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138화 (138/620)

< -- 간웅 7권 -- >

“주인마님! 궁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억쇠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보냈다고 하더냐?”

“최준 공이라고 합니다.”

난 순간 무슨 일이 생겼을까 하는 마음에 인상을 찡그렸다.‘하루라도 편할 날이 없군!’난 그렇게 생각을 했다.

“이곳으로 드리라.”

“예. 주인마님!”

“무슨 일로 왔소?”

난 내 앞에 앉은 환관을 봤다.

“최준 어르신이 뵙자고 하십니다.”

“스승님께서요?”

내가 스스럼없이 최준을 스승님이라고 하자 환관은 조금 놀랐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난 빤히 보며 물었다.

“아닙니다.”

“놀란 빛이 역력하신데 아니시다. 스승님의 사람이 아니십니까?”

“맞습니다. 제가 모시는 분이십니다.”

“그럼 왜 놀라셨습니까?”

“고자가 앉은 자리에는 풀도 안 난다고 해서 꺼리는 것이 세상 이치이지 않습니까?”

“그런가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사실 이렇게 이 자에게 스승님이라고 최준 공을 부른 것은 가서 이야기를 하라고 한 말이었다.

내가 봤을 때 최준은 당대에 둘도 없는 석학이면 책사다. 사람의 마음을 얻었으면 그 관리 역시 중요하니 이렇게 지속적으로 돈이 안 드는 아부를 해야 하는 거였다.

물론 나 역시 마음으로 최준 공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어르신이 참으로 기뻐하실 겁니다.”

“그렇습니까?”

“예. 한이 많으신 분이죠.”

순간 환관이 내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을 했다.

“무슨 말입니까?”

“예?”

“바로 하신 말씀 말이요? 스승님께서 한이 많으시다니?”

그제야 환관은 나를 빤히 봤다.

“모르셨습니까?”

“내가 무엇을 알아야 하오?”

“모르셨군요. 이건 제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환관의 말에 난 환관을 뚫어지게 봤다.

“당신이 할 소리가 아니면 스승님에게도 물을 수도 없는 소리지.”

지금 약간의 압력을 넣은 말투로 말했다.

“그, 그렇지요.”

난 이렇게 누구보다 사람을 위협하는데 소질이 있었다.

“말해 보세요. 그대가 말을 했다는 것은 함구를 하지요.”

“예. 꼭 그렇게 해 주셔야 합니다. 최준 어른은 최준 어르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십니다.”

“알겠소.”

그제야 환관은 입을 열겠다는 듯 나를 다시 봤다.

“스승님은 그냥 그런 환관은 아니십니다. 환관은 보통 성이 없지요. 있다고 해도 후일 황제께 하사를 받은 허성이지요.”

허성이라는 것은 본도 없고 근본도 없는 그냥 부르기 편하기 위해 황제가 내려준 장난 같은 거였다. 하지만 그 역시 환관에게는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보통의 백성들이 성이 없으니 성이 있는 사람은 그 보다 높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이 이 고려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르신은 처음부터 이 궁에 성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난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치워 놓은 동경을 보고 다시 한 번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아니겠지. 아닐 거야!’난 내가 짐작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를 기도했다.

“그렇소?”

“예. 회생공.”

환관은 그렇게 말하며 버릇처럼 주변을 살폈다.

“이곳은 듣는 귀가 없소.”

“예.”

“하던 말이나 계속 하시오.”

“우봉이라면 아실 겁니다. 나는 새도 돌아간다는 우봉이지요.”

환관의 말에 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내가 알고 있는 우봉가와 내 스승인 최준은 전혀 연관이 되지 않았다.‘우봉이면,,,,,,.’난 머리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게 요즘 항상 내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

“그 가문의 후손이신 스승님이 어찌 환관이 되셨습니까?”

이것이 내 첫 번째 의문이다.

“사람 취급 못 받는 것이 고자요. 그러니 가문에서도 내쳐진 것입니다. 모르고 내쳐지셨다면 한도 없고 원망도 없을 것인데 어리셨던 분이 너무나 영민하셔서 그게 한이 되어 우봉이라는 두 글자를 머리에 깊이 새기셨다고 하셨습니다.”

“스승님께서요?”

“제가 어르신이 취한 것을 17년 동안 딱 한 번 뵈었는데 그때 딱 한 번 들었습니다.”

난 이 순간 놀라웠다. 17년 동안 측근이 술에 취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스승님이 그만큼 자제력이 출중하다는 걸 거다. 그런데 딱 한번 취했다는 것은 그 자제력을 흔들어놓은 뭔가가 있다는 의미일 거다.

“무슨 연유가 있습니까?”

