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173화 (173/620)

< -- 간웅 9권 -- >정말 큰 야망을 가지고 있는 대령후였다. 이러니 충분히 회생의 맞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회생이 상대하기에는 참으로 힘에 부치는 적일 것이다.이제 겨우 세력을 만들고자 하는 회생에 비해 대령후는 상상 이상의 세력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벽란도를 더욱 장악해야 할 것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거병은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최후에 거병을 하게 된다면 그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재력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이 순간 벽란도를 차지하려는 회생과 또 다시 대령 후가 부딪치는 순간이었다. 어떤 면에서 대령후는 회생에게 하늘이 내린 적수일 것이다.

송악산 깊은 산속에 위치한 허름한 산채.박 산원은 산 도적들의 안내(?)를 받아 이들의 근거지라고 할 수 있는 산채에 도착을 했다. 산채에 도착한 박 산원은 주변을 살피며 이들이 김돈중의 가병들이기는 하나 마땅히 지휘통솔을 하는 자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대도적들의 산채만 해도 경계가 있고 훈련이 있고 서열과 질서가 있는데 지금 이 순간 이들에게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나무로 움막 몇 개를 지어놓은 것이 전부였고 거의 전장에서 패한 패잔병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형편이 없군. 가병이었다면 평소 통솔하던 자가 있을 것인데,,,,,,.’박 산원은 이런 몰골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패잔병처럼 널브러져 있는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전 좌승선 김돈중의 가병 장은 김돈중이 행방을 감추고 바로 추포에 들어간 무신들에 의해 참살을 당하고 가병들의 주 지도층이 김돈중의 사택에서 도륙을 당했기에 실질적으로 이들을 이끄는 우두머리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거였다.

그리고 하급 가병 장들은 이들을 이끄는데 능력의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모여 있게 만들어 놓은 것만도 참으로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또한 이들에게 조정에서 추포 령이 내린 상태로 산으로 내려가지도 못하고 있으니 이렇게 송악산에 은거를 하고 있는 거였다.

‘병력으로 따진다고 해도 큰 군영과 같은데 패잔병의 꼴이구나!’이것만 봐도 군막을 지위하는 무장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또한 박 산원은 욕심이 생기기 시작을 했다.‘가만히 봐도 1천이 넘는다.

’이 송악산에 우글거리는 것들이 1천이 넘으니 대병이라고 하면 대병이었다. 비록 이들이 고려조정의 정규군은 아니라도 검을 들어보고 무예를 수련한 가병들이기에 유사시 충분히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또한 자신이 잘만 하면 이들을 장악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잘 먹이고 잘 단속을 하면 이곳에서 힘을 쓸 수 있겠어.’박 산원은 조금씩 욕심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곳이요.”

산적 하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지금 박 산원이 서 있는 곳은 바로 하급 가병장이 엉성하게 지어놓은 움막과 같은 거였다.

“너는 누구냐?”

하급 가병 장은 귀찮다는 듯 박 산원을 보며 물었다.

“같이 버려진 신세에 뭐 따질 것이 있나?”

박 산원은 다소 건방지게 말했고 그 모습이 하급 가병 장은 피식 웃었다.

“이놈! 별 신기한 놈이구나!”

“이 꼴을 하고 있는 네가 신기하지.”

순간 박 산원은 하급 가병 장을 도발했다. 얼굴이 검게 탄 것이 이자 역시 며칠을 굶은 것 같아 보였다.

“뭐라?”

화가 난 하급 가병장이 벌떡 일어나서 박 산원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가 허리를 펴고 박 산원을 노려보려고 하는 순간 박 산원이 갑자기 달려들어 하급 가병장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수박의 동작을 응용해서 무위를 보이는 박 산원이었다.

수박!수박은 손을 쓰되 상대를 잡거나 안아 쓰러뜨려서는 안 되고 반드시 떨어진 상태에서 기술을 펴야 한다. 따라서 수박을 잘하려면 손동작과 몸놀림이 재빨라야 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수박을 무술 훈련의 기본기로 삼았다.

수박 장면이 고구려의 세칸 무덤, 춤 무덤, 동수무덤인 안악 3호분에 그려진 것을 보면 고구려 사람들이 이를 씨름 못지않게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수박의 인기는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도 매우 높았으며 두경승과 이의민은 쌍벽을 이룬다고 할 정도로 수박의 재능을 보였다. 또한 조선 왕조에 들어와 수박은 활쏘기·창 쓰기·격구와 함께 무사의 자격을 따지는 종목으로 꼽혔다.

태종 때에는 병조에 방패군을 보충할 때 수박으로 세 사람을 이긴 자를 뽑았고, 세종은 수박 잘하는 사람에게 특별상을 내렸다. 무인으로 수박은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무예인 거였다.

쿵!

“어이쿠!”

허리부터 바닥에 떨어진 하급 가병장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것도 잠시 박 산원은 비호처럼 달려들어 자신의 발로 하급 가병장의 가슴을 진 눌렀다.

“도적이 되었으면 도적질이라고 잘 해야지.”

