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195화 (195/620)

< -- 간웅 10권 -- >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한회가 말을 더듬었다. 내가 이렇게 미친 척하고 나타난 것도 놀랄 일이 분명할 거다. 아니 분명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놀람 속에는 혹시나 이곳을 건룡 군이나 용호군이 포위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 두고 있을 것이다.

“대충 짐작이 오지 않나?”

난 한회를 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한회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역시 머리가 나쁜 자는 아니군.’난 내 말속에 숨긴 의도를 단번에 파악한 한회를 꽤 쓸모가 있는 자라는 생각을 했다.

“네놈!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이렇게 혈혈단신처럼 와서 살기를 바랄까.”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것이 전장의 이치다. 이곳은 내게 치열한 전장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뭐, 뭐라고?”

“내 죽을 때 죽더라도 몇 마디하고 죽어도 되겠나?”

순간 한회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봤다.

“네놈 진정 미친놈인 것이냐?”

“미치지 않고 여기를 어떻게 와.”

“오냐? 죽는 놈 소원 한 번 들어주마. 올라가 죽기 전 할 말이 있다면 해라.”

한회는 박철우의 허락도 득하지 않고 단상에 올라가라고 소리를 쳤고 이 순간 박철우는 내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눈빛을 보였다.그리고 난 허름한 단상에 올라 박철우를 봤다.

“무슨 의도에서 이곳에 왔는지는 모르나 넌 그딴 언변으로 성공하지 못해.”

난 박철우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뭐, 뭐라고?”

“채원의 지시인가? 아니면 채원을 피하려다가 졸지에 횡재를 한 건가?”

내 말에 박철우의 눈빛이 떨렸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너도 알잖아. 네가 주군의 그릇은 아니라는 것을.”

내 말에 박철우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럼 너는 주군의 그릇이라는 건가?”

“그야 모르지.”

난 그렇게 박철우에게 속삭이고 웅성거리는 가병들을 봤다.

“나는 견룡 군 행수 이 회생이다. 그리고 내 손에 들려져 있는 것은 너희들이 불충한 마음을 먹고 황궁을 태워서라도 없애려고 하는 가병 록이다.”

난 내 손에 들린 가병 록을 군중들에게 보였다.

“그, 그것이 가병 록이란 말이요?”

가병 하나가 놀라 내게 소리를 쳤다.

“그래. 가병 록이다. 한회!”

난 가병 록을 펼쳐 제일 앞장에 있는 한회의 기록을 읽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한회는 가병 록에서 자신의 이름을 읽는 나를 보며 놀란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한회! 신장은 5천 6자 2치요. 얼굴에 검은 사마귀가 있고 눈썹이 선명하고 입술이 붉다. 가솔로는 아래로는 두 아들이 있고 그 역시 가병이다. 또한 홀어미를 봉양하는 것이 노비이니 그 효성이 지극하고 그것이 후일 약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판단이 좋고 재주가 뛰어난 면이 있으니 노군의 책사로 쓰기 좋으나 그를 주변으로 노군이 모인다면 문제가 야기 될 수 있기에 그의 홀어미를 사택에 두어 사소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좋다.

난 가병 록에 쓰여 있는 내용을 그대로 읽었다. 그리고 속으로는 정말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아주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다.

’이래서 가병 록이 저들 노군인 가병들의 발목을 잡는 족쇄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찌이익!난 바로 한회의 기록이 적혀 있는 가병 록을 첫 장을 찢어 횃불에 던졌고 그 순간 종이가 들어가니 활활 타던 불길이 조금 커졌다가 다시 작아졌다.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한회는 놀라 나를 뚫어지게 봤다.

“더 읽어줄까? 이것이 가병 록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자가 또 있는가?”

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것이 가병 록이라는 것은 나 역시 알고 있다.”

한회가 나를 보며 소리를 쳤다.

“이것을 태우면 너희들이 이곳을 빠져 나가 숨어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내 말에 가병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신분패가 없는 너희들이 가서 살 곳이 어디에 있는가?”

이번에는 내 말에 2천이나 되는 가병들이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이 순간 내 한마디에 2천의 가병들이 표정이 달라지는 거였다. 그리고 조금 전 박철우처럼 내게 따지듯 질문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우선은 이것부터 태워 없애는 것이 순서이겠지.”

난 그렇게 소리를 치고 손에 들려 있는 가병 록을 불속에 던졌고 그 순간 2천에 가까운 가병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을 했다.

“이제 너희들은 김돈중의 가병이었다는 것을 밝힐 수 있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다시 내 말에 장중이 조용해졌다.

“그럼 이제 우리는 산 것입니까?”

“아직은 아니다.”

난 차갑게 말했다.

“가병 록이 없으면 북변이든 남변이든 도망을 쳐서 숨어 살면 되는 것 아닙니까?”

가병 하나가 내게 큰 소리로 물었지만 공손함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되면 오죽 좋겠지만 지금 용호군이 이 송악산을 포위하기 위해 진격하고 있다.”

