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8권 -- >박 교위의 말에 채원은 힐끗 박교위를 봤다.
“박 교위 아니 박 산원!”
채원의 측근인 박 교위도 산원으로 품계만 올랐다.
“예. 주군!”
“지금 도모를 하자는 건가?”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저희에게 힘이 없습니다.”
순간 박산원이 채원을 봤다.
“그럼 언제 우리에게 힘이 생기는 건데?”
“기회가 곧 오지 않겠습니까? 그때까지만 참으시면 됩니다.”
“으음,,,,,,.”
채원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다시 분을 참지 못해 앞에 놓인 탁자를 두 주먹으로 내려찍었다.쾅!콰콰쾅!순식간에 탁자의 다리가 부러져 내려앉았다. 정말 용력 하나는 타고 난 것이 바로 채원이었다.
“그래. 지금은 참지. 내 반드시 이의방과 회생 그 놈의 목을 저잣거리에 달고 말 것이야!”
바드득! 채원은 분기를 누르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뭐? 이고가 용호군 대장군이라고? 이고가 지나가는 개가 웃겠군. 하하하!”
채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 크게 웃었다.용호군 군영에 위치한 강일천 대장군의 군막.차분한 분위기로 용호군 대장군이었던 강일천과 전존걸이 말없이 공손히 서 있는 이고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전존걸은 이고를 보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렸다.
오늘 전까지는 이고는 분명 전존걸의 아랫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상관이 되는 거니 일어나 예를 갖추는 거였다.
“부장 전존걸이라하옵니다.”
“부끄럽습니다. 이고입니다. 장군!”
전존걸은 유일하게 승차를 하지 않는 무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쉬움도 없고 바라는 마음도 없었다. 물론 용호군 전 대장군 강일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지금의 승차는 승차라 하기 보다는 숙청이나 다름이 없었다.
“앉으시게.”
첨지정사가 된 강일천이 이고를 보며 차분히 말했다.
“송구하옵니다. 어찌 제가 대장군과 대좌를 하겠사옵니까?”
“앉으시라니까. 이제 이 군막은 자네의 것이네. 어찌 되었던 자네가 이제 용호군 대장군이라네.”
“송구하옵니다. 왜 이런 조치가 이루어졌는지 모르겠나이다. 저는 그저 이의방에게 귀띔을 받기로는 용호군 장군이라고 들었나이다.”
이고의 말에 강일천은 피식 웃었다.
“나도 조금은 놀라웠네. 위위경은 참으로 치밀한 면이 있어.”
“그렇습니다. 저까지 속일 줄은 몰랐나이다.”
“그래. 알았네. 용호군에 대한 인수인계는 전부장이 도와줄 것이네.”
“예. 대장군!”
“그대가 대장군이지.”
그렇게 이고와 강일천이 이야기를 할 동안 군막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태후 전에서 나왔습니다.”
지금 군막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해월이었다.
“들어오시게.”
강일천의 말에 해월이 조심히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이고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해월은 처음으로 놀라 눈빛이 떨렸다. 이미 해월은 이고가 용호군 대장군의 직을 받았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감개무량한 거였다.
해월은 군막 안으로 들어서면서 전 대장군 강일천에게 허리를 굽혔다.
“무슨 일인가?”
“태후마마께서 찾으시옵니다.”
“그래. 근심이 크시겠군.”
강일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왕 떠나야할 자리라 인수인계라도 편히 받기 위해 자리를 비켜줄 참이었는데 해월의 등장이 참으로 좋은 순간을 만들어 놓은 거였다.
강일천이 일어나니 전존걸과 이고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이제는 참지정사인 강일천이 군막을 떠났다.황궁 대전 마당.이의방과 대장군들은 대전 밖으로 나서며 흐뭇하게 황궁 전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의 뒤에 서서 그들이 얼마나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너무 크게 도취가 되면 문제가 되는데,,,,,,.’하지만 나는 이의방이 그리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품게와 순차 그리고 직급을 뛰어넘어 고관요직에 겸임 된 무장들의 수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의방의 사람들이었다.
이런 면에서 이의방을 비롯한 거사 일행들은 거사의 목적을 달성한 거였다.
“경하 드리오. 위위경!”
응양군 상장군이 된 진준이 이의방에게 아부를 하듯 말했다. 분명 진준의 직급이 높기는 해도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봐야 하는 거였다.
“감사하옵니다. 상장군님!”
이렇게 서로를 위해주며 자축을 했다. 그때 씩씩거리며 젊은 신료 하나가 앞으로 나서는 이의방의 앞을 막아섰다.
“위위경! 저랑 이야기를 하실 수 있겠사옵니까?”
지금 이의방의 앞을 막아선 자는 며칠 전 이의방이 문신들과 이야기를 할 때 이의방에게 소리를 치고 밖으로 나간 왕준명이었다. 약관의 왕준명이 지금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이의방을 막아선 거였다.
