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142화 (142/620)

< -- 간웅 8권 -- >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미끼로 주고 위위경인 이의방을 도모하신다면 황실과 황제폐하의 권위는 다시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질 것이옵니다.”

최준의 말에 명종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상념에 잠겨 있다가 눈을 떴다.

“짐이 그 벼슬을 내리면 의심을 살 수도 있다. 겨우 위장이라고 들었는데 짐이 내릴 수는 없다.”

“옳으신 말씀이시옵니다. 위위경이 직접 내리게 될 것이옵니다.”

“직접 내리게 할 거라?”

“그러하옵니다. 스스로 사위라고 부르는 자이니 그렇게 벼슬을 내릴 것이옵니다.”

“사위라? 장인과 사위가 끝내 반목을 하게 만든다?”

“그렇사옵니다.”

“알았다.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이렇게 명종은 조금씩 이의방을 경계하려고 했다. 아무리 자신의 황제의 옥좌에 올려 준 자가 이의방이라고는 하지만 자신보다 권위를 가진 신하를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런 결단을 내리고 있는 거였다.

아마 이런 성격 때문에 역사에 기록되듯 충신이라고 불리는 경대승과 명종은 반목을 했을 것이다.그리고 최준은 자신의 뜻대로 되고 있다는 생각에 속으로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내 회생에게 많은 것을 줄 것이야!’회생에 대한 최준의 사랑은 그렇게 커지고 있었다.산원 군 채원의 방.채원은 지금 자신에게 보고를 하고 있는 교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라? 지금까지도 황제와 이의방이 독대를 하고 있다고?”

채원은 의종을 강화로 보내고 나서 조정대신들과 명종이 대전회의를 할 줄 알았지만 명종은 마치 의도한 것처럼 옆을 따르는 조정대신을 모두 물리고 이의방과 독대를 했다. 그리고 그것에 처음 분노를 했고 또 지금까지 독대를 하고 있다는 것에 또 분노를 했다.

“분명 이의방과 이번 거사와 신 황제 옹립에 대한 논공을 의론하고 있겠지.”

채원은 그렇게 말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럴 것이옵니다.”

“아니야. 이의방의 성격상 의론이 아니라 통보를 하고 있겠지.”

채원의 말에 교위는 놀라 채원을 빤히 봤다.

“통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통보다. 황제폐하께서는 고개를 끄덕여 줄 것이고.”

“그렇다면 대단한 권세를 누리는 거군요.”

교위의 말에 채원은 교위를 노려봤다.

“그놈이랑 나랑 거사 때 한 것이 별반 다르지 않는데 나만 이렇게 괄시를 한단 말이지.”

채원은 명종의 얼굴을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표면상으로는 이의방 행수가 거사의 주동자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게 문제였어. 그게.”

“이제 어떻게 하실 요량이십니까?”

“어떻게 하기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않나?”

채원의 말에 교위는 살짝 주변을 살폈다.

“이 궁에는 견룡과 저희 산원 군만 있습니다. 그리고 산원 군이 더 많습니다.”

교위는 새로운 거사를 도모하자는 투로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 귀가 솔깃한 채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였다.

“박 교위입니다.”

지금 문 밖에 있는 박 교위는 채원이 회생의 정체를 알아오라고 지시를 한 그 박 교위였다. 그리고 참으며 기회를 보자고 한 그 교위이기도 했다.

“들어와라!”

채원의 명령에 조심히 박 교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아 보였다.

“표정이 왜 그래?”

“지금 주군을 위협에 빠트리려는 놈을 보고 있는데 어떻게 표정이 편할 수 가 있습니까?”

박 교위는 바로 채원의 옆에 서 있는 교위를 노려봤다.

“나를 위험에 빠트려?”

“송구하옵니다. 들으려고 들은 것이 아니라 밖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절대 또 다른 거사는 안 됩니다.”

박 교위는 못을 박듯 말했다.

“지금은 절대 안 된다?”

“그렇습니다. 이 궁에 산원 군이 견룡 군보다 많다고는 하지만 견룡은 최정예이옵니다. 또한 대장군들이 이의방에 붙었고 용호군 대장군 강일천께서 이의방을 지지하고 있는 이상 저희가 거사를 한다고 해도 3일천하 아니 한식경도 버티지 못합니다.”

박교위의 말에 채원은 인상을 찡그렸다.하지만 틀린 말은 분명 아니었다.

“기분이 무척이나 더럽지만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알아보라는 것은 알아본 것이냐?”

채원은 거사를 할 생각을 접고 박 교위에게 회생에 대해 물었다.

“그게 좀 이상합니다.”

“그게 좀 이상하다니?”

“견룡 군에서 회생을 아는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이건 이해가 되지 않는 보고였다. 견룡은 황제의 친위부대로 신분이 확실하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자리였다.

