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153화 (153/620)

< -- 간웅 8권 -- >

“무사에게 검을 내려놓으라고 하는 것은 치욕! 무슨 이유인지 알아야 하지 않나?”

무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곳에서 집단 학살이 일어났다. 그리고 너희들이 가장 의심이 되는 용의자이다.”

교위는 숨기지 않고 현 상황을 그대로 말해줬다.

“뭐라 했는가?”

“이곳에서 집단 참살이 있었다고 했다. 이곳 시전의 주인과 가솔들이 모두 밤에 도륙을 당했다.”

교위의 말에 무사 둘은 인상을 찡그렸다.

“범인은 죄를 범한 곳에 다시 오는 법. 너희들이 검을 차고 와서 이곳을 살피니 너희들을 관청으로 데리고 가서 취조를 해 봐야겠다.”

순검 군의 입장에서는 적절한 조치였다. 하지만 무사 둘에게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아니다.”

“취조를 해 보면 알 것이다.”

교위는 바로 고개를 돌려 무사 둘을 포위한 순검 군들을 봤다.

“저항을 하면 베라!”

벽란도는 최대의 국제 무역항이다. 이런 곳에서 치안이 불안해지면 그 자체만으로 벽란도의 운영에 타격을 입게 된다는 것을 조정은 잘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치안에 신경을 쓰는 거였다. 또한 시전잡배나 불한당이 제법 있고 날치기와 싸움이 끊이지 않는 벽란도였지만 이렇게 10여명이 한꺼번에 참변을 당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바짝 긴장을 하는 벽란도 순검 군이기도 했다.

“우리는 아니라고 했다.”

무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닌지 그런지는 취조를 해 보면 안 다고 했다. 순순히 오라를 받아라.”

“젠장!”

무사 하나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다른 무사를 봤고 다른 무사는 그냥 일이 조용히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이 순간 이상한 것은 뽑은 검을 다시 검 집에 넣는 거였다. 그 모습을 보고 교위는 순순히 오라를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취조를 해서 결백하다면 금방 풀려날 것이다.”

하지만 어디나 그렇듯 사건이 발생을 하면 책임을 져야 것들이 있어야 하고 이 고려에서는 그렇게 누명을 쓰는 자들이 꽤 많다는 것을 무사 둘은 잘 알고 있었다.

“우선 이것을 봐라!”

무사 하나가 품에서 관폐하나를 꺼내 순검 군을 지휘하는 교위에게 보란 듯 내밀었다.-견룡교위.무사 하나가 내밀 관폐에는 지금 나는 새도 명령만 하면 손등에 앉게 만든다는 견룡교위의 관폐였다.

“견, 견룡교위 이십니까?”

같은 교위지만 그 무게감은 분명 차이가 있었다.

“그렇소. 은밀히 조사를 할 것이 있어 왔는데 이런 일이 발생을 했군!”

“그렇습니까?”

순검 군 교위는 두말도 하지 않고 무사에게 존댓말을 했다. 이것이 바로 현재 견룡들의 위상이었다.

“그렇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야 하는 무사들이었다. 그리고 또 해월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 무사들이기도 했다.

“포구 음침한 곳에서 10여구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일을 하던 자들이라 이렇게 조사를 나온 참에 두 견룡교위를 발견하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산원 군 교위의 말에 무사 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누구의 소행인지 밝히시게 내가 조만간 와서 사건 경위를 듣겠네.”

“중요한 일입니까?”

무사의 말에 다소 놀란 듯한 표정을 하는 산원 군 교위였다. 상부에서 그것도 지금 군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의방의 직속 부대인 견룡 군이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벽란도 산원군들에게는 상당히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마치 자신들에게 몰리는 관심이 싫은 것 같았다. 한 마디로 상도 벌도 주지 말고 관심을 꺼 달라는 그런 눈빛이었다.

“암! 중요하지. 황실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일이라네.”

“예. 알겠습니다.”

산원 군 교위가 짧게 대답을 했지만 표정이 굳어졌다. 황실이 개입이 되어 있는 일이고 그럼 상이든 벌이든 분명 구분이 되는 일이니 말이다.

“그럼 수고들 하게.”

무사 하나가 그렇게 말을 하며 다른 무사에게 눈치를 줬다. 그리고 바로 노예 거래 시전을 빠져 나왔다.그렇게 둘은 당당히 한참이나 걸어 벽란도 포구 입구를 벗어났다.

“그건 또 어디서 구했나?”

이 순간 무사의 말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견룡교위 관폐는 가짜라는 거였다.

“필요할 것 같아서 하나 구해놨지. 하하하!”

“하여튼 그 가짜 관폐 때문에 위기 아닌 위기를 면했네.”

“그렇지. 이것만 있는 줄 아나? 하하하!”

