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136화 (136/620)

< -- 간웅 7권 -- >8. 진구와 달레.나와 백화는 내 사택으로 돌아왔다. 새벽녘이라 적막함까지 감돌았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마치 바다에 노는 거대한 고래 같았다. 정말 이의방이 이 사택을 내게 줄지는 참으로 몰랐는데 지금 내가 가지고 있으니 신기하기도 했다.

‘현대에서는 굶어죽을 만큼 못난 위인이었는데 이곳에 와서는 이 정도로 잘 나가네.’이래서 사내는 때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있는가 보다.나는 다시 내 사택을 쭉 둘러봤다.

‘내가 얼마나 이곳을 지켜낼 수 있을까?’

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쾅쾅! 쾅쾅!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백화가 문을 두드렸고 그 소리를 듣고 만적이 뛰어나와 문을 열었다.

“왜 네가 문을 여는 것이냐? 네 아비는 어디에 가고?”

“아비는 저녁이면 호랑이가 물어가도 모르게 잡니다.”

만적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홀아비는 저녁잠이 많다. 밤에 할 일이 없으니 잠이나 자는 거였다. 그런데 그렇게 밤에 많이 자도 낮에는 항상 피곤한 것이 바로 홀아비다.‘장가를 보내줘야겠네.’난 문뜩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난 만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만적을 봤다.

“찾았느냐?”

“쉽게 찾아지면 찾아지겠습니까? 그냥 어깨만 으쓱 하고 왔습니다. 주인마님!”

“어깨만 으쓱 하고 왔다?”

나는 다시 물으며 만적을 봤다. 여전히 그의 머리 위에는 만적이라고 둥둥 떠 있었다.총부처럼 운명이 바뀌면 이름도 바뀐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만적의 이름이 바뀌었으면 해서 본 거였다. 하지만 그 이름은 만적 그대로였다.

“예. 저의 품에 은병이 있으니 어깨가 절로 으쓱 해 졌습니다.”

“폼만 잡고 왔다는 거군.”

“예. 그렇습니다. 주인마님!”

난 만적의 대답에 언제쯤이면 만적의 이름이 바뀔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찾을 수는 없는 걸 거다. 어디 거상이 쉽게 되더냐?”

“그렇습니다. 주인마님!”

“그래 들어가 봐라.”

“예. 주인마님!”

만적은 내게 꾸벅 절을 하고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무척이나 표정이 밝아진 만적이었다. 저렇게 꿈이 생기니 표정도 바뀌는 모양이다.이제 다시 나와 백화만 남았다. 그리고 나는 물끄러미 다시 이 거대한 사택을 보며 내게 어쩌면 과분한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러십니까? 상공!”

“참 넓다. 그치! 너랑 나랑 살기에는 너무 넓다.”

“그렇사옵니다. 상공!”

내 말에 백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는 금덩이나 많이 챙겨두고 초가나 짓고 살자.”

난 해맑게 백화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그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순간 해맑게 웃던 백화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홍련이옵니다. 송구하옵니다. 주군!”

홍련이 급하게 뛰어와 백화와 내게 허리를 숙였다.

“너는 이 밤에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백화가 따지듯 물었다.

“오늘 밤 제가 번이옵니다.”

“그래?”

백화는 인상을 찡그렸다. 화를 내고자 했지만 낼 명분이 없었다. 그리고 난 순간 백화에게 한 말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그리고 천천히 홍련에게 가서 작게 물었다.

“다 들었지?”

아무리 무위가 없다고 해도 이 순간은 살기를 뿜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송, 송구하옵니다.”

이 송구하옵니다. 라는 말은 다 들었다는 의미일 것이다.그리고 난 다시 백화를 힐끗 보고 홍련을 봤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이빨 꽉 다물어라.”

“예. 주군!”

그 순간 홍련은 이빨을 꽉 깨물었다.

“누구한테라도 토설을 한다면 정말 이빨 꽉 다무는 일 생길 거다.”

난 괜히 부끄러워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예. 주군!”

홍련은 내 말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백화야!”

“예. 상공.”

“나는 너랑 같이 그러고 싶다.”

난 그렇게 말하고 백화를 보며 환하게 웃어줬다. 그리고 홍련은 나를 힐끗 보며 계집애처럼 재미있다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 정말 이빨을 꽉 깨물었다.하지만 내가 한 말은 쉽게 이룰 수 없는 꿈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이 권력과 이 힘을 모두 버리고 간다면 사내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나도 알고 백화도 알았다.내 어깨에 올려있는 이 고려라는 짐이 나는 이 순간 이렇게 무거워졌다.

