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8권 -- >그리고 고려의 노예거래상은 인상을 구겼다. 잔뜩 기대만 하게 만들고 사라져버리는 것이 송나라 상인들의 특성이라면 특성이었다.
그에 반해 금나라에서 오는 상인들이나 사람들은 제법 통이 큰 면이 많았다. 원래 오랑캐라고 불리던 것들이 금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나서 대국의 행세를 하려고 하니 통이 클 수밖에 없었고 그러니 벽란도에서 최고의 큰 손처럼 보였다.
또한 안남국 상인들은 손이 좁쌀이나 쥐고 있을 쥐의 배포를 가지고 사는 것보다 팔기 위해 이 벽란도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아주 가끔이지만 흰 천을 머리에 두룬 코쟁이 사라센 것들은 신기하기는 하지만 팔리지 않는 것들을 가지고 와서 헛힘만 쓰듯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섬나라에서 온 것들은 유황이나 은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자체가 벽란도의 순검 군들의 골칫거리가 됐다. 유황은 위험한 물건으로 이 고려에서 취급이 되었고 왜은은 순도가 낮은 것도 문제가 되었지만 그것을 통해 가짜 은병을 만들어 유통시키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그러니 당연히 왜인들은 벽란도의 골칫거리 인 것이다.
그리고 또한 고려의 신기술을 훔쳐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벽란도과 동북아시아의 최고의 자유무역 항이다 보니 쉽게 제지할 방법은 없었다.이렇게 벽란도에 드나드는 많은 상인들은 각각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젠장! 그럼 묻기는 왜 물어. 뗀 놈! 에이 더러운 뗀 놈!”
그리고 만적은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는지 인상을 구기고 있는 노예상인을 봤다.
“이보시오.”
“이보기는 뭘 봐? 어린놈이 뭘?”
“저 여자노비가 얼마라고 했소?”
이 순간 노예거래상은 모처럼 어이가 상실했다. 쥐방울만한 놈이 자신에게 하대를 하듯 말하며 노예의 가격을 물어오니 그럴 만도 했다.
“여기는 애새끼가 얼쩡거리는 곳이 아니야! 썩 꺼져! 뒈지기 싫으면 썩 꺼져! 거지꼴을 해서 값은 왜 묻고 지랄이야!”
노예상은 송나라이 변죽만 울리고 갈 때보다 더 짜증을 부렸다. 그도 그럴 것이다. 만적의 품에 은병 하나를 가지고 있기는 해도 지금 입은 입성은 거지나 다른 것이 없는 듯 했다.‘괜히 금병 때문에 거지처럼 입고 왔다.’만적이 이렇게 거짓꼴로 나온 것은 자기 나름 품에 가지고 있는 은병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송구합니다.”
흥선과 회생과 자주 있어 그런지 만적의 말투는 제법 문관들이 쓰는 말투로 변해가고 있었다.
“송구한 줄 알면 썩 꺼져. 재수 없게. 어린놈이 그리고 거지 같이 생긴 새끼가 어디서 이보 보시오야! 재수 없게.”
그렇게 만적을 향해 입에 담지도 못할 육두문자가 쏟아졌다. 거친 장사를 하면서 산 노예 거래상이기에 말투도 무척이나 거친 자였다. 그런데 보통이면 한 번 따지기라도 할 만적이지만 순순히 물러났다. 그리고 바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생의 사택으로 뛰어갔다.
‘입고 있는 옷이 신분이다.’이 순간 만적은 만고의 진리 중 하나를 깨친 거였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며 뛰었다. 그리고 드디어 만적은 자신이 할 장사를 결정한 듯 했다.
‘약은 재간을 부려 밑천을 늘려야겠다.’
“뭐 옷을 좀 빌려달라고?”
만적은 공손히 흥선의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섰고 흥선은 영문을 몰라 큰 연못에 낚싯대를 걸어놓고 물었다.
“예. 도련님! 오늘에서야 옷이 신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뭐하게?”
“주인마님께서 상인이 되어 보는 것은 어떠냐고 하시기에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상인? 형님께서 정해준 되로 살고 싶은 것이냐?”
“그렇습니다. 대상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정해주셔서가 아니라 제가 하고 싶습니다. 도련님!”
“재물에 눈 먼 자가 되어서 뭐 하게.”
흥선은 약간 부정적인 말투로 말했다.
“재물이 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만적의 말에 흥선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라. 내 편하고 마음에 드는 것으로 내어 입어라.”
“예. 도련님!”
“너는 상인이 되고 난 어부나 되어야겠다.”
흥선은 만적에게 그렇게 말하고 다시 큰 연못을 봤다. 사실 이제 이 못에 비단잉어도 씨가 말라 있었다.
“다 잡으셨잖아요?”
만적은 흥선이 괜한 짓을 한다는 눈빛으로 흥선에게 물었다.
“내가 언제 고기 잡았니? 사람 잡았지.”
흥선은 피식 웃었고 만적은 영문을 몰라 흥선을 뚫어지게 봤다.
“예?”
“가서 입맛에 맞는 옷이나 찾아 입고 가 봐라!”
