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9권 -- >환관이 조심히 내게 장부를 내밀었다. 그 순간 난 눈이 뒤집어질 만큼 놀랐다.
“이, 이게 참인가?”
“그렇습니다. 도합 은자로 98만 5천 냥이옵니다.”
“98만 5천 냥이라고?”
“그렇습니다.”
“이게 다 내탕고로 들어간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이공!”
“으음,,,,,,.”
난 잠시 신음을 했다.
“이공께서 확인을 하시고 수결을 하시면 내탕고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난 환관의 말을 듣고 모처럼 욕심을 부려볼 생각을 했다. ‘이전투구에 뛰어들었으면 제대로 해야지.’
난 그런 생각을 하며 환관을 봤다. 환관이 내게 장부를 확인하라고 하는 것은 내가 얼마만큼 빼라고 하는 거였다.‘어떻게 하지?’난 잠시 장부를 봤다.‘반을 후려칠까? 아니면 뒤꼬리를 떼어 먹을까?’난 이 순간 고민 아닌 고민을 했다. 내가 고민을 하자 환관이 내게 조언을 하려는 듯 나를 봤다.
“제가 약간 귀띔을 해 드리면 제가 장부를 다시 정리하기에는 앞을 자르는 것이 저는 편합니다. 감찰어사님.”
“앞을 잘라?”
난 아무렇지 않게 말하다가 놀라 환관을 봤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시게.”
난 그렇게 말하고 장부를 환관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환관은 장부에 기록되어 있는 98만 5천 냥 중에서 제일 앞의 숫자 9를 지웠다. ‘내가 90만 냥을 먹게 되는군.’난 이 순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90만 냥이라면 절대 작은 재물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한 번에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을 다 할 수 있는 정도의 재물이었다.
“이제 수결을 하시면 되옵니다.”
환관이 내게 다시 장부를 내밀었다.
“그 수결은 감찰어사 조철호에게 받으시게.”
내 말에 환관도 송구하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환관은 조심히 말하고 물러났다. 그리고 난 견룡들을 봤다.
“마음에 드는 것들이 있으면 집어라.”
인심을 쓰려면 확실하게 써야 하는 법이다.
“예?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면 내가 마음이 편하겠느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집어.”
내 말에 견룡들은 서로의 눈치를 봤다.
“크게 욕심 부리지 말고 내가 주는 것이니 알아서 하나씩 잡아!”
“그래도 되는 것입니까?”
“역신의 것이다. 그리고 내탕고로 들어갈 물건이기는 하지만 역신을 참할 때 가장 노고가 많은 너희들이니 황제폐하께서도 이해를 하실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견룡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집었다.
“이 멍청한 것들아! 보기가 좋다고 값이 많이 나가는 것이 아니다. 금덩이를 잡아. 옥으로 깍은 노리개를 잡아서 무엇을 해?”
난 옥으로 된 노리개를 잡은 견룡에게 핀잔을 줬다.
“헤헤헤! 그렇습니까?”
“그래. 금덩이를 가지면 벽란도에 가서 그 옥으로 된 노리개는 수도 없이 산다.”
“알겠습니다.”
난 이렇게 견룡들에게 챙겨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착복을 할 때는 다른 것들도 어느 정도 같이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서 한 행동이었다.
또한 이렇게 하면 견룡들의 충성심이 더욱 올라가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리고 또한 지금 견룡들이 가지는 물품들은 장부에도 기록이 되어있지 않는 거였다. 그러니 이것들 역시 내 것이 되는 거였다.‘이전투구는 이렇게 하는 거지. 하하하!’나또한 소인배의 기질이 다분하니 재물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이 순간 웃지 않는 자는 오직 왕준명 뿐이었다.
“이것은 착복입니다.”
역시 좋은 판에 산통을 깨는 자는 반드시 있는 법이다.
“착복?”
“그렇습니다. 착복이옵니다. 내탕고로 들어갈 물품들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것이옵니다. 건룡행수님!”
왕준명이 따지듯 내게 말했다.
“맞아. 착복!”
“그것을 아시면서도 이러시는 겁니까? 죄가 두렵지 않습니까?”
왕준명의 말에 나는 왕준명을 노려봤다.
“역시 너는 성질만 대쪽인 문신 놈이구나! 상황을 보고 왜 내가 여기에 있는지 봐라. 이 멍청한 무신의 탈을 쓴 무식한 놈아!”
난 버럭 소리를 질렸고 내 외침에 왕준명도 나를 노려봤다.‘도발을 하니 바로 격동을 하는군.’난 속으로 씩 웃었다.'그래 이제 어디 한 번 네놈의 대쪽을 꺾어 보자.'난 그런 생각을 하며 왕준명을 노려봤다.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내가 자신을 무식한 놈이라고 소리를 치지 왕준명은 나를 노려봤다.혈기왕성한 젊은 혈기가 또 다시 발동을 하는 거였다.
