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174화 (174/620)

< -- 간웅 9권 -- >

“예. 불경스럽지만 앉겠습니다.”

난 조심히 말하며 정자세로 탁자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바로 옥수 같은 영화공주의 손에서 따라지는 향긋한 차를 받아야 했다.

“받으세요. 송나라에서 가지고온 작설차이옵니다.”

내게 극존칭을 쓰는 영화공주, 그녀 역시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공주였다.

“감사하옵니다. 공주님!”

난 사실 차에 흥미가 없다. 내 몸은 차를 마셔보지 않았을 위인이고 이 몸이 지배하고 있는 내 기억은 차보다는 커피에 익숙한 것이니 별로 달갑지 않았다. ‘난 별론데,,,,,,.’그러나 황녀가 주는 차이니 최대한 공손히 받았다.

“마시게. 회생공. 여유가 없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여유를 좀 가지게.”

태후는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내게 정말 환심을 사려는 것 같았다. 이것은 어쩌면 일종의 편집증 같아 보였다.

“황공하옵니다. 태후마마!”

그리고 난 조심히 차를 마셨다. 적설차이면 무척이나 고가의 차가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난 이 차를 마시며 백화가 끓여주는 숭늉만큼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화를 두고 오니 조금 허전하기는 하다.’난 사실 백화를 내 사택에 두고 왔다.

이제는 어느 정도 내 신변에 보호를 받고 있으니 굳이 백화를 데리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안주인은 집안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내가 태후 전에서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 알고 있었기에 백화에게 이런 꼴을 보여서 마음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회생 공만 믿을 것이네.”

“예. 태후마마!”

“황제를 잘 보필해 주시게.”

이 말은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절대 안 되는 말이다. ‘말에 재물이 드는 것도 아니니 아부를 좀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난 그런 생각을 하며 태후를 봤다.

“소장은 태후마마의 신하이옵니다. 그러니 당연히 황제폐하를 보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옵니다.”

내 아부에 태후도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난 이 순간에도 권력이라는 괴물에 환멸이 느껴졌다.이 세상에서 어미와 자식의 관계만큼 이해득실이 없는 관계도 없을 것이다.

어미는 오직 자식에게 주는 존재이고 그것을 준다고 해서 아깝지 않는 존재일 것이다.하지만 이 순간 권력이라는 괴물이 개입을 하게 되면 그 지고지순한 관계도 이렇게 퇴색을 시키니 권력은 참으로 무서운 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호호! 그러신가.”

“그러하옵니다.”

“그리고 회생 공이 공무가 바쁘고 이 사직과 황실을 보위하기 위해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이 늙은이도 알지만 가끔은 들려 영화공주와 은밀히 시간을 보내시게.”

이 은밀히는 아직은 나를 공식적으로 부마로 발표를 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은밀히 라는 말을 사용했다. 하지만 은밀히 라는 것은 참으로 야릇한 뜻을 담고 있는 말이라 영화공주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예. 알겠사옵니다.”

“이 늙은이는 이제 곤하니 자리를 옮겨서 서로 차를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시게.”

태후는 의도적으로 나와 영화공주를 한방에 밀어 넣으려는 듯 했다. 물론 그 방에서 내가 영화공주를 어떻게 하라는 그런 뜻은 분명 아닐 것이다.하지만 남녀가 한 방에 있게 되면 정이 쌓인다는 것을 태후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예. 태후마마!”

난 짧게 대답을 했지만 지금 영화공주를 접대(?)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할 도리는 없었다.우선은 이 태후궁 처소를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난 그렇게 대답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른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그리고 다른 방 문 앞에 서서 영화공주를 봤다.

“소장은 바빠서 그만 물러가야 할 것 같사옵니다. 공주마마!”

내 말에 영화공주는 약간 서글픈 표정을 보였다. 정말 며칠 사이로 이렇게 영화공주가 바뀔 거라는 생각을 나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나를 완전히 받아드릴 마음을 먹은 거야!’이건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시겠죠. 회생 공의 어깨에 이 황실의 안위가 달렸으니까요.”

정말 이것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왜 내가 그것도 스스로 소인배가 되고자 하는 내가 이렇게 고려황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게 됐는지 신기할 뿐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을 돌릴 수 없는 노릇이니 어떻게든 당분간은 충신 놀음을 해야 했다.

“송구하오나 태후마마께서 걱정하시지 않으시게 소장과 같이 잠시 차를 마셨다고 해 주시면 감사하겠사옵니다. 공주마마!”

내 말에 다시 영화공주의 눈빛이 서글퍼졌다.‘왜 저래?’난 순간 속으로 당황스러웠다.

“백화라는 아이 아니 그 사람에게는 그러지 않지요?”

“예?”

난 영화공주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되물었다.

“백화에게는 하대를 하시고 나라고 하시고 그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분이 다르지 않사옵니까?”

