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145화 (145/620)

< -- 간웅 8권 -- >3. 명종을 압박하려는 공예태후?

“밖에 태후 궁의 상궁이 거사대장님을 뵙고자 하십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이의방에게 위위경의 벼슬이 내려지지 않아서 이들은 대장군이 한 말을 그대로 이의방의 직책처럼 불렀다.

“태후 궁 상궁이 왔다고?”

“그렇습니다.”

밖에서 경계를 서는 장졸이 조심히 말했다.

“모셔라!”

이의방의 말과 함께 조심히 문이 열렸고 내 예상대로 해월이 조심히 안으로 들어왔다.

“태후 전 상궁 해월이라 합니다.”

조심히 해월이 허리를 숙여 이의방에게 예의를 표했다.

“내 알지. 그대를!”

이의방은 무척이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사실 따지고 든다면 태후 전의 지원이 있어서 지금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신이라는 것을 이의방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만들어낸 것은 나라는 것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의방이었다. 그러니 내게 영지를 내리고 5등이지만 공신의 반열에 올리려는 거였다.

“그런데 무슨 일인가?”

“태후마마께서 거사대장을 찾고 계십니다. 긴히 상의할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긴히 상의?”

“그러하옵니다. 쇤네가 솔직히 말씀을 올리며 태후마마께서 무척이나 진노해 계십니다.”

“무척이나 진노를 하셨다?”

이의방은 영문을 몰라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리 자신이 지금 권력을 손에 넣었다고는 하지만 태후와 황실 황족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마디로 태후와 황실 그리고 이의방은 연립정부라고 보면 딱 맞는 표현일 것이다. 이의방의 권력을 공고히 해 주는 것은 황실을 호위하고 보위하는 명분일 것이다. 그러니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이 그리 태후마마를 진노케 한 것이오?”

“가서 이야기를 들으시면 아시옵니다.”

해월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성대한 즉위식이 없었어.’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황족은 명분이 우선이다. 지금 황제께서 황제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즉위식도 없었다. 그러니 화가 난 거야!’난 그런 생각을 하며 이의방과 해월을 봤다.

“즉위식 때문이라면 위위경께서 바로 가서 아뢴다고 하시오.”

내 말에 이의방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해월은 내게도 하대를 하지 않고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그리고 바로 해월이 물러나자 이의방이 나를 봤다.

“즉위식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서 즉위식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제국의 황제폐하께서 성대한 즉위식이 없이 황제에 등극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태후마마가 진노하신 것입니다.”

내 말에 이의방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황제께서도 명분이 계셔야지.”

“그렇습니다. 따지고 보면 너무나 명분이 빈약하신 황제폐하이십니다.”

“옳다. 내 성대히 즉위식을 준비하지.”

“그럼 또 논공은 미루어지겠군요. 아버님!”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즉위식이 우선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위위경의 자리도 공표가 될 것이다. 그럼 나 역시 명분을 얻는 것이다.”

하루의 권세를 누리려는 자는 힘을 내세우고 10년의 권세를 누리려는 자는 재물을 움켜쥔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천세를 누리며 권력을 가지려는 자는 오직 하나 명분을 가지려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이의방은 명분을 쫒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가시지요.”

그때 한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이고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바쁘시군.”

이고의 얼굴을 보자 이의방이 반색을 해서 일어나 그를 반겼다.

“어디에 있다가 이제 오는 건가?”

“알면서 왜 묻는 건가?”

이고는 다소 퉁명스럽게 말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너의 재간에 이렇게 된 거군!”

이고는 내게 반갑다는 말 대신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모난 돌이 정을 맞지.”

“알고 있습니다.”

“산에 가보면 가끔 느끼는 거지만 못나고 아무짝에 쓸모가 없는 나무는 천년을 살고 전설을 낳지. 그에 반해 곧고 잘 자란 놈은 베어져 죽게 되고.”

이것은 일종의 경고와 걱정이었다.

“깊이 생각을 하겠습니다.”

“깊이만 생각하지 말고 힘도 좀 키워. 날아드는 비수를 머리로 막을 수는 없잖아.”

이고는 정말 나를 걱정하는 거였다.

“예. 위위경!”

난 이고를 보며 엉뚱한 소리를 했다.

“위위경?”

“그리 되실 겁니다.”

그리고 내 말에 이의방도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산원이 위위경이라 하하하! 이 고려가 드디어 망해가는구나!”

역시 욕심이 없는 이고였다. 만약 채원에게 이 소리를 했다면 채원은 신이 나서 표정관리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 가려는 참은 것 같던데 가보시게.”

이고가 이의방을 보며 말했다.

“그래. 태후마마에게 가려던 참이네. 같이 가겠나?”

“나도 불렀나?”

“그건 아니지만.”

