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8권 -- >난 순간 백화를 봤다.
“그렇습니까?”
“그래. 벽란도라도 걸으며 이야기를 하며 정이 쌓일 것이네. 하하하!”
최준 스승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쁘신 모양이십니다.”
“그렇지. 바빠야 하지. 황제폐하의 즉위식 행사도감이 세워졌네. 나는 부도 감으로 행사를 준비해야 하네.”
난 그제야 왜 최준이 시간이 없다고 했는지 알았다. 그리고 공예태후가 이의방을 불러 끝내 행사도감의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즉위식이 열리겠군!’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어떤 면에서는 늦은 감이 있었다.
“명분이 부족하신 황제이시니 아주 성대한 즉위식이 될 것이네.”
최준은 나직아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참! 황제폐하께서 자네를 좋지 않게 보고 계시네.”
난 최준 스승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입니다. 신 황제이시니 상황제폐하의 신하처럼 보이는 제가 달갑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희석시켜야 자네가 갈 길이 평탄할 것이네.”
최준 스승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고 있습니다. 스승님!”
“하여튼 잘 왔어. 그 이야기를 해주지 못해서 조급했는데 이렇게 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군.”
이렇게 최준은 나를 걱정했다.
“그러셨습니까?”
“그렇다네. 하하하! 이 숭겸 어르신이 자네의 집에 있다지?”
순간 단 다시 놀랐다. 정말 앉아서 구만리를 보는 스승님이신 것이다.
“그렇습니다. 스승님!”
“배울 기회가 있으면 많이 배우시게. 아무 이 조정안에서 문과 무에서 그분을 따를 자가 없을 것이네.”
이것은 또 알게 되는 새로운 사실이었다. 학문이야 환관이라고 해도 배울 수 있고 식견을 넓힐 수 있지만 무예까지 출중하다는 말이 나는 놀랍기만 했다.
“그렇습니까?”
“곶감이 집에 있으면 빼 먹어야 하는 거지. 무슨 말인지 잘 알겠지?”
“그렇습니다. 예. 스승님!”
내 대답에 최준 스승님은 백화를 봤다. 예전과 다르게 자애로운 눈빛이었다. 이 순간 최준 스승은 내가 좋다면 다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이제는 백화라고 불러도 되겠지?”
“그렇습니다. 어르신!”
백화도 순순히 최준 스승을 받아드리는 것 같았다.
“벽란도를 걷으며 여유를 좀 찾으며 찬찬히 이야기를 해 주시게.”
“예. 어르신!”
“사실대로 말해야 할 것이네. 조금만 잘못해서 한쪽으로 기울게 이야기를 하면 오해가 클 일이 될 것이네.”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을 통해 무척이나 복잡하고 미묘한 이야기라는 것이 짐작이 됐다.그리고 다시 최준 스승이 나를 봤다.
“그럼 난 다시 대전으로 가 봐야겠어. 잠시 들린 거라 더 지체를 할 수가 없군!”
“예. 스승님!”
그리고 난 최준 스승과 헤어졌다.‘황제폐하의 즉위식이다.
늦었어. 늦은 감이 있어.’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무탈하게 하루가 지나가는 듯 했다.문신들이 업무를 보는 전각 앞마당.어쩔 수 없이 이의방과 좋게 이야기를 끝낼 수밖에 없는 조영인을 비롯한 문신들이 이의방을 배웅하기 위해 이의방과 함께 전각에서 걸어 나왔다.
그 순간 전각에서 이의방을 보자 두 줄로 나눠 선 100여명의 견룡들이 이의방을 보며 일제히 충이라고 소리를 쳤다.
“충!”
그 순간 검처럼 날카로운 충이라는 한 마디가 문신들이 집무를 보는 전각을 휘몰아쳐 돌다가 비스처럼 문신들의 가슴에 날아들었다.충!이 단어 하나를 풀이 한다면 마음을 중간에 놓는 걸 거다.
그것은 다시 말해 조금의 속임이나 허식 없이 자기의 온 정성을 기울인다는 것으로서, 공자(孔子)는 인간의 모든 행위의 근본을 이에 두고 이를 ‘충신(忠信)’이라 하였다.또한, 타인에 대한 경우에는 이를 ‘충서(忠恕)’라 했다.
이에 대해 주희(朱熹)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실현하는 것을 충이라 하고, 그것을 미루어 타인에게까지 이르게 되는 것을 서(恕)라 한다고 해석하고 있다.충신과 충서는 결국 동일한 정신일 것이다.
충에는 다수의 사람과 전체에 대하여 공평하게 성실을 다한다는 의미도 있는 거였다. 그래서 개인보다도 국가나 군주를 우선하는 법가(法家)의 사상에서, 충은 자신을 돌보지 않고 국가나 군주를 위해 자기의 능력과 정성을 다하는 충의(忠義)의 덕이 되었다.그렇게 올바른 것이 지금 이 순간 이렇게도 변질되어 있는 거였다.
“충!”