“그렇습니다. 회생공! 하지만 여자의 마음은 같은 법이지요.”

순간 영화공주는 내게 솔직해지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것은 고도의 미인지계일 것이다. 난 이 순간 어떻게 판단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정말 왜 이래? 사람 혼란스럽게.’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제가 이러는 것이 불편하십니까?”

다시 한 번 영화공주가 나를 놀라게 했다.

“아, 아니옵니다.”

“제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회생공이 저에게 소장이라고 하시지 않고 나라고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순간 난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이렇게 되면 일이 복잡해지는데,,,,,,.’사람이 사람에게 반하는 이유는 따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영화공주의 눈빛은 내게 반한 그런 눈빛이었다.

정말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내가 황실을 구해낸 것이 이렇게 영화공주가 나를 달리 보게 된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여자는 남자의 능력에 반한다.

나는 문뜩 여전 현실에서 어느 화장실 낙서가 떠올랐다.‘내게 반했나?’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자로써 그리 기분이 나쁘지는 않지만 지금 영화공주의 눈빛은 내게 위험함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모른 체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난 이렇게 또 내 우유부단함이 발동을 했고 이것은 여복이 아닌 여난으로 작용을 할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 있사옵니다. 차를 한 잔 드시겠사옵니까?”

내 말에 영화공주는 조금 놀란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무척이나 나는 쌀쌀하게 영화공주를 대했다. 그런데 이 순간 영화공주의 솔직함에 내가 조금 변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영화공주의 미인지계라면 나는 참으로 큰 덫에 빠지는 걸 거다.

“예. 준비를 하겠습니다. 들어가시지요.”

난 그렇게 영화공주와 둘만이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다.

’난 그렇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순검군 산원방.채원은 대장군이 되어도 중방이 있는 장군방으로 가지 않고 황궁 산원방에 머물렀다. 또한 대장군의 직을 받았기는 하지만 자신에게 내린 군영을 순시하는 것도 그리 서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고가 용호군의 대장군 직을 받고 바로 달려간 것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다. 이것은 이의방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로 떠벌리기는 했지만 은근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또한 호시탐탐 황궁에서 기회를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채원의 분을 억누르고 있었던 박 산원이 사라진 지금 채원의 순검 군에게는 책사의 역할을 수행할 자가 존재하지 않았다.이것은 채원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박 산원이 죽었단 말이지,,,,,,.”

채원은 홀로 산원방에 앉아 신음을 했다. 처음 박산원이 지랄병에 발광을 하는 모습을 보고 방치한 것이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채원이었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이제 채원을 자제시킬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그래. 뜸을 들이면 일이 안되지.”

채원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거사를 생각하고 있으니 당연히 이의방도 자신을 노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주변 경계를 강화하고 또한 호위무사의 수도 늘렸다. 이런 이유 때문에 회생이 채원을 호구라고 말하면서도 판에 올려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였다.정말 둘은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는 거였다.

“가지를 칠 것이 아니라 대가리를 치면 그만이야!”

채원은 그렇게 말하며 이의방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 이의방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누구는 위위경이고 누구는 대장군인 것이 분통이 터지는 채원이었다.

불만이 하나 생기니 그 하나의 불만이 다시 불만은 만드는 형국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또한 다른 문신들 역시 자신과 이의방을 대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망할 놈의 문신 놈들! 나를 차별해! 어디 두고 보자 요절을 내 주마!”

채원은 그렇게 문신들에게도 화를 뿜어냈다.

“내 거사에 성공을 하면 이번에는 아예 사모를 쓴 문신 놈들의 씨를 말릴 것이야!”

채원은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그리고 또 이렇게 이런 거사를 준비하면서도 채원은 계속 뇌물을 받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뇌물은 채원을 두려워하는 문신들과 하급 관리 그리고 환관들이 쥐어주는 호신용과 같은 뇌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채원의 집이 된 의종의 잠저로 들어오는 뇌물들은 빠짐없이 기록이 되고 있었다. 누가 줬는지 어떤 것인지 정말 철저하게 은밀히 기록을 하고 있는 감찰어사들이었다.

이렇게 회생은 채원을 도모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해 놓은 상태였다. 단지 채원이 스스로 조심을 하고 있기에 판에 올려놓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폭풍전야처럼 고요한 신경전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급박한 순간에는 누가 먼저 실수를 하는 것이 죽고 사는 갈림을 정한다는 것은 채원도 회생도 잘 알고 있었다.

영화공주와 내가 단 둘이 있는 태후 전 전각의 방.은은히 타는 초는 은근히 사내의 마음을 부축이듯 춤을 추고 있었고 나와 단 둘이 있다는 생각에 영화공주는 살짝 타는 초처럼 얼굴을 살짝 붉히고 있었다. 나는 백화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것도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내게 밀려오는 것은 영화공주와 내게 인연이 있기 때문일까?’난 스스로 의문을 던져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인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작위적인 것이 많았다. 서로의 마음이 끌리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사정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으로 시작했기에 나는 여전히 서먹했다.

