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9권 -- >
“너는 내일 네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 중에 그래도 수련의 진전이 보이는 아이들 10여명을 차출해서 나인으로 보내라.”
순간 박현준과 홍련은 놀라 나를 빤히 봤다.
“그 말씀은?”
“그래. 황실과 황궁을 장악하고 황족들을 근전 보위 할 것이다.”
“신 여별초 낭장! 홍련 주군의 명을 따릅니다.”
홍련은 바로 고개를 숙여 답을 했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궁에 있는 무예를 쓸 수 있는 환관들과 함께 10여명의 나인들 그리고 그들을 통솔한 여 무사 하나가 견룡군 속에 잠입한 별초와 함께 채원을 잡을 것이다.’바드득! 나는 강한 의지를 다지듯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제 남은 것은 아직도 야릇한 눈을 하고 있는 왕준명이다. ‘뭘 생각을 해낸 거지?’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물으면 당장 답을 할 것 같았지만 묻지 않아도 당장 답을 할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주군!”
드디어 왕준명의 꽉 다문 입술이 열렸다.
“할 말이 있는가?”
“예. 하나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뭐지?”
“이 사택은 분명 전 좌승선 김돈중의 사택이지 않습니까?”
“그렇다. 그런데 왜 묻지?”
“창고에 있을 썰 섬과 재물도 그대로 있고요.”
“그렇다. 도망을 친 김돈중이 버리고 간 것이지.”
난 지금 왕준명이 괜한 것을 묻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김돈중의 가솔들은 모두 처참하게 살해를 당했고요.”
난 왕준명의 말에 그때를 떠올렸다. 내가 처음 이 사택에 왔을 때 여기저기 널려 있는 시체들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던 때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역신의 가솔이니 그 운명은 죽음이지.”
“그렇습니다. 황제폐하께서 이제 보위에 오르셨으니 도망을 친 김돈중은 역신이 되겠지요. 또한 무신들과 엄청나게 척이 되었으니 역신으로 몰아서 죽일 것이 분명합니다.”
“맞는 소리를 내게 할 필요가 있나?”
난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난 사실 내가 계획한 것을 내 가신들에게 공표를 하고 바로 홀로 조용히 죽은 정중부의 집에서 찾아낸 도천밀서를 읽어 내릴 참이었다. 그런데 지금 왕준명의 물음이 그것을 방해하고 있는 거였다.‘무슨 생각으로 내게 말하는 거지?’난 다시 왕준명을 봤다.
“그런데 사병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요? 제가 듣기로는 사병의 수만 2천이라고 들었습니다.”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때려 맞는 충격에 빠졌다.
“사. 사병?”
“그렇습니다. 저잣거리에 효시된 목은 모두 김돈중의 직계 가솔들이었습니다. 노비도 도망을 치고 하물며 솔거노비들 역시 도망을 친 상태에서 2천이나 되는 사병들은 어디에 갔을까요?”
이래서 왕준명이 문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개만큼 능력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빠트리고 있었다.
그래! 김돈중의 사병이 있었지? 정말 어디에 갔을까?’난 손에 나도 모르게 땀이 흘렸다. 만약 지금 이 순간 그들이 어느 깊은 산에 은거를 해서 황궁을 주시하고 있다면 이것은 또 하나의 적이 되는 거였다. 하지만 그들을 적으로 돌리지 않고 내 가병으로 만든다면 나는 당장 실력이 어느 정도 있는 사병 2천을 얻는 거였다.
거기다가 내 사택에 있는 50의 별초들에게 각각 40명씩 내어준다면 누구도 상대하기 힘든 부대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토끼가 지휘하는 사자의 부대보다 사자가 지휘하는 토끼의 부대가 강하다.
별초는 사자다.’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하하! 왕준명!”
나는 기뻐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예. 주군!”
“내가 너를 얻은 것이 나의 홍복이다. 하하하!”
“예. 감사합니다. 주군!”
