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0권 -- >
“아니 되겠다. 이 황궁에 이의방의 힘이 너무 커지고 있다. 그와 대적할 자를 키워야겠다.”
명종은 회생의 계략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위위경과 대적을 할 수 있는 자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적할 자라고 하시오면?”
“채원은 욕심이 많은 자다. 그 자는 도모가 되어야 할 자이고 그렇다면 누가 있을까?”
이미 명종황제의 머릿속에는 회생의 얼굴이 그려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인상을 찡그렸다.
“그건 아니지. 암 아니고말고.”
명종 황제는 회생을 이의방과 대적할 자로 생각을 했다고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렇게 명종에게도 이의방에게도 회생은 날이 잘 선 도구에 불과한 거였다. 지금은 칭찬을 아끼지 않고 필요에 의해 부리고 있지만 가장 큰 화근이 될 자가 회생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생각인 듯 했다.
“우선 그 불학무식한 채원 놈부터 도모를 해야겠다.”
명종 황제의 말에 최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위위 경을 부르옵니까?”
최운은 의도적으로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물었다.
“위위경을?”
“그러하옵니다. 폐하께서 채원을 도모하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그럼 위위경을 불러야 하지 않사옵니까?”
“아니다. 채원을 부르라.”
이미 이렇게 나올 것을 최준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럴 때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처세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최준이었다.
“채원이라 하셨습니까?”
“그래. 채원이다. 채원을 부르라. 채원을 우선 도모를 해 보자.”
명종은 그렇게 말하고 차갑게 웃었다. ‘그렇고 보니 정말 날이 잘 선 검이 회생이다.
짐이 어떻게 써야할지 참으로 생각이 많아 지는구나!’명종황제는 다시 한 번 회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분명 회생은 황제인 자신에게도 양날의 검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신으로만 남아준다면 충분히 인정을 해 줄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자가 회생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는 난신을 넘어 역신이 될 것 같은 생각이 계속 드는 명종 황제였다.이만큼 명종황제는 회생을 의심하고 또 감시하고 있었다.
“상선은 은밀히 가서 채원을 부르라.”
“예. 황제폐하!”
이제 드디어 시작이 되는 거였다.같은 시간 채원의 순검군 장군방.채원은 낮에 있었던 편전회의를 생각하며 야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처음 위위경의 위세에 올랐고 또 그 거만함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그 위세가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그리고 그가 그렇게 생각을 한 것은 명종황제의 표정 때문이었다.
“그렇게 믿든 도끼에 발등을 찍히니 용안이 볼만 하더군.”
채원은 명종황제를 조롱하듯 말했다.
“용안이 어떻다는 것이옵니까?”
자리에 앉아 있던 순검군 산원이 채원을 보며 물었다.
“이의방이 주청의 형식을 해서 말을 했지만 그것은 분명 강요였다.”
“주청의 형식이라니요?”
산원은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물었고 그 순간 채원은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의 옆에 박교위 아니 박산원이 있었다면 무슨 말인지 분명 알아먹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채원이었다.
“답답해서 원,,,,,,.”
“송구하옵니다. 주군!”
“송구해야지. 이거 어디 머리 쓰는 놈이 하나 없어서 일이 되겠느냐!”
채원은 다시 짜증을 부렸다.
“그나저나 이의방 그놈이 중하급 무장들에게 대대적인 지지를 받겠구나.”
“대대적인 지지라굽쇼?”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산원이었다.
“그래. 그렇게 될 것이다. 장군들도 너나할 것 없이 집아 수령이나 현령으로 가고자 할 것이다.”
“지방이라면 한직이지 않습니까?”
산원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 한직이지. 하지만 그곳에 가면 챙길 것이 너무나 많지. 문신들의 자리를 빼앗아 무신들에게 준다니 역시 의방다운 생각이었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의방이 그렇게 믿고 따르는 황실과 끝내는 척을 지게 되었구나.”
“아 그렇군요.”
“이제 알겠느냐?”
“그렇사옵니다. 이제 어떻게 하오면 되는 것이옵니까?”
“기회를 봐야지. 이제는 내 쪽으로 문신들까지 끌어드릴 수 있게 되었다.”
채원은 아무것도 모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감축 드리옵니다. 일이 잘만 되시면 태자마마의 장인이 되시옵니다.”
산원은 채원에게 아부를 했다.
“그렇게도 되겠지.”
“아니 그렇게 될 것이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산원은 계속 아부를 하느라 침이 마를 판이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전 의방의 목부터 떠야겠지.”
순간 채원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그리고 그때 방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장군! 대전에서 상선이 나왔나이다.”
