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152화 (152/620)

< -- 간웅 8권 -- >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좀 하자.”

“예. 주인마님!”

조금 전 나를 보고 놀랐던 만적은 온데간데없이 제법 의연한 눈빛을 보였다. ‘사람이 며칠 사이에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고 나도 모르게 어린놈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데 이런 생각은 나를 보는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 같았다. 그리고 이때 이고가 내게 한 말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쓸모없는 나무가 천년을 살고 그 산을 지킨다! 너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구나. 그레나 꼬레아!’나는 이 순간 점점 그레나 꼬레아로 이름이 바뀐 만적을 나쁜 쪽으로 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자.’난 다시 한 번 나를 다독였다.그리고 그렇게 나와 그레나 꼬레아인 만적과 백화는 조용한 곳으로 걸었다. 그리고 난 인적이 그래도 드문 곳으로 가서 백화를 봤다.

“백화야!”

“예. 상공.”

“만적과 둘이 이야기를 하고 싶구나!”

“예. 상공.”

내 말이면 더는 토를 달지 않는 백화로 뒤로 물러났고 나는 예성강 포구의 찬바람을 맞으며 그레나 꼬레아로 이름이 바뀐 만적을 봤다.

“바람이 차구나!”

“그렇습니다. 주인마님!”

내가 만적을 크게 보니 만적의 대답도 무척이나 의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마음으로 그래 했느냐?”

“예?”

“너와 노예상인이 어린 계집을 송나라 상인에게 팔고나서 막대한 이문을 챙기는 것을 나는 봤다.”

내 말에 만적도 놀라워 나를 봤다. 은밀하게 주고받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내게 들켰으니 놀라는 만적인 거다.

“보셨습니까? 주인마님!”

“그래 보았다. 무슨 생각으로 그리 한 것이냐?”

“그 여자애의 처지를 바꿔 줄 수는 있지만 모든 노예들의 처지를 바꿔 줄 수는 없기에 그렇게 했어요. 주인마님”

이것은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싹이 커지고 있어.’난 만적을 다시 봤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게 재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예. 재물이 많아지고 제가 거상이 되면 이 고려에 저렇게 팔려가는 가여운 것은 없게 만들고 싶어요.”

난 나도 모르게 만적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으음,,, 그게 가능하다고 보느냐?”

“재물은 귀신도 부린다고 하잖아요.”

만적은 내게 당당히 말했다.

“그렇기는 하다만은,,,,,,.”

“저는 거상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예 주인마님!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겁니다. 힘을 없을 때 누군가를 가여워 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의 이익을 챙긴 거예요.”

차갑고 냉철한 만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물끄러미 만적을 봤다.‘너의 이름이 왜 그레나 꼬레아로 바뀐 지 이제야 알겠구나!’난 그런 생각을 하며 독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나는 힐끗 주변을 살폈다.

자꾸 뭔가가 나와 만적을 보는 듯 했다. 그리고 그것을 백화도 느끼는 듯 했고 백화의 희고 고운 손이 살짝 검잡이를 향하고 있었다.‘미필적 고의라는 것이 있지.’난 그런 생각을 하며 만적을 한 번 보고 다시 백화를 봤다.

“백화야!”

“예. 상공.”

“밤공기가 차다. 이제 들어가자.”

내 말에 백화는 나를 잠시 봤다.

“지금 말씀이십니까? 상공.”

“그래. 내가 궁에 두고 온 것이 있다. 급한 것이니 가야겠다.”

난 이 순간 백화에게도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상공,,,,,,.”

“가자니까.”

난 질책을 하듯 무겁게 말하고 만적을 봤다.

“그래. 알았다. 너는 대 상인이 될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굳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인마님!”

“대상인이 어디 쉽게 되는 것이냐?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으라는 것이다.”

“그럼 저를 지원해 주시는 건가요?”

“그래. 내일 한 번 깊게 이야기를 해 보자.”

내 말에 만적은 표정이 무척이나 밝아졌다. 하지만 그 반대로 백화의 표정은 너무나 어두워졌다. 지금 이 순간 백화는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 지 아는 눈빛이었다.

“예, 주인마님!”

만적은 내가 공손이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만적을 물끄러미 봤다.‘이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너의 이름 탓이다.’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것은 구차한 내 변명일 것이다. 그리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돌아섰다.

그 순간 나를 보는 백화의 눈빛이 너무나 서글프고 슬퍼보였다. ‘흔들리면 안 된다.

화근덩이다. 화근 덩이야!’난 그렇게 속으로 소리를 쳤다. 하지만 백화는 여전히 나를 보며 먹먹한 눈으로 금방이라도 눈물방울을 쏟아낼 것 같았다.

