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9권 -- >
“대감마님!”
이 소리는 이 소응의 사택 청지기의 목소리였다.
“무엇인가?”
이 소응 대신에 망건이 문도 열지 않는 상태에서 물었다.
“손님이 찾아왔사옵니다.”
“손님!”
“그렇습니다.”
“뉘시냐?”
“뉘신지 모르겠고 서경에서 왔다 하옵니다.”
청지기의 말에 방안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이 소응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들어오라 해라.”
이제야 이 소응의 짧게 대답을 했다. 그리고 바로 문을 열고 조심히 당찬 외모의 사내 하나가 방안으로 들어와 상석에 앉아 있는 이 소응을 보며 무릎을 꿇었다.
“서경에서 왔사옵니다.”
짧고 힘 있는 어투는 북변 사내들의 특성이었다.
“서경? 서경에서 무슨 일로 내게 이 야심한 밤에 사람을 보낸 것이지?”
이 소응은 혹시나 서경으로 간 대령후가 자신에게 사람을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눈빛을 보이며 사내에게 물었다.
“서경에 대령 후 마마께서 계시옵니다.”
“서경에? 아직 유배지에서 풀려나시지도 않으신 몸으로 서경까지 가셨다고?”
이 소응은 괜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괜한 소리는 지난 날 자신의 자존심에 대한 일종의 속 좁은 반격과 같은 거였다. 하지만 이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반격일 것이다. 아니 속이 좁아 하는 헛짓이 분명했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자는 그저 전령이라는 것을 이 소응도 알고 있는데 이렇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것은 저는 모릅니다.”
역시 북변 사내는 말이 무장처럼 딱딱 끊어지는 감이 있었다.
“그렇지. 네깐 것이 어찌 알겠느냐. 그래 무엇을 전하고자 서경에서 내 사택까지 도둑고양이철 숨어들은 것이냐?”
이번 말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망건도 그런 생각이 들어 이 소응의 말을 막지 않고 있었던 거였다.
분명 이 전령은 대령후나 서경유수가 보낸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이 소응 대장군이 한 말을 그대로 다시 전할 것이 분명 했고 이 말을 통해서 자신들이 바로 넙죽 엎드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였다.그렇다면 후일 자리싸움을 할 때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 망건이었다.
물론 이것은 너무 이른 생각이기는 했다.
“대령후 마마께서 이 소응 대장군의 충심을 기다리고 계신다하옵니다.”
“나의 충심을?”
이 소응이 반문을 하는 듯 하다가 전령을 노려봤다가 다시 크고 거만하게 웃었다.
“하하하! 하하하! 충심을 드리고자 하실 때에는 뒤도 돌아보시지 않고 가신다는 말씀도 없이 가시더니 이제 와서 충심을 달라? 왜 서경에 가니 서경유수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더냐?”
역시 이 소응은 과대망상증 환자가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차분히 무릎을 꿇고 있던 사내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이 자는 서경유수를 주군으로 모시고 있는 자이니 자신의 주군을 하대하는 모습이 달갑지 않는 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화를 내고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은 모르겠사옵니다. 대령후께서 기회를 봐서 서경으로 오시라 하옵니다.”
“으음,,,,,.”
잠시 이 소응 대장군은 신음을 했다.
“진정 내게 충심을 바라시더냐?”
“저는 모르옵니다. 그저 대령후께서 그렇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이 소응은 대령후의 얼굴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소응 역시 대령후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끝없는 자존심을 가진 존재!그게 대령후라는 것을 이 소응도 알고 있었다.
“원하시면 드리지.”
그 순간 망건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대령후가 배경으로 필요하기는 했으나 이렇게 빨리 선택을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을 한 망건이었다.
“주군! 조금 더 깊이 생각을 하시고 정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망건은 조심히 이 소응에게 말했다.
