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8권 -- >난 이미 환관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짐작을 한 것처럼 이의방에게 말했다.
“문신들을 이용한다?”
“꼴에 머리를 쓰려 합니다. 이의제이를 노리는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이의제이라?”
“그렇사옵니다.”
“그렇게 문신들을 이용해서 나를 대전에서 몰아붙인다는 계획이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무 걱정도 하실 것이 못 되옵니다.”
내 말에 이의방이 나를 뚫어지게 봤다.
“방법이 있는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장인어른의 손에 어명이 담겨 있는 두루마리가 있는데 무엇이 두렵겠사옵니까.”
“어명이 담겨 있는? 하하하! 그렇구나! 그래.”
“예. 그렇습니다. 절대 채원은 장인어른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내가 참으로 바보 같았구나! 손에 이것이 있는데 무엇을 걱정하고 있었는지. 참으로 기우였다. 참으로 기우였어. 하하하!”
이의방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나 역시 이의방이 웃으니 씩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의방은 한참을 웃다가 정색을 하고 나를 봤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순간 난 이의방의 황당한 질문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평생 위장으로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
지금 내게 기회가 왔다는 것을 난 직감했다.‘아무 의심 없이 견룡 군 행수가 되어야 해. 그리고 낭장으로 품계도 올려야하고.’견룡 군 행수의 자리를 산원이 아닌 낭장으로 격상 시키면 내 고민은 자연히 해결되는 거였다.
“사양하지 말고 말해 봐라.”
다시 한 번 이의방이 내게 부드럽게 채근을 했다. 밥상을 차려줬는데 먹지 못하는 놈은 병신일 것이다. 물론 난 백화가 차려 준 밥상(?)을 여전히 못 먹고 있다.그리고 지금 이의방은 내게 밥상을 차려서 숟가락으로 떠서 먹여주려는 거였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는 견룡 군 행수가 되고 싶사옵니다.”
“견룡 군 행수?”
이의방은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견룡 군 행수의 자리는 겨우 산원의 자리다. 아마 내가 최소한 중랑장 정도는 부를 줄 알았던 것 같았다.
“그러하옵니다. 품계는 분명 낮으나 반드시 믿을 수 있는 수하에게 그 소임을 맡겨야 할 자리옵니다. 하오나 장인어른께는 마땅히 맡길 수하가 없지 않사옵니까?”
내 말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너무 내 사위가 앉기에는 너무 자리가 낮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황제폐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해야 합니다.”
“그렇지. 그렇다면 이의민을 그 자리에 앉히면 된다.”
이 순간 처음으로 이의방의 입에서 이의민의 이름이 나왔다. 이의민은 이의방이 일으킨 거사에 적극 가담을 했지만 출신이 너무나 비천해서 아예 잊힌 존재가 되어 있었다.
“용력이 좋기는 하지만 용력보다는 영악하고 재간이 있어야 하옵니다.”
“그렇기도 하다만은,,,,,,.”
이의방은 나를 사위로 낙점했기에 내게 조금 더 높은 자리를 주고 싶은 것 같았다.
“제가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그래야 황제폐하가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황제폐하가 웃고 있다고 해서 항상 장인어른과 끝까지 같은 길을 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내 말에 이의방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렇게 품계가 낮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시면 품계를 올리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품계를 올려?”
“그렇습니다. 낭장으로 올리고 병력의 수도 증강하는 것입니다.”
“낭장으로 품계를 올리고 병력의 수도 증강시키는 것은 채원을 의식하고 하는 거겠지.”
“그렇습니다. 송악산 불곰이 한 번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법이니 오판을 할 수도 있습니다. 대장군들의 병사들은 궁 밖에 있고 채원이 가장 두려워하는 용호군 대장군의 용호군 역시 황궁 밖에 있사옵니다. 지금 이 순간 황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옵니다.”
난 조금은 긴장분위기를 조성했다.
“너의 말이 맞다. 그래. 네가 견룡 군 행수가 되어야겠다.”
그리고 끝내 내 말을 받아드렸다.
“그리고 채원을 잡을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옵니다.”
내 말에 이의방이 나를 물끄러미 보며 씩 웃었다.
“방법이 있군?”
“그러하옵니다. 저를 견룡 군 행수와 함께 감찰어사에 겸직을 시키시면 됩니다.”
“감찰어사?”
“그렇습니다. 이보다 채원을 잡기 편한 직위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채원의 부정부패를 황제께 간한다?”
