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179화 (179/620)

< -- 간웅 9권 -- >

“무, 무어라 했소?”

“드린 말씀 그대로입니다. 제가 필요한 것은 독입니다.”

“독이라고요?”

태의는 인상을 찡그렸다. 사람을 살리는 태의원에 뜬금없이 찾아와서 약을 달라는 것도 황실 법도에 어긋나는 일인데 사람을 죽이는 독을 달라니 저런 표정을 하는 거였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회생공.”

난 이 순간 무척이나 내가 유명해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태의원 태의도 내 이름을 아니 말이다.

“예. 태의원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곳은 황제폐하의 옥체를 살피는 바로 태의원입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의 몸을 상하게 하는 독이 있겠습니까?”

“독과 약이 구분이 없는데 설마 없다고 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독과 약을 구분할 수 있고 그것이 일맥상통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 고려에 몇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현대에서 기본적으로 아는 지식들이 이곳에서는 무척이나 요긴하게 쓰이고 또한 꽤 신지식이며 높은 식견이 될 때가 있다는 것을 난 예전에 알고 있었다.이것은 바로 정보의 통제와 배움의 통제를 하기 때문이었다.

고려 역시 일반 백성은 다스리기 편하게 우민정책을 쓰고 있으니 내가 알고 있는 일반상식적인 정보를 알기가 쉽지 않았다.

“독과 약에 대해서 아시는군요.”

“많이는 알지 못합니다. 독도 잘 쓰면 약이 되고 약도 잘못 쓰면 독이 된다는 정도는 압니다.”

“으음,,,,,,.”

신음을 하는 것을 봐서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무엇에 쓰려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곰 한 마리가 있는데 성질이 사나와 사람을 많이 상하게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리 사고를 방지하고자 합니다.”

난 은유적으로 설명을 했다.

“그렇습니까? 그런 효능을 가진 것이 있기는 하나 이 황궁에는 없습니다.”

“구해주실 수 있습니까?”

난 태의를 빤히 봤다.

“그것도 아주 은밀히 말입니다.”

이 순간 난 살기를 눈에 담았다. 만약 이번 일을 발설하게 되면 목숨 부지는 어려울 거라는 암시를 담아서 태의에게 뿜어냈다.

“견룡행수의 눈빛이 사납게 느껴집니다.”

“곰을 잡다보면 사람이 여럿 상하는 법이지요.”

“사람이 상한다?”

“그렇습니다. 주제도 모르고 앞에 나서는 놈! 내가 이렇게 했다고 나불거리는 놈까지 상하기 마련입니다.”

내 말에 태의가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아시지요.”

“산 세월이 있는데 왜 모르겠습니까? 이 궁에서는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하면서 살아야 만수무강하는 법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만 하시면 만수무강에 제가 호위호식에 위세까지 덤으로 드리지요.”

내 약속에 태의의 눈빛이 반짝였다.

“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구해 드리지요.”

역시 권세와 호위호식 거기다 위세까지 준다니 두말도 하지 않고 내가 필요한 것을 내어주겠다고 태의가 말했다.

“차에 넣어 음복할 수 있게 무향에 무취였으면 좋겠습니다.”

“까다롭기는 하나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독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저 몸을 무겁게 하고 마비가 오면 됩니다.”

내가 이렇게 마비가 되는 독을 강조하는 것은 얼마 전 다수의 환관들과 맨손으로 싸운 위위경 이의방의 무위를 봤기 때문이었다. 비록 채원이 이의방보다 강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약하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최대한 돌다리도 두드린다는 심정으로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는 거였다.

‘쉽게 생각하고 움직였다가는 골로 가는 수가 있지.’성난 곰을 잡을 때 까딱하면 목이 떨어져 나가는 법이다. 내 앞에서 나를 보호해줄 위위경은 너무 멀리 있고 성난 채원은 가까이에 있을 것이 분명하니 조심해서 그리고 준비해서 나쁠 것이 없었다.

“참 까다로운 독을 원하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언제까지 준비를 하면 되겠습니까?”

“준비가 되시면 은밀히 견룡 군에 연통을 주십시오.”

“알겠소.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시오.”

“제가 견룡행수를 도와 드렸다는 것을 꼭 기억해 주십시오.”

이것만 봐도 내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좋은 예였다.

“물론입니다. 제가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난 다시 태의를 봤다. 내 눈에는 여전히 가득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이럴 때도 당근과 채찍을 사용해야 한다. 당근을 줬으니 이번에는 섬뜩할 만큼의 위협을 다시 한 번 줘야 할 것이다.

“구중궁궐 참으로 비밀이 많은 곳입니다. 그리고 은밀히 죽어나가는 자들도 상상 이상으로 많은 곳일 겁니다. 저보다 궁에서 오래 생활을 하셨으니 아실 것입니다.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 잘 아실 겁니다.”

“그, 그렇지요.”

“전 태의도 한 순간 잘못된 행동으로 태의에서 명예롭지 못하게 물러나셨죠.”

“그, 그렇습니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만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다른 것은 다 잊어버리십시오. 그래야 오래 갑니다.”