흥선은 더 말을 않겠다는 낚싯대를 뚫어지게만 봤다.
“예. 도련님!”
“큰 상인이 되려면 독한 마음부터 먹어. 재물은 독한 거고 독해야 재물이 모인다.”
그래도 흥선은 만적이 하는 일이 걱정이 되는 흥선인 듯 했다.
“예. 도련님!”
“남의 눈물 서 말 모아야 창고에 쌀섬이 찬다고 했다. 잘 알아서 해.”
“예. 도련님!”
만적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내가 반드시 예성강 포구에 남의 눈물로 배를 띄울 것이야!’만적의 인생목표가 생기는 듯 했다.
그리고 바로 조심히 흥선의 방으로 가 흥선이 입는 것들 중에 가장 화려한 비단옷을 꺼내 입었다.체형이 비슷한 만적이기에 흥선의 옷이 제법 잘 맞았고 조금 전까지 거지새끼처럼 보이던 만적이었지만 흥선의 옷을 입고 나오자 이제는 문벌 귀족가의 도련님 같아 보였다.
“역시 옷이 날개다.”
만적은 스스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흥선의 방에서 나왔고 그때 자신의 부친인 꺽쇠와 마주쳤다.
“만, 만적아!”
아무것도 모르는 꺽쇠는 만적이 상전이라고 할 수 있는 흥선의 옷을 입고 나오자 놀라 떨리는 목소리로 만적을 불렀고 만적은 환한 얼굴로 꺽쇠를 봤다.
“예. 아버지.”
“어떻게 된 거야! 왜 도련님의 옷을 입고 나오는 것이냐? 그렇다고 도련님이 아시면 경을 친다. 어서 벗어라. 어서!”
역시 남의 집 밥을 먹기 시작한 꺽쇠는 상전의 눈치를 보는 노비로 전락하고 있었다. 거지행색을 했을 때의 양인으로의 곧은 심지는 온데간데없는 꺽쇠였다.
“도련님이 허락하신 겁니다.”
만적은 아무렇지도 않게 당당하게 말했다.
“도련님이 너를 예쁘게 여기도 그래서는 안 된다. 어서 벗어라. 어서!”
만적의 말에도 꺽쇠는 놀라 눈 그대로 만적에게 소리를 질렀다.
“왜 그러세요. 아버지?”
“어서 벗으라니까. 어서! 아랫것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
“아버지!”
“어서.”
“싫어요. 전 지금 당장 이 옷이 필요해요.”
만적이 소리를 질렀고 꺽쇠는 변한 자신의 아들을 보고 더욱 놀랐다.
“만, 만적아!”
“전 부자가 될 거에요. 주인마님보다 더 큰 부자가 될 겁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 가다가는 가랑이만 찢어진다.”
꺽쇠는 만적을 측은히 보며 타이르듯 말했다. 하지만 이미 거상의 꿈을 가진 만적의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뱁새는 왜 안 되는데요? 그리고 제가 뱁새라면 재 가랑이를 찢어서라도 따라 갈 겁니다.”
무섭게 변한 만적이었다.이래서 사내는 꿈을 가지면 변하는 것인가 보다.
“만, 만적아!”
“흥선 도련님이 그러셨어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고.”
순간 만적의 말에 꺽쇠는 기겁을 해서 놀라 만적에게 달려가 뺨을 후려 쳤다.짝!
“다시는 그런 헛소리는 하지 마라.”
이 순간 만적은 위험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들통이 났고 꺽쇠는 일자무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아버지!”
“네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다시는 그런 소리를 하지 마!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니 분명 따로 있는 것이다. 우리랑 근본이 다른 것이야.”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근본이 다르다면 저는 재물로 저의 근본을 바꿔놓을 겁니다.”
정말 어린 만적이지만 너무나 위험한 발상을 하고 있는 만적이었다. 어쩌면 이 순간 회생이 위험한 만적에게 자신의 꿈을 키울 길을 열어 준지도 몰랐다.
“만, 만적아!”
“누구는 태어나 평생 똥지게를 지고 누구는 노비들을 호령하며 사는 것은 불공평 합니다. 저는 제 스스로 제 근본을 바꿀 겁니다.”
만적은 그렇게 소리를 치며 뛰어나갔고 꺽쇠는 차마 만적의 팔을 잡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저 멀리 물고기도 없는 큰 연못에 낚싯대를 걸고 있는 흥선이 피식 웃었다.‘그래도 너는 나보다 좋구나! 바꿀 수라도 있으니 말이다.
’흥선은 그렇게 생각을 하며 다시 물끄러미 낚싯대만 봤다.‘이 낚싯대에 형님이 걸려주시면 어찌 할고?’이 순간 정말 이 사택에는 너무나 위험하고 무섭고 뛰어난 어린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고려를 낚아보려는 회생!그 회생을 무슨 영문인가 낚으려는 흥선!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바꾸려는 만적!이들의 거침없는 행보가 참으로 위험해 보였다.공예태후의 처소.
“어디를 다녀오는 것이야?”
조심히 태후의 처소로 들어서는 해월을 보며 공예태후가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수라간에 들이 재료를 점검 하고 왔나이다. 사가에 계실 때 황상폐하께서 편히 음식을 드시지 못하였다고 해서 챙기고 오는 길입니다.”