산원군에게 관폐를 보여줬던 무사가 도포를 보란 듯 다른 무사에게 도표를 펼쳐 보였다. 그곳에는 고려 주정의 요직에 있는 관폐들이 마치 명함처럼 쭈르륵 도포에 걸려 있었다.

“이것은 문하성 서리의 관폐이지 않나?”

“그거 파는데 서 냥이나 줬지. 하하하!”

순간 도포에 쭈르륵 달려 있는 관폐를 보고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이건 내탕고 서리의 관폐이고?”

점점 더 어이가 없는 무사였다.

“이런 일 하는 우리라면 이 정도는 챙기고 있어야지. 이래야 꼭지가 되는 거야. 그리고 내탕고 서리의 관폐만 보며 상인들을 바로 넙죽 엎드리지. 하하하!”

“하여튼 자네의 재간은 대단하네.”

“암. 내가 자네보다 무위가 좀 부족하니 이렇게라도 준비를 하는 거라네.”

“하하하! 그런가? 하여튼 자네는 대단해!”

두 무사는 이렇게 농담을 하며 벽란도 포구를 벗어났다.

“그나저나 정말 저 상인들을 도륙한 것이 무비마마의 소행일까?”

“그건 모르지.”

“하여튼 갑동이라는 아이가 대단하기는 한 모양이군.”

“그러게 말일세. 해월마마께 또 어떻게 보고를 해야 할지.”

이 두 무사는 자신들이 찾고 있는 갑동의 행방이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여기까지 추격을 해 오는데도 6년 이상이 걸렸다. 그런데 다시 찾았다고 하는 순간 사라졌고 이렇게 모든 흔적은 사라져버렸기에 답답한 그들이었다.

“하여튼 가세. 우선은 보고가 우선일세.”

“알았네.”

두 무사는 그렇게 말하며 어둠속에서 사라졌다.6. 만적을 통해 나를 알다.

깊은 밤. 내 사택은 근엄하고 웅장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내 사택의 중앙 가옥 뒤편에는 여 무사들의 수련이 한창이었다.

이곳에 내가 터를 잡고 나서부터 여 무사들은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과는 꽤 많이 달라진 것도 있었다.수련을 하는 무사의 수의 차이였다.

예전에는 홍련을 중심으로 10명의 여 무사들이 수련을 했지만 지금은 그 수가 40여명이 늘어나 있었다.물론 이것은 나의 지시를 받은 홍련이 추가적으로 무사의 수를 늘린 거였다. 그리고 이제는 여자 일색의 호위대는 아니게 됐다.

40여명의 수련인 중에 25명이 사내였고 그것도 15살 이하의 어린 사내들이었다. 하지만 선별을 해서 데리고 온 사내들이기에 무예를 익힐 기본 근골은 무척이나 발달해 있었다.나는 그들의 수련을 보며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저들이 내가 곧 견룡행수가 되면 나를 지킬 친위대가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상공.”

지금 내 뒤에는 백화와 만적이 조용히 서 있었다. 만적의 머리에는 여전히 그레나 꼬레아라는 이름이 둥둥 떠 있었고 10명을 도륙한 무사들 때문에 여전히 공황에 빠져 있는 듯 했다.

“내가 견룡행수가 되어도 내가 믿을 수 있는 자가 내 친위대가 있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상공.”

난 백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련을 하고 있는 14세 이상 예비 여자 무사도 봤다. ‘저들은 내전과 대전 그리고 태후 전에 배속을 시킬 것이야. 그리고 그 수도 점점 더 늘릴 것이다.

’난 고려 황실 궁궐 안에 내가 바로 부릴 수 있는 무사들을 숨길 생각을 했다. 물론 이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큼 유사시에 도움이 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미 나는 문장필 스승에게 내 가병을 양성해 달라고 부탁을 했고 일은 빠르게 진행이 되고 있었다.

감악산 언저리에서 산중 군막을 만들고 200여명의 장정들이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들어가는 자금도 만만치 않았다.전 김돈중의 창고가 화수분도 아니기에 쑥쑥 재물이 빠져 나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재물이 더 필요해!’난 그런 생각을 하며 머리에 그레나 꼬레아의 이름이 둥둥 뜨는 만적을 봤다.

“만적아!”

“예. 주인마님!”

“내 방으로 가서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예. 주인마님!”

만적은 공손히 내게 말했다.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공황에서 빠져 나온 듯 했다. 그리고 다시 나는 백화를 봤다.

“박투 위주로 수련을 시켜야 할 거야!”

황궁에서 그것도 나인이나 생각시들이 검을 차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불충이 될 수 있는 일이라 나는 맨손으로 하는 박투를 수련시키라고 백화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물론 병장기를 다룰 수도 있어야 한다.”

“예. 당연한 합니다.”

“궁은 지금 살벌한 전장이다. 그러니 내 친위대가 진정한 무사가 되어 나와 너를 보호해야 한다.”