“백, 백화야!”

“상공,,,,,,.”

“가자니까.”

“상공,,,,,,.”

“젠장!”

난 나도 모르게 욕지걸이를 하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 순간 나는 분명 훗날 후회를 하겠지만 백화의 먹먹한 눈망울에 지고 말았다.

“알았다. 알았어.”

난 그렇게 말했고 지금까지 어둡기만 했던 백화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난 백화의 그 표정을 보며 거침없이 돌아섰다.그리고 무인처럼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뽑아들었다.

“지금까지 서로 이익을 주고받은 것들이 작은 욕심에 이러는 것은 목을 내놓고 가자는 것이지.”

난 버럭 소리를 질렀고 그 순간 그레나 꼬레아인 만적은 놀라 멍해졌다.

“주, 주인마님!”

“만적아! 내 뒤에 붙어라!”

난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바로 어두운 그림자 뒤를 노려봤다.

“어서 나와라!”

그 순간 검과 몽둥이를 든 10여명의 불한당들이 조금은 놀란 눈빛으로 새벽 밤의 쥐새끼처럼 기어 나왔다.

“킥킥킥! 곱게 죽기는 틀렸군.”

내게 제일 먼저 이죽거린 것은 다름 아닌 조금 전까지 만적과 짜고 노예의 값을 후려친 그 노예거래상이었다.이렇게 재물에 눈이 멀면 명을 재촉하는 걸 거다.

아마 저들은 나와 백화와 만적만 죽이면 만적의 품에 있는 은병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와 만적을 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백화는 쉽지 않을 거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며 백화를 봤다. 백화는 이미 검을 뽑은 상태였다.

“오호! 저년 봐라. 절세가인의 축에 들것 같은 년이 검무라도 추겠다고 검을 뽑네.”

그런데 말하는 폼이 그냥 그런 노예상인은 아닌 듯 했다.

“뭐라고 했느냐?”

백화가 앙칼지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내년은 꼭 맛을 보고 송나라로 팔아주지. 그곳에 가면 큰 기루가 있으니 꽤 너는 유명해 질 거다. 킥킥킥!”

노예상인이 비열하게 웃자 뒤에 있던 것들도 비릿하게 웃었다.

“네놈은 그 혀 때문에 죽을 것이다.”

난 나의 백화를 말로 희롱하려든 노예상인을 노려보며 소리를 쳤다.

“참! 세상 일이 신기해!”

내가 소리를 쳤지만 놈은 꿈쩍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지금 현재 쪽수라도 놈들이 유리하다고 생각을 하니 저러는 걸 거다. 하지만 세상일이 눈에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저들은 모르고 있는 거였다.

“뭐가 신기하다는 거지?”

“너랑 꼭 닮은 놈을,,,,,,.”

쉬웅!퍽!

“으악!”

그 순간 제일 뒤에 있던 불한당 놈 하나가 뭔가에 맞고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뭐야?”

노예거래상은 내게 뭔가 말을 하려다가 부하 같은 놈의 비명소리를 듣고 놀라 고개를 돌렸다.

“이 멍청한 놈들아! 세상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지금 바닥에 쓰러진 불한당에게 날아든 것은 작은 조약돌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모습을 숨기고 있던 10명의 별초들이 일제히 모습을 보이며 나와 만적 백화를 포위하고 있는 노예거래상과 불한당을 더 크게 포위했다.

“너. 너희들은 뭐야?”

도리어 이 순간 노예거래상과 불한당들이 기겁을 했다.

“처사들이지.”

별초 중 하나가 나직이 말했다.

“처, 처사?”

“그래. 저승처사!”

그와 동시에 별초낭장을 비롯한 별초들이 일제히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 빠른 몸놀림은 내가 그들을 말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살아 있는 사람에서 숨을 쉬지 않는 고깃덩이로 바꿔놓았다.‘정말 저승사자 같다.

’난 저들의 무위를 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그리고 왜 고려의 삼별초가 그렇게 세계최강 몽고군에게 항전을 할 수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요란한 칼부림과 비명! 그리고 그런 비명도 못 지르고 생을 불한당으로 마감한 놈들이 앞으로 쓰러져 죽었다.

그렇게 별초들은 10명이나 죽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라졌다. 이제 나와 멍해 있는 만적 그리고 백화만 남았다.

“우선 순검 군이 올지 모르니 자리를 옮기시지요. 상공.”

“알았다. 백화야.”

