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181화 (181/620)

< -- 간웅 9권 -- >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름 자체 만으로의 긴장감!이것이 바로 강일천의 힘이었다.

나는 복도를 차분히 걸어 참지정사의 직을 수행하고 있는 강일천이 있는 집무실로 걸었다. 이곳은 예전 고려에서 무소불의의 권력을 휘두르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 권력이 거사에 의해 장군들이 모여 있는 중방으로 옮겨졌고 이제는 약간 처량한 분위기까지 흘렸다. 그리고 이 전각을 들어서는 순간 그 생각은 싹 바뀌었다.

‘문신들의 관복을 입고 있지 만 저들은 무도 무인이다.’나를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는 문신들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견룡행수가 어인 일로 이곳까지 오셨소?”

문신하나가 나를 보며 물었다.

“참지정사께서 오라고 하시오 왔소이다.”

“그렇습니까?”

“예.”

난 짧게 대답을 했다.

“예. 제가 안내를 해 드리겠습니다.”

문신이 내게 친절히 말했다.‘저 많은 사람들이 복도에서 서성이는 거지? 그래. 그 삐거덕거림이 바로 신호인 거다.’난 그런 생각을 하며 문신의 안내를 받으며 참지정사가 있는 방 앞에 섰다.

“이곳에 계십니다.”

문신이 다시 내게 공손히 말을 했다.

“감사합니다.”

난 짧게 대답을 하며 주변을 살폈다.‘정말 대단히 방어적인 전각이다.’난 문신들이 기거를 하는 전각이 이렇게 단단히 방어적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들어가지시오.”

“예.”

문신이 조심히 물을 열었고 그 문이 열리는 순간 단아하게 자리에 앉아 서책을 읽는 참지정사 강일청의 모습이 문이 열리는 만큼 보였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내게 태산이 밀려오는 것처럼 강하게 느껴졌다.

“건룡행수가 왔나이다.”

문신이 책을 읽는 참지정사에게 말을 했고 그제야 참지정사는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나는 순간 비수가 내 가슴에 와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와서 앉으시게.”

“예.”

짧은 눈빛과 말 한마디에 내 등줄기가 싸늘하게 식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가 대단히 놀라운 힘을 가진 인물이라는 반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짧은 대답과 함께 조심히 자리에 가 앉았고 내 모습을 보고 참지정사 강일천이 옆에 서 있는 문신을 봤다.

“사람들을 물리라 근접까지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하라.”

“예. 참지정사!”

문신은 짧게 말했다. 그는 분명 예 참지정사라고 말했지만 내 귀에는 예. 주군처럼 들렸다. 그리고 바로 스르륵 문이 닫히고 참지정사가 찬찬히 나를 봤다.

“찻물이 아직 식지 않았으니 한 잔 하겠나?”

분명 부드러운 어투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느낀 그 누구보다 무게감이 있는 어투였다.‘대전에서 봤을 때와 또 다르다.’아니 그때는 내가 너무 신경을 쓸 것이 많아 자세히 보지 못한 거였다.

“감사합니다.”

“차는 좋아라. 하는 가?”

“몇 번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내 솔직한 말에 참지정사 강일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하군.”

“그런 편입니다.”

이런 강한 느낌을 주는 사람에게는 뭐든 솔직한 것이 좋다. 숨기려 한다고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속이려 한다고 속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99가지 사실을 말하고 중요한 하나만 숨기면 되는 거지. 아니면 속이거나.’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차는 작설차네.”

그러고 보니 공예태후의 전각에서도 마신 것이 바로 작설차였다.

“딱 한 번 마셔봤습니다.”

“차를 자주 마시게 되면 사람이 진득해 지는 면이 있지.”

“그렇습니까?”

“그래. 자네는 아직 차 맛을 모르는군.”

“그렇습니다. 참지정사 대감.”

내 말에 참지정사 강일천은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자네는 내게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는군.”

순간 난 왜 고마워해야 할까 고민을 해야 했다. 그리고 바로 내게로 온 별초들이 떠올랐다.

“제가 고마워해야 할 일은 아닌 듯 합니다.”

“그런가?”

“예. 제가 보내신 이유가 다 있으실 것이 아니옵니까?”

난 등줄기에 땀이 나면서도 약간은 당돌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나를 무인이라고도 하고 문신이라고도 하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찮은 계산에 사람을 보내지는 않네. 그들은 나를 떠나며 검 집을 버렸네.”

이것은 별초낭장 박현준이 내게 말한 말고 일치를 했다.

“그렇습니까?”

“자네가 나를 베라고 해도 그들은 벨 것이네. 자네가 이제 그들의 주군이지.”

참지정사 강일천은 엄청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스스로 자신을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들을 제게 보내주셔서.”

“엎드려서 절을 받는군! 하하하!”

“그런데 무례하게 소인이 하나만 여쭈겠습니다.”