“그렇사옵니다. 명분만 있으면 뒤에서 목을 베어도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알았다. 내 너에게 견룡 군 행수와 감찰어사가 되도록 어심을 움직여 놓겠다.”
이의방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신이 직접 두루마리에 기록을 하면 되는 거였다.
“감사하옵니다.”
내가 고마움을 표시를 하자 이의방이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너는 감찰어사가 되어 또 챙길 것을 생각하는구나!”
이의방의 웃음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그러하옵니다. 챙길 수 있을 때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그리고 줄 수 있을 때 주는 것이고.”
“예?”
“네가 5등 공신이면 욕을 하는 자는 있겠지만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난 이 순간 놀라 이의방을 봤다. 그리고 이의방은 여전히 나를 보며 씩 웃었다.‘내가 5등 공신? 앞에 붙은 숫자가 좀 우습지만 공신은 공신이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뭐 사실 5등 공신은 공신의 자리 맨 끝자락이 분명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공신은 공신이라는 거였다.
그것도 공신록에 기록이 되는 공신인 것이다.'공신 내가 공신이 된다!'
“제가 5등 공신의 작을 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난 놀라 이의방을 보며 말했다. 이건 엄청난 파격인 것이다. 그리고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채원이 듣는다면 까무러칠 일일 것이다.
“그래야 하지.”
“하오나,,,,,,.”
“그래! 비록 5등 공신이지만 공신은 공신이야. 그래야 영지가 내려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나와 너의 시대를 아주 길게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이의방은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투로 말했다.
“그렇기는 하옵니다. 하지만 반발이 거셀 게 자명한 일이옵니다.”
“채원부터 난리를 치겠지.”
이의방은 채원의 얼굴을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정말 채원의 몇 마디에 이의방은 채원을 적으로 돌렸다. 이래서 거사가 성공을 하면 적이 더 많이지는 거였다.절대 권력이라는 놈을 나눌 수가 없는 것이니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채원을 그냥 둘 수가 없는 이의방인 것이다.
“그렇습니다. 또한 대장군들과 문무백관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것들은 떠들고 다니겠지.”
“그렇습니다. 아직 권력이 공고하게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적을 만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괜찮아!”
“하지만,,,,,,.”
난 걱정이 되어 계속 안된다는 투로 말했다. 이래야 나중에 내가 5등 공신이 되어도 고마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주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니 받아주는 것 자체를 고마워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이것이 바로 처세인 거다.
“말 많은 것들은 그것도 잠시 뿐이다. 계집은 화무십일홍이요! 권력을 잡은 사내는 권불십년이라는 말도 있다. 10년을 호사스럽게 살다가 무너지는 자들을 나는 너무나 많이 봤다. 역천을 하지 않을 마음이라면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이의방의 말에 순간 나는 턱하고 숨이 막혔다. 이 말을 통해 이의방의 마음에 아예 역천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의방은 권력을 쫒지만 역천의 마음이 없다는 뜻도 담겨 있는 말이었다.
“그렇습니다.”
“너에게 아주 하찮은 영지라도 나는 내릴 것이다. 그리고 네가 키운 힘으로 너와 나의 세상을 끝까지 이어갈 것이다.”
이것이 이의방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하찮은 영지? 어디를 주겠다는 거지?’이 고려에서 하찮은 영지 즉 땅이라고 표현되는 것은 북변과 남변이다.
북변은 함경도와 평안도를 말하는 것이고 남변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말한다. 하지만 경상도와 전라도는 하찮은 땅이라고 치부되어 말들 하지만 그곳이 곡창지대이기에 권력을 쥔 자들은 그곳에 터를 잡으려는 자들이 많았다. 이 개성과 멀면 멀수록 황제와 권력자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니 영지로 내려가면 스스로 왕처럼 행동할 수 있는 거였다.
그리고 만약 내게 경상도와 전라도 중 아주 일부라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 땅이 내려진다면 끝없이 반발하는 존재들이 생길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이 생길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이의방도 아예 생각이 없는 자가 아니니 남변은 아닐 것이다.’그럼 남는 것은 북변이고 그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다.
‘북변이 이 고려의 제일 끝 북쪽이지만 중원을 따지면 제일 서단에 있는 땅이다.’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곳은 옛 고구려의 출발지기도 했다.
‘지금은 꿈이겠지만 요동과 요서 그리고 요북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지금 요동은 금나라가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곧 금은 무너질 거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주인이 없는 땅을 차지하는 것이 주인이 된다. 그리고 그 땅을 차지하는 순간 역천이 아니라도 큰 꿈을 키울 수 있는 거다.‘이 정기 이후 요서와 요동을 잃었다.