“아는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 말이 되나?”

“그러니 이상하다는 것이옵니다. 견룡 군, 중에 회생이 어디에 있던 자인지 아는 장졸이 없습니다.”

“으음,,,,,,.”

채원은 신음소리를 작게 됐다.

“그럼 하늘에서 떨어졌단 말인가? 아니면 땅에서 쏟아났다는 말인가?”

채원은 화를 참다가 소리를 질렀다.

“상황제의 거둥 때 처음 봤다고 합니다.”

“상황제의 거둥 때 처음 본다고? 그럼 신입이라는 소리 아닌가?”

“그렇습니다. 신입입니다.”

“그럼 장졸 록을 보면 되지 않나?”

“장졸 록에도 이 회생이라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회생이 이의방에게 자신의 회생이라고 말한 것은 자신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장졸들을 이름과 고향 그리고 특징을 기록하는 장부에는 회생에 대해서 아무것도 기록되어 있는 것이 없는 게 맞았다.

아니 박 교위가 찾지 못하는 거였다.회생이, 회생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 절대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신상착의가 기록되어 있으나 무신들을 괄시하는 풍토 때문에 그게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박 교위가 찾지 못하는 거였다.

“그럼 당장 찾지 못한다는 건가?”

“좀 더 시간을 두고 꼼꼼히 장부를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그 장부를 가지고 와.”

채원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이 순간 뭐든 자기가 유리하게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건 그렇게 문신들은 회유를 했나?”

채원은 마지막으로 박 교위에게 물었다. 이것도 안 된다면 정말 탁자를 뒤집고 일어설 참이었다.

“예. 그건 성공을 했사옵니다.”

“바로 열리는 대전회의에 문제를 제기할 것이옵니다.”

박 교위의 말에 그제야 채원은 씩 웃었다.

“이의방이 1등 공신이 된다고? 그 자리에서 어디 한 번 호되게 당해봐라.”

채원은 이의방의 얼굴을 떠올리며 간사하게 웃었다. 정말 송악산 불곰이라고 불리는 채원이 그리 웃으니 영 보기가 이상했다.

“예. 아마 논공을 정하는 자리는 난장판이 될 것입니다.”

“문신 놈들이 변심하지는 않겠지?”

“예. 단단히 약조를 받았습니다.”

“알았다.”

“그나저나 영 기분이 좋지 않아!”

채원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싸였다.

“왜 그러십니까?”

박 교위가 물었다.

“꼭 지금 누군가가 내 뒷목을 잡고 누르는 것 같아서 말이야!”

채원은 그렇게 말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조금만 더 참으시면 그런 체증은 바로 내려가실 것이옵니다.”

“암. 그래야지. 내가 와신상담을 해서라도 꼭 그렇게 만들 것이다.”

채원은 직접 종이에 쓰지도 못하는 한자를 썼다. 그 순간 산원 군을 동원해서 다시 한 번 거사를 하자고 했던 교위가 피식 웃었고 그 모습을 보고 박 교위가 인상을 찡그렸고 채원도 인상을 찡그렸다.

“왜 웃는 것인가?”

“아니옵니다. 산원나리!”

“아니긴 뭐가 아니야? 왜 웃는 건가?”

채원이 추궁을 하자 교위는 마지못해 대답을 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신상담이라고 하셔서,,,,,,.”

“내가 와신상담이라고 한 것이 그렇게 웃긴 건가?”

착 가라앉은 채원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지만 교위는 그것을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렇게 웃은 거였다.

“아니옵니다. 산원나리! 단지 별호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별호?”

“그렇습니다.”

사실 채원도 자신의 별호가 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어떨 때는 자랑을 하고 다닐 때도 있었다.송악산 불곰!따지고 보면 무시무시한 별호인 것이다.

“내가 와신상담이라고 한 것과 내 별호랑 무슨 상관이지?”

“산원나리께서는 송악산 불곰이시지 않사옵니까? 별호가.”

“그렇지.”

“불곰이 곰의 쓸개를 빤다는 생각을 하니,,,,,,.”

이 순간 정말 교위는 죽으려고 환장을 한 것 같았다.

“그게 그렇게 웃기나? 하하하! 듣고 보니 나 역시 웃기는군! 하하하! 그래 송악산 불곰이 곰의 쓸개를 빤다. 웃겨! 웃겨! 하하하!”

채원은 이 순간 박장대소를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산원 군을 이용해서 거사를 하자고 했던 교위도 채원이 자신이 한 말을 농으로 받아드렸다고 생각을 했는지 따라 웃었다.

“예. 하하하! 제가 재간이 좀 있사옵니다.”

역시 족을 놈은 자기 죽을 자리를 모르는 법이다.

“하하하! 내가 오늘 자네 때문에 여러 번 웃어. 오늘 참 재미있는 광경을 내가 보는군!”