들리는 풍문에 왕준명은 위위경인 이의방에게도 무식한 무부라고 칭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고 한다.그러니 저 혈기왕성함에 겨우 견룡행수이며 6품 감찰어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순간일 것이다.
두려운 것도 없고 앞뒤도 보지 않고 화가 나면 자기 성질대로 하는 것이다.
“왜 무식하다고 하니 화가 나는 것이냐? 서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모두가 다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을 너를 통해 알았다. 네놈을 통해 알은 것이야!”
“말 다 하셨소? 황실의 재물을 착복하는 것을 질타하는 자에게 무식하디니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요.”
“그렇지. 그냥 그렇게 착복을 하면 지나가는 개가 욕을 할 일이지. 하지만 상황을 봐라.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그리고 또 왜 내가 감찰어사가 된 것인지. 이번 일은 정중부를 제거한 것에 대한 포상이다. 그것을 어찌 모르는 것이냐?”
“황제폐하가 칙서로 명을 내린 것이요? 아니지 않소? 구차한 변명을 하지 마시오.”
“구차한 변명이라? 그래 구차한 변명일 수 있다. 하지만 너만 충신은 아닌 것이다.”
“그 손으로 황실의 재물을 착복하고 입으로는 충신을 운운할 수 있는 것입니까?”
정말 죽으려고 용을 쓰는 자가 바로 왕준명이다.
“입으로만 충신이라?”
“그렇지 않소.”
“어리석은 놈! 이 많은 재물이 다 내탕고로 들어가면 어떻게 어사대의 조사대를 만들고 호위대를 만들 수 있느냐? 또한 이 재물이 내탕고로 들어가도 해서 모두 황실의 재물이 될 것 같으냐? 이미 내탕고의 열쇠는 무부라면 누구나 열수 있는 것이 되었는데 무부들의 배를 불려주려고 내탕고에 넣는단 말이냐? 황제폐하를 위해 쓰는 것이 네놈은 보이지 않느냐?”
“그것은 궤변이요. 정도의 길도 아니고 올바르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이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혼돈의 시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우선이다. 두고 봐라 힘이 있는 자는 누구든 이제는 위위경이 되려 할 것이다. 그러면 황실은 계속 마음을 졸이게 될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견룡은 강해져야 한다.”
“그 말은 위위경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지 않소.”
“호가호위라고 했다. 지금은 위위 경을 업고 황실을 보위하는 거지만 후일 항실의 힘이 커지면 스스로 내치지 못할 것도 없다.”
그 순간 왕준명은 파르르 떨었다.
“뭐, 뭐라고 하셨소.”
“다시 말해 줄까? 지금은 곧은 충신보다 나 같은 난신이 더 필요한 시대라는 거다. 이 무식하게 서책에만 빠져 있는 놈아. 대가리에 지식을 넣지 말고 지혜를 넣어라. 이 망할 놈아!”
난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물론 내 말은 아전인수적인 발상이 분명할 것이고 또한 왕준명이 말한 대로 궤변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 혼돈의 시대에 궤변이 통하게 되는 것은 이 시대가 정말 어지럽기 때문일 것이다.
“지혜를 가지라고요?”
“그래. 그리고 그 놈의 성질머리부터 좀 고쳐라! 위위 경에게 무부라고 소리를 치는 것이 기개라고 생각을 하느냐? 그건 그저 하룻강아지의 깽깽거리는 것에 불과하다. 힘이 없이 소리를 치는 것은 멍청하고 무식한 짓이다. 힘을 얻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기개다. 이 멍청한 놈아!”
“그만 멍청하다고 하시오.”
“멍청한 놈을 멍청하다고 하는데 뭐가 틀린 것이냐?”
내 말에 왕준명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나를 째려봤다.
“내가 행수어른이 하는 일을 똑똑히 지켜볼 겁니다.”
“그래. 봐라! 어디 한 번 내가 무엇을 하는지 똑똑히 봐라. 나보다도 나이를 더 처먹은 놈이 그리 멍청하니 이 고려가 이 꼴로 돌아가는 것이다. 어디 단단히 보고 있어라.”
“예. 그럽죠.”
“그래. 봐라! 어디 한 번 내가 무엇을 하는지 똑똑히 봐라. 나보다도 나이를 더 처먹은 놈이 그리 멍청하니 이 고려가 이 꼴로 돌아가는 것이다. 어디 단단히 보고 있어라.”
“예. 그럽죠.”
“그럼 어서 이 재물들을 챙겨!”
내 말에 왕준명은 물끄러미 쌓여 있는 재물을 봤다.
“이 많은 재물을 다 꿀꺽 하신다는 것이요?”
“이 정도는 되어야 조사대를 만들고 호위대를 만들지.”
난 흐뭇한 눈빛으로 쌓여 있는 재물을 봤다.‘그럼 90만 냥은 다 내 것이 되는 건가?’난 속으로 다시 웃었다.
90만 냥이다. 10만 냥이 모자란 100만 냥이 내 수중에 들어오는 거였다.