“무엇인가?”
진준이 앞을 막아선 왕준명을 보고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저는 위위경과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왕준명의 말에 진준은 왕준명을 노려봤지만 이의방은 그저 왕준명을 보며 웃고 있었다.
“제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상장군님!”
“꼭 그럴 필요가 있는가? 하급 관리들까지 상대해 줄 만큼 위위경이 한가하지 않지 않나?”
“하급 관리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조정의 크고 작은 일에 막힘이 없는 것이지요.”
이의방의 말에 진준과 나머지 대장군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도 하네. 옳은 말이요. 위위경! 역시 위위경은 참으로 다른 면이 많소이다.”
사실 지금 이의방이 뭐라고 해도 상장군 진준과 나머지 대장군들을 옳다고 말을 할 것이다.지록위마로 똘똘 뭉친 자들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들은 이의방이 두려운 걸 거다.지록위마!이 고사는 독재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자성어였다.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의 제일 난신적자는 조고일 것이다. 그가 남긴 희대의 사자성어가 바로 지록위마인 것이다.
조고가 한날 사람을 시켜 황제 앞에 사슴 한 마리를 끌고 오게 하여 황제에게 말했다고 한다.
“폐하! 신이 천하를 두루 다니다 좋은 말을 한 마리 얻었기에 바치는 것입니다”
황제가 보니, 조고가 가리키는 것은 말이 아니라 사슴이었다.
“경은 잘못 되었소.”
“예가요?”
조고는 비릿하게 웃었다.
“이것은 분명히 사슴인데, 경은 어째서 말이라고 하시오?”
“폐하! 아닙니다. 이것은 좋은 말입니다. 폐하께서 잘못 보셨습니다.”
“경은 농담이 지나치군요. 어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시오. 내가 그것도 모르는 줄 아시오?”
이 순간 황제는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하지만 조고는 이 순간 자신의 권세를 널리 알리고 싶었다.
“아닙니다. 틀림없이 말입니다. 폐하께서 잘못 보셨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신의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조정의 대신들을 불러 한번 물어 보십시오”
“그렇게 하지요. 대신들이 눈이 있는데, 누가 사슴을 말이라고 하겠소?”
황제와 조고가 사슴을 사이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대신들을 한 사람씩 불러들여 물었다.
“이것이 사슴인지 말인지 말해 보시오”
진나라의 실권이 조고에게 있다는 것을 아는 대신들은 대부분 서슴지 않고 말을 보고 말이라고 대답했다. 개중에 양심이 있는 대신은 말없이 침묵했다.
조고에게 잘 보여야 자리를 보전할 수 있고, 사슴이라고 말했다가는 죽임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이것이 지록위마다. 그런데 그것을 지금 대장군들이 알아서 해주는 순간이었다.
이보다 더한 지록위마는 없을 것이다.대장군들이 뒤로 물러났고 이의방이 왕준명을 봤다.
“무엇인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문신인 제가 어찌 무신인 산원이 되어 견룡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자신의 무부라고 천대를 한 저 철부지 왕준명에게 자신의 식대로 돌려주는 순간이었다.
“그게 무슨 문제가 있는가?”
“문신과 무신이 분명 구분이 되어 있는데 어찌 이런 인사를 단행하신 것이옵니까?”
“구분이 있다? 틀린 말이군! 거사 전 어지러운 조정에서 문신대작들이 대장군을 겸한 것을 모르고 있는가? 난 그래서 그대의 기백을 높이 사 황제폐하를 보필하는 견룡에 보낸 것인데 내가 틀린 것인가?”
순간 왕준명은 할 말이 없었다.
“하오나 저는 문, 문신이옵니다.”
“황제폐하를 모시는데 문신이면 어떻고 무신이면 어떠한가?”
이제는 더는 할 말이 없어진 왕준명이었다.
“그렇기는 하옵니다.”
“그럼 가시 준비를 하시게. 기골이 장대하고 기백이 넘치는 견룡 군 산원으로도 충분히 소임을 잘 해 낼 수 있을 것이네.”
이것은 이의방의 조롱이었다. 이렇게 이의방은 소리장도의 계로 왕준명에게 당한 치욕을 찢어내고 있었다.
이것만 봐도 이의방은 칼만 휘두르는 그런 무부는 아니었다. 그리고 난 왕준명을 뚫어지게 봤다.왕준명!1211년(희종 7)에 내시낭중을 지냈다.
환관이 아닌 자로 내시낭중이 된 첫 번째 인물이기도 했다.그리고 그해 12월 왕의 명령을 받고 무신집권자 최충헌(崔忠獻)을 제거하기 위해 참정(參政) 우승경(于承慶), 추밀(樞密) 사홍적(史弘績), 장군 왕익(王翊) 등과 더불어 모의했다.
