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7권 -- >
“예.”
그렇게 백화는 진구를 데리고 회생이 있는 방으로 걸었다. 난 내 앞에 차분히 앉아 있는 여 무사를 보고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백화만큼은 되지 않아도 절세미인 축에는 끼는 달레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나를 찡그리게 한 것은 그녀가 바로 옥에 갇혔을 때 옥졸에게 모진 고초를 당한 그 여 무사 중 하나였다는 거였다.
“부르셨나이까? 주군!”
달레가 나를 조심히 보며 말했다. 그리고 난 바로 홍련을 봤다.
“너는 나가서 계속 번을 서라.”
“예. 상공.”
“좀 눈치 있게 서야 할 거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홍련은 두 번 실수는 하지 않겠다는 투로 나를 봤다. 그렇게 홍련이 나갔다.
“고향이 강화라고?”
“그러하옵니다.”
“가보지 않은 적이 얼마나 되었느냐?”
“일곱에 아비 노름빚에 팔려 왔으니 10년이옵니다.”
이 말을 통해 나는 달레가 17살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백화가 달레는 관노라고 들었는데 아비에게 팔렸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관노였다고 들었다.”
“현령과 눈이 맞아 낳은 딸을 면천하기 위해 제가 팔렸나이다. 주군!”
이 말을 통해 지방으로 내려가면 여러 가지 장부 조작이 현령과 하급 행리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짐작이 되었다.
“너는 고향으로 갈 것이다.”
내 말에 달레는 놀라 나를 봤다.
“예?”
놀란 달레를 나는 뚫어지게 봤다.
“금의환향은 아니다 만은 근사한 사내를 달고 봇짐에 한 밑천 넣고 가게 될 것이다.”
“황제폐하의 호위를 말하시는 것이옵니까?”
“아니 감시를 하라는 것이다. 황제폐하께서는 내게 약조를 했기에 가만히 계실 것이다. 하지만 난적이라는 바람은 가만히 있으려는 황제폐하를 자꾸 흔들 것이다. 그것을 내게 알리면 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내가 너에게 사내를 정해줄 권리는 없지만 여자 홀로 가면 보는 눈이 너무 많이 골랐다.”
“제 모든 것에 대한 권리는 주군께 있사옵니다.”
역시 백화의 수하들은 너나할 것 없이 백화를 닮았다. 이래서 윗사람이 잘해야 하는 거다.아가는 엄마를 담고 장졸은 장군을 담고 백성은 임금을 담는 것이다.
“그래 고맙다.”
이것은 진심이다. 그리고 나는 달레를 물끄러미 봤다.
“내가 너에게 해 줄 말이 딱 하나 있다.”
“하명 하소서! 주군.”
“사내는 아무리 품이 넓어도 속 좁은 아이니라.”
사실 이것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기억하기 싫은 일은 기억하지 말고 입에 꺼내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난 진심을 담아 말했고 달레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사내의 단 소리에 쉬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지 말거라.”
“예. 주군!”
달레는 물끄러미 나를 봤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먹먹했다.
“앞으로 오라비라 불러!”
난 그렇게 말하고 달레를 보며 환하게 웃어줬다. 그리고 달레는 놀라 눈이 커져 나를 봤다.
“먼 길 보내는데 해줄 게 그것 밖에 없네.”
“감사하옵니다.”
“네 낭군이 잘난 놈이면 좋을 건데.”
“사내는 주군처럼 품어 안는 품이 넓으면 되옵니다.”
달레의 이 말을 통해 나와 백화 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들은 여 무사들의 수다꺼리가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한 일이니 말이다.
“상공! 백화이옵니다.”
밖에서 조심히 백화가 자신을 알렸다.
“들어와.”
내 말에 백화는 듬직하기는 하지만 꽤나 못난 별초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백화와 별초는 조심히 내 앞에 무릎을 꿇었고 별초는 힐끗 달레를 봤다. 그 순간 입이 쩍 벌어지는 것이 달레가 미인은 미인인가보다.‘뻑 갔네. 갔어.’난 속으로 피식 웃었다.
“으음.”
난 정신이 나간 별초가 정신을 차리라고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별초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나를 봤다.
“진구라 하옵니다.”
“이야기는 소상히 들었겠지?”
“그러하옵니다.”
“내가 오늘 의동생을 하나 얻었는데 아주 깊게 아껴줄 참이야!”
이것은 진구에게 하는 위협과 같은 거였다.
“의동생이라 굽쇼?”
“그래. 이름이 달레지.”
난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려 달레를 봤다.
“달레에 인사를 올려라! 제법 품이 넓어 보인다.”
“예. 오라버님!”
순간 진구는 기겁을 했다. 진구와 별초들은 보는 눈이 있으니 내가 얼마나 막후에서 힘을 쓰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스스로 오라비를 자청하니 놀라는 거다. 그리고 백화도 조금은 놀라 나를 봤다.그리고 역시 나라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나 역시 이럴 때는 품이 참으로 넓은 사내일 것이다.
“달레라 하옵니다.”