백화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만적아!”

난 그렇게 말하고 내 방이 있는 전각으로 향했다.내 방.차가운 분위기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리고 있다.

나는 분노한 화산과 같았고 내 앞에 앉아 있는 만적은 봄날의 살얼음처럼 내가 조심스러워 웅크리고 있었다.이 방에 흐르는 이 차분함은 내 살기에서 만들어지는 걸 거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만적 아니 그레아 꼬레아 그것도 아니라면 저 어리고 맹랑한 것을 완벽하게 결정하지 못했기에 이렇게 자욱한 밀도가 가득한 살기를 뿜어내는 거였다.‘결심이 서지 않는군!’절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미래를 안 다는 것. 역사를 안다는 것은 이렇게 종종 스스로 하기 힘든 결정을 하게 만들었다.이래서 미래를 아는 일은 절대 좋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 방에서 나가기 전에 저 아이의 생과 사를 결정한다.’내가 살의를 마음에 품자 만적은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젠장! 감각까지 좋다.’나는 차분히 앉아 만적을 봤다. 그리고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그의 이름! 이제 이 순간 그를 만적이라고 생각을 해야 할지도 내 스스로 의문이었다.

그레나 꼬레아!그는 분명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만적인가? 그레나 꼬레아인가? 베니스의 개성상인도 아니고 참,,,,,,.’이것부터 나는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래. 그레나 꼬레아다. 내가 내 이름이 아니기를 갈망하듯 그레나 꼬레아다.

’그렇다면 그 이름으로 살게 될 것이고 그것은 어느 시점이 되면 이 고려에 그가 있지 않게 된다는 의미였다. 그때까지 나는 저 어린 것을 컨트롤하면 되는 것이다.

‘문명 만적과 내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야!’지금 이 순간 그레나 꼬레아로 보이는 만적의 이름을 통해 내게 어떠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추측을 할 수가 있었다. 지금 나는 새도 오라 부르면 겁을 먹고 내려앉는다는 견룡 군 위장이다. 그리고 권력을 잡은 이의방의 최측근이다.

그런데 그런 나의 식솔이 저렇게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은 내게도 엄청난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저 아이를 통해 예지를 받은 건가?’그리고 백화의 먹먹하고 서글픈 눈빛을 감당하지 못한 나 스스로를 후회했다.

‘버리고 왔어야 했다. 내 마음을 백화에게 들켜버렸지만 모질게 돌아서야 했다.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게 정답일 것이다.분명 그레나 꼬레아인 만적은 내게 득보다는 실이 많은 존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겨우 12살 정도 되어 보이는 녀석이 생각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그런 예사롭지 못함은 위험함을 만든다.그것은 나에게 후일 어떻게 모르는 거였다.

정말 이 순간 나는 만적을 보면서 흥선의 얼굴을 떠올렸다.이 모든 것이 흥선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망할 놈의 새끼!’난 나도 모르게 속으로 욕지걸이가 튀어 나왔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걸까?’흥선!그놈만 생각을 하면 조금 머리가 아파온다.

그리고 난 흥선이 그냥 그런 내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정이 약한 것이 사람이고 사람에게 정을 주는데 이유가 없다는 것이 답이기는 하지만 나는 어쩌면 스스로 내 적을 키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가장 강력한 적을 내가 품고 있는 지도 몰랐다.하지만 과감하게 흥선을 뿌리칠 수 없는 것은 우선은 이리도 허망한 내 마음 때문일 것이다.

‘최준 스승께서 나를 보는 그 마음이 지금의 내 마음이겠지.’나는 문뜩 그런 생각을 하며 최준 스승을 떠올렸다. 그리고 또 내가 흥선을 뿌리치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내가 짐작하는 것처럼 황족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궁에서 살아가야 하는 황족!황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숨겨진 고려의 황자!난 흥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내치지도 못하는 것이다.‘역사를 바꾸기 싫다면 역사의 흐름에 편승을 해야 한다.

’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어쩔 수 없이 내가 의도하지 않은 그 순간이 찾아온다면 흥선은 내 완벽한 정적이면서도 내게 마지막 힘을 실어줄 수 있는 히든카드가 되는 거였다.

그 두 가지의 이유 때문에 나는 흥선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거였다.아니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의 끝에는 내 사악한 마음의 한 자락도 늘어져 있을 것이다.

‘욕심을 부리면 화가 오는데,,,,,,.’사람이 버려야 할 때 버리지 못하면 재앙이 오는 법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나지만 그러면서도 흥선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에 반해 그레나 꼬레아로 이름이 바뀐 만적은 흥선과 분명 다르다.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만적이다. 그런데 나는 버리지 못했다.

버려야할 시점이었는데 버리지 못한 것이다. 그럼 내게 재앙과 같은 화가 올 게 분명했다.

이렇게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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