그리고 내일이면 이제 이 거사의 모든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제의 거둥이 있을 것이다. 그럼 정말 고려 18대 황제 의종의 시대는 끝이 나고 19대 명종의 시대가 오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완벽히 준비를 해 드려야지.’내가 이 개경 황도에 남아 있는 이유는 오직 그것 때문이었다.

“백화야!”

“예. 상공.”

“너의 아이들 중에 가장 믿을 수 있는 아이가 누구냐?”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가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여 무사가 누구냐고 물은 것이다.”

내 말에 백화는 나를 잠시 봤다.

“그것은 왜 물으시옵니까?”

“멀리 보내야 할 것 같다.”

내 말에 백화는 뭔가 짐작이 가는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화출신 달레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강화출신?”

“예. 염전관노의 딸로 태어나 벽란도까지 팔려갔던 아이입니다.”

“믿을 만 한 것이냐?”

“사람을 믿고 안 믿고는 믿는 사람의 마음이지 않습니까?”

백화의 말에 난 백화가 달레라는 여 무사를 무척이나 믿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 아이를 고향으로 보내줘야겠다.”

“황제폐하를 따라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그래야 할 것이다. 이의방 행수도 믿을 수 없고 다른 어떤 무리도 믿어지지 않는다. 황제께서 가만히 계시려고 해도 황제폐하를 흔들려는 바람은 무척이나 많을 것이다.”

“그들을 막으려는 것입니까?”

백화가 나를 보며 조심히 물었다.

“그들을 막기보다는 부는 바람을 내가 알고자 한다.”

“예. 달레가 그럼 제격일 것입니다. 달레를 불러오겠습니다. 상공.”

“그래 조용히 불러라.”

“예. 상공.”

“그리고 박현준에게도 믿을만한 자 하나를 내게 보내라고 해라.”

“예?”

이번에는 백화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나를 봤다.

“짝을 지어 보내야 보는 눈이 적을 것이다.”

그제야 백화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상공.”

백화는 그렇게 짧게 대답을 하고 우선 별초 낭장 박현준을 찾아갔다.이제 남은 것은 홍련과 나 뿐이다. 홍련은 둘이 나와 둘이 남다보니 내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뭘 그렇게 눈치를 보냐?”

“송구하옵니다.”

“너는 내가 재미있지?”

“아, 아니옵니다.”

“아니 재미있잖아.”

“솔직하게 말씀 올려도 되겠사옵니까?”

“그래. 산수 갑산을 갈지언정 할 말은 해야지.”

‘삼수갑산’은 두 가지 지명이 합쳐진 이름이다. 삼수’는 삼수라는 지역 이름이고, 갑산은 갑산이라는 지역 이름이다.

삼수는 함경남도 북서쪽 압록강 지류에 접하고 있는 지역이다. 지명의 이름이 삼수인 것을 보면, 세 개의 큰 물줄기가 합류하는 곳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이 삼수는 대륙성 기후의 영향으로 이 고려에서 가장 추운 지역에 속한다. 겨울철 평균 온도가 섭씨 영하 20도라고 하니 그 추위를 짐작할 수 있다.

오줌을 누면 오줌 줄기가 바로 얼어들어가는 곳이 바로 삼수인 것이다. 그리고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오지 중에 오지가 바로 산수인 것이다. 갑산은 함경남도 북동쪽 개마고원의 중심부에 있는 지역이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특유의 풍토병이 있을 정도로 사람이 살기가 어렵고 험한 곳이다. 갑산이라는 지명처럼 정말 큰 산이 겹겹이 쌓여 있는 곳이었다.

지명에 큰 산이 있어 산세가 험한 지역임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그곳은 또한 춥다.

그래서 한 번 귀양을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곳이 바로 두 곳이었다.그래서 사람들은 삼수갑산에 가더라고 할 말은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 만큼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버티겠다는 걸 거다.그리고 지금 홍련이 그랬다.

‘삼수갑산에 보내 줄 수도 있어.’난 그런 생각을 하며 겉으로는 웃었고 속으로는 진도를 떠올리는 소리장도의 격을 품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나는 다시 홍련을 봤다.

“백화님이 부러워 오금이 저립니다.”

홍련은 그렇게 말하고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이 순간 말 한마디에 홍련은 삼수를 피했고 갑산을 넘으며 진도에서 돌아선 것이다.

“괜한 소리를 하는구나!”

“송구하옵니다. 주군!”