난 그렇게 말하고 다시 멍해 있는 만적을 봤다.‘다시 만적으로 돌아갔겠지?’난 그런 생각을 했다. ‘그, 그레나꼬레아!’이즉 이 순간에도 내가 미필적 고의와 함께 차도살인을 포기한 순간에도 만적의 이름은 그레나 꼬레아였다.‘정말 만적이 대상인이 될 재목인가?’난 문뜩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주, 주인마님! 저. 저들이 누굽니까?”

“가자! 집에 가서 이야기를 하자꾸나.”

“예. 예. 주, 주인마님!”

여전히 만적은 넋이 나갔다. 우린 그렇게 인적이 드문 열 명의 시체가 죽어 있는 음침한 곳을 떠나 집으로 빠르게 향했다.

‘오늘 피를 봤으니 합방은 안 되겠군.’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사실 난 오늘 백화와 함께 벽란도에서 분위기를 잡고 집으로 돌아가 백화와 합방을 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일 이의방의 집으로 가서 이의방의 딸을 품을 생각을 했다. 물론 대취한 척을 해서 그렇게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야 내가 살 방법이 생기니 말이다. 그런데 만적을 구하다 피를 보게 되었으니 오늘 백화의 합방은 미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자연스럽게 이의방의 딸과의 강제합방도 미뤄지는 거였다.

‘즉위식이 끝이 나고,,,,,,.’난 백화를 힐끗 보며 나도 사내다보니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벽란도 입구!2명의 무사가 급하게 예성포구에 있는 벽란도 입구로 급하게 뛰어왔다.

“정말 갑산에서 온 갑동 이를 판자가 있단 말이지?”

무사 하나가 흥분을 한듯 목소리까지 떨렸다.

“그렇다네. 분명 갑산에서 온 갑동이라고 그자의 입으로 말을 했네.”

“틀리지 않아야 할 것인데,,,,,,.”

“분명 이번만은 틀리지 않을 것이네. 나도 정말 놀랐어. 견구라는 말도 했다네.”

“견, 견구!”

“그렇다네.”

“그렇다면 확실한 거군!”

이 두 무사는 급하게 뛰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해월에게 자꾸 이름이 바뀌는 아이를 찾아달라고 의뢰를 받은 그 무사들이었다.

“그럼 드디어 마마님의 원이 풀리는군.”

해월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 많은 듯 무사 하나가 좋아할 해월의 얼굴을 떠올리며 씩 웃었다.

“그래! 그런데 송나라로 팔려갔으면 어떻게 하지?”

무사 하나가 인상을 찡그렸다.

“마마님 말씀 못 들었나?”

“들었으니 하는 소리지.”

“송으로 팔려갔다면 그 상인에게 신상용모를 그려달라고 해서라도 송으로 넘어가야지.”

무사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둘은 급하게 갑산에서 팔려온 갑동을 판 노예상인을 있다는 곳으로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 갑산에서 팔려온 갑동을 팔았던 노예상인은 예성포구 음침한 곳에 누워 흙냄새를 진하게 맡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가 아닌가?”

갑산에서 팔려온 갑동을 찾기 위해 뛰어온 무사는 노예들을 거래하는 거래소 앞에 서서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이 벽란도에서 이렇게 한산한 시전이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는 듯 이상해 했다.

“아무도 없네.”

“그러게 말이야! 노예도 없고 갑동을 팔았던 상인도 없네.”

“혹시 또 일이 잘못 된 것이 아닌가?”

무사 하나가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까지 무비의 방해로 찾을 수 있다고 확신을 했을 때 번번하게 실패를 했던 무사들이었다.원래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되는 법이다.

“아무도 없네. 노예도 없어.”

노예를 거래 했던 시전 안까지 뒤진 무사가 밖으로 나오며 표정이 굳어졌다.

“정말 아무도 없는가?”

“그렇다네. 아무도 없어.”

“그럼 또 당한 것인가?”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 무비마마의 종적이 묘연한데 어떻게 알고 움직였다는 말인가? 또한 무슨 이유에서 이렇게까지 갑동이라는 아이에 대한 모든 것과 주변을 숨기려는 걸까?”

이 자체가 의구심이 드는 무사였다.

“그렇기는 하네. 하지만 또 실패를 한 것은 확실한 듯 해!”

그렇게 무사 둘이 인상을 쓰고 있을 때 갑자가 벽란도 순검 군들이 어디선가 뛰어와 이 두 무사를 포위를 하며 창검을 겨눴다.

“움직이지 마라!”

두 무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검을 뽑았다.

“무엇이오?”

“검을 내려놓아라.”

벽란도 순검군 교위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소리를 지른 교위의 목소리에는 다급함과 위기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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