이것은 위협과 경고 그리고 압력이다.내 협박에 나를 보고 있는 태의는 마른침을 삼켰다.

“알고 있소.”

“제 뒤에 누가 계신지만 아시면 됩니다.:이것은 내 뒤에 이의방이 있다는 말을 태의에게 다시 한 번 해 주는 거였다.

“전에 있던 태의는 그저 명예만 추락해서 궁에서 나갔지만 이번 일이 발설이 된다면,,,,,,.”

난 그렇게 말하고 다시 태의를 노려봤다. 그리고 내가 다 하지 못한 말을 내 살기 어린 눈동자에 담았다.

“알, 알겠소. 무슨 말인지.”

“절대 그것이 단번에 죽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알았소.”

태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제가 노파심에 무례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절대 도움 받은 것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정중히 말했지만 이것은 완벽한 위협이었다.

“나도 목은 하나랍니다. 견룡행수.”

“예. 그럼 전 이만.”

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 태의를 봤다.

“그리고 참! 내일 아침에 사람 하나를 보내겠습니다.”

“사람이라고 하셨소?”

이것은 내가 이렇게 위협을 해도 너를 믿을 수 없다는 뜻으로 들릴 것이 분명했다. 물론 난 사실 믿음이 가지도 않았다.

“그렇습니다. 의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학이라고요?”

다시 태의가 놀랐다. 사람을 살리는 것을 이 고려에서는 의술이라 불러서 재주라고 칭한다.

그것은 학문이라는 높은 것이 아니라 재주라는 낮은 것을 취급이 되는 것이다.그런데 나는 이 순간 태의를 위협하면서도 의술이 아닌 의학으로 불러줬다.

이것은 위협을 해도 태의가 하는 일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거였다.

“그렇지 않습니까? 의술이 아니라 의학이죠. 학문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가장 올바르고 위대한 배움이지요.”

내 말에 다시 태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까지는 두려움에 내가 하자는 것을 하겠다는 눈빛이었으니 이 순간 태의의 눈빛은 자신이 나를 도우면 의술로 천대를 받는 것을 어쩌면 학문으로 발전시킬 기틀이 마련될 수도 있다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태의 그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내 뒤에 이의방이 버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 역시 완벽한 호가호위다.

‘어찌 되었건 이제 발설을 의심하지는 않아도 되겠군.’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홍련이 떠올렸다.‘의술을 배워두면 나쁠 것 없다.

내 가신 중 하나는 의원도 괜찮지.’이것은 그가 무척이나 총명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 이유는 북변으로 갈 때 이곳에 있는 어의들을 데리고 가기 위함이었다.어디서나 미인계만큼 사내를 유혹하는 것이 없으니 말이다.

홍련을 필두로 해서 두어 명 태의원에 보낸다면 이곳에 있는 어의들은 너나할 것 없이 나를 따라 북변으로 갈 것이 분명할 것이다.채원을 도모하고 이의방의 입지를 이 조정에서 더욱 공고히 하면서도 나는 나 스스로 북변으로 가는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 어사대로 가 볼까?’난 의지에 찬 태의를 할 번 보고 태의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태의원을 나섰다.문신들이 집무를 보는 방.문극겸이 차분히 앉아 있었고 그 앞에 조영인과 염신약이 문극겸을 보고 있었다.

“황상폐하와 독대를 했다고?”

조영인은 놀라 문극겸을 봤다.

“그렇사옵니다.”

“자네 정말 담이 크군.”

“담이라니요?”

“무신들이 저렇게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독대를 할 생각을 하다니!”

예전 같으면 놀랄 일도 아닐 것이다. 아니 놀랄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과 예전이 다른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크게 없을 것이다.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때는 김돈중이나 죽은 전 상선의 눈치를 보던 것을 이제는 무신의 눈치를 보는 것이 달라진 거라면 달라진 걸 거다.

“소인이 남의 눈치를 볼 만큼 부덕하지 않았사옵니다.”

역시 말투도 대쪽이다.

“그래 무엇을 간하셨는가?”

사실 이것이 궁금한 조영인과 영신약이었다.

“신하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옵니다.”

“신하로 해야 할 일?”

이 말을 듣는 순간 조영인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때 문신들의 방으로 강일천 대장군이 들어섰다.이제는 용호군 대장군이 아니라 참지정사 강일천이니 그가 이곳에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의 가문이 명문가이기 때문에 조영인을 제외한 문신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참지정사 강일천을 맞이했다.

보통 무신에서 바로 이렇게 참지정사가 되었다면 거부감이 많았겠지만 강일천은 이제야 자신의 자리를 찾은 거라 그리 거부감은 크지 않았다.

“그래! 신하된 자로 무엇을 주청 드리고 온 것인가?”

강일천은 바로 문극겸에게 하대를 하며 물었다. 나이로 보나 직책으로 보나 분명 문극겸이 아래인 것은 확실했다.

“오셨습니까? 참지정사!”

문극겸은 목례를 하며 예를 보였다.

“묻는 말에는 대답이 없고 인사만 한다는 것은 내 하대가 귀에 거슬린다는 건가?”