밖에서 보고가 들어왔고 채원은 무슨 일인가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것도 잠시 혹시 명종황제가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는 생각을 번뜩 들었다.
“설마! 이제 나를 쓰시려는 것인가?”
채원은 혼잣말을 하고 문 쪽을 봤다.
“뫼시어라!”
채원의 말과 함께 최준이 조심히 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인가?”
“황제폐하께서 은밀히 모시고 오라 하시었사옵니다.”
“은밀히?”
채원은 인상을 찡그렸다. 은밀히 라는 것은 혼자 오라는 말이었다.
“그러하옵니다.”
“낮의 일 때문인가?”
채원은 최준에게 물었다.
“잘은 모르나 그런 것 같습니다.”
“알았네.”
이 순간 채원은 자신에게도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분만 있으면 그리 어렵지도 않지.’채원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사위로 맞이할 생각이군.’채원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은밀히 부를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채원이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위위경인 이의방의 목을 베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세.”
“지금 뭐라고 했는가?”
나는 모처럼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에 편한 마음으로 자신의 사택에 돌아와서 청청벽력과 같은 말을 듣고 놀라 기겁을 했다.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자는 다름 아닌 감악산과 송악산으로 별초들을 이끌고 정찰을 나간 박현준이었다.
“예상하신대로 송악산에 두 패로 나눠 은거를 하고 있었습니다.”
“으음,,,,,,,.”
나는 신음소리를 냈다.
“병력의 수는 얼마나 되지?”
“족히 2천은 되는 듯하옵니다.”
순간 내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2, 2천?”
“그러하옵니다. 저도 믿어지지 않지만 2천이옵니다. 족히 그리 되옵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아무리 고려의 상황이 극박하게 돌아간다고 해도 송악산이면 황궁 바로 뒤에 있는 산이다.그런 곳에 2천에 달하는 대병력이 은거를 하고 있는데 찾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곳에 2천의 대병이 숨어 있는데 순검 군들은 찾지를 못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아!”
“크게는 두 패로 나눠져 있고 또 다시 100여명 정도로 은거를 해서 찾기가 쉽지 않는 듯 합니다.”
“100명은 적단 말이냐?”
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송구합니다. 주군!”
“정말 이해가 되지 않음이야!”
“순검군들은 채원 대장군의 명령에 의해 모두 다 유사시를 대비해서 대기를 하고 있기에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실정이옵니다.”
“유사시의 대기?”
난 박현준에게 되물으면서도 이미 왜 그런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채원이 모두를 대기시켜 놓은 거였다. 그것은 여차하면 황궁을 치고 들어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였다. 또한 그들이 오판을 하고 거병을 한다면 그 창끝은 나와 위위경을 향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러하옵니다.”
이제 왜 그곳에 2천에 대병력이 숨어 있는지 별초낭장 박현준에게 따질 일이 아니었다. 내 턱밑에 창끝이 놓였으니 이제는 우선적으로 그 일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산이 깊으니 찾지 못할 수 도 있지. 그나저나 그것들은 왜 숨지 않고 그렇게 모여 응거를 하고 있는 걸까? 도망을 친 김돈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닌 듯합니다.”
가장 가깝게 김돈중의 전 가병들을 정찰한 것이 별초낭장 박현준이니 그의 판단을 나는 신뢰해야 했다.
“그럼 무엇이 김돈중의 가병들을 그리 은거를 하게 만든 거지?”
이것은 분명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 의문만 풀어낸다면 답은 있을 것 같았다.내 물음에 박현준은 나를 빤히 봤다.
“저의 생각으로는 가병록 때문인 듯 합니다.”
“가병록?”
“그렇습니다. 주군! 가병록이 있는 한 그들은 이미 죄인이기에 그렇게 모여 있는 것이옵니다.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죄인으로 잡힐 것이 분명하고 잡힌다면 목이 잘리거나 다시 관노로 팔릴 것이 분명하니 저렇게 은거를 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난 이 순간 박현준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병록이 왜? 그 가병록이 어떤 존재이기에 2천에 달하는 대병력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지?”
“그 책에는 가병들의 용모파기가 기록이 되어 있고 어디에 사는지 또 누구의 아들인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족쇄처럼 평생을 따라다니는 것이옵니다. 그러니 도망을 친다고 해도 도망칠 곳이 없는 것이옵니다.”
그제야 난 왜 그들이 그렇게 도망도 치지 못하고 모여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가병들의 대부분은 내 가병들이 될 자들처럼 노예출신이 많았기에 도망을 친다고 해도 결국 잡힐 것이 분명했기에 저렇게 모여 있는 거였다.
“가병록?”
“그렇사옵니다.”
“그럼 그 족쇄 같은 가병록이 어디에 있을까?”
