

한 섬의 말에 위위경 이의방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내 의도대로 응양군을 잘 장악하고 있는가 보군.”

“다 길을 다져주셔서 저는 그저 걸을 뿐이옵니다.”

이것은 아첨일 것이다.

“이 사실을 견룡 행수도 아닌가?”

“아직 견룡 행수에게는 통보하지 않았습니다.”

“황궁의 방비를 강화하고 자네가 사택으로 가 회생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주게.”

“예. 위위경!”

“이고가 무슨 일을 꾸민다면 내 사위가 잘 알아서 할 것이야.”

위위경 이의방은 회생을 무척이나 신뢰하는 듯 말했다.

“그럴 것이옵니다. 회생이야 말로 주군의 복이옵니다.”

“그렇지. 내가 얻은 큰 복이지. 그나저나 사위라고 부르면서 딸의 얼굴도 한 번 보여주지 않았군.”

이의방은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그렇사옵니까?”

“태자비 간택이 끝이 나고 그놈을 도모하고 나면 조촐하게라도 혼례를 올려줘야겠네.”

한 섬은 이의방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옳으신 판단이십니다.”

“그렇지. 혈연만큼 공고한 동맹관계도 없는 법이지.”

이의방은 한 섬의 앞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건 다시 말해 이의방의 의중에는 회생을 자신의 세력이면서도 독자적인 노선을 걷는 존재라는 생각이 담겨 있는 거였다.

“그나저나 내 사위는 여복이 터지고 있겠군.”

“예?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하하하! 아니네. 아무것도 그냥 내 사위가 되는 것이 여복이라는 소리지.”

“아! 그럴 것이옵니다.”

한섬은 이의방의 말을 그대로 이해를 했지만 이의방의 말 속에는 다른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나저나 반드시 이고 대장군이 왜 송악산으로 출병을 했는지는 알아봐야 할 것이야!”

“예. 주군!”

“가 보시게. 아무리 이고 대장군이 권력에는 미련이 없는 인물이라고 하나 나무가 흔들리지 않으려고 해도 옆에 부는 바람이 자꾸 가지를 흔들게 만드는 법이니 잘 감시를 해야 할 것이네.”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그리고 그 관찰에는 내 사위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잊지 말게.”

이렇게 위위경 이의방은 회생을 믿으면서도 감시를 지시했고 또 의지를 하면서도 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역시 권력을 가진 자는 의심이 많아지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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