충격요법일 것이다.그리고 2천의 가병들은 내 한 마디에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충격에 휩싸이는 것 같았다.

“뭐라고 하셨소?”

놀란 한회도 나를 보며 물었다.

“이곳에 용호군이 오고 있다. 2천의 병력이 은거를 하고 있는데 군부가 끝내 모를 거라고 생각을 했나?”

난 한회를 노려보며 소리를 쳤다.

“당, 당신이 끌고 온 병력이요?”

한회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하나?”

“그렇지 않소?”

“내가 용호군을 이끌고 왔다면 왜 죽기로 다짐을 하고 이곳으로 왔을까? 가병 록의 기록이 틀린 것도 참으로 많구나! 재주가 있다고 기록을 했으니 이치를 보고도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도망친 김돈중의 기록이 참으로 잘못된 것이 많다는 것을 내 오늘 알았다.”

내 말에 한 회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왜 이곳에 온 겁니까?”

한회가 내게 다시 물었다.

“내 죽을 각오로 너희들을 살리기 위해 왔다. 또한 내 식읍으로 내려 보내 양민으로 삼고자 온 것이다.”

또 한 번 저들에게 나는 또 다른 면의 충격 요법을 사용했다.

“양, 양민이라 굽쇼?”

“이제 너희들이 노비라는 것을 밝힐 증거는 아무 곳에도 없다. 북변으로 이주를 하는 자들에게는 면천을 해 주는 것을 너희들도 알 것이다.”

“알, 알고 있습니다.”

“나랑 이 사지를 벗어나서 북변으로 가자. 그곳에서 사람처럼 살아보자.”

난 한회를 보며 말했고 다시 나를 멍하니 보고 있는 2천에 가까운 가병들을 다시 봤다.

“여기서 개죽음을 하지 말고 식솔이 있다면 식솔을 데리고 계집이 있다면 계집을 데리고 나와 함께 북변 갑산으로 가자. 그곳 땅이 험하고 거치나 마음만은 편할 것이다.”

내가 다시 한 번 소리를 쳤지만 누구하나 뭐라 말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말한 용기가 나지 않는 듯 했다.

이것은 내가 언변이 뛰어나 만들어낸 상황이 아니다. 원래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기 위해서는 사전 포석이 있어야 하고 내 첫 사전 포석은 목숨을 거는 거였다. 또한 이 가병 록을 불태우는 것이고 친근히 가병 몇의 이름을 불러주는 거였다.

“그, 그게 가능합니까?”

가병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다시 물었다.

“내가 이 고려의 5등 공신이며 견룡행수 그리고 6품 감찰어사라는 것을 아는 자는 알 것이다. 그리고 또한 북변에는 개간하지 않은 땅이 무수히 많다. 비록 삭풍이 매섭고 오랑캐가 거칠다고는 하나 이곳에서 죽는 것보다야 좋지 않나?”

내 말에 한회는 박철우를 봤다.

“저분의 말이 맞습니까? 주, 주군!”

한회의 물음에 박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

“사실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모두 사실이네. 저분이 5등 공신이고 북변 갑산에 식읍이 있는 것도 사실이네. 그게 사실이라면 이 송악산에 용호군이 진격을 하는 것도 사실일 것이고.”

박철우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주군!”

한회의 물음에 박철우가 한회를 물끄러미 봤다.

“내가 아직 자네의 주군인가?”

난 이 순간 박철우를 물끄러미 봤다. 마치 예전 의종이 모든 것을 내려놓았던 것처럼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역시 아둔한 자는 아니군! 책사이면 충분히 재능을 보이겠어.’난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주군!”

“이제 난 자네 주군 노릇 안할 것이네.”

“예?”

박철우의 말에 한회는 놀라 박철우를 뚫어지게 봤다.

“내 주군이 여기 계시네. 아직 허락을 받지는 못했지만 말일세.”

그 순간 박철우는 단상 위에서 내게 무릎을 꿇었다. 이제 드디어 내 모든 포석들이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지?”

알면서도 모른 척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스스로 입을 열게 만들 때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때가 바로 지금이었다.

“제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주군으로 모시고 싶사옵니다.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박철우가 무릎을 꿇자 한회도 내게 무릎을 꿇었다.

“저희들을 살려주십시오.”

“살기를 원해?”

“그렇사옵니다. 저희들을 살려주십시오. 주군!”

노군의 특성상 주군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한회였다.

“으음,,,,,,,.”

난 시간이 없지만 잠시 고민을 하는 척을 했다. 그리고 여전히 멍하게 서 있는 2천에 가까운 가병들을 봤다.

“아직 내게 무릎을 꿇지 않는 너희들은 이곳에서 죽고자 하는 건가?”

이 순간 난 거만함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말에 2천에 가까운 가병들은 서로를 두리번거렸다.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두칠이게 제일 먼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저희들 살려주십시오.”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주인마님!”