난 순간 번뜩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가병록만 내 수중에 넣는다면 2천의 대병력을 내 가병으로 전환할 수 있다.’난 다시 한 번 가슴이 뛰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난 바로 구실을 만들어 북변으로 향할 수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두 부를 만들어 한 부는 가병을 소유한 주인이 가지고 있고 또 한 부는 병부에 있을 것이옵니다.”
“병부?”
“그렇사옵니다. 유사시 동원을 하기 위해 그렇게 보관해 두고 있는 줄 압니다.”
난 그 순간 박현준을 노려봤다.
“왜 그렇게 저를 보시는 것이옵니까? 주군!”
“그럼 그들이 왜 모여 있는지 이유를 알겠네.”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 패로 나눴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갈수록 태산이야! 갈수록!”
난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어야 했다. 이제 채원 따위를 잡는 것은 급한 일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주군!”
박현준도 놀라 나를 봤다.
“내 추측이 아니면 좋겠는데 항상 내 추측이 맞아 떨어지니 그것이 문제야!”
“무슨 일이시기에게 그리 걱정을 하시는 것입니까? 저는 주군께서 이리 걱정을 하시는 것을 처음 봅니다.”
“타다만 황궁과 내 사택이 다시 타게 생겼네.”
내 말에 별초낭장 박현준은 기겁을 했다.
“예? 김돈중의 가병들이 황궁을 습격한다는 말씀이시옵니까?”
“그렇게 해야겠지. 분명 그들이 노리는 것은 병부 서고일 것이다.”
“병부서고라고 하시면,,,,,,.”
“가병록이다. 가병록을 없애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택도 위험하지 않사옵니까?”
“그래. 여기도 이제 위험하지.”
난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정말 위험천만한 순간이 시시각각 밀려오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부르르 온몸을 떨었다.
“방비를 하겠습니다.”
“방비를 한다고 될 것 같은가?”
난 박현준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2천에 달하는 대병력이 둘로 나뉜다고 해도 천이야! 지금 겨우 검을 잡은 내 사병들이 그들을 이길 수는 없다.”
이것이 현실이었다.
“하오나 별초가 있사옵니다. 별초는 일당백의 무위를 가지고 있사옵니다.”
“그것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러니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별초 낭장 박현주을 보며 피식 웃었다.
“왜 내가 내 주력을 희생시키며 그들을 막아야 하지? 일당백이라고 해도 나를 지키기 위해 대부분은 죽게 될 것이야!”
“하오나 주군을 지키고 죽는 것이 무사의 본분입니다.”
별초낭장 박현준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자네가 항상 말하지 않았나?”
“예?”
“죽은 놈이 배신자라고.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막으면 폭도가 되지만 그들을 찾아가면 내 가병이 되지.”
순간 내 말에 별초낭장 박현준은 바르르 온 몸을 떨었다.
“찾아가신다니요?”
“그들이 노비출신이라고 했지?”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별초낭장 박현준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의 노비들은 말이야! 자립심이 없지. 물론 충성심도 부족하지만 그것은 주인이 잘못 그들을 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노예근성이라는 말이 있다. 그들은 지금 스스로 위험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에 저렇게 엄청난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지금 그들은 독안에 든 쥐고 사방이 막힌 상태니 불안할 것이야! 그 불안한 상황을 해결해 준다면 나를 따르지 않겠나?”
“그 말씀은,,,,,,.”
“목숨을 걸어야 할 위험한 일이기는 하지만 2천의 가병이 생기는 일이라면 목숨 정도는 걸어볼만 하지.”
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하오나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옵니다.”
“그렇지. 아주 위험하지. 하지만 이것은 내게 위험한 일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주군! 주군 위험하옵니다.”
별초낭장 박현준은 내게 그렇게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눈빛을 다시 보였다.
“왜 내가 사지로 가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것인가?”
“그렇사옵니다. 주군을 모시는 가신이라면 당연하지 않사옵니까?”
“그럼 어떻게 할까? 그냥 둘까? 그냥 그들을 둔다면 그들은 절벽까지 밀렸으니 앞으로 나가던 모질게 마음을 먹고 뛰어내리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야.”
“토벌도 있지 않사옵니까?”
별초낭장 박현준은 내게 토벌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다.
“내 손으로 2천을 죽이자는 말인가?”
“그 역시 방법이옵니다.”
하지만 난 별초낭장 박현준과 생각이 달랐다. 물론 내가 반드시 그들을 죽여야 살아나는 상황이라면 난 두 번 생각도 하지 않고 그들을 죽음의 수렁에 밀어 넣을 것이다.하지만 잘만하면 큰 힘이 될 수 있는 존재들을 그냥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