그리고 또 채원을 어떻게 하면 판에 올려놓을까 하는 고민에 영화공주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차를 드십시오.”

영화공주는 내게 다시 차를 내밀었다. ‘붕어 새끼도 아니고 참 차만 계속 홀짝이네.’난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감사합니다.”

나는 짧게 대답을 했다. 영화공주가 원했기에 어투가 조금은 바뀌었지만 그렇다고 지존의 딸이었던 영화공주에게 하대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그리고 영화공주 역시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 것 같았다.

“근심이 있으십니까?”

영화공주는 궁금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황실을 능멸한 채원을 처단해야 다른 신하들이 황실을 쉽게 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지금 상황에서는 본보기가 필요합니다.”

사실 채원을 제거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병력을 동원한다면 당장이라도 제거를 할 수 있는 것이 채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의방이 거사 동지를 토사구팽 한다는 소리가 있을 것이고 그것은 내가 아무리 많은 채원의 악행의 증거를 보인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확실히 제거를 하고 제거를 할 수밖에 없는 명분이 있어야 했다. 아니 명분도 만들어진 상태였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이의방의 힘을 이용하지 않고 채원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오로지 감찰어사의 직위만으로 채원을 도모해야 한다.

’나는 그런 생각에 다시 인상을 찡그렸다.

“위위 경의 병력을 동원할 수 없는 일이군요.”

역시 영화공주는 눈치가 빨랐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 채원도 일을 꾸미고 있어 자신의 호위를 늘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또한 무슨 이유에서인지 궁을 떠나는 일이 없습니다.”

“결국 판에 올리신다는 것은 그자를 호위하는 장졸들로부터 떨어트려야 한다는 말씀이셨군요.”

역시 영리한 영화공주였다.

“그렇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면 답이 있으실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라고요?”

“그렇습니다. 채원을 잘 알게 되면 답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영화공주는 내게 조심히 말했다.

“채원을 잘 안다?”

“그렇습니다. 회생!”

그러고 보니 내가 채원에 대해 아는 것이 그리 많지가 않았다. 적을 도모하고자 하는 내게 적이 어떤 자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은 나의 큰 실수였다.

물론 채원이 탐욕스러운 자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 궁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그래! 중랑장 한 섬을 내 편으로 만들 때보다 그 준비가 작다.

’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나는 영화공주를 보며 웃어줬다. 정말 오늘 차 한 잔은 잘 마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을 알지 못하고 싸운다면 지는 것은 자명한 일.나는 이 순간 나 역시 정중부를 죽인 것에 도취되어 있었다는 반성을 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을 하면 다 일이 진행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깨우쳤다.

“공주님에게 오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십니까? 회생공.”

“예. 저는 이만 일어나야겠습니다.”

난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자 영화공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회생공은 참 바쁘시군요.”

영화공주는 아쉽다는 말 대신에 내가 바쁘다는 말로 자신의 아쉬움을 대신하는 것 같은 눈빛을 보였다. 내가 사랑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여자지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는 영화공주였다.

“혹시 영화공주님!”

“예. 회생공.”

“혹시 구절판을 만드실 수 있습니까?”

내 뜬금없는 물음에 영화공주는 나를 빤히 봤다.

“구절판이요?”

영화공주는 내게 되물었고 나는 괘한 소리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닙니다. 하하하! 제가 실없었습니다. 어떻게 공주님께,,,,,,.”

난 멋쩍게 웃었다.

“배워보지요. 수라간 상궁들에게 제가 배울 것입니다.”

영화공주는 내가 구절판을 좋아 하는 줄 아는 듯 했다. 난 이 순간 또 괜한 소리를 여자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거였다.

“가 보겠습니다.”

난 어색한 기분이 들어 급하게 돌아서 밖으로 나갔다.‘미운 정도 쌓이면 떼기 어려운데 참 나도 사내인 모양이다.

’난 그렇게 생각을 하며 인상을 찡그리고 밖으로 나왔다.‘어사대라면 채원에 대해 많이 조사를 했을 것이다.

’어사대의 직무가 백관을 감찰하고 또 주요 인물을 사찰하는 것이니 충분히 채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놓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내게 무부로 채원을 제일 먼저 도모하겠다고 했으니 이정도의 시간이 지났다면 없던 준비도 해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지금은 밤도 깊어진 상태였고 달도 차고 넘쳐 지고 있었다.

지금 어사대로 가 봐야 아무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내일 날이 밝으면 채원에 대해서부터 연구한다.

’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채원만 찍어내면 한 동안 여유가 있을 거다.