왕준명은 짧게 대답을 하고 나는 별초 낭장 박현준을 봤다.
“박낭장!”
“예. 주군!”
“우리 사냥한번 멋들어지게 해야겠다.”
박현준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눈빛이다.
“예. 주군! 제가 그들이 어디에 흩어져 은거를 하는지 알아내겠습니다.”
“흩어져 있지 않을 것이다.”
내 말에 박현준은 놀랐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고려를 좌지우지했던 김돈중의 가병들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뭉칠 힘이 있는 것이다. 지금 그들은 어느 깊은 산에 응거를 해서 김돈중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이미 김돈주과 같이 있을지도 모른다.”
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벌써 김돈중의 추포 령이 내려진지 한 달이 다되어가는데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는 것은 은거를 완벽하게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놀란 별초낭장 박현준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렇지. 무신들에게도 큰일이고 황제폐하께도 큰일이지.”
김돈중은 의종의 총신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현 황제를 부정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렇군! 김돈중이 의종을 흔들 수도 있음이야!’이것은 역사에 없는 일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내가 본의 아니게 역사를 바꿔놓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가 완전히 틀어졌다. 완전히!’난 그런 생각을 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이 순간 나는 다시 양날의 검을 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이 고려는 나에게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아직 김돈중이 잡히지 않고 있다. 그게 제일 큰 문제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가설 중에 하나인 김돈중과 2천의 가병들이 같이 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가병과 같이 김돈중이 같이 있다면 분명 그 흔적이 포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새운 가설에 증거가 필요하다.’난 문뜩 그런 생각을 했다.
“만적아!”
“예. 주군!”
“너는 왕준명과 함께 저잣거리로 가서 쌀섬이 이동하는 것을 파악해라.”
“쌀섬이라고요?”
“그래. 김돈중과 가병이 같이 있다면 분명 가병 전체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상당한 쌀섬이 군량미로 이동을 할 것이다. 그리고 또 문신 중에 누가 곡식 창고를 열어 쌀섬을 풀었는지 확인을 해라.”
“예. 주군!”
만적과 왕준명은 짧게 대답을 했다.
“급한 일이니 바로 움직여야 할 것이다.”
“예. 주군!”
“그리고 박낭장!”
“예. 주군!”
“2천이 모여 있을 깊은 산채는 감악산과 송악산이 이 개경 근처에는 전부다.”
“그럴 것입니다.”
“절대 가병을 분산해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또 감악산에는 내 산채가 있으니 분명 그곳에 김돈중의 가병들이 은거를 하고 있다면 보고가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니 송악산이다. 별초를 동원해서 은밀히 송악산을 정탐해라.”
내 일사천리나 다름없는 명령을 내리는 것을 보고 별초낭장 박현준은 놀라는 것 같았다.
“놀랄 시간이 없다.”
“예. 주군!”
난 바로 별초낭장 박현준에게 핀잔을 줬다.
“어서 움직여라! 이건 내가 가병을 얻는 일이 아니라 황실이 위급에 처할 수도 있는 일이다.”
난 바로 인상을 찡그렸다.
“예. 주군!”
일제히 내 가신들이 대답을 했다.
“젠장! 괜한 걱정 하나가 생겼군!”
난 나도 모르게 짜증을 부렸다. 사실 가병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일에 기뻐한 것은 잠시였다. 그리고 이렇게 그 사실이 기우가 되어 올 줄은 나도 차마 몰랐다.‘아무 일도 없어야 할 것인데,,,,,,.’난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김돈중이 송악산에 은거를 하고 있다면 어떻게든 문신들과 내통을 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사옵니다. 주군!”
“문신들도 사병이 분명이 있다. 요 근래 훈련의 박차를 가하는 문신들의 가병이 있거나 사냥을 주로 나가는 자가 있으면 보고를 하라!”
이것은 박현준에게 내게 명을 내린 것이다.
“예. 주군!”