“잘 챙겨주고 재미나게 한 세상 살아라!”
“예.”
진구는 짧게 대답을 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겠지?”
“예. 큰 나무가 흔들리지 않게 하겠나이다.”
“그래. 그게 너희 둘의 임무다.”
“예. 회생 공!”
“그리고 거센 바람이 불면 내게 알리는 것이 일이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내일이면 황제폐하가 강화로 가신다. 가까이도 그리고 멀지도 않게 따라야 할 것이다.”
“예. 회생 공!”
진구는 짧게 대답을 했고 난 달레를 봤다.
“잘 살 거라! 내가 한 말 명심하고.”
“예. 오라버님!”
“준비를 해라!”
그리고 난 백화를 봤다.
“백화야!”
“예. 상공.”
“내 누이가 한 사내를 만나 가는구나! 광에 가서 가득 챙겨 주거라.”
“예. 상공.”
난 이렇게 달레와 진구를 위해 세심히 배려를 했고 의종을 위해 마지막까지 보호와 감시를 병행했다.그리고 날이 밝았다.환관의 방.최준은 채원에게서 돌아온 후 바로 믿을 수 있는 환관 셋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어르신!”
말쑥하게 생긴 환관 하나가 최준을 보며 물었다.
“네가 나와 몇 해지?”
“15년은 되옵니다.”
환관의 말에 최준은 다른 환관을 봤다.
“소인은 10년이옵니다.”
“저는 7년 되옵니다.”
환관 셋은 최준을 알고 지낸 연수를 말했다.
“그래. 적은 세월은 아니군.”
“왜 그러시옵니까?”
“그대들이 상황제 폐하와 함께 강화로 가 주어야겠네.”
최준의 말에 환관 셋은 놀라 최준을 봤다.
“오래 가 있지는 않을 것이야!”
“그 말씀은?”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바람이 자꾸 건드리니 가지가 흔들리는 법이지. 그러니 그대들이 나를 도와 나무가 흔들리는지 유심히 봐줘야 할 것이네.”
그제야 최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환관 셋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르신!”
“돌아오면 내 각처소의 맡길 것이네.”
“예. 어르신!”
환관이 짧게 대답을 했고 최준은 바닥에 비단으로 싼 묵직한 것을 들어 올려 탁자 위에 올렸다.구구구! 구구구!비단에 싸여 있는 것 안에 비둘기 소리가 들렸다.
“전서구네. 급히 알려야 할 것이 있다면 알리게 이놈들은 내 집으로 오게 되어 있으니 내가 알 게 될 것이네.”
“예. 어르신!”
비단에 쌓여 있는 것은 전서구일 것이다. 전서구는 방향감각과 귀소본능 등이 뛰어나고 장거리 비행능력이 높은 데서 통신에 이용하기 위해 훈련시킨 비둘기를 말한다.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예전에는 통신용으로 사용되었고 전쟁 때 군용비둘기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BC 4000년경에 이미 중근동 지방에서 사육되어 BC 3000년경에는 이집트에서 어선이 통신에 이용한 기록이 있다. 또한 고려 시대에 이보다 빠르고 정확한 통신수단도 없었다.
하지만 훈련시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이 전서구였으니 최준이 지금까지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 동안 많은 것을 준비해뒀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또한 최준도 회생처럼 의종이 그냥 가만히는 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의종이 움직인다는 것은 내란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것을 누구보다도 최준은 잘 알고 있었다.
‘원하지 않으신 자리니 입맛에 맞는 바람이 부시면 흔들리시겠지.’최준은 그런 생각을 했다.
“내일 상황제께서 거제로 거둥을 하실 것이네.”
“예. 어르신! 심려 마십시오. 저희들이 잘 알아서 할 것이옵니다.”
“그래. 그대들의 어깨에 환관들의 명줄이 달렸네. 다시 무신의 난 같은 것이 일어난다면 죽어나는 것은 그대들도 알 듯 환관이라네.”
“예. 알고 있사옵니다.”
짧게 대답을 하는 환관 셋을 최준이 유심히 봤다.
“환관은 힘을 가져서도 안 되는 것이고 그 힘을 써도 안 되는 것이지만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있어서도 안 되는 존재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지?”
“그렇사옵니다. 환관이 힘을 가지면 난신적자가 되고 힘이 없으면 누구도 벨 수 있는 희생d양이 된다는 말씀 유념하겠사옵니다.”
“그래. 그래야 할 것이야!”
최준은 그렇게 의종이 거제로 떠나는 것을 준비했다. 그리고 이번 일로도 그가 얼마나 식견과 재능이 뛰어난 인물인지 알 수가 있었다.정말 불구만 아니었어도 그가 앉을 자리는 환관의 수장인 상선이 아니라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문하시중이었을 것이다.
‘재주가 있으면 무엇을 하나? 겨우 환관인 것을,,,,,,.’최준은 그런 생각을 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고 그렇게 잠시 씁쓸한 표정을 하다가 회생의 얼굴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었다.‘나는 못 되도 내 제자는 되게 할 수 있지.’이 순간 최준은 자신이 꾸지 못하는 꿈을 회생에게 꾸게 하려는 듯 했다.