내가 손아귀에 넣는다면 역사는 크게 변한다.’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기!그는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고, 많은 이들이 당나라로 끌려갔다. 고구려 유민들 가운데 당나라에서 사실상 독립하여 54년간 지속된 왕국을 건설한 인물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에는 이 정기를 크게 평가하지 않았지만 나는 누구보다 이 정기를 크게 평가하고 싶다. 스스로 번진을 새우고 후일 당나라가 그에게 준 해운압신라발해양번사는 바다를 통해 이루어지는 발해와 신라의 외교 및 교역 업무를 담당하는 직책이다.
그가 차지한 산둥 반도 일대는 발해, 신라가 당나라와 교역하는 최단거리에 위치해있어, 발해와 신라로부터 오는 물자가 모이는 요충지다. 이 정기는 발해와 신라와의 교역을 토대로 크게 세력을 키울 수 있었다.
이 정기는 차츰 산동일대를 복속시켜 치(淄), 청(?), 제(齊), 해(海), 등(登), 래(萊), 기(沂), 밀(蜜), 덕(德), 체(?) 10주를 확보했다. 775년에는 이웃한 이영요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 참여하여, 당나라 최대 요충지인 서주(徐州)를 비롯한 조(曹), 박(?), 예(?), 운(?) 5주를 더 얻어 15개주를 차지하게 되었다.
중원 15주를 차지한 그는 민족의 영웅일 것이다.그의 주변에 있는 절도사들이 7~9주 땅과 , 5만~9만 군사를 거느린 것에 비해 그는 10만이 넘는 군사력, 한반도에 버금가는 면적, 인구 540만(84만 호)을 달하는 사실상 독립된 왕국의 임금이었다.
큰 영토를 가진 당나라 최대의 강력한 번진(藩鎭)이 되었다.번진은 당나라 시대에 절도사를 최고 권력자로 한 지방지배체제다. 그리고 후일 스스로 제나라를 새워 당과 대립했다.
내가 만약 북변을 끝내 간다면 이정기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삼아 앞으로 전진을 하게 될 것이다. 고인에게 배울 것이 있다면 배우면 되는 것이다.
‘롤 모델로 충분한 인물이지.’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사실 사내라면 그 정도의 꿈은 꾸어야 한다. 하지만 난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스스로 소인배라고 생각을 하면서 너무 큰 것을 생각하는 내 자신이 스스로도 웃긴 거였다.
“왜 그렇게 피식 웃지?"내가 이 정기를 생각할 때 나도 모르게 피식 웃는 것을 이의방이 보고 내게 물었다.
“제게 영지가 주어진다니 놀라서 그렇습니다.”
“처음은 하찮은 땅이다.”
“그래도 황공한 일입니다.”
“물론이지. 황제폐하가 내리는 땅이지만 결국 내가 주는 땅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이의방은 마지막 순간 내게 생색을 냈다.
“예. 장인어른!”
“난 아버님이라는 소리가 더 좋다.”
“예. 아버님!”
어쩌면 이 순간 나보다 더 영악한 처세의 달인은 없을 것이다. 아마 내게 이렇게 뭔가 주지 못해 안달을 부리는 이유는 스스로 자신의 자리가 불안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더 나가 자신의 권력을 자신의 후대까지 이어가려는 야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인 것은 이의방의 아들이 그리 어깨가 넓은 위인이 아니라는 거였다.
“우선은 내게 주어질 땅으로는 북변이 좋을 것이다.”
북변!정말 듣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이 바로 북변이다.삭풍이 검 날처럼 부는 북변!하지만 권력이 있고 재물이 있으면 그보다 살기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또한 꿈과 야망을 펼칠 수 있는 곳이 바로 북변인 것이다.
“북변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북변이 좋을 것이다. 오랑캐가 준동을 하고 위험한 곳이기는 해도 땅은 땅이고 영지는 영지다. 성을 가진 귀족이어야 말로 스스로 힘을 키울 수 있지.”
이건 다시 말해 자신은 개경 근처에 있는 땅을 차지할 거라는 말을 하는 거였다. 아마 김돈중의 땅을 차지할 것이 분명했다.
그럼 경기도 일대의 거대한 땅이 한 순간에 이의방의 것이 되는 것이다.‘그러고 보니 아직 후속조치가 끝이 난 것이 아니군!’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점점 더 상황이 나를 북변으로 이끌고 있었다.'물론 보내만 준다면 나는 즐거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