박 산원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순간 박 산원의 돌발 행동에 나머지 도적으로 변한 김돈중의 가병들은 넋이 나가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해졌다.

“움직이면 이자의 목을 눌러 죽일 것이다.”

박 산원은 거칠게 소리를 질렀다. 하찮은 이리의 무리에 범 한 마리가 뛰어 들었으니 그 이리의 무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죽여! 그놈 하나 죽는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

당황하고 있는 도적의 틈에서 박 산원을 긴장하게 하는 말이 튀어나왔고 박 산원은 지금 자신을 압박하는 자를 노려봤다.

“굶어죽으나 밟혀 죽으나 관군에 추포되어 목이 잘리나 다른 것이 없지. 그만 해!”

이죽거리듯 담담하게 말하는 가병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행색을 보니 비루한 것이 노쇠한 말처럼 생겼으니 그 말투는 제법 무게감이 있었다.

“더 밟고 있으면 그 녀석 죽어. 그 녀석 죽으면 우린 너를 죽여야 하고 배도 고픈데 서로 힘 뺄 필요가 있나?”

이제는 박 산원을 타이르기까지 했다.

“뭐, 뭐라고?”

“너도 이곳까지 굴러들어온 것을 보니 쫒기는 것 같은데 힘 빼지 말라는 소리지.”

정말 무게감이 있는 어투였다. 어림잡아 30대 중 후반의 남자는 머리가 길어 말처럼 생겼고 그 얼굴에 염소수염을 한 것이 정말 누가 봐도 추남이었으나 그 목소리만큼은 장부의 음성이었다.

“으음,,,,,,.”

“그러다가 정말 죽는다니까.”

다시 말대가리가 박 산원을 타일렀다.

“알았소.”

박 산원은 누르던 발을 하급 가병 장의 목에서 뗐다.

“케엑!”

겨우 풀려난 하급 가병 장은 토악질을 크게 하고 박 산원을 노려봤지만 겁이 났는지 말대가리의 뒤에 숨었다.

“수박을 좀 치는 것을 보니 관군인 것 같은데 이곳에 잠입한 끄나풀인가? 아니면 정말 도망자인가?”

이 순간 판단까지 예리했다. 그리고 딱 누가 봐도 책사의 소질이 다분한 말대가리였다.

“관군이기는 했지. 순검군 산원이라면 나는 새도 떨어트리니 하하하! 하지만 지금은 부질없지.”

박 산원은 솔직하게 말했다.

“순검군 산원이 이 송악산 산기슭까지 숨어들었다. 죄가 크군!”

“사지에서 빠져 나온 것뿐이지 죄는 없다.”

“그런가? 뭐 우리라고 죄가 있나? 죄라면 주인을 잘못 만난 죄지.”

말대가리의 말 한마디마다 다른 말은 없는 듯 했다. ‘저런 놈이 있는데 이러고 있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박산원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굶어죽으려고 이렇게 웅크리고 있는 건가?”

박 산원은 말 대가리를 한 번 격분시켜 보기로 했다.

“창에 찔려 죽는 것보다야 이 짓이 괜찮지. 아직은 칙도 많고 소나무 뿌리도 꽤 있으니 제법 버틸 수 있어.”

말 대가리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다가 끝내 굶어죽지 않나? 그것도 이 많은 병력이 말이야!”

박 산원의 말에 말 대가리는 피식 웃었다.

“왜 이 가병이었던 것들을 보고 대장질이라도 하고 싶어 진 건가?”

역시 패부를 찌르는 말투였다.

“으음,,,,,,.”

“하하하! 맞군. 그런데 어쩌나? 우리가 지금 이 곳에 모아놓은 것만도 대견한 일인데 움직이게 하기는 무척 힘이 들지.”

“그럼 굶어죽을 건가?”

박 산원은 말 대가리를 노려봤다.

“한 이틀 정도 더 지나면 눈에 독기가 생기지. 그때 움직일 거다.”

순간 왜 이렇게 이들이 이렇게 웅크리고 있는 지 알 것 같았다. 사실 이들은 자신들을 이끌어줄 자가 없기에 의견이 분분해서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막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말대가리였다.

“난 박철우라고 하오.”

순간 박산원은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그것은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 말 대가리를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대장질 하려고 온 놈이 먼저 이름을 말한다? 웃기네. 하하하!”

순간 박 산원은 인상을 찡그렸다.

“나는 그냥 한가라고 부르게.”

“한가?”

“그래. 이름을 밝힐 정도로 우리가 정다운 사이는 아니지 않나.”

정말 박 산원이 말로는 당할 수 없는 위인인 것 같았다.

“그래 좋아. 이제 이렇게 굶어죽을 건가?”

박 산원은 한가를 보며 물었다.

“모레쯤이면 움직인다고 했는데.”

“모레?”

“그래. 이제 슬슬 우리의 흔적도 지워지고 있으니 모레쯤에 대가 집 하나를 털면 군자금 정도는 되겠지.”

순간 박 산원은 놀라 한 가를 봤다.

“군자금이라고 했나?”

“비굴하게 숨어서 숨을 죽이고 사는 것보다 찍 소리라도 내고 죽어야지.”