난 이 순간 참지정사 강일천을 뚫어지게 봤다.

“눈빛이 변했군. 뭔가?”

참지정사 강일천은 들고 있던 찻잔을 봤고 나를 봤다.

“200의 별초면 적은 인원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들을 검집까지 버리게 하시어 제가 보내신 것입니까?”

이것이 내가 참지정사 강일천에게 가지는 첫 번째 의문이었다.

“자네가 필요로 할 것 같아서.”

내가 용기를 내어 물은 질문이었으나 참지정사 강일천의 대답은 무척이나 간단명료했다.

“그렇다면 저를 도우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럼 자네는 왜 황실을 돕고 있지?”

내 대답 대신에 반문이 돌아왔다.

“그것은 신하된 자의 도리이지 않습니까?”

“겨우 어린 그대에게 신하의 충심이 있다는 것인가?”

“없다고 보십니까?”

내가 다시 질문을 비수처럼 날렸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 나처럼 말일세.”

난 순간 놀라워 참지정사 강일천을 봤다.

“그 말씀은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검과 붓이 가장 꺾이기 쉬운 것은 꽃 때문이겠지.”

많은 의미를 담은 말이었다.검은 분명 무신을 말하는 걸 거다. 그리고 붓은 문신 그리고 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으나 참지정사 강일천에게는 공예태후를 의미할 것이다.

“그대의 꽃은 무엇인가?”

순간 난 숨이 턱하고 막혔다.

“그대는 태후마마의 앞에서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그 무인본분 위국헌신이라는 말로 나까지 속일 것인가? 하지만 나는 나를 보는 듯한 자네이기에 속지 않을 셈이네. 무엇인가? 그대가 바라보는 꽃은 무엇인가?”

꽃!여인일수도 있고 권력일수도 있고 야망일수도 있으며 꿈일 수도 있다.

“저의 꽃은,,,,,,,.”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그 순간 참지정사 강일천이 나를 뚫어지게 봤다. 이 순간 밀려드는 느낌에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분명 살기 같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태산 같은 중압감이 밀려들었다.

“저는,,,,,,.”

“나는 자네의 꽃이 백화이었으면 한다.”

쿵!나는 이 순간 심장이 쿵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난 다시 놀란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되물으면서 며칠 전 별초낭장 박현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별초 낭장 박현준은 내가 만약 참지정사 강일천을 제거하라는 명을 내리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때 별초 낭장 박현준은 내가 그렇게 된다면 내가 평생을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으나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았다.‘설, 설마,,,,,,.’

“나는 이렇게 백발이 될 동안 딸을 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니 몰랐지. 내 옆에서 검을 수련하면서도 몰랐고 나를 버리고 무비에게 갔을 때도 몰랐지. 그 아이가 그렇게 한이 있는지 몰랐고 내 아이라는 것을 몰랐다.”

난 참지정사의 말에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지금 이 순간 이 고려에서 권력이라는 것을 쥐고 있는 모든 자의 딸들이 내게 모여들어 있는 거였다.

공예태후의 딸인 영화공주!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위위경 이의방의 장녀! 물론 그녀는 아직 얼굴도 보지 못했다. 현 황제인 명종의 딸인 공주까지 모두 다 내게 딸을 주기 위해 안달을 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오직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백화의 부친이 강일천이라는 것을 강일천 대장군의 입에서 들었으니 내 심장은 터지지 일보직전이었다.

“소인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백화가 자네에게 말을 하지 않은 모양이군.”

“그렇사옵니다.”

“아비를 한 번이라도 아비라고 부르지 않았으니 그럴 수도 있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의 젊은 날은 꽃에 정신을 잃은 삶이었지.”

지금 그가 말하는 꽃은 공예태후를 말하는 거였다. 태후마마를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그렇지. 태후마마께서 붕어하신 폐하의 정비가 되시기 전까지 내가 마음에서 품을 수 있는 분이셨지. 그리고 그것이 좌절이 되었을 때 나는 흔들렸고 그때 모진 사내의 마음으로 계집 종을 품었지. 그것이 백화의 어미네.”

난 순간 왜 이리 참지정사 강일천이 내게 솔직하게 마음을 보이는지 의문이었다.

“왜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옵니까?”

“자네가 나와 황실 그리고 나의 꽃에게 매우 쓸모가 있으니까.”

이것은 현실적인 대답일 것이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자네의 꽃이 백화가 되어준다면 내가 가진 것을 후일 주겠네.”

“후일이라고 하셨습니까?”

난 인상을 찡그렸다. 사실 후일을 기약하는 사람 중에 그 약속을 이행하는 자는 없었다. 그리고 시쳇말로 준다. 준다! 하면서 정말 주는 년은 없듯 약속은 언제나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렇다네. 뭐가 문제가 있나?”