“별초를 모두 동원하겠습니다.”
“그건 안 된다. 원래 진행했던 계획은 모두 그대로 이행을 한다. 박 낭장은 사택으로 이전을 할 50의 별초만을 이용해라.”
밖에 호랑이가 있을지 모른다고 집안에 풀려 있는 욕심 많은 개새끼를 그냥 둔다면 집안 안에 있는 아이가 물리는 법이다. 그러니 나는 채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거였다.‘한 번에 두 가지를 모두 처리해야 해.’난 그런 생각을 했다.
“예. 알겠습니다. 주군!”
“여기 이렇게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각자 내가 준 임무를 바로 시행하라!”
“예. 주군!”
내 가신은 짧게 대답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난 그 순간 여전히 품에 있는 도천밀서를 생각하며 인상을 다시 찡그렸다.‘이렇게 인상을 찡그릴 일만 생가면 주름만 느는데,,,,,,.’정말 산 넘어 산이고 깊은 수렁을 헤쳐 나오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형국이었다.
이러니 내가 백화랑 알콩달콩 거리며 즐길 시간이 없는 거였다.
“젠장! 오늘도 백화가 해 주는 저녁은 다 먹었군.”
나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때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밖에서 인기척이 들였다.
“주군! 황궁에서 상궁이 왔나이다.”
여 무사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또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난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는 황실 뒤치다꺼리가 이제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17. 대령후의 암중모략!서경!지금이 평양!고려제국의 삼경 중 하나로 수도인 개경과 함께 지금의 한성을 남경(南京)을 두기 전의 중경(개성)·서경(평양)·동경(경주)이다. 한성에 남경을 둔 뒤 국왕이 순행하던 삼경은 중경·서경·남경이며, 중경을 제외한 지방행정구획으로는 서경·동경·남경 등으로 구분하였다. 하지만 그 삼경 중에서도 가장 천대받고 무시 받은 곳이 바로 서경이다.
고려 개경의 중앙 정부는 서경의 중요성을 몰라서가 아니라 어떤 면에서 서경을 두려워하였기에 힘으로 누른 경향이 있었다.그리고 또 그것은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의 영향도 컸다.
서경!서경은 군사적 매우 중요한 요지였다.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고려의 입장에서는 개경보다 서경을 더 중시하여야 했으나 태조의 탄생지인 개경을 버릴 수가 없었기에 서경과 남경이라는 또 다른 수도를 만든 거였다.
그리고 서경은 유서 깊은 문화도시였던 평양을 말한다. 당(唐)나라 세력이 물러간 통일신라시대 이래 크게 황폐되어 그 명맥만 이어가던 곳이 바로 서경이었다.
고려는 건국 초부터 황해도지방의 백성을 옮겨 살게 하는 등 그 재건에 힘썼다. 그때만 해도 고려 정부는 서경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여겼다.
처음에는 평양대도호부로 삼았다가 성종 때 3경제도가 이루어지면서 왕도인 개경 외에 경주를 동경(東京), 평양을 서경이라 하고 여기에 유수 지사(3품 이상)를 두었다.그리고 후일 서경이 뜨거운 감자가 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도선대사의 도참설 때문이었다.
고려 태조를 예언한 도참이 이제는 고려를 압박하는 사상이 되는 순간이었다.서경은 도참설과 관련하여 제3대 정종 이래 역대 국왕들은 여러 차례 서경으로의 천도를 시도하면서 서경을 더욱 중요시하여 1062년(문종 16) 경기 4도를 그 관하에 딸리게 하였다. 또한 922년(태조 5) 이래 개경의 관아를 모방하여 서경에 똑같은 기능의 기관을 두었던 분사제도는 5부(部)에서 분사국자감·분사태의감에 이르기까지 동서양반의 정사를 개경과 똑같이 하여 서경을 제2의 수도인 부도로 인식하게 되었고, 자연히 서경세력을 비대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것이 묘청의 서경천도설을 부추기는 계기가 됐다.인종 때에 이르러 이자겸과 척준경의 난으로 개경의 많은 궁궐이 불타자 묘청(妙淸)을 비롯한 서경세력은 지덕이 쇠한 개경을 버리고 지덕이 왕성한 서경으로 천도하자는 서경천도운동을 벌이게 되었다.