최준은 지금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하지만 부모의 마음이 모두 다 옳은 길로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를 스승으로 여기는 회생에게 내가 꿈꾸는 세상을 주마!’최준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 순간 최준은 그냥 그런 평범한 환관은 아닌 듯 했다.
아니 그냥 그런 환관이라면 절대 이러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최준에게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연이 있는 듯 했다.
9. 최준의 정체?쾅쾅! 쾅쾅!이른 새벽.회생의 사택 정문을 요란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쾅쾅! 쾅쾅!다시 하 번 요란한 소리가 들렸고 새벽잠이 없는 억쇠가 무슨 일인가 해서 달려갔다.
홀아비다보니 새벽잠이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밤에 무리할 일이 없으니 일찍 자고 깊이 잘 것이니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노인들이 빨리 일어날 거다.
억쇠는 문을 열며 고개를 꺄우뚱거렸다. 이른 새벽에 이 사택을 찾는 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며칠 전에 궁에서 왔다는 아름다운 미녀가 한 번 온 것이 전부였다.물론 회생을 찾아온 해월이었고 억쇠는 아름다운 미녀라고 기억을 했다.
“뉘시오?”
“회생 공 계신가?”
자신의 주인인 회생을 공이라고 부르는 자들은 분명 황궁에서 온 자라는 것을 억쇠도 짐작으로 알았다.
“계십니다만?”
“긴히 드릴 말씀이 있네.”
“뉘신지 말씀해주시면 쇤네가 전하겠습니다.”
“최준 공께서 보냈다고 전해주시게 보는 눈이 많으니 조금 들어가서 기다려도 되는가?”
사내의 말에 억쇠가 유심히 살폈다.턱 밑에 수염이 없고 눈빛이 초롱한 것이 환관 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십시오.”
이 순간 아무렇지 않게 억쇠가 말하는 것 같지만 이미 이 환관으로 짐작이 되는 사내를 2명의 별초가 감시를 들어갔다. 그리고 억쇠도 어림짐작으로 이 사택을 누군가가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별 일은 없겠지.’억쇠는 그렇게 말하고 사내를 봤다.
“기다리시우!”
억쇠는 그렇게 말하고 회생을 향해 달려갔다. 난 이미 잠에서 깨어나 깊은 신음에 빠져 있었다.
이제 거사 후의 일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그리고 요즘 들어 가끔씩 들리던 환청도 들리지 않았다.물론 논공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완벽하게 정리가 됐다고는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논공은 상황제가 된 의종이 강화로 가고 태자였다가 폐서인이 되어 양인이 된 의종의 아들이 진도로 가면 이루어질 일일 것이다.
“이전투구가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겠지. 그 틈에 나는 떠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고.”
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의방이 지금 자신과 같이 누구를 공신록에 넣을까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고는 욕심이 없으니 이의방이라면 보란 듯 1등 공신에 올리겠지.’나는 지금 마치 자신이 이의방이 된 듯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엇이든 짐작을 함에 있어서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안개정국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남의 입장이 되어 생각을 하면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게 되는 법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이것을 역지사지라고 한다.
‘그 다음은 각 대장군들이 될 것이고 이등 공신이 될 것이야! 우선은 노장들을 끌어안아야 하니까.’난 나도 모르게 내 추론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뇌전의 끝자락을 맞아 머리가 좋아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온전히 맞았으면 숯덩이가 되었겠지.’그리고 인상을 찡그렸다.‘용호군이 지금 이의방을 도와주고 있으나 그것은 사상누각과 같은 거다.
용호군 대장군의 마음이 돌아서면 이의방도 어려워지니 어쩔 수 없이 줏대와 염치라고는 개에 주려고 해도 없는 대장군들을 홀대 할 수가 없지.’차근차근하게 보면 고려 조정이 보이고 이의방의 마음이 보였다.‘문제는 채원인데,,,,,,.’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난 채원과 이의방에게서 흐르는 미묘한 흐름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또 내게 은연중에 도모를 하라는 지시도 내린 상태였다.
‘아마 이의방은 채원에게 3등 공신록을 내려서 격노하게 만들 거야.’ 내 생각대로 일이 진행이 된다면 이의방은 자신의 정적들을 은밀히 숙청하려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내게 시킬 것이 분명했다. 그럼 난 어쩔 수 없이 피를 봐야 할 것이고 그건 내게 적이 많아진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의방의 검으로 전락할 수는 없는데,,,,,,.’절로 인상이 찡그려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다가 이의방이 실각이라도 하는 날에는 나 역시 온전치는 못하게 되니 말이다. 역시 이의방과 나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었다.
‘딸도 준다며 나를 잡고자 하는데,,,,,,,.’정말 이의방에게서 빠져 나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황제가 어떻게 받아드릴까?’이 자문은 이의방의 독단적인 공신록 책정에 대한 것도 포함되어 있지만 태후나 의종에게 전해들은 나에 대한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