“저는 그것까지는 모릅니다.”

더 알 턱이 없었다. 이 환관에게서 우봉이라는 두 글자를 안 것도 내게는 참으로 많은 이득인 것이다.하지만 그것이 내 마음을 다시 누를 것은 분명했다.‘운명은 바꿔놓을 수 있지. 물음표가 뒤에 붙어 있었어.’난 동경을 봤던 때를 떠올렸다.

“그럼 전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오늘이 상황제 폐하께서 강화로 거둥을 하시는 날이라 따라야 합니다.”

이 순간 난 최준 스승님도 나처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았소. 내 입궁을 하는 즉시 가겠다고 전해 주시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환관은 내게 많은 정보를 알려주고 돌아갔다. ‘우봉이라,,,,,,.’난 다시 한 번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일로 부르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찾아갈 일이 생겼군.”

난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나는 환관을 보내고 나서 백화와 홍련을 데리고 바로 입궁을 했고 누구 하나 황궁으로 들어가는 나를 막는 자가 없었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복장은 견룡군 위장의 갑옷이다. 그러니 내가 이의방의 사람이라는 것을 다 아는 것이고 문신들은 내가 가는 길을 피하기 일 수 였다.‘이것이 위세군! 참으로 위세가 달다!’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바로 사람들의 눈을 애써 피하며 최준 스승님이 있는 곳으로 갔다.

“왔는가?”

최준 스승님은 내게 하대를 하며 그 하대가 익숙할 만큼 따뜻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내가 스승님을 만난 지 며칠이 되지 않았지만 그가 나를 보는 눈빛은 너무나 따뜻해서 그 자체가 부담이 될 것 같았다.

‘아비의 눈빛인데,,,,,,.’난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최대한 표정을 숨기려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스승님은 뛰어난 머리를 지닌 분이다. 그러면 내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내가 품은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나를 따뜻한 눈으로 보는 분이라고는 해도 그것이 과하면 화가 되는 법이니 숨길 것은 숨겨야 하는 법이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난 일부로 최준 스승이 앉으라는 말이 있기 전까지 자리에 앉지 않았다. 며칠 전만해도 내가 앉아 있었고 최준 스승님이 서서 나를 대했다.

“앉지 않고 뭘 하시는가?”

“앉겠습니다.”

난 조심히 자리에 앉았다.

“자네는 이 정국을 어떻게 보는가?”

“이 조정의 정국 말입니까?”

“그래. 그렇다네.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이전투구의 장이 될 것 같습니다.”

내 답변에 최준 스승님은 흐뭇하게 웃었다.

“맞네. 이전투구의 장이지. 얻으려고 한다면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시기가 지금이야.”

“그렇지요.”

“하지만 얻는 것만큼 적도 많이 만드는 시기가 지금이네.”

“북변으로 갈 것이니 저와는 상관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 내 말을 따라줄 줄 알았어.”

다시 한 번 흐뭇한 표정을 보이는 최준 스승이었다.

“부르신 이유가 정국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까?”

“내 제자가 그 정도도 모를까.”

“그럼 무엇 때문이십니까?”

“그 망할 놈의 채원이 자네의 뒤를 캐려고 하고 있네.”

최준 스승님의 말에 난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저의 뒤를 캔다고요?”

“그렇다네. 그러니 조심하게. 채원이 비록 불학무식하다고는 하나 둔하지는 않지. 욕심이 많은 자라 화를 많이 만드는 자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순검군 산원으로 잘 버틴 것만 기억하게.”

“예. 스승님!”

“이제 채원 그 망할 놈과 우리가 척을 졌으니 그놈을 빠트릴 덫을 파야 할 것이야!”

최준 스승님은 스스럼없이 우리라고 했다.

“예. 파야지요. 팔 겁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척을 진 것이 있습니다.”

“욕심이 화를 부르지 두고 보게.”

“예. 스승님!”

“내가 계속 욕심을 불어넣을 것이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참 그리고 언제까지 그 집에 있을 건가?”

“예?”

“김돈중의 사택 말일세.”

최준 스승님은 내게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채원이라면 나는 자네가 기거를 하고 있는 그 집을 파고 들 것이네. 자네도 치고 이의방에게도 타격을 주고. 어디 역신의 집을 함부로 일개 행수가 내어줄 수 있나?”

나 역시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내 스승이 뛰어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나랑 급이 틀리다. 난 그저 역사를 좀 아는 정도인데,,,,,,.’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가솔들도 많아진 지금 내놓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이건 내 욕심일 거다. 초가에 살고 싶다는 말은 꿈이고 이상이지만 내 사택은 현실이니 말이다.