참지정사의 물음에 나는 참지정사를 빤히 노려봤다. 처음으로 건방지고 당돌한 생각이 드는 나였다.‘역시 태산이라고 해도 오르지 못하는 법은 없다.’난 순간 그렇게 크게만 보이던 참지정사 강일천이 그리 높은 태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꽃이라 하셨습니까? 제가 검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붓이라고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끝내 비유를 한다면 주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하지만 계산적인 제가 주판이라고 해도 주판 위에 백화를 올려놓지는 않을 것입니다. 백화는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싫습니다. 주시는 거 다 거부합니다.”

순간 참지정사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하나만 더 여쭈겠습니다.”

“말하시게.”

“백화에게 아버지라는 소리를 진정 들으시고 싶으시면 백화의 신분을 찾아 주십시오. 그것이 진정 참지정사가 해야 할 일이지 않습니까?”

“으음,,,,,,.”

참지정사 강일천이 처음으로 신음소리를 냈다.

“내가 자네를 너무 가소평가를 했군.”

“그러십니까? 잘 보신 것이옵니다. 저는 하찮은 소인배입니다. 허나 소인배이지만 피붙이에게 한을 품게 하지는 않습니다. 체면 때문이시라면 버리시고 이해득실이 있으시다면 놓으십시오. 그럼 천륜은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내게 훈계를 하는가?”

“훈계라고 하셨습니까? 이치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으음,,,,,,.”

다시 한 번 신음소리가 울렸다.

“내가 그러지 못할 거라는 것을 잘 아는군.”

“제가 어찌 압니까? 오직 자신의 마음은 자신만이 아는 것이옵니다.”

난 살짝 흥분을 했다. 아니 이 고려에 와서 처음으로 흥분을 하는 거였다. 그 흥분의 바탕에는 백화의 신분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 없이 힘들어 했을 과거의 백화 때문에 난 이렇게 흥분을 하고 있는 거였다.

“그래. 맞아. 나는 모든 것을 돌려놓을 참이네.”

이것은 내가 말한 모든 것을 이미 결심을 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나를 보자고 한 것은 그 결심을 내게 말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인을 보자고 하신 것은 이것 때문이십니까?”

“그대와 찬찬히 이야기를 하고 싶었네. 내,,,,,,,.”

참지정사는 말꼬리를 흐렸다. 이것은 정말 막장드라마의 한 장면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이보다 더 막장 같은 혈연 드립은 없을 것이다. 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직접 하십시오.”

난 차분히 참지정사 강일천을 봤다.

“알았네.”

“제가 자리를 만들겠사옵니다.”

“그래주면 고맙네. 하지만 그 아이의 마음이 쉽게 풀릴지가 의문이군.”

참지정사 강일천은 그렇게 말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난 그 순간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마음먹었던 99가지의 진실을 말하고 1가지의 진실을 숨기거나 속인다는 것을 지금 참지정사 강일천이 내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이 순간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도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것을 난 들은 상태였다. 그러니 더는 감당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하옵니까? 하오나 노력은 마음을 움직이지요.”

“알았네. 앞으로 자네를,,,,,,.”

이 말은 나를 사위라 불러도 되냐고 묻고 싶은 말일 것이다.

“거부합니다.”

내 말에 순간 참지정사 강일천은 다시 인상을 찡그리며 나를 봤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안다는 것인가?”

“우선 부녀의 그것부터 정리를 하십시오.”

난 짧게 목례를 했다.

“으음,,, 알았네. 그럼 이제 공적인 이야기를 하지.”

순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강일천 대장군의 개인사를 내게 말했다. 물론 그것은 나의 개인사일수도 있었다. 참지정사 강일천과 나 사이에는 이제 백화가 있으니 말이다.‘참으로 내가 내려앉은 곳이 꽃밭이구나! 꽃밭!’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적인 일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나는 자네가 무부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네.”

“그러십니까?”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지.”

“모르는 일이지요.”

“공적으로 나를 속일 수 있다면 나를 속이시게.”

“속이면 속아 주실 것이옵니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깜냥 안에서는 속아줄 것이네.”

“알겠사옵니다. 주는 충신이 되고자 합니다.”

내 말에 참지정사 강일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 순간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참지정사도 잘 알고 있었다.정말 아이의 장난처럼 알면서도 속아주겠다는 거였다.

“그래. 그러시게. 그런데 말일세. 자네의 일파라고 할 수 있는 문극겸이 태자비 간택을 황제폐하에게 주청을 드린 것을 아는가?”

난 그 순간 왜 아침에 문극겸이 명종황제를 만났는지 그제야 이유를 알았다.

“그렇사옵니까?”

“자네는 몰랐군.”

“그렇사옵니다. 제가 다 알 수는 없지 않사옵니까?”

“그렇지. 그런데 내가 참으로 신기한 것은 이번 일을 통해 문극겸이 문신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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