그들은 중과 속인(俗人) 들을 사주하여 최충헌이 수창궁(壽昌宮)에 들어가 왕을 알현할 때를 노려 살해하도록 하였다. 최충헌이 변란이 일어난 것을 알고 왕에게 구해줄 것을 사정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최충헌은 지주사(知奏事)의 방 장지(障紙) 사이로 들어가 숨었다가 아들 최우(崔瑀)와 그의 외숙 정숙첨(鄭叔瞻), 장군 김약진(金躍珍) 등에 의해 구출되었다. 이후 최충헌은 사약(司?:궁문 열쇠를 맡은 관원)·중관(中官) 등을 붙잡아 엄하게 심문하여 왕준명이 주모하고 참정 우승경, 추밀 사홍적, 장군 왕익 등이 공모하였음을 밝혀내었다.
최충헌은 왕준명을 비롯하여 우승경·사홍적·왕익을 유배 보내고, 희종을 폐위시킨 후 한남공(漢南公) 왕정(王貞)을 즉위시키니 그가 강종이 되었다.지금 이 순간이 바로 왕준명이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인 거였다.
약관의 젊은 문신인 왕준명은 권력자 이의방에게 잘못 보여 문신으로 하지 않는 각종 관직에 많이도 앉은 인물이 되었다. 나는 왕준명의 눈으로 보고 정말 기백이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신으로 두고 쓰기 좋다.’야생마 같은 눈빛!야생마를 다루기는 어려워도 한 번 길을 들이면 준마가 되는 것이니 내게는 좋은 가신이 될 것 같았다.
‘좋아! 내 세 번째 가신은 너다.’물론 두 번째 가신은 두경승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반쯤은 내게 넘어온 두경승이니 이제 손만 뻗으면 내 손을 잡을 것이 분명했다.‘북변으로 가기 전에 살수보다는 궁수가 더 필요하다.
’난 이렇게 한참 후의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준비를 하는 거였다.
“내게 더 할 말이 있는가?”
이의방은 이죽거리듯 물었다. 이것은 약간의 복수심이 담겨 있는 말투였다. 그래·! 이놈 너도 어디 네가 그리도 싫어하는 무부가 되어 보아라!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나는 느껴졌다.
“없습니다. 위위경!”
“그럼 가서 준비를 하게. 아니지 참! 건룡행수!”
이의방은 자신의 뒤에 있는 나를 불렀다.
“예. 위위경!”
“데리고 가게. 자네도 견룡의 인수인계를 받아야 하지 않나?”
“그렇사옵니다. 위위경!”
난 대답을 하고 고개를 숙여 목례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고 왕준명을 봤다. 나보다 3살은 많아 보이는 왕준명이었다.
“따르라!”
어린 내가 견룡 행수라고 하대를 하자 왕준명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하지만 그 역시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예. 견룡행수님!”
그렇게 왕준명이 나를 따라 걸었고 그 순간 왕준명의 옆으로 백화와 홍련이 바짝 붙었다. 이 모습을 보고 왕준명은 놀라 백화와 홍련을 번갈아 봤다.
“내 무사들이다.”
난 짧게 설명을 하고 견룡 군 군막으로 향했다.‘견룡과 비밀 나인을 재배치해야겠군.’이 황궁 안에서는 누구도 나를 위협하지 못하고 또 내가 위협을 받지 않게 준비를 할 참이었다. 그리고 내 여 무사들을 적극 활용을 할 참이었다.
공예태후의 처소.공예태후와 이제는 참지정사가 된 강일천이 물끄러미 서로를 보고 있었다. 지금 이 둘은 만감이 교차하고 있는 듯 했다.
“이제야 제 자리를 찾으셨군요.”
태후의 만감이 교차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이제는 누구를 의지해서 이 고려의 황실을 보위해야 할까 하는 두려움도 담겨 있는 듯 했다.사실 따지고 보면 강일천의 가문은 문신의 가문이며 이 고려의 제일 명문가인 강감찬 장군의 가문이었다.
그런 가문의 적자인 강일천인 평생동안 용호군 대장군으로 머물고 있다는 것이 그것도 자신 때문에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는 것이 항상 미안한 공예태후였다.
“걱정이 되십니까?”
“미안합니다. 참지정사께서 이제 제 자리를 찾으셨지만 저는 황실의 제일 어른으로 이제 누가 있어서 황실을 보위할지가 걱정이 됩니다.”
공예태후는 솔직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제가 비록 이의방의 간계에 의해 군문에서 뽑혀져 나왔지만 여전히 용호군은 저를 따를 것입니다. 또한 이고는 욕심이 없는 무장입니다. 함부로 권력을 탐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태후마마!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사람은 변하는 법입니다.”
강일천의 말에도 여전히 태후는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