“그렇지. 지금 내놓는다고 해도 모양새가 빠지는 것이지.”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래. 오죽 잘 알아서 하겠는가? 그냥 이 늙은 것이 노파심이 생겨 부른 것이네. 보고 싶기도 하고.”

최준 스승님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우봉에 대해서 묻고 싶은 충동이 밀왔다. 하지만 절대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 역시 머리에 떠올랐다.‘말하기 전에는 물어서는 안 되는 것이야! 역린도 있는 법이니.’난 그런 생각을 했다.

“자네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채원의 역린을 건드려!”

역린!한비자의 세난 편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역린이라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역린이네. 한비자의 세난편이 나오지. 세난이란 남을 설득시키기가 어렵다는 뜻이지. 한비자는 세난 편에서 말했네. 상대가 명예를 동경하고 있는데, 이익이 크다는 것으로 그를 달래려 하면, 상대는 자기를 소인배로 대한다 하여 멀리할 것이 틀림없고 반대로 상대가 큰 이익을 원하고 있는데 명예가 어떻고, 충의가 어떻고 하는 말로 그를 달래려 하면, 그는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이라 하여 상대를 해 주지 않을 것이 이치네.”

“그렇지요. 누구나 바라는 것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지. 그러니 상대가 속으로는 큰 이익을 바라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만 명예와 지조를 대단히 여기는 자들을 잘 파악하여 그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

참으로 환관이 입에 담기에는 심오한 말이다. 그만큼 채준 스승님은 구중궁궐에서 배움을 깊이 했다는 뜻일 것이다.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용이란 짐승은 잘 친하기만 하면 올라탈 수도 있다고 중국 전설은 전하지 그러나 그의 목 아래에 붙어 있는 직경 한 자쯤 되는 비늘을 사람이 건드리기만 하면 반드시 사람을 죽이고 만다고 하더군.”

최준 스승님의 말을 듣고 보니 채원이 지금 딱 그 꼴이었다. ‘놈이 내 역린을 건드렸어.’물론 내 역린은 백화일 것이다. 그러니 처참하게 죽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도모하겠다는 것을 실행에 옮겼으니 반드시 내 손에 목이 잘릴 것이다.

“채원 그 욕심 많은 놈이 제 역린을 건드린 거군요.”

내 말에 최준 스승님은 날 빤히 봤다.

“그러면 자네의 역린이 뭔가?”

참으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답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설마 밖에 호종을 하고 있는 백화라는 아이는 아니겠지.”

내가 말도 하기 전에 최준 스승인 내게 말했다. 그리고 난 이 순간 돌부처처럼 항상 숨겨왔던 속내를 들키고 말았다.

“맞군!”

최준 스승님 역시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 순간 아비의 눈빛으로 다시 변했다. 이런 눈빛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습니다.”

마음을 들켰으니 숨길 필요는 없다.

“걸림돌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그럼 말을 하기는 하더군요.”

“누가?”

“백화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목을 베어 바쳐 디딤돌은 될지언정 걸림돌은 되지 않겠다고요. 그런 여자입니다. 어찌 제가 걸림돌이 되겠습니까?”

난 이 순간 이상하게 최준 스승님을 설득하고 있었다.

“목을 베어 바쳐 디딤돌이 된다?”

“그렇습니다. 스승님!”

“세 치의 혀는 검보다 무서운 법이지. 하지만 자네라면 분명히 구분할 것이라네.”

“예. 스승님!”

“내가 뭐라고 말을 더 하겠나? 정한 마음 그대로 변치 말게. 그래 이의방의 딸보다야 백화 그 아이가 출중하지.”

최준은 내게 설득이 되었는지 포기가 되었는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다시 나를 봤다.

“무엇이 될 건지 결정은 했나?”

“견룡군 행수가 되어볼 참입니다.”

내 말에 최준 스승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의방이 견룡 군이었으니 최소한 그 직급을 낭장으로 격상 시켜준다면 금상첨화겠지.”

“그렇습니다.”

최준 스승은 처음 나를 봤을 때부터 낭장이 되라고 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그때는 몰랐지만 차분히 앉아 생각을 해 보니 낭장이야 말로 군부를 장악하기에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거기다 종 6품 감찰어사는 어떤가?”

“감찰어사라고요?”

난 최준 스승님을 빤히 봤다.

“채원 그 망할 놈이 자네가 차지한 사택을 물고 늘어지겠지만 그놈 역시 지금까지 챙긴 것이 만만치 않지. 앞으로도 계속 욕심을 들어낼 것이고.”

“그럴 것입니다. 돼지 같은 성품입니다.”

“그렇지. 그러니 감찰어사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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