그리고 다시 한 번 100인의 견룡 군들의 충성 함성이 울렸다. 이때 문장필을 비롯한 모든 문신들이 찰나의 순간 인상을 찡그렸다.그리고 이런 행동이 자신들을 위협하기 위해 사전에 준비된 행동이라는 것을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문신들은 알 수가 있었다.하지만 누구하나 이의방에게 뭐라고 말을 하는 자가 없었다.
“과하셨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대쪽은 있는 법이고 그 대쪽이 바로 문극겸이었다. 문극겸은 이의방을 보며 조용히 그리고 정중히 말했다.
“무슨 말씀이시오? 문공!”
“이리 힘으로 위협이 되고 굴복이 되는 존재라면 난신에 불과할 것입니다. 지금 행수께서 하신 행동은 아니 한 것보다 못한 이입니다.”
이 순간 문극겸의 말은 동시에 이의방과 놀란 문신들 모두를 질책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뜻을 아는 문신들은 스스로 인상을 찡그리고 문극겸을 노려봤고 문극겸의 성정을 잘 아는 문장필은 참으로 못 말릴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그에 반해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하하! 제가 잠시 무부로 변했나 봅니다.”
이의방은 그렇게 정중히 말하고 여전히 장엄하게 서 있는 100인의 견룡 군을 봤다.
“물리라.”
“예. 주군!”
교위 하나가 짧게 대답을 했다. 그 순간 이의방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너의 주군은 오직 황제폐하이시다. 나의 대의를 깎아 내리지 말라.”
“송구하옵니다.”
교위는 바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보고 문신들은 이의방을 다시 봤다. 물론 이것은 문신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극과도 같은 거였다. 그리고 그 순간 문극겸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문장필이 문극겸의 손가락을 살짝 잡고 가만있으라는 눈치를 줬다.
“모두 물리라.”
이의방은 다시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돌아서서 살짝 목을 숙여 모여 있는 문신들을 봤다.
“최대한 빨리 준비를 해 주십시오.”
“그리하겠습니다. 이공!”
이렇게 문신들과 이의방의 연대 아닌 연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황궁 뒤편 음산한 곳.해월이 조심히 주변을 살피며 걷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디론가 가는 듯 했다. 그리고 인적이 드믄 곳에 도착을 하자 다시 주변을 살폈다.
“여기요.”
그 순간 어둠속에서 두꺼운 남자의 음성이 들렸다. 그리고 살짝 그림자가 보였다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해월이 조금은 편한 얼굴로 어둠속으로 들어갔다.그리고 놀랍게도 그곳에는 약간 취기가 돌고 있는 이고가 서 있었다.
“또 어디를 그리 사라지셨다가 나타나신 겁니까?”
약간의 원망 그리고 걱정이 담겨 있는 해월의 말투였다.
“그리 되었소.”
이고는 차분하게 말했다.
“또 누이의 무덤에 가셨소?”
“알면서 왜 물으시오.”
이 둘의 대화를 통해 하루 이틀을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닌 듯 했다.
“그나저나 아이는 찾으셨소?”
이고가 해월을 보며 물었다.
“벽란도까지 팔려왔다가 사라졌다는 것만 확인을 했습니다.”
해월은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불쌍한 놈! 얼굴이라도 알면 이름이라도 알면 내가 찾을 것인데,,,,,,.”
이고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게 무비 년이 숨기지는 않았겠지요.”
“악독한 년!”
이고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악독한 년입니다. 그런데 무비 년의 행방은 찾으셨습니까?”
해월이 이고에게 물었다.
“이미 알고 있소.”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잡아 죽여야 합니다.”
순간 해월은 강한 살기를 뿜어냈다.
“나도 그러고는 싶지만 맹호의 둥지에 자리를 틀어 쉽지 않을 것 같소.”
“맹호라고요?”
“그렇소.”
“그게 누굽니까?”
해월이 따지듯 물었다.
“그런 자가 있소.”
이고는 차마 무비가 이의방의 사택에 몸을 숨기고 있다는 말을 해월에게 하지 못했다.
“저에게도 말씀하기 어렵습니까?”
“어려운 것보다 지금은 말을 해도 답이 없어 하지 않는 거요.”
이고가 이렇게 차분한 존재인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해월은 그렇게 말하며 촉촉한 눈으로 이고를 봤다.
“왜 그렇게 보시오?”
“참으로 걱정했습니다. 거사에서 혹여 화를 입으실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 순간 해월은 마치 여염집 여자처럼 남편을 걱정하듯 이고를 걱정했다.
“그렇구려! 걱정하지 마시오. 무비를 죽이기 전에 또한 내 조카를 찾기 전에는 나는 못 죽소. 아니 처사가와도 나는 못 죽소.”
“예. 압니다. 알아요.”
“그리고 당장 무비를 죽일 수도 없지 않소. 내 조카의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니 그냥 죽일 수는 없소.”
“그렇습니다. 이녁!”
해월은 스스럼없이 이고를 이녁이라고 불렀다.