사실 이들은 김돈중의 가병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고려에서 버림을 받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가병들을 기록하는 가병 록이 있기에 그것에 기록이 되어 있는 자는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발견되는 족족 목이 잘린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오기로 이렇게 송악산에 웅크리고 있는 거였다.그리고 또 이들이 웅크리고 있으며 내려 보고 있는 것은 고려황궁이었다.

털려면 아주 크게 털자는 것이 한가가 주장하는 거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군자금을 마련하고 개성산성을 장악한 후의 일이라는 것을 한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정말 털 건가?”

박 산원은 마른 침을 삼켰다.2천이나 되는 가병!절대 작은 병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박산원이었다.

채원이라는 사지를 겨우 벗어난 박 산원이었지만 이 순간 또 다른 사지로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박 산원이기도 했다.또한 이들이 움직이게 되면 지금까지 핍박을 받던 백성들도 따라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박 산원이었다.

정말 능력에 비해 너무 큰 것을 꿈꾸는 박 산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하하!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곳을 털어야지.”

한가는 씩 웃으며 말했다.그 순간 박 산원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태후가 있는 전각의 태후의 처소.태후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나를 보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있는 영화공주의 눈빛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그리고 또 지금 나를 위해 차를 준비하는 듯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나를 놀라게 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의 눈빛이 무척이나 많이 달라져 있다는 거였다.'저 눈빛 불안한데,,,,,,.'사실 나는 황궁으로 오는 길에 해월에게 왜 태후가 나를 불렀는지 자세하게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말 속에서 어느 정도 황당하면서도 난감한 느낌을 받았다.

‘황제를 돕기는 해도 태후 자신의 곁에서 멀어지지 마라?’이것이 태후의 의중이었다. 정말 난감하고 어이가 없는 순간이었다.

내가 이렇게 황실과 가까이 있는 것도 내게는 무척이나 허공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것인데 이제는 황제와 태후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답답했다.그리고 나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 태후의 옆에 차분히 앉아 있는 영화공주를 봤다.

‘미끼군. 하지만 눈빛은 확실히 변했어.’난 영화공주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가장 가여운 여자가 영화공주일 것이다.

“황제의 명으로 채원을 척살하기 위해 상황제의 잠저를 더럽힌 것이냐?”

공예태후가 내게 따지듯 물었다.

“그렇사옵니다. 죄가 하늘에 닿아야 채원을 처단해도 무신들이 반발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태후에게 이의방이 은밀히 채원을 조정에서 찍어내라고 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는 없는 상황이었다.

“무신들의 반발 때문이다?”

“그러하옵니다. 비록 채원이 지금 무신들의 거사대의를 어지럽히고는 있으나 그래도 거사의 주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아무 명분도 없이 제가 덫을 파서 찍어낸다면 거사를 한 주축 무신들은 반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난 말은 참으로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도 하겠지.”

“그러하옵니다. 태후마마!”

“그래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공예태후는 쉬지 않고 바로 내게 물었다.

“이제 덫을 팠으니 호구나 다름없는 채원을 판에 올려놓으면 되옵니다.”

“호구나 다름없는 채원을 판에 올려놓는다?”

“그렇습니다. 호구를 판에 올려놓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니 그것만 하면 되옵니다.”

내 말에 태후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빛을 보였다.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한 번 들으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왜 이렇게 신중하게 움직이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태후를 보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그때 영화공주가 나를 봤다.

“차가 식습니다. 어마마마!”

영화공주는 조심히 공예태후의 앞에 차를 올려놨다. 그제야 공예태후는 수많은 의구심을 뒤로 하고 나를 봤다.나는 여전히 자리에 서 있었다.

“앉으시게. 회생공!”

순간 공예태후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어찌 신하가 태후마마와 대좌를 할 수 있겠사옵니까?”

내 대답에 공예태후는 듣고 싶은 소리였다는 듯 씩 웃었다.

“그렇다고 해서 서서 차를 마실 수는 없지 않는가?”

사실 태후가 나를 부른 것은 채원을 어떻게 조정에서 찍어내어 저잣거리에 목을 걸 것인가는 아닐 것이다. 이 자리에 영화공주까지 와 있고 또 그녀가 내가 마실 차 수발을 드는 것을 봐서 나와 영화공주를 어떻게든 가깝게 하기 위함인 것 같았다.

이럴 때면 정말 난 공예태후의 뇌의 구조가 어떨까 궁금해졌다. 사실 나는 겨우 이제 5등 공신에 견룡행수 그리고 감찰어사에 불과하다.

그런 하찮은 나를 고려제국의 공주와 붙이지 못해 안달을 내고 있는 저 늙은 황실 최고 어른의 뇌구조가 나는 솔직히 궁금했다.물론 그만큼 그녀에게 나는 필요한 존재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너무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줬기 때문일 것이다.

“황공하옵니다.”

“이공 앉으시게.”

태후는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앉으세요.”

영화공주도 내게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다른 이가 이런 대우를 받았다면 하늘이 내려준 홍복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저 두 여자의 친절은 내게 복보다는 화가 더 크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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