’난 그렇게 생각을 했다. 역사대로만 본다면 한 3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시간이 지나고 김보당의 난부터 조위총의 난까지 고려 조정은 수많은 내란에 휩싸이게 되는 거였다.

그러니 내게 3년의 시간은 금쪽같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제발! 역사대로만 흘러다오.’난 간절히 그렇게 되기를 기원하며 나는 계략과 음모가 판을 치는 황궁을 빠져 나와 저잣거리를 걸었다.

다다닥! 다다닥! 다닥! 다닥!그때 이 야심한 밤에 급히 말을 달리는 자가 있었고 얼마나 급했는지 저잣거리 좁은 길을 이 깊은 밤에 흙먼지가 보이도록 달려오고 있었고 나는 급히 달려오는 말을 피하기 위해 길 옆으로 섰다.다그닥! 다그닥!그리고 급히 달리는 말이 갑자기 내 앞에 섰다.

“워워!”

말을 탄 기수는 말 등에서 나를 내려 봤다.

“말 좀 묻겠다.”

말을 탄 기수는 나를 보며 다짜고짜 물었다.

“물으시오?”

“혹시 이 소응 대장군의 사택을 아느냐?”

“예? 그런데 그건 이 밤에 왜 물으시요?”

난 괜히 뜸을 한 번 드렸다."그러니까? 아네 모르네?"순간 기수의 입에서 익숙하지 않은 말투가 튀어 나왔다."모르는데요? 그리고 왜 화를 냅니까?"나는 이 소응이 누군지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지금 나는 평복을 입고 있으니 저잣거리를 배외하는 자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니 괜히 안다고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을 탄 기수와 말을 살폈다.

‘뭐지? 이 밤에?’난 문뜩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뭔가 남에게 물을 것이 있으면 정중히 부탁을 하는 것이 예의 아니오?”

난 살짝 말을 탄 기수를 건드려 봤다. 허리에 차고 있는 것이 분명 검이고 말을 탄 것이 무장일 것이니 무슨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행동을 한 거였다.내 말에 말을 탄 기수는 살짝 눈꼬리가 올라갔다.

“어라? 요거이 봐라!”

순간 말을 탄 기수는 북변 사투리를 쓰며 나를 노려봤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난 바로 꼬리를 내리는 척을 했다.

“바로 꼬랑지를 내릴 것이 어디,,,,,,.”

말을 탄 기수는 피식 나를 비웃고 말머리를 돌렸다.

“이랴! 젠장! 사택이 어디란 말이네. 왜 이리 개경이 넓은 기네.”

말을 탄 기수는 혼잣말을 퉁명스럽게 하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난 살짝 인상을 쓰며 멀어지는 말과 기수를 노려봤다.

“저 말투는 북변사투리다. 북변!”

난 바로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북변이면 서경의 확률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앞으로 3년 이상 남았다.”

난 내가 괜한 기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자꾸 멀어지는 기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의심이 난다면 확인을 해 봐야겠지.’궁금한 것은 물어야 하고 알고 싶은 것은 알아야 하는 법이다.

“거기 있는가?”

난 나직이 나를 호위하는 별초를 불렀다. 그리고 바로 어둠 속에서 별초 하나가 나타나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명하소서! 주군.”

지금 내 앞에 모습을 보인 별초는 나를 호위하는 별초들의 조장이 분명할 것이다.

“지금 내게 말을 걸고 사라졌던 기마들이 이대장군의 사택으로 갔을 것이다. 어디에서 온 것들인지 알아 오거라.”

“예. 주군.”

별초 조장은 짧게 대답을 했다.

“기마가 이 개경을 벗어난다고 해도 끝까지 따라가서 알아내야 할 것이다.”

“예. 주군.”

“가라.”

내 명령과 함께 별초가 순식간에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난 별초가 사라진 어둠 속을 물끄러미 봤다.

“이대장군의 사택을 물었어. 그렇다면 저들이 서경에서 왔다면 이소응 그 늙은이랑 내통을 해서 내응을 하겠다는 건데,,,,,,.”

하지만 여기서 이상한 것은 조위총의 난은 3년 후에 일어나야 할 난이 분명했다. 조위총의 난이 일어나기 전에 꼴 보기 싫은 김보당의 난이 먼저 일어나는 것이 역사의 수순이다. 그리고 김보당은 자신의 거사에 명분을 얻기 위해 상황제로 외로이 강화에 있는 의종을 앞에 세우고 난을 일으킨다. 그래서 내가 진구와 달레를 강화에 내려 보낸 거였다.

“뭐가 분명 이상해!”

난 자꾸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으로 내가 모르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켜보면 알겠지.”

난 잠시 인상을 찡그리고 내 사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말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고 적의 수는 자꾸 늘어만 가는 나날이다.그런 걱정들이 쌓이며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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