“그래. 그것도 방법이겠지. 하지만 대령후를 모신다면 더 쉽게 세력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뭐 아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는 대령후 마마를 모실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소인배처럼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괜히 뜸을 드릴 필요는 없다.”
“예. 주군!”
이 소응이 저렇게 말하니 망건도 할 말이 없었다.
“다른 말씀은 없더냐?”
“장군이 된 조원정과 긴밀하게 관계를 유지하라고 하셨사옵니다.”
전령의 말에 망건은 속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이미 대령후는 자신이 손을 내밀면 이 소응 대장군이 절대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이렇게 전령을 보낸 거였다. 이건 다시 말해 무엇을 줄 것인가 약조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하처럼 부리려고 하는 짓이었다.
“조원정과?”
“그러하옵니다.”
“알았다. 내 곧 서경으로 단풍 피접을 한 번 가지.”
이 소응은 대령후가 자신과 손을 잡는다는 것에 기뻐 바로 승낙을 했다. 그 순간 전령은 망건을 힐끗 보고 다시 이 소응 대장군을 다시 봤다.
“따르시겠다면 서약을 받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망건은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나 주먹을 불끈 쥐었다.
“뭐라고 했는가?”
순간 이 소응이 있는 앞에서도 망건은 서경에서 보낸 전령에게 소리를 질렀다.
“왜 그러십니까?”
“어찌 대령후 마마를 뵙지도 않고 충성서약을 쓰라는 것이냐?”
“저는 모르는 일이옵니다. 저는 전하라는 것을 전하는 것뿐이옵니다.”
“그렇지.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다시 전해라!”
망건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전해 올리겠습니다.”
망건의 말에 이 소응은 망건을 뚫어지게 봤다.
“곧 대장군께서 단풍피접을 핑계로 묘향산을 가는 틈에 서경으로 가실 것이다. 그러니 그때 충성서약을 써도 쓰실 것이고 대령후께 받아야 할 약조도 받을 것이다.”
“예. 그리 전하겠습니다.”
서경에서 온 전령은 더 강요 없이 알았다고 말했다. 사실 이 소응의 충성 맹세를 받으면 좋고 받지 않아도 나쁠 것은 없었다.
“전할 것을 다 전했다면 물러가라.”
“예.”
마지막 순간까지 망건은 노기를 멈추지 않았고 서경에서 온 전령은 조심이 밖으로 나갔다.
“왜 그리 한 것이냐?”
이 소응은 갑자기 화를 내는 망건이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서약이라는 것이 곧 충성맹세이옵니다. 대령후가 필요하기는 하나 아무것도 얻지 않고 또 저의 주군이신 대장군을 어찌 쓰실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충성맹세를 써 준다는 것은 함부로 부림을 당할 수 있어 소장이 대장군 앞에서 무례를 범했사옵니다.”
“잘 했다. 그래! 우리도 독하다는 것을 보여 줄 필요도 있다.”
이 소응이 과대망상증 환자라고해도 가신을 믿는 마음이 크기에 이렇게 일을 진행하는 거였다.
“그리고 대령 후를 만나는 것은 만나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세력을 모으는 것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채원도 포섭할 방법을 찾아봐라.”
이 소응은 바로 명령을 내렸다.
“예. 주군!”
이 방에 모여 있는 이 소응의 가신들이 짧게 머리를 숙여 대답을 했다.
“그리고 어인성!”
“예. 주군!”
“너는 순군이니 순군을 이용해서 이의방과 그 측근들이 움직이는 것을 은밀히 염탐하는 것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주군!”
어인성의 말에 이 소응 대장군은 야릇하게 웃었다.
“그래. 묘향산으로 단풍 피접을 가 봐야겠다. 절대 잊지 못할 단풍피접이 되겠구나. 하하하!”
이렇게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각자의 생각과 이유 때문에 권력이라는 진흙탕에 빠져 들고 있었다.나는 늦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가 나도 모르는 순간 잠이 들었지만 이른 아침에 내가 기거를 하는 전각 뒤편에서 수련을 하는 수련무사들의 기합소리에 잠이 깨어 밖으로 나왔다.