하나둘 노예근성이 발동되기 시작을 했다. 그들은 내게 이 급박한 순간 의지하려는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주군으로 모시게 해 주십시오.”

이제 이천에 가까운 가병들이 모두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2천의 병력을 얻기는 얻었군. 그런데 이제 어떻게 살리지?’이것이 내게 두 번째 난관일 것이다.

“살려달라고 소리치지 말고 횃불부터 꺼라.”

난 내 가병이 된 자들에게 소리를 쳤다. 이곳에서 저들을 무사히 살려 나간다면 난 2천의 가병을 얻게 되는 것이고 그것을 은밀히 북변으로 이주시키는 쾌거를 이루게 되는 거였다.

“예. 주군!”

노군 출신이라 말은 아주 잘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장중이 칠흑처럼 어두워졌고 나는 별초를 봤다.

“남서면에서 진격을 하고 있다고 했나?”

“그렇사옵니다. 주군!”

“그렇다면 우리는 북동쪽으로 빠져 나갈 것이다.”

“하오나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난 별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성동격서라는 전략이 꼭 전장에서 그리고 공격전술에서만 쓰는 것은 아니지?”

“예?”

별초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영문을 몰라 나를 빤히 봤고 난 한회를 봤다.

“한회! 인원이 많으니 짧은 시간에 사다리도 많이 만들겠지.”

“예?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시간이 없다. 우선 수십 개의 사다리를 만들어라.”

“예. 주군!”

한회는 짧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다 사다리를 만들어라. 시간이 없다. 살고 싶으면 사다리를 만들어라!”

도망을 쳐도 모자랄 시간에 사다리를 만들라고 하니 가병들은 순간 멍해졌다가 한회의 외침에 놀라 움직이기 시작을 했다.

“사다리를 만들어라! 어서!”

“알았습니다. 한회 부장!”

“어서 만들어! 주군이 사다리를 만들라고 하신다.”

노군출신이라 다시 주인이 생기니 신이 나는 것처럼 내 눈에는 보였다. 응양군이 주둔하고 있는 개경 서편.그곳에서도 응양군 장군이 된 한 섬이 있는 군막으로 급하게 부장 하나가 급하게 뛰어 한 섬의 군막 앞에 섰다.

“장군! 한 섬 장군! 부장 이충이라 하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시게.”

한 섬은 그렇게 바라던 장군이 되었다.한 섬과 같이 장군의 반열에 오른 다른 자들은 거드름을 피우며 황궁에 드나드는 것을 자기 집 드나들듯 했지만 한 섬은 응양군 야전 군막에 자리를 잡고 응양군을 장악하는데 힘을 기우리고 있었다.한 섬은 탁자 위에 놓인 지도를 보다가 군막으로 들어서는 부장 이충을 봤다.

“무슨 일인가?”

“용호군이 움직였습니다.”

부장 이충이 다급하게 말했다.

“뭐라? 용호군이 거병을 했다고?”

“그렇사옵니다.”

이충의 말에 한 섬은 놀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어디로 거병을 했느냐? 혹시 황궁이더냐?”

“황궁 쪽은 아니옵니다.”

“아니다? 그럼 어디로 병력을 움직였다는 것이냐?”

용호군은 응양군과 함께 2군이라고 해서 고려의 중앙군이었다. 그런 중요한 군이 연통도 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였다는 말에 한 섬은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물론 이렇게 한 섬이 놀라는 것은 용호군을 장악한 이고가 따른 마음을 품지는 않았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기도 했다.

“송악산입니다.”

“송악산?”

한 섬은 용호군이 송악산으로 이동을 했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렇사옵니다. 대부분의 용호군들이 모두 송악산으로 진격중이라는 간자의 보고입니다.”

이렇게 장군 한 섬은 응양군 장군이 되고 다른 군막을 감시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고 빠르게 응양군을 장악해가고 있었다.물론 그것은 응양군 상장군인 진준이 색목인 계집에 취해 군막의 일을 게을리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송악산이라,,, 송악산이라,,,,,,.”

“그렇사옵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나 이 밤에 송악산으로 진격을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사옵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황궁과 반대니 그리 크게 걱정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 순간 장군 한 섬은 이의방의 얼굴을 떠올렸다.

“위위경께는 알려야 할 것이다.”

“그렇사옵니다. 이고 대장군께서 무슨 의도로 송악산으로 진격을 하는지 모르나 분명 위위경께서는 아셔야 할 일이옵니다.”

“황제폐하의 제가도 없이 병력을 움직이는 것은 반역이다.”

순간 장군 한 섬은 무섭게 말했다.

“그렇기는 하옵니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이고 대장군이 아닐 것인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한 섬은 이고가 왜 송악산으로 진격을 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위위경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일어서며 부장 이충을 봤다.

“혹시 모를 일이니 응양군도 출정 준비를 해라.”

순간 한 섬의 말을 들은 부장 이충은 기겁을 했다.

“출정준비라 하셨습니까?”

“용호군이 움직였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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