“벽란도까지 팔렸다. 벽란도라,,,,,,,.”
이고는 절망스러운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만약 벽란도에서 송나라나 금나라로 팔렸다면 정말 찾기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그게 제일 걱정이옵니다.”
“하지만 꼭 벽란도라고 해서 금이나 송나라로 팔리는 것은 아니니 희망을 가집시다.”
“예.”
해월은 그렇게 말하고 조심히 이고의 품에 안겼다. 지금 이 순간 누가 본다면 딱 부부지간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절대 부부가 될 수 없는 존재였다.아무리 이제는 30대 중반이라고 해도 상궁인 해월은 황제의 여자였다. 그러니 겉으로는 절대 부부지간이 될 수 없는 사이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궁에는 참으로 많고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이렇게 견룡 군 무사와 상궁이 정분이 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게 이고와 해월은 검은 그림자 뒤에 숨어 은밀한 정을 나눴다.
“술은 조금만 드시오.”
그리고 해월이 이고에게 잔소리를 했다. 정말 입고 있는 옷만 아니면 부부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또 잔소리인가?”
“항상 걱정이 되어 하는 소리지요.”
“줄이겠네. 그리고 내 무비의 목을 내 검으로 치면 끊지. 술 마실 일이 무엇에 있겠나?”
“예.”
“태후마마는 요즘 어찌 하고 있나?”
“태후께서야 항상 근심이 가득하시지요. 그래도 무비 년을 보지 않아 속은 편한 듯 합니다.”
“그렇겠지. 진정 죽어 마땅한 년이지.”
이고는 다시 무비의 얼굴을 떠올리며 어금니를 깨물었다.진정 이들에게는 엄청난 사연이 있는 듯 했다.
“예. 언니를 그리 참혹하게 죽인 년이니 반드시 잡아 죽여야 합니다.”
해월도 무비의 얼굴을 떠올리며 적개심을 뿜어냈다.
“금방 일을 마무리 하고 우리 깊은 산으로 도망을 쳐서 살았으면 좋겠네.”
“저도 그렇습니다.”
다시 해월이 이고의 품에 살포시 안겼다.이 순간 일을 마무리 하자는 것은 무비를 죽이고 잃어버린 조카를 찾는 일일 것이다.
“그래 살면 참 좋겠네.”
이고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렇게 밤이 깊어만 같다.누군가의 눈을 속이고 꽃피우는 사랑은 아플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둘의 사랑도 초승달처럼 아파보였다.해월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고를 사모하는 야화일 것이고 이고 역시 다른 이의 눈을 피해 야화를 찾는 가여운 벌일 것이다.
이렇게 이고와 해월이 숨어 사모를 할 때 회생과 백화는 벽란도 포구 바람을 맞고 있었다.5. 만적의 진정한 정체?달이 차고 있는 깊은 밤.벽란도는 야시장이 섰기에 낮처럼 밝았다.
아마 이 고려에서 이보다 더 화려한 곳은 없을 것이다.또한 예성강 포구인 벽란도만큼 자유연애가 자유롭게 펼쳐지는 곳도 없을 것이다.
사실 조선이전까지 여자들의 입지는 그리 좁지 않았다. 또한 스스로 남편을 정하는 여자들도 많았다. 유학인 성리학이 깊게 자리를 잡은 조선이후 여자들은 철저하게 남자의 입맛에 또 성리학의 입맛에 맞게 변해갔다.
“이곳은 언제 와도 좋다.”
나는 여러 가지 근심을 잊고 백화의 손을 꼭 잡고 벽란도 포구를 걸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너무나 많은 상인들이 모여들었다.동북아시아의 국제 무역항이니 그럴 것이다.
“그렇습니다. 상공!”
난 물끄러미 백화를 봤다.
“이고와 무비가 왜 그런 사이가 되었는지 궁금하십니까?”
“중요한 일이거든.”
“저도 자세히는 모르오나 모든 것이 다 무비의 표독함과 가여운 집착 때문에 벌어진 일이옵니다.”
“표독함과 가여운 집착?”
“그렇사옵니다.”
“그게 무엇이냐?”
“18년 전 무비가 용종을 잉태하였사옵니다.”
“그런데?”
“무비마마의 신분이 무희출신을 싫어하신 태후마마께서 요망하다고하시어 다른 자와의 사통으로 몰아붙이셨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게 말이 되지 않는다.”
“태후마마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조치였습니다.”
“어쩔 수가 없는 조치라니?”
“태자마마께서 미령하시고 무비마마는 황제폐하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계시어 무비마마의 몸에서 황자가 태어나시면 골육상쟁의 쟁투가 벌어질 거라고 여기셨습니다.”
역시 모든 일은 권력의 마수에서부터 시작된 거였다.
“그래서?”
“사통이라 물어 붙이며 술을 보냈습니다.”
“술을?”
“그렇사옵니다. 그 술에는 용종을 떼어내는 약이 들어 있었고 그 약을 무비마마께 받친 것이 바로 이고의 누이인 춘심이라는 이름의 상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