“너는 가서 달레나 내 방으로 데리고 와라.”

“예. 주군!”

홍련은 그리고 바로 돌아서서 뛰었다. 그리고 나는 뛰는 홍련을 보며 씩 웃었다.

“당연히 부러울 거다. 하하하!”

난 그렇게 작게 웃으며 내 뒤채 전각 침소로 갔다.

“상공의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백화는 차분히 서 있는 별초 낭장 박현준을 보며 물었다.

“그럼 상투를 안 튼 놈으로 골라야겠군요.”

“그럴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탈영이 되는데,,,,,,.”

박현준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무장의 길은 버려도 무인의 길은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디 무인이 자리를 연연하겠습니까? 아니 그렇습니까? 낭장!”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쉬이 가려는 자가 있을지 모르겠소.”

박현준은 자기만의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귀가 밝고 감각이 밝은 별초들은 박현준이 자신을 지목해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대전 전각 아래 비밀 방에 웅크리고 있을 때 백화가 이끈 여무사 중 곱지 않은 여무사가 없었다.

말 한마디 붙이고 싶었지만 서슬 퍼런 별초 낭장 박현준 때문에 쉬이 붙이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던 별초들이었다.

“물어보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그리고 박현준은 고개를 돌렸다.

“모두 내려와라!”

그 순간 바람이 일듯 소리도 기척도 없이 검은 그림자처럼 10명의 별초들이 박현준의 앞에 섰다. 그들의 눈빛은 자신을 지목해 달라는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이놈들 봐라.’박현준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들었을 터이니 너희들도 알 것이다. 누가 갈 것이냐? 무장으로는 치욕적으로 군문에 기록될 것이다. 스스로 탈영을 한 것이니 그렇게 기록이 될 것이다.”

박현준의 말에도 누구 하나 강화로 가고 싶다는 마음을 돌리는 자가 없었다. 이제는 강화로 보내기 위해 설득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보내지 않게 골라내야 하는 것이다.

“이놈들!”

“무장의 길은 버려야 하나 무인의 길이지 않사옵니까? 황제폐하를 그림자처럼 보필하는 일이옵니다.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넉살좋게 생간 별초 하나가 말했고 별초 낭장 박현준는 인상을 찡그렸다.‘말을 그렇게 했지만 네놈들의 속내는 시커먼 숯이다. 이놈들!’박현준은 그런 생각을 했다.

“네놈은 아우가 있지?”

“그렇습니다.”

“아우 앞길 막는 형이 될 수는 없지 않느냐?”

“그, 그렇습니다.”

“너는 안 될 것이다.”

이제 확률이 9대1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그렇습니다. 낭장!”

“그렇지. 사라져라!”

박현준의 말에 제일 먼저 이죽거린 별초가 인상을 찡그리며 검은 그림자처럼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금 남은 것들 중에 형제 중에 관직에 적을 둔 것들은 사라져라.”

“에이 씨!”

박현준의 말에 정신없는 별초 하나가 인상을 찡그리며 자신도 모르게 욕지걸이가 튀어나왔고 그 순간 박현준의 살기어린 눈빛이 그를 향해 쏟아졌다.

“송, 송구하옵니다.”

“너희들도 사라져라!”

박현준의 말에 도합 6명이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셋이다. 이제 강화로 미인무사 달레랑 내려갈 확률이 이들에게는 3할이 되는 거였다.박현준은 힐끗 남은 3명의 별초를 봤다.

“진구! 너만 남으면 되겠다.”

진구는 남은 별초 중에 제일 못난 별초이기도 했지만 제일 믿음이 가는 별초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고아였다.

“제, 제가요?”

“그래. 너만 한 놈이 없구나! 고아니 이런 복도 있구나!”

“그렇습니다.”

진구는 좋아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러다가 표정이 굳어졌다.

“죄인이 되는 거지요?”

“그렇다. 너는 군문을 이탈한 것이 될 것이다.”

“으음,,,,,,.”

진구는 긴 한숨을 쉬었다.

“싫으냐?”

“좋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예쁜 마누라를 얻는다고 해도 군문을 이탈한 죄인으로 기록되는 것은 마지막 순간에 가슴이 아픈 것이다.

“그렇다. 네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또 죄인이 되어야 하겠지.”

“압죠. 예. 알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박현준은 진구에게 그렇게 말하고 백화를 봤다.

“진구라는 자입니다. 얼굴은 뚝배기 같이 생겨도 성품은 청자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백화는 진구를 봤다.

“따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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