“부르지도 않은 자리에 나설 만큼 오지랖이 넓지 않네. 하여튼 가보시게. 그리고 호위의 수를 늘려야 할 거야. 내 입궁을 하는데 산원 군들의 눈빛이 이상해!”

이고는 다시 이의방에게 약간의 경고를 했다.

“알았네. 나 역시 알고 있네.”

“채원이 욕심이 많은 이이기는 하지만 아예 맹탕은 아니네. 그리고 이 황궁에 제일 많은 병력을 가진 것이 채원이라는 것만 잊지 말게. 지금 당장 필요 없다고 해서 홀대를 하면 후일 크게 화근이 될 거네.”

역시 한발자국 물러서 봐온 이고라 보는 눈이 달랐다.

“알았네.”

“용호군 장군이 되실 걸세.”

“용호군 장군?”

이고는 그렇게 말하고 피식 웃었다.

“그렇다네.”

“자네는 나를 강일천 대장군의 등살에 말려 죽일 생각이군.”

“바라던 거 아닌가?”

이의방의 말에 이고는 피식 웃었다.

“소인배가 대인의 옆에 있으면 비슷하게 물들지. 하여튼 가보시게. 태후마마를 기다리게 해서야 되겠나.”

“알았네.”

이의방은 그렇게 말하고 장군방을 나섰고 나도 이의방을 따르려고 했다.

“너는 나랑 이야기 좀 하자.”

이고가 차분히 말했다.

“예?”

“할 이야기가 있다.”

난 이고의 말에 이의방을 봤다. 그리고 이의방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리고 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공예태후의 처소.공예태후와 명종이 차분히 앉아 서로를 보고 있었고 최준이 부복을 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지금 공예태후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사실 공예태후가 명종을 부른 것은 자신의 아들인 명종에게 청을 하기 위함이었다.

이 궁궐에서 누구보다 오래 산 공예태후였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 괴물인지 잘 알고 있는 공예태후이고 했다. 그리고 또 지금 새롭게 황제가 된 아들도 걱정이 되는 공예태후였다.그리고 이 자리는 무척이나 의도된 자리이기도 했다.

‘곧 이의방이 오겠지. 어쩔 수 없이 이러는 이 어미를 이해해 주세요. 황상!’공예태후는 이의방을 불러놓고 명종을 부른 거였다. 이것은 청을 넣고 또 자신의 아들을 압박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부르셨나이까? 어마마마!”

“예. 황상! 이 어미가 청이 있어 오시라 하였습니다.”

공예태후의 말에 명종도 태후가 무슨 말을 할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님폐하 때문이십니까?”

“그렇습니다. 황상!”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형제분들끼리 피를 보는 골육상잔은 없어야 합니다. 황상! 그래야 황실이 굳건히 서고 천세 만세를 누리게 됩니다.”

“예.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명종은 다짐을 하듯 말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공예태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서운함이 분명 존재했다.

“고맙소. 황상! 내 황상의 어진 마음을 알기에 무부들의 틈에서 황상을 옹립하기 위해 동분서주를 한 것이요.”

“그렇습니까?”

“그래요. 황상!”

공예태후는 자신의 아들인 명종의 앞에서 지난 일을 생색을 내듯 말했다. 이렇게 생색을 내둬야 자신의 입지 역시 공고해 진다는 것을 공예태후는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어마마마께서 저를 불충한 아우로 만드셨군요. 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소자를 형님폐하의 옥좌를 찬탈하는 소인배로 만드셨군요.”

이것은 명종의 반격 아닌 반격이었다. 그리고 공예태후는 내심 놀라면서도 자신의 선택이 정말 옳았다는 생각을 했다.누구에게도 지략에서 밀리지 않는 황제가 될 소질이 있는 명종이라고 생각이 드는 공예태후였다.

“황실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저 말고도 대령후도 있었습니다.”

“대령 후는 안 됩니다. 풍운을 가진 대령 후는 절대 안 되지요.”

공예태후는 딱 잘라 말했다.

“그렇습니까? 그래서 제가 황제가 되었군요. 예. 알겠습니다. 어마마마!”

“이 황궁은 창검이 난무하는 무쇠의 숲입니다. 칼끝이 길을 만들어 황상의 발 앞에 놓여 질 것입니다. 오직 황상 혼자 이겨내시며 맨발로 걸으셔야 하는 길입니다. 그러니 지금처럼 누구에게도 나약하게 보이지 마시고 황상의 치세를 펼치세요.”

“예. 어마마마!”

명종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속내를 보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누구도 믿어서는 아니 됩니다.”

이것은 최준도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백년 황실과 사직을 지켜내시는 강한 군주가 되시어야 합니다. 그게 이 어미가 황상을 황상에 추대한 이유입니다. 이 어미는 황상을 돕고 모실 것입니다. 성심을 굳건히 새우세요. 그럼 됩니다. 이 궁에 난신만 있고 간신만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충신도 있고 영웅도 있는 법입니다.”