‘이전투구는 이렇게 하는 거지.’난 왕준명을 보며 씩 웃었다. ‘이제 뒤탈이 없게 황제께 보고를 하면 되겠지.’난 그렇게 정중부의 가산을 정리하고 바로 입궁을 했다.
왕준명은 나를 바짝 따랐고 내가 대전 전각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조금은 놀라는 것 같았다.난 힐끗 왕준명을 봤다.
“너도 들어와라.”
“예?”
“내가 착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봐야 직성이 풀리지 않을 것이냐?”
“그렇습니까?”
“그래. 내가 만약 재물을 착복하지 않았다면 너는 내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내에게 그것도 무장에게 치욕을 줬으니 목으로 그 값을 해야 하는 것이 옳지만 아직 젊으니 그것만은 용서하지. 어떠냐?”
“그렇다면 그 반대면 어찌 하십니까?”
정말 단 한마디도 지지 않는 놈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다 토해내지.”
“재물을 다 토해 낸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리고 너의 집에 내가 종살이를 하지. 됐냐?”
난 왕준명을 낚기 위해 미끼를 던졌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뒷말이 있는 것은 사내가 아니다. 뒷말을 하면 불알을 잘라 환관을 만들 것이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래 두고 보자."
"저는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습니다."왕준명의 대답에 나는 씩 웃었다. 그리고 바로 대전 복도를 당당히 걸어갔다.
“아뢰어 주시게.”
난 대전 환관에게 말했고 환관은 내게 말없이 부복을 했다.
“예. 견룡행수님!”
그리고 환관은 고개를 돌려 말했다.
“황제폐하! 견룡행수 겸 감찰어사 이 회생 들었나이다.”
“들이라!”
근엄한 황제의 말이 이어졌다.
“가자!”
난 짧게 왕준명에게 말했다.
“예. 약조 지키십시오.”
“그러지.”
난 그렇게 말하고 열리는 문을 통해 대전으로 조심히 들어가 옥좌에 앉아 있는 황제의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서서 황제의 용안을 살폈고 황제의 용안이 분기가 서려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이 광정 대장군이 일을 잘 처리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분기가 가득하시다. 그렇다면 일이 잘 된 거겠지.’모든 표정은 이유가 있는 법이니 난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분개할 일이 아직은 없으니 말이다. 그게 아니고 위급한 일이라면 대전 복도에 있는 환관이 내게 살짝 귀띔을 해 줬을 것이니 내가 생각하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이 없다고 나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순간 들어선 내게 황제가 호통을 쳤고 이 순간 나는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왕준명은 날 보며 씩 웃었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그대는 황실의 검으로 자청하고 무엇을 하고 있기에 채원 같은 무부 놈이 상황제 폐하의 잠저를 침탈하고 있는 것을 두고 보고 있는 것이냐?”
난 명종의 말에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역시 일이 잘 진행이 됐어.’난 속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 명종황제를 우러러 봤다.
“소장은 감찰어사로 역신 정중부의 가산을 몰수하여 내탕고에 넣고 오는 길이옵니다.”
“그딴 역신의 재물을 내탕고의 넣는 것보다 짐은 채원의 작태를 그냥 두고 보고 있는 그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시 이 순간 왕준명은 놀라 나를 봤다.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그저 던진 미끼를 덥석 문 것뿐이옵니다.”
내 말에 이번에는 명종이 놀라 나를 빤히 봤다.
“던진 미끼라고?”
“그렇습니다. 황제폐하!”
“미끼가 확실한가?”
“그러하옵니다.”
내가 머리를 숙이고 대답을 하자 명종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오래? 형님 폐하의 관저가 더럽혀지는 것을 짐이 오랫동안 보고 있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예. 황제폐하! 신 견룡행수 겸 감찰어사 반드시 채원의 죄를 추궁하여 끝장을 보겠나이다.”
“알았다. 그래 정중부의 재물을 내탕고로 몰수 했다고?”
“그러하옵니다. 황제폐하!”
내가 다부지게 대답을 하자 명종황제는 분기를 조금 누그러트리는 듯 보였다. 그리고 내가 한 말에 관심을 가지는 듯 나를 봤다.
“역신으로 죽은 정중부의 집안엔 얼마나 많은 재산이 있던가?”
“감찰어사 조철호가 지금 조사한 바에 의하면 모두 9만 5천 냥의 재물과 또 그만큼의 물품들이 있다고 합니다.”
나는 명종에게 재물의 숫자를 감찰어사 조철호가 조사했다고 했다. 만일 황제가 진상을 알아낸다 하더라도 책임을 회피할 구실을 만들어 두자는 거였다. ‘이러려고 내가 수결을 안 한 것이지.’내 말에 명종도 다를 보며 피식 웃었다.
“조사는 감찰어사 조철호가 했다?”
“그러하옵니다.”
“상장군의 직을 이용해 그토록 많은 백성의 재물을 약탈했구나! 은자 9만 5천 냥이라니. 허허. 정말 대단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또 나머지 90만 냥은 제가 좋은 곳에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