해월의 말에 공예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상이 입이 짧지.”
“그러하옵니다.”
“수라간에만 맡기지 말고 네가 좀 신경을 써라.”
“예. 태후마마!”
해월은 조금 전 무사를 만나고 온 것을 그렇게 변명을 했다.
“정말 며칠 되지 않았는데 길고 길구나!”
공예태후는 회안에 잠긴 듯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태후마마! 하지만 이제 다 잘 될 것이옵니다.”
“그건 그렇고 무비 년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 봤느냐?”
순간 공예태후의 눈빛이 싸늘하게 돌변을 했다.
“아직 종적이 모연하다하옵니다.”
“이 고려의 군부가 무비 년 하나 못 찾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이냐?”
공예태후는 자신의 입으로 말을 하면서도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사라진 몇몇을 찾기가 이리도 힘들었다.군부는 후일 화근이 될 사라진 김돈중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공예태후는 이의방의 집에 은거를 하고 있는 무비를 찾아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하지만 둘의 공통점은 아직 그들의 꼬리도 보지 못했다는 거였다.
“그러게 말이옵니다. 워낙 영악한 무비라,,,,,,.”
해월은 거침없이 무비를 영악하다고 표현을 했다. 이것은 황실 법규에 크게 위배되는 일이었고 평범한 황실이라면 해월이 크게 치도곤을 당할 일이기도 했다.하지만 해월이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공예태후와 무비의 사이가 극심히 나쁘기 때문이었다.정말 이건 단순한 고부갈등의 수준은 아닌 듯 했다.
“발견하는 즉시 베라고 해라.”
이 순간 공예태후의 눈빛은 서늘하게 변해 있었다.
“쉰내도 바라옵니다.”
정말 이상할 만큼 공예태후는 무비에게 적대감을 보이고 있었다. 이런 적대감은 완벽한 적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보이지 못하는 그런 적대감이었다.
“그래. 너와 내가 그 마음이 같이 너를 내 옆에 두는 것이다.”
“감사하옵니다. 태후마마!”
해월의 대답에 공예태후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해월을 물끄러미 봤다. 그녀의 눈에는 해월을 측은히 보는 듯 했다.
“그러고 보니 너의 언니가 죽은지도 17년이 되었구나!”
그 순간 해월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 그러하옵니다. 아, 아직 미천한 저의 언니를 기억하십니까?”
해월은 순간 놀라 공예태후를 봤다.
“암 기억하지. 아니 나는 기억해줘야지.”
이 순간 공예태후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황공하옵니다. 태후마마!”
언제나 차갑고 냉철한 해월의 눈에도 이슬이 살짝 고였다.
“가여운 일이었다. 내 일을 하다가,,,,,,.”
공예태후는 해월의 언니를 기억하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그리고 그 말꼬리에는 공예태후가 해월에게 말하지 못한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순간 해월은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옵니다. 그 모든 것이 다 무비가 간악해서 그런 것이옵니다.”
해월의 말에 공예태후는 힐끗 해월을 봤다. 그리고 이 순간 공예태후의 눈빛이 야릇했다.
“그래. 너의 말이 옳다. 그러니 어서 무비 년을 찾아라.”
“예. 태후마마!”
“그나저나 큰일이다. 무비 년과 함께 옥새가 사라졌으니 참으로 큰일이다.”
공예태후는 사라진 옥새를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사옵니다.”
“그나저나 어찌 할꼬. 스스로도 명분이 바로 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황상인데,,,,,,.”
늙으면 근심이 쌓인다고 했다. 정말 근심 걱정만 느는 공예태후였다.
5. 문신들을 아우르는 이의방.문하시중의 집무 방.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문신들의 영수인 조영인 을 하고 있었고 아무 말도 없이 그가 차분히 앉아 있으니 다른 문신들은 뭐라 하지 못하고 그저 조영인만 보고 있었다.사실 조영인은 불안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가 정중부의 편에 섰지만 이미 정중부의 목은 말라비틀어져 저잣거리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의방이 권력을 잡고 있었다.그게 불안한 조영인 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의방에게 달려가 허리를 숙이기에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무슨 고민을 그리 하십니까?”
지금까지 가만히 앉아 있던 문극겸이 조영인 에게 물었다. 그리고 보니 이 자리에는 문극겸을 비롯해서 염신약, 이인로와 우승겸과 민 영모 그리고 젊은 왕준명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무신이면서 문신이기도 한 문 장필 역시 문극겸의 옆에 앉아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문신들 하나, 하나의 면모가 김돈중이 사라진 지금 문신들을 대표할 만 했다.
특히 염신약과 이인로는 당대의 문장가였다. 그리고 그 둘의 사이는 무척이나 나빴다. 평소 같으면 이렇게 마주앉아 있지 않을 두 위인이었으니 무신이 득세를 하다 보니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이렇게 모여 있는 거였다.
염신약!그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보면 충신이며 당대의 문장가였다.본관은 서원(書員)이다.
자는 공가(公家)이며 아버지는 우습유(右拾遺)현(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