이얍! 이얍!활기찬 기합소리가 지금 아침을 알리는 수탉을 대신한 거였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수련을 하는 지 궁금해 찬찬히 기합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이얍! 이얍!30여명의 젊은 동남동녀들이 내 지시를 받고 열심히 열을 맞춰 격술 수련을 하고 있었고 그 열 제일 앞에 훈련교관처럼 홍련이 하나하나 잘못된 동작을 하고 있는 수련무사들의 자세를 바로잡아 주고 있었고 대열 안에는 나머지 8명의 여무사와 별초 몇이 거의 일대일 맞춤 수련을 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대열 제일 앞에는 백화와 별초낭장 박현준이 그런 모습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수련을 한지 며칠이 되지 않았는데 제법 폼이 좋네.’난 무예를 아예 모르고 있었기에 저들이 수련하는 모습이 놀랍기만 했다. 그리고 내가 온 것을 보자 백화와 박현준이 나를 보며 짧게 목례를 했고 나는 수련을 계속하라는 눈짓을 했다.
‘내 집이 이렇게 활기가 차는 것이 좋다.’저들은 분명 내게 힘이 되어줄 존재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나는 다섯 명의 여무사와 10명의 여자 수련 무사를 나인으로 위장을 해서 대전에 배속시킬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내 덫에 빠진 채원을 잡을 거다.
나는 최대한 근엄한 표정을 하고 찬찬히 걸어 수련을 하는 수련무사들에게 다가갔다. 무예를 못한다고 해서 폼까지 못 잡는 것은 아니었기에 나도 저들의 주군으로 격려 정도는 해 줄 요량으로 다가간 거였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나쁘지 않구나!”
나는 힘차게 팔을 뻗어 지르기를 하고 있는 사내에게 말했고 그러자 수련을 하는 사내는 자세를 바로하고 반듯하게 내 앞에 서서 나를 봤다.
“감사하옵니다. 주군!”
“그래. 열심히 수련을 해라. 그럼 내가 너희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난 그렇게 말하고 왼손으로 사내의 어깨를 도닥여줬다. 그 순간 사내는 내가 어깨를 도닥거려줘서인지 자신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그러는 것이냐?”
“아. 아니옵니다. 주군께서 격려를 해 주셔서 감격스러워 저도 모르게 이런 것 같습니다.”
약간 말이 이상했다. 감격스러워 그런다. 도 아니고 그런 것 같다는 것은 자신도 자신이 한 행동을 모르겠다는 말처럼 내 귀에 들렸다.
“그래. 알았다.”
하지만 뭐 따질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다른 사내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보이고 처음처럼 어깨를 두드려줬다.그런데 이번에도 수련을 하는 사내는 살짝 놀란 눈빛으로 나를 봤다.
‘왜 저렇게 놀란 눈빛을 하지?’난 이 순간 저 둘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왜 그러냐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무예를 배웠으면 좋겠구나.”
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항상 위급할 때마다 백화의 등 뒤에 숨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사실 그건 무척이나 모양이 빠지는 일이었다.
“제가 주군의 수련을 도와드리옵니까?”
내 말에 박현준이 나를 보며 물었다.
“그래주면 고맙지. 그런데 시간이 참 없어 문제다.”
내 말에 백화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박현준은 나를 빤히 봤다.
“수련에 있어서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지 시간이 문제는 아닌 듯 하옵니다. 수련은 항상 해야 하는 거시옵고 무장이라면 스스로 수련함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옵니다.”
“그렇지. 뭐 누가 그걸 모르나?”
난 괜한 핀잔을 들어 속으로는 짜증이 살짝 났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주군이 된 입장에서 모양 빠지게 짜증을 낼 수도 없었기에 내게 입바른 소리를 한 박현준의 어깨를 두드려줬다.찌릿! 찌릿!내가 박현준의 어깨를 두드리자 박현준도 다른 수련 무사들처럼 놀라 나를 빤히 봤다.