채원은 그렇게 말하고 박 교위를 봤다.

“박 교위!”

“예. 주군!”

박 교위는 무겁게 말했다.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이 참 보기 좋군.”

“예. 그러하옵니까?”

“잠깐 보여 줄 수 있겠나? 검이 좋아 보여!”

“예. 개경 서쪽에 있는 대장간에서 만든 거라 좋습니다.”

“하하하! 그래. 이리 줘 보게.”

채원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으며 이야기를 했고 박 교위는 조심히 검집에서 검을 뽑아 채원에게 내밀었다.

“좋은 검입니다. 대장장이가 하도 허풍이 심해서 짐승을 배어도 피가 묻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 그래? 짐승을 배어도 피가 묻지 않아?”

“그런 검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하하!”

역시 눈치가 없는 교위였다. 그러니 조정이 돌아가는 것을 모르고 채원에게 거사를 일으키자고 말을 한 거였다.

“시험을 해 보면 알지.”

“짐승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게.”

채원은 그렇게 말하고 교위를 노려봤다. 그리고 그것도 잠시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쉬웅!바람 한 점 없는 산원 군 채원의 방에서 바람을 가르듯 검이 휘둘러졌다.

“으악!”

순간 교위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심장을 부여잡고 앞으로 거꾸러졌다.쿵!바닥에 쓰러진 교위는 놀란 눈으로 채원을 보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하하하! 그래도 이놈은 사람인가 보네. 피가 묻는 것을 봐서.”

“죽어 마땅한 놈입니다.”

박 교위는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아무리 일자무식하다고 해도 와신상담을 모를까.”

채원은 죽어가는 교위를 노려봤다.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서서히 죽어가는 교위의 목에 칼끝을 데고 꾹 눌렀다.수욱!쏴아!그 순간 채원이 동맥을 건드렸는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사내새끼는 원래 세 끗을 조심해야 해! 넌 그 그놈의 혀끝을 조심하지 못해 죽는 줄 알아.”

그렇게 채원은 끝내 교위 하나를 죽였다. 정말 와신상담이 사람 하나를 잡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죽은 교위도 원망을 할 것이 없었다. 스스로 방정맞은 주둥이를 원망해야 하는 거였다.

“여기에 있네.”

“예. 주군!”

“와신상담의 마음으로 좀 더 기다려보지.”

와신상담!오(吳)나라의 왕 합려(闔閭)는 월(越)나라로 쳐들어갔다가 월왕 구천(勾踐)에게 패하였다. 이 전투에서 합려는 화살에 맞아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병상에 누운 합려는 죽기 전 그의 아들 부차(夫差)를 불러 이 원수를 갚을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부차는 가시가 많은 장작 위에 자리를 펴고 자며, 방 앞에 사람을 세워 두고 출입할 때마다 부차야, 아비의 원수를 잊었느냐! 하고 외치게 하였다.

부친의 유언이니 부차는 자신의 뼈에 새기듯 마지막 유원을 곱새겼을 것이다.그렇게 부차는 매일 밤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원한을 되새겼다.

부차의 이와 같은 소식을 들은 월나라 왕 구천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오나라를 먼저 쳐들어갔으나 대패하였고 오히려 월나라의 수도가 포위되고 말았다.싸움에 크게 패한 구천은 얼마 남지 않은 군사를 거느리고 회계산(會稽山)에서 농성을 하였으나 견디지 못하고 오나라에 항복하였다.

포로가 된 구천과 신하 범려(范?)는 3년 동안 부차의 노복으로 일하는 등 갖은 고역과 모욕을 겪었고 구천의 아내는 부차의 첩이 되었다. 그리고 월나라는 영원히 오나라의 속국이 될 것을 맹세하고 목숨만 겨우 건져 귀국하였다.이것이 바로 부차의 실수였다.

적을 죽일 수 있을 때 죽이지 못하면 화를 당하는 법이다. 와신상담의 교훈은 참고 견뎌서 끝내 뜻을 이룬다는 뜻 보다 적을 죽일 수 있을 때 죽이지 않고 후환을 남기면 후일 크게 당한다는 숨은 뜻이 담겨 있는 사자성어인 것이다.

그는 돌아오자 잠자리 옆에 항상 쓸개를 매달아 놓고 앉거나 눕거나 늘 이 쓸개를 핥아 쓴맛을 되씹으며 너는 회계의 치욕을 잊었느냐! 하며 자신을 채찍질하였다. 이후 오나라 부차가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북벌에만 신경을 쏟는 사이 구천은 오나라를 정복하고 부차를 생포하여 자살하게 한 것은 그로부터 20년 후의 일이다.

이와 같이 와신상담은 부차의 와신과 구천의 상담이 합쳐서 된 말로 ‘회계지치’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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