공예태후는 그렇게 말하고 회생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충신이 너무 적은 것이 문제이지 않습니까?”

“어디 치세든 간신보다 난신보다 충신이 적었습니다. 힘을 키우시고 무부들을 속이시고 또 충신을 믿으세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때 문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태후마마! 이의방 공 드셨나이다.”

상궁의 말에 공예태후는 고개를 끄덕였고 명종은 이 시간에 왜 이의방이 온지 영문을 몰라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런 명종을 보고 태후가 나직이 말했다.

“제가 불렀습니다.”

“어마마마께서요?”

“그렇습니다. 크게 꾸짖을 것이 있어 불렀습니다.”

이 말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렇게 태후는 이의방을 이용해서 명종에게 자신의 입지를 보여주려고 했다. 그래야만 귀양 아닌 귀양을 간 의종이 죽임을 당하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러십니까?”

명종은 다시 놀라워했다.

“들라 하시게.”

공예태후가 짧게 말했고 조심히 문이 열리는 순간 머리를 조아린 이의방이 차분히 방으로 들어왔다.

“신 이의방! 태후마마의 부름을 받고 왔나이다.”

이 순간 이의방은 의도적으로 태후에게 공손했다. 아니 마치 죄를 청하러 온 모습처럼 보였고 이런 모습을 보이라고 미리 해월에게 자신이 진노해 있다고 알리라고 한 거였다.‘역시 이의방은 나랑 연합을 하려는 것이야!’공예태후는 이 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오셨는가?”

공예태후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물론 이의방도 그럴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예. 태후마마!”

“공신이 되신다는 말은 내가 황제께 들었네.”

“그저 황공할 따름이옵니다.”

“정말 황공할 일이지. 아직 황상폐하도 즉위식을 하지 못했는데 벌써 공신이라고 모두 다 떠받든다니 정말 황공할 일이야!”

마치 공예태후의 목소리에는 검이 숨겨져 있는 듯 했다.

“송구하옵니다. 미리 말씀을 올리지 못했으나 행사도감을 준비하려했사옵니다.”

“준비만 하면 무엇을 하는가? 실행에 옮겨야 하지.”

“그러하옵니다. 바로 소신이 준비를 하겠나이다.”

이 순간 명종의 눈에는 이의방이 공예태후의 앞에서 쩔쩔 매는 모습처럼 보였다. 물론 그것은 어느 정도 의도된 모습이라는 것 역시 명종도 알았지만 그래도 이것은 명종을 놀라게 하는 일이었다.

“그래. 바로 준비를 하셔야 할 것이야. 공신이 되면 무엇을 하는가? 그것을 만천하에 알리지 못하면 공신이 되어도 아무런 소용도 없지 않나?”

“그러하옵니다.”

“성대히 준비를 하야 할 것이네.”

공예태후는 이의방에게 질책을 하듯 말했다. 그리고 보니 참으로 해야 할 것을 하나도 못하고 있는 고려 조정이었다.신 황제가 옹립이 되었는데 즉위식도 못하고 있는 조정이다보니 업무는 거의 마비된 상태였다.그게 바로 이 고려 조정의 현실이었다.

“예. 그렇게 준비를 할 것이옵니다. 신하들의 영수인 조영인 대감과 상의를 하시게.”

“예. 태후마마! 더 하명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태후마마!”

이의방이 조심히 태후를 보며 물었다.

“참! 그대의 딸이 올해 몇이지?”

순간 공예태후는 뜬금없는 소리를 했고 이의방과 명종은 놀라 기겁을 하듯 눈동자가 커졌다.

“왜, 왜 그러시옵니까?”

말까지 더듬는 이의방을 공예태후가 노려봤다.

“왜 이 기력도 미미한 늙은이에게 두 번 묻게 하는가?”

“송구하옵니다. 제가 딸아이가 둘이 있사옵고 장녀는 17이고 차녀는 15이옵니다.”

이의방의 말에 이번에는 공예태후가 명종을 봤다.

“황손이 올해 몇이지요?”

그 순간 명종은 놀라 더욱 눈동자가 커졌다.

“올, 올해 15이옵니다. 어마마마!”

“호호호! 황손이 벌써 그렇게 되었소. 하하하! 아니지. 이제는 황손이 아니라 태자지요.”

“그, 그렇습니다. 어마마마!”

지금 이 순간 공예태후를 제외하고 이의방과 명종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물론 이 계략은 회생이 낸 계략이었다.

토사구팽을 변형한 바로 보신지략인 것이다. 이의방이 권세를 이어가면 외척으로 황실과 황제를 지키려 할 것이고 이의방이 권세를 잃게되면 태자비가 된 이의방의 딸을 폐서인으로 이 황궁에서 쫒아내면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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