“왜 그러느냐?”
“어, 어떻게 하신 것이옵니까?”
“뭐?”
난 영문을 몰라 박현준을 봤다.
“아, 아니옵니다.”
박현준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내가 뭘 했다고? 내가 터치를 좀 했다고 짜릿한 거야?’난 박현준을 야릇한 눈으로 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백화가 내게 다가왔다.
“곧 입궁을 하셔야 하니 소녀가 아침을 준비하겠사옵니다. 상공.”
“그래. 나도 이집에서 마음 편히 밥 좀 먹고 입궁을 해 보자.”
난 농담 아닌 농담으로 여전히 날 어색하게 보는 박현준과 백화를 보며 웃었다.
“예. 상공! 바로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래. 백화야!”
난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그러고 보니 세수도 하지 않고 이 자리에 나온 거였다.‘젠장! 혹시 눈곱이라도 끼여 있는 거 아냐? 모양 빠지게.’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주군들은 항상 거만하고 근엄하게 행동을 하는 걸 거다. 부하들에게 모양 빠지는 일이 없게 말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래서 자리가 사람을 만들어.이제 주군이라 속 좁은 짓도 못하겠군. 하하하!’난 유쾌한 마음에 더욱 근엄하게 걸었다.
나는 내 사택 전각 주춧돌 위에 서서 내가 말하기를 차분히 기다리고 있는 15인의 나인 복장을 한 여무사와 수련 여 무사를 물끄러미 봤다.이것이 내 첫 시작이 될 것이다.
“모든 준비가 끝이 났사옵니다. 주군!”
홍련이 내게 보고를 했다.
“그래 수고를 했다.”
난 홍련을 보고 잠시 말을 하며 다시 이제는 나인으로 살아야 할 15명의 여 무사들을 봤다. 나는 이들에게 기회와 함께 모진 궁궐 여인의 삶을 강요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모진 짓일 것이다. 아니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조치일 것이다.
나는 그들을 궁궐로 보낼 수는 있지만 그들을 다시 궁 밖으로 빼내 줄 수는 없었다. 이들은 이제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가는 거였다.
그만큼 궁은 들어갈 수는 있지만 살아서는 나올 수 없는 곳이다.여인들의 감옥이 바로 구중궁궐인 것이다.
‘내 의지와 계획의 의해 황제의 여자들이 되는 거지.’황궁에 있는 모든 여자는 황제의 여자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과 자신의 가문에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또 달리 보면 평생을 혼자 외롭게 살아야 할 수도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니 감옥인 것이다.‘궁궐의 시든 꽃으로 살겠지.’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미안함이다. 하지만 나는 독하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다.
‘부디 명종 황제의 눈에 띄어 고귀한 여인이 되시게.’난 속으로 중얼거렸다.물론 저들 중에 정말 운이 좋고 조상이 돌봐서 명종황제의 은혜를 입게 된다면 특별상궁이나 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확률은 무척이나 희박한 것도 현실이었다.
정말 궁궐에는 내가 보기에도 눈이 돌아갈 정도의 미모의 여인들이 많았다. 물론 저들 역시 어디에 데려다놔도 미모에서는 빠지지는 않지만 수도 없이 많은 꽃들 속에서 무칠 수도 있었다.
‘많은 꽃들이 피어 있는 곳에서 가장 눈이 띄기 어려운 것은 꽃이니 말이야!’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작별 아닌 작별을 고하고 마지막 명령을 내려야할 시점이었다. 난 다시 한 번 입술을 지그시 깨문 15명의 나인들을 봤다.
“너희들은 이제 황궁의 여인이 될 것이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 말에 15명의 무사 출신 여인들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걱정과 기대 그리고 긴장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