인종도 서경의 임원역에 대화궁을 창건하는 등 천도의 뜻을 비쳤으나 귀족·관료·유학자 등 개경세력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치자 묘청 등은 그들의 초지를 관철하기 위해 1135년(인종 13) 서경에서 난을 일으켰다.1년 만에 진압된 묘청의 난은 서경세력의 몰락을 가져왔고, 그 영향은 이듬해 제도상으로 나타나 유수·감군·분사어사 등 중앙에서 파견한 관원 외의 이전 직제는 모두 없애고 문종 때 서경 관하에 두었던 경기 4도도 해체하였다. 그러나 38년 이전보다 규모가 작은 의조·병조·호조·창조·보조·공조 등 6조의 분사와 팔관도감·동남면서북면도감·제학원·성용전 등을 설치하였다.
1269년(원종 10) 서경에서 최탄·등이 난을 일으켜 유수를 죽이고 서경 및 그 주변의 여러 성(城)을 들어 원나라에 항복하였다. 원나라는 서경에 동녕부를 설치하여 자비령 이북의 땅을 원나라에 편입하였다가 끊임없는 고려의 반환요청에 따라 90년 반환되어 다시 서경을 두었으나 공민왕 때 평양부로 개칭하여 이후 서경이라는 이름은 없어졌다.
그 서경이 지금 다시 뜨거워지고 있는 거였다.
“내가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은 나의 힘이 되어줄 송이 약하기 때문이다.”
백마에 올라 서경 남문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허언대장부가 마치 옆에 있는 검은 삿갓과 검은 도포차림을 한 무사들이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송구하옵니다. 대령후마마!”
“그래 송구해야지. 암 송구해야할 일이지.”
지금 서경 남문을 보고 있는 자는 다름 아닌 인종의 둘째 아들 대령 후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아리따운 미녀가 그윽한 눈으로 대령 후를 보고 있었다.
“송제국의 공주를 나에게 주고 힘을 주지 않으면 나에게 어쩌라는 말이냐?”
대령후는 짜증 아닌 짜증을 부렸다. 그리고 그것이 미안한 듯 옆에 있는 미녀에게 웃었다.
“그대에게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네.”
“알고 있습니다. 상공.”
“내 그대를 반드시 이 고려 제국의 황비로 만들어 줄 것이야!”
대령후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대령후!대령후는 고려 제17대 황제인 인종의 아들이고 제18대 왕인 의종의 아우였다.
의종은 즉위 이후 항상 대령후를 미워했다. 형이 아우를 질투하는 것은 고금에 흔히 있었던 일이었다.
대령후는 허언장부요 뛰어난 재능을 가진 능력자였다. 한 마디로 황자들 중에서도 그 뛰어남이 남달랐고 황제가 된 의종은 항상 대령후를 경계했다.
그렇게 질투를 하던 차에 1151년에 정서가 종실과 결탁하여 역모사건을 일으키자, 의종은 대령부 즉 대령후의 사무관청을 폐지하고 대령후를 지금의 충남 천안 지방으로 귀양 보냈다. 물론 그것은 역사적으로 기록된 사항이었다.
대령후의 이름은 경!그는 그리 옥좌에 관심이 있었던 인물은 아니었다. 의종의 독재와 복제에 종실이 일어선 것이고 어쩔 수 없이 대령후가 나서게 되어 그렇게 일이 틀어진 거였다.
사실 의종은 대령후를 독살하려고 했지만 형제지간에 골육상잔을 막으려는 공예태후에 의해 목숨만은 구한 대령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