다소 강일천의 말투에는 거만함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 거만함은 엄청난 자신감과 자존감에서 나오는 거였다.

“아니옵니다. 그저 저는 예를 올린 것뿐입니다. 앉으시지요.”

문극겸이 자리를 권했다. 하지만 이것은 주인이 손님에게 자리를 권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것이 속으로 너무나 재미있는 강일천이었다.‘역시 사적이던 공적이던 대쪽이군. 하하하!’문극겸이 권한 자리에 참지정사 강일천이 앉았다.

“제가 주청을 올린 것은 태자비 간택 때문이옵니다. 국본이신 태자께서 섰는데 그 옆에 태자비가 계시지 않다는 것은 근본이 흔들리는 일이지 않습니까?”

문극겸의 말에 참지정사 강일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독대할 만큼 은밀하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인가? 내일 있을 편전회의에서 해도 되는 것이 아닌가?”

강일천의 물음에 문극겸은 인상을 찡그렸다.

“내일 편전회의에서 주청을 올리면 벌떼처럼 무부들이 자신의 가문에서 태자비를 내겠다고 아우성을 칠 것입니다.”

듣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래서 인지 조영인과 염신약은 인상을 찡그렸다. 오직 이 순간 참지정사 강일천만 담담했다.

“그렇다고 해서 무신들의 딸을 태자비 간택에 배제시킬 수도 없지 않는가?”

“그러하옵니다. 하지만 무신들 중 하나가 황실의 외척까지 된다면 그것은 좋지 않사옵니다. 그래서 제가 따로 황제폐하께 독대를 신청하여 상소를 올린 것이옵니다.”

“그래 방법이 있나?”

“방법까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태자비 간택에서 공정한 심사를 한다는 구실로 황실과 황제마마께서는 끝내 문신의 가문의 딸을 선택하신다고 약소를 했사옵니다.”

그 순간 조영인과 염신약의 어둡던 표정이 밝아졌고 그에 반해 참지정사 강일천의 표정은 이제야 어두워졌다.

“그 말이 사실인가?”

“그러하옵니다. 참지정사!”

“으음,,,,,,,.”

참지정사 강일천은 신음소리를 냈다. ‘과연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실지,,,,,,.’참지정사 강일천은 문극겸의 말에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야릇한 생각이 들었다.

‘둘 중 하나는 거짓을 말하고 있군.’참지정사 강일천이 말하는 둘 중 하나는 문극겸과 황제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참지정사 문극겸은 그 둘 중에 확률로 따진다면 문극겸이 지금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확률이 더 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에 속이 비어 잇듯 썩기 시작을 하면 가장 먼저 절개와 충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참지정사 강일천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입술을 지그시 다물고 있는 문극겸을 한 번 물끄러미 봤다.

“왜 그러시옵니까? 참지정사!”

“아닐세. 그저 이제 늙으니 순간, 순간마다 멍해지는군. 하여튼 자네의 결단이 참으로 옳은 일을 하고 있네.”

“송구하옵니다. 참지정사!”

“그럼 내일 편전회의가 열리면 결정이 되겠군.”

“그렇사옵니다. 괜찮은 가문이 있다면 저희끼리 상론을 한 후에 후보를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옵니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염약심이 참지정사 강일천에게 말했다.

“우리끼리 우선 준비를 하겠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참지정사!”

“그럼 참한 규수가 누가 있지?”

“제 소견으로 문하시중이신 조영인 어르신의 손녀가 어떨까 하옵니다.”

문극겸은 많은 것을 준비한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게 더 의심스러운 참지정사 강일천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지켜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의 손녀를 태자비에 올리자는 것이오?”

조영인은 놀라 문극겸을 봤다. 그리고 참지정사 강일천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문하시중의 가문에서 태자비를 내자고?”

“그렇사옵니다. 참지정사 어른! 그래야 문신들이 문하시중 어른의 중심으로 뭉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렇기는 하네. 하지만 잘못하면 무신들을 자극할 수도 있네.”

참지정사 강일천의 말에 문하시중 조영인은 놀라면서도 자신이 외척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표정이 무척이나 미묘했다.

“그건 그렇고 문하시중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참지정사 강일천이 문하시중 조영인을 봤다.

“무엇을 말입니까? 참지정사!”

“태자비 간택에 소녀를 내시겠습니까?”

이 순간 문하시중 조영인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했다.

“내셔야 합니다. 무신들이 외척이라도 되면 이 조정은 더욱 도탄에 빠질 것입니다.”

염약신이 문하시중 조영인에게 말했다.

“그렇기는 하네만은 쉬운 일은 아닐세.”

“황제폐하께서 이미 문극겸 공에게 언지를 줬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아무리 불학무식한 무부라고 해도 황실의 혼례에 간섭을 할 수는 없을 것이옵니다. 차츰차츰 힘을 모으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염약신의 말에 문하시중 조영인은 참지정사 강일천을 봤다. 정말 이 순간 판단이 서지 않는 눈빛이었다.

“제가 돕지요. 그러니 어디 한 번 해 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참지정사 강일천의 말에 문하시중 조영인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예. 그렇게 